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시험을 받을 때

마4: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장면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시험 받으심은 그분의 공생애 사역 시작 부터 사탄을 제압하고 시작하심이(눅11:20-22)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주님에게 세 번에 걸쳐 시험을 했습니다(3,6,9).
주님은 세 번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험을 받을때에 하나님의 말씀(계19:13)으로 사탄을 이겨야 함을 몸소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주님이 친히 시험을 받으셨기에
시험 받는 자를 능히 도우시는(히2:18),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자 역할을 하시기 위함입니다(히4:14).

어떤 시험이든지 말씀으로 이길 수 있고,
대제사장이신 우리의 신실한 중보자 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든든합니다.


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성령님

마3:13-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침례(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침례(세례)를 받으시러 오시자 매우 당황했습니다(13-14).

자신이 주님에게 침례(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오십니까? 하면서 사양했습니다(14).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침례(세례)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요당강에서의 두 분의 대화는 의미심장합니다(15).

주님은 침례(세례)가 필요없는 죄를 모르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가 침례(세례)를 받으심은 죄가 없으신 그분이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는 속죄 사역의 출발을 알림을 말합니다(벧전3:18).

또한 예수님이 침례(세례)를 받으심은 요단강에서 수많은 사람들앞에 진행된 왕의 대관식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17)라는 음성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16).

주님에게 임한 성령은 불과 같은 성령이 아니라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마11:29) ,
종으로(막10:45),
고난당하심으로 (사53:2-3) 오심을 성령이 보여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양명성이 있습니다.
불과 같은 성령님은(행2:3)를 강하고 담대하게(행4:13) 하시고,

비둘기 같은 성령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빌2:5).

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회개

마3: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침례(세례) 요한의 모습이 나옵니다.
요한이 언제부터 광야에서 살았는지 알수 없지만, 광야에서 살면서
특이한 생활을 했습니다(4).

본문에 소개된 그의 모습만 보아도 그는 매우 야성(野性)적인 사람임을 알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던 사두개인이던(7), 누구든 거침없이 설교했고,
그의 설교는 매우 강렬했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고(8),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조리 잘려 불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습니다(10).

직선적이고 강렬한 설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세례)를 받았습니다(5-6).

그는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야(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11-12),
그분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했고(11),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는 
오늘날 사역자들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8) 유대 광야에서 외쳤던 요한의 목소리가 
오늘도 나에게 들리는듯 합니다.

바울도 역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엡5:8).

" 귀 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의 주권

마2:13-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 안 다음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하나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에게는 꿈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눅1:26-28),
요셉에게는 꿈으로 지시하셨습니다(1:20;13).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게 하심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먼 여행길을 떠납니다(14).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이들은 다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19-20).
다시 돌아와 안전한 곳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22-23).

마태는 이일이 이미 오래전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일임을 상기 시킵니다(15,17,18,23).

헤롯의 영아들  학살 사건(16),
세상에 오시자 마자 아기 예수님의 애굽의 피신 생활(19).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의 작정하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일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처럼(13,16),
지금 이시간도 테러와 압제를 피해 이웃나라로 피신해가는 수많은 난민들이 있습니다.
시리아와 지금 내전 상태에 있는 남수단과 같은 곳의 사람들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역사와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믿기에(사45:7),
오늘도 세계 평화와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2013년 12월 25일 수요일

만유의 주

마2: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천문학자들이었고 멀리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성경학자들을 따르면 이들이 도착한 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약18개월이 지난 후라고 합니다.

주님이 탄생한 곳은 말구유였는데(눅2:16),
본문에 이들이 찾아온곳은 집이었습니다(11).
이것을 보면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들은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머나먼 길을 마다않고
 새로 탄생하신 왕을  뵈로 왔습니다(2).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가 계신집에 들어가 그앞에 엎드렸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11)

새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헤롯의 심기를 불편하게했습니다(3).
헤롯은 아기예수가 있는 곳을 찾을려고 애를 썼지만
박사들은   헤롯을 속였습니다(12).

