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이것이 사탄을 이기는..

살후1: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2011년 8월,9월 30명의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3명의 다른 나라에서 온 괴한들로 부터 습격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간다의 이슬람을 믿던 14세 소녀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아버지로 부터 6개월동안 감금을 당한 일이 발생했습니다(출처: Open Doors). 같은달 인도의 한 목사가 반 기독교 단체로 부터 심하게 테러를 당했습니다(출처:Gospel for Asia).

본문의 바울의 말(4-11)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처했던 것 처럼 오늘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가장 적절한 말인듯 합니다.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랑과 믿음이 계속 성장해 나갔습니다(3-4). 인간이 행하는 박해는 하나님의 일을 중단 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1세기나 오늘 21세기나 동일합니다.

심한 박해가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보여줍니다(5).

박해를 당하는 것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크게 고통 스럽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와 안식으로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6-7).

환경이 평안하지만 늘 걱정과 불안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먹어야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진 박해와 압박 가운데지만 안식을 누리고 마음의 말할수 없는 평강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은혜입니다.

바울이 박해 받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것 처럼 오늘 우리도 이 세상에 주님을 위해 박해를 받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11-12).

또한 박해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들이 구원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8-9). 이것이 사탄을 이기는 것입니다.

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그리스도인의 삶

살전5:12-2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 마지막 부분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지만 또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신앙을 평가 할수 있습니다(12-15). 그 관계성의 출발은 사랑과 존경입니다.

교회안에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 아니면 신앙적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 등등 여러모양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3-24).

 특히 사람과의 관계성에는 인내의 미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대하여 오래참으시는 것 처럼, 우리도 서로 인내해야합니다(14).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거나 좋지 않는 태도로 대할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됩니까? 똑같이 대하고 싶지요. 자연적인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신것 처럼 그들에게 선으로 복수를 하는것 입니다(15;마5:41-43). 우리의 본성을 거스리기에 힘든일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나도 계속힘들고 상대방도 힘들고 악한것이 계속 순환되지만 선으로 갚으면 악을 풀어놓는 자유가 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거룩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경건하지 못하게 사는 형제들을 권면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그렇게 행하였습니다(4:11-12,5:14,살후3:6-14). 누군가를 권면하는 것은 어려운일이지만 그 권면은 결국 공동체를 거룩함으로 인도합니다(23).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큰 특징은 끊임없는 감사입니다. 그 감사의 원천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우리를 구원하심입니다(16,18).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셨다는 것 하나만으로 평생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 생활의 활력은 기도생활입니다. 기도하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하고(17),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도 힘을 다해야 합니다(19-22).

오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렇게 살아보지 않겠습니까?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재림

살전5: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종말'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는 사람들나 관심사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은 재림과 연결 시켜 생각을함으로 자연히 주님의 재림에 대해 관심을 갖습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시한부 종말론자' 들이 생겨난곤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 역시 주님의 재림을 준비 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의 재림시기를 아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들의 관심사를 알고 주님의 재림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그러면서 "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쓸것이 없다"고 합니다(1). 바울은 주님이 재림에 대해 가르치신것 그대로 그들에게도 가르치기를 원했습니다(마24:36,37,42-44).

바울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주님의 재림 시기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은 생각지 않는 시간에 갑자기 임하시기 때문입니다(2-3).

그러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빛의 아들,5)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햐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미 우리를 정죄의 심판으로 부터 분리 시키셨기 때문입니다(9)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것 입니다(8).

 나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갑니까?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죽음

살전4:13-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막상 내 주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다면 당황하게 되고,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주님이 재림하시기전에 죽음을 맞이한 성도들을 어떻게 될까? 하는 의구심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전 죽은 성도들은 영생을 얻지 못하고 부활에 동참하지 못할까? 하는 오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소망을 줌으로 염려를 불식시켜줍니다(15),(마24:23-31).

주님의 재림 사건은 전 우주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16). 성도들(죽은 사람이나 살아 있는 사람,14,16,17)에게는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것입니다.

주님은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이미 말씀 하셨, 바울은 죽음은 잠자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13).잠을 잔다고 표현한것은 죽음이란 임시적 상태임을 말해줍니다.

 물론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슬픔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소망이 없는 슬픔이 아닙니다

죽음에는 이별의 아픔이 있지만, 그것은 잠깐의 이별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거룩함의 축복

살전4:1-12, 오늘의 묵상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안에서 강건하였고(3:8), 복음의 위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1:8).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축복하였습니다(9-10). 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바울에게서 배운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행하기를 원했습니다(1,10).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한 삶을 산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치는 더욱 높습니다. 특히 경건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1,7).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십시오. 나의 행동, 말, 생각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6:19).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하나님을 욕되게 할수 있습니다.