마태복음의 처음 독자인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인 박사들이 그들의 메시야에게 경배한것을 불편하게 느꼈을것입니다.

하지만 아기예수의 탄생에 첫 이방인들이 찾은것은 주님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로 오셨음을 마태는 보여주길 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엡1:22).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임마누엘

마1:18-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요셉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요셉은 " 의로운 사람" 이었기에 이일을 누구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파혼을 할려고 했습니다(19).

마리아는 순종과 소박함을 겸비한 처녀였고(눅1:38),
요셉은 조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보면 주님이 왜 이 가정에 오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에 나타나셔서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으로 된 것임을 알리셨습니다(20).
아기의 이름을 " 예수"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이는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 부터 구원할 자이시기에(21)...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신 메시야가 오셔서 모든 압제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것을 열망해왔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사야의 예언처럼(22-23),
주님은 소박한 가정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요란스럽거나 화려하지 않고
조용히 겸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운데 '임마누엘'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그 은혜의 경륜

마1: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임을 믿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가계도를 그린다면 나로 부터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다른 방법으로  가계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이새와 다윗을 그리고(2-6),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부터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7-16).

마태는 여기서 4명의 여인들을 언급하는데,
이 여인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아니고,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다말은(3,창38)은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두 아들을 낳았고,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은 여리고성의 창녀였습니다(5,수2;6:22-25).

보아스는 모압여인 룻과 결혼을 했습니다(5,룻1-4).
다윗의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은 우리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6,삼하11).

인간이 세운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눈이 다릅니다.
어떤이는  여기에 언급된 여인들 처럼  도저히 수준에 못미치는(?)는 사람이지만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자녀로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고전1:27).

이 어찌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엡3:1) 아니고는  어찌 설명이 되겠습니까?

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주님이 먼저가 되도록..

고전7:25-4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결혼을 하지않은 사람을 위해 권면합니다.
되도록이면 자신 처럼 혼자 지내기를 권면하지만(26),
결혼을 하는것이 잘못된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28).

결혼을 하면 가정에 대한 의무때문에 마음이 분산됩니다(33-34),
마음이 나누이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그의 가르침입니다(35).

다시말해 바울의 강조점은 결혼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38),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있습니다(마6:33).

본문의 원리는 단순히 결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던(직장생활, 비지니스, 친구관계 등..)

만일 직장생활이 주일을 성수하는데 방해를 준다면,
만일 비지니스가 신앙생활에 방해를 준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무엇을 우선으로 선택해야할것인지의 문제입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일에 "..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기는것"(35)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결정할것이 많습니다.
행할것이 많습니다.

무엇을 결정함에, 무엇을 행함에 주님이 먼저가 되도록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주신은사대로

고전7:17-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17)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살 것을 말합니다(17,20,24).

할례를 받은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면 할례를 안받은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18),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면 일부러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19)

그 사람이 할례자이던,아니던,
그 사람이 노예이던, 자유인이던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인이요(22),
하나님께서 값을 치루고 사신 다 같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22-23).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입니까?
남의 것 좋다고 흉내내지 말고,
남의 것 따라 하지 말고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 더욱 개발해서 더 많은 것을 남기는 "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눅12:42)로 살 것입니다.

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결혼

고전7: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결혼생활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창2:18).

 결혼은 부모를 떠난 남녀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창2:24).
부부사이에는 서로 의무가 있습니다. 성적(性的)인  의무와(3-4),
사랑과 순종의 의무가 있습니다(엡5:22-25).

바울은 되도록이면 자신 처럼 독신으로 살기를 권면했지만(6-7)
결혼 생활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독신 생활은 주님의 말씀대로 은사에 따른 것입니다(마19:12).

특히 믿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했을때
상대가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으면 헤어지지 말것이고(12-14)
헤어지기를 원할경우 헤어져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15).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신앙생활을 박해하면서 먼저 헤어지기를 강요할때
이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이와 같이 결혼 생활, 가정의 모든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이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귀하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 밖에서 성적인 관계를 맺는 자를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히13:4).

주변에 결혼생활에 힘들어하는 형제나 자매가  있습니까?
그 가정이 회복되고 건강한 가정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몸을..

고전6:12-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세는 인간의 연수를 말했습니다"..칠십이요,강건하면 팔십"(시90:10), 요즈음에는 건강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칠십, 팔십, 백세 하지만 몸은 늙어가고 병들게 됩니다.

이런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을 생각하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바라보는 몸은그렇치 않음을 말합니다.

몸은 앞으로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14).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15).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19).
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19).
값으로 사셨습니다(20).

그러므로 이 몸으로 음행할 수 없습니다(13,15,16,18).
이 몸으로.. 더러움과 호색과 술취함과 방탕함..(갈5:19-21;엡5:18)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몸을 생물학적으로만 바라보는 불신자들은 몸으로 온 갖 더러운것들을 행하지만(엡4:19),

우리는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입니다(20).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순결한 교회

고전5: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즈음은 무제한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접근 할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클릭 한 번으로 남의 삶을 엿볼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음행하는 형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있습니다(11).
이 부도덕한 죄는 이미 교회안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1).

문제는 교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도(2), 관대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12).

 음행죄는 교회의 순결성을 파괴하고
거룩한 성도의 교제를 무너뜨렸습니다.

바울은 이런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를 교회에서 좇아내라고 하였습니다(13).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교회상을 세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있는가?
둘째, 성례(침례,세례, 주의 만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가?
셋째, 권징이 시행되는가?

교회내에 부도덕한 죄를 범한 사람에게 권징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예민하고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만일 교회가 부도덕의 문제에 대해 관대한다면 '값싼은혜'만 강조하는 싸구려 집단이 될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호색하는 자.. 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수 없습니다(갈5:19).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참이스라엘 사람

습3: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웃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던(2:4-15) 스바냐는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가리켜 "반역과 압제의 성"이라고 했습니다(1).
이 한마디 말씀만 보아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이라 불리우던 예루살렘이 일반백성은 물론이고 지도자들까지 총체적으로 부패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에는  대표적으로 지도자들에 대한 부패상을 말씀합니다.
관료들은 "으르렁 거리는 사자들"(3)과 같았습니다.
권력을 앞세워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압제했습니다.

재판관들은 " 저녁 무렵의 늑대들"(3)이었습니다.
판결권을 앞세워 뇌물을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선지자들은 " 믿을수 없는 사람들"(4)이었습니다.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인냥 전했습니다.
말씀을 변질 시켰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어겼습니다"(4)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믿을수 없는 사람들이 볼짱 다본것이 아닙니까?

목회자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

하나님이 이웃 나라를 멸하신것은 유다에게 경고의 멧시지를 주기 위함이셨는데(6),
이들은 그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7).
참답답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답답한 일들이 오늘 우리에게도 되풀이 되고 있지는 아니한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느때나 하나님이 남려두신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지만 남겨두신 이들 즉 겸손하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12).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악을 행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입에 속임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13).

이 말씀을 볼때 주님이 나다나엘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참이스라엘 사람,
주님보시기에 나는 참이스라엘 사람입니까?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성탄을 맞을

습2:12-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스바냐를 통해 구스(에디오피아)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구스는 애굽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박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 내 칼에 죽임을 당할것"이라 하셨습니다(12).
전쟁을 통해 고통을 당함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멸하시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역사에서 이집트와 에디오피아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도 존재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특히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굉장히 큰 도시였습니다.

요나에 의하면 니느웨를 통과하는데만 걸어서 3일이 걸리는 큰 도시였습니다(욘3:3).
인구는 말할것 없고 경제적으로 매우 번영했던 곳입니다.

이곳이 " 쓸모없는 땅이 되고"(13)
마치 짐승의 우리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 때문입니다.
이들의  교만은 " 세상엔 나뿐이며 나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15).

이뿐입니까?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를 침략해서 하나님을 대적했던 말을 보면 더욱 알수 있습니다(왕하18:17-39)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받았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교만하면 나라든(10,15), 개인이든 망합니다(잠16:18).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약4:6).