인간 생활속에 피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성생활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건강한 성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의 내용이 나옵니다(3-6). 건강한 성생활, 성경적 성생활의 정의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아내와 남편이 한몸을 이루며 평생 서로 사랑하고 의탁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서구사회, 심지어는 한국에도 성적으로 문란한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을 갈때마다 늘 보게 되는  도심지를 벗어난곳에  소위 러브호텔, 펜션들이  여전히 홍수를 이루고 있고, 가까운 유원지에는 좋은차를 타고온 나이든 사람과 젊은 여자가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TV 프로에 나오는 드라마, 음악,예능프로에도 서로 질세로 선정적인 장면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던 로마시대, 헬라의 문화 역시 문란한 성 문화가 범람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한 가정을 이루며 당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거룩함은 나를 구별되게 만들어줍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굳건히

살전2:17-3:5,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서 복음 전파자의 감정 상태를 잘 알수 있습니다(17,19,;3:1,5). 본문에 비친 바울의 모습은 복음을 전하고 그냥 가버리는 그런 설교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들을 사람들에 대한 깊은 영적  관심을 한시도 잊어버리지 않는 목회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한 바울의 관심은 새로이 믿는 사람들을 넘어 광의(廣義)적으로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관심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가족의 특징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서로 돌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서로 돌보아야 합니다.

특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받을  환난을 준비 시키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3-4). 초대교회때는 예수를 믿는다는 자체가 고난을 의미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말씀 하셨듯이 고난과 박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하나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눅14:27).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일이 없는 한국이나 북미주의 사는 우리에게는 이 사실이 현실감이 없어 보이지만 ,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때로는 손해를 당하는 일이 생겨도 감수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참아야 할 일이 생기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고, 그 믿음을 반석 위에 올려 놓거나(3,5) 아니면 더욱 믿음을 강건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7-8).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지금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1-5). 세상을 살다 보면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고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누군가 신앙의 용기를 준다면 큰 위로가 됩니다.

오늘 내가 용기를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 입니까? 아니면 나를 격려해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이 일에 나를 쓰시기를 원하고 누군가를 나를 위해 사용하시는지 모릅니다.
주안에서 굳건하게 서십시오!!!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방해를 받을 때

살전2: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에 유대의 불신자들은 바울의 복음 전파를 최대한으로 방해 하였습니다(행17:5-15). 복음 전파에는 이렇게 방해가 큽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싸움입니다. 항상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목회 사역도 그렇고, 기도하는 일도 그렇고...

이들은  새로 믿는 신자들의 마음을 흔들려고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영적지도자를 불신하게끔 하였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자신이 어떻게 사역을 했는지를 변호하는 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3-5).

사탄이 가장 공격하기 쉬운 방법은 그리스도인이나 지도자들에 대한 나쁜 평판을 만들어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바울에 따르면(혹은 베드로도 역시 벧전2:11-12) 거룩하고 흠없는 삶을 살아서 그것을 이겨야 함입니다(10).

 지도자들의 삶의 기대치는 상당히 높습니다(2-12). 지도자는 성경적인 삶, 높은 수준의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지도자를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이 되도록(4),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유순하면서도 긍휼함(7-8)으로 희생적인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9)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격려함으로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도록 해야야 그들을 낙심 시켜서는 아니됩니다.

 많은 방해가 있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곳이나 어느때이든지 역사하심을 확확신 하고 있습니다(13-15).

복음을 전하다, 아니 하나님을 거스리스는 문화속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 때 비난을 당할 수 있고, 부당함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미리 아시고 주님 때문에 핍박을 당할때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음을 알려주는 표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12)

오늘 주위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흠없고 경건한 삶을 살아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또한 복음을 듣기 싫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도록 말입니다.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살전1:1-10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고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러면으로 부터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살해의 위협, 공개적 망신, 체포의 위협...

사실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실라도 숱한 방해 때문에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박해를 받으면 교회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데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박해가 있고 방해가 있어도 복음 전파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그 어느 세력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4,5,6,7,8)

이들이 어려운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인내력이 강해서 보기 보다는 그들의 믿음을 붙잡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교회지도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도피하고... 교회가 이렇게 상당한 어려움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일은 중단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교회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마다 그 교회가 어떤 형편에 있던간에 하나님은 그 교회를 붙잡고 계심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이 큰 확신을 주심으로 ...(5). 확신이 없으면 흔들릴 수 있지만 확신이 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전적인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도리어 바울이  이들로 부터 큰 위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주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 이들은 바울 뿐만 아니라 다른 믿는 자들에게도 큰 힘을  주고 있음을 상기 시킵니다(9).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그들을 붙들고 계시고, 성령님이 확신을 주시고 주위에 기도하는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빚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입니다. 또한  주변에 홀로 외로이 신앙 생활하는 분들에게도 신앙의 격려를  주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