종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신(빌2:6-7) 그리스도를  맞을 성탄을 준비하십니까?




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습2:4-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다백성들의 심판을 예언하던 스바냐는 갑자기 주제를 돌려 블레셋에 대한 심판을 예언합니다.

블레셋은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민족이었습니다.
자주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이 " 버려지고, 폐허가 되고, 한낮에 좇겨나고 뽑히고 아무도 살수 없는 곳"이 될것이라 하셨습니다(4-5).

또 모압과 암몬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것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롯의 두딸에게서 생긴 민족입니다(창19).
이들도 항상 이스라엘을 적대했고 훼방하고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압과 암몬이 "소금 구덩이가 되고 영원히 폐허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9)

블레셋가 모압과 암몬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함이요, 이들의 교만때문입니다(10).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반드시 심판 하신다는 사실은
당시 고난중에 있던 유다백성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대상에 따라 내용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방민족에게 임하는 심판은 완전한 멸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심판(징계)은 유익함을 위함입니다(히12:10).
징계후에는 다시 회복하십니다( 7,9).

그래서 예레미야는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 라고 했습니다(애3;23)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여호와의 날

습1:14-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유대민족에게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14).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의 분노의 날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암5:18).
스바냐는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 이라고  했습니다(15).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분노앞에서 용맹무쌍한 용사도 어린아이와 같이 울것입니다(14).

죄를 지으면서도 형통하게 살던 사람들은 그분의 분노앞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소경처럼 될 것입니다(17).

돈만 믿고 교만하게 살던 사람들은 그들의 돈이 하나님의 분노로부터 구원할수 없음을 알것입니다(18).

이것이 하나님이 유다백성을 향한 경고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가리켜 '수치를 모르는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2:1)
왜 수치를 모릅니까?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죄에 대해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상실한 마음(롬1:28)의 소유자가 됩니다.
곧 파멸을 의미합니다(롬1:28).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복된 사람으로 살고싶습니다(2:3)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

습1: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후손으로 유다 요시야왕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1).
예레미야도 이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요시야왕은 종교개혁을 단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습니다(4).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능력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복도 내리지 않고 화도 내리지 않는 분으로 여겼습니다(12) .

하나님은 높이 계신 분으로만 여겼지 신앙적 대상이 아니었습니다(5,8,9).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을 멸하시고(4-6), 지도자들을 벌하시고(8)
"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시듯이" 죄인들을 끝까지 추적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12).

유다의 고전적인 병폐는 우상숭배였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어릴적 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왜 쉽게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면 쉽게 불신자와 같아질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죄악에 쉽게 빠질수 있습니다(수1:8).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데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수24:15).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차지도 덥지도 않는 것입니다(계3:16)

2013년 12월 7일 토요일

상한 심령으로

호세아14: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호세아서의 마지막 결론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죄인들에게 오래참으시면서 회개 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3:9).

시편기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시51:17).
회개없이 드리는 제물은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상한 심령(회개)을 원하십니다.

만일 이스라엘에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기고 고치실것을 약속하셨습니다(4).

하나님의 약속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고 그들에게 이슬과 같겠다고 하셨습니다(5).

이슬은 밤에 조용히 내립니다. 메마른 곡식에 생명을 줍니다.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이슬처럼 회개하는 영혼을 살리십니다.

매일 내리는 이슬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는 영혼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나타납니다(히4:16).

이슬같은 돕는 은혜를 사모하며
상한 심령으로 주님앞에 나아갑니다(마5:4).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하나님의 모습

호3: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호세아의 부인 고멜은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 불신실했습니다.
다른 남자들을 좇았습니다.
결국 집을 나가 버렸고, 창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그런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1).
아마 아내를 포기를 했는지 한동안 아내를 잊고 있던 호세아는 아내를 찾아 나섰습니다.

호세아는 창기가 된 아내를 위해 값을 지불했습니다(2).
과연이렇게 까지 하면서 이런 여자를 다시 집으로 데려올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와같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 그분의 마음을 표현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알지못하시는 분(그리스도)을  나를 대신해 죄로 삼으셨고(고후5:21),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롬5:8).


주도적으로 아내와 화해하는 호세아,
아내를 위해 값을 지불하는 그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2013년 12월 3일 화요일

그 사랑이

호세아2:2-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선택받은 이스라엘임에도 우상숭배가 만연화 되었고, 노골화 되었습니다(2).

 나는 더 이상 그녀(이스라엘)의 남편이 아니라는 이혼이 선고 되었습니다(2).
그 자녀(이스라엘 백성)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4).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징계의 목적은 다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6-7).

사람은 배신을 당하면 돌아서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무궁하시다(애3:22)고 했습니다.

아픔을 주시고 고난을 주셔서라도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사랑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 사랑이 회개 하도록 까지 인도하십니다(14).

고난과 아픔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음을  압니다.
언제나 그분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2013년 12월 2일 월요일

영적음행

호1:1-2: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했던 당시 북쪽 이스라엘은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죄를 지적하시기 위해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아내를 취해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습니다(2).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선지자에게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만큼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멜' 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삼습니다.
이들 사이에 낳은 첫아이가 이스르엘이었습니다(3-4).
이스르엘은 이스라엘과 같은 영광스러운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살육을 당했던 지명입니다.

 곧 이들 부부는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을 '로루하마'(사랑의 대상이 아님) 했습니다(6).

세 번째로 낳은 아들은 '로암미'(내백성이 아님) 입니다(8).

음란한 아내를 둔 호세아는 선지자이전에 남편으로 얼마나 고통과 고뇌로 찼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바로 이와같음을 말씀해줍니다.
 이것을 영적 음행이라고 합니다.

육체적 음행은 눈에 드러나는 죄이지만 영적음행은 눈으로 볼수 없는
더욱 사악하고 간교한 죄악임을  생각해야합니다.

2013년 11월 30일 토요일

용서

몬1:8-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오네시모는 분명히  좋은 노예는 아니었습니다(11).
그가 로마로 도망친 이유는 주인집 것을 훔쳤기 때문일것입니다(18).

로마법에 의해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죽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오네시모를 종처럼 대하지 말로 종이상 사랑받는 형제로 대할것을 권면합니다(16).

이는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임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오네시모의  노예 신분이 벗어났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말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저지른 일에 대해 자신이 그 댓가를 치룰수 있다고 하였습니다(18).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애틋한 목회자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 서신을 들고 옛 주인인 빌레몬을 찾아가는 오네시모의 당시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바울은 이미 온 성도들에 대한 빌레몬의 사랑을 언급한적이 있습니다(5).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주고 그를 그리스도안에서 한형제로  받아주리라 확신했습니다.

그 이후의 스토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종이상 형제로 사랑했을것이고 오네시모는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 되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내 주변에 용서해야할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골3:13)

2013년 11월 29일 금요일

빌레몬 처럼

몬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특별히 오네시모를 위해 보낸 서신입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지만 로마로 도망을 갔습니다.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다시 주인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특별히 그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이 서신을 보낸것입니다.

바울은 서신 첫 부분에서 빌레몬을 가리켜 " 사랑을 받는자요 동역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 바울이 주안에서 빌레몬을 주안에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압비아(2)는 빌레몬의 아내였습니다.
 압비아는 성도들에게 손 대접하기를 힘썼던 자매였습니다.
골로새서에도 언급된(골4:17) 아킵보를 가리켜 " 함께 병사 된 자"라고 했습니다(2).

복음때문에 고생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한 동역자들을 주셔서 그를 많이 위로하고 계심을 볼수 있습니다

바울은 기도할때 마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을 인해 감사하고 있습니다(4-5).
자신이 전도해서 그리스도인이 된 빌레몬(19)이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그는 교회의 평안을 끼치는 자였고 성도들의 위로자가 되었습니다(7).
로마 감옥에서 바울은 이것으로 인해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7).

본문에 나오는 빌레몬 처럼 교회에 평안을 끼치고
목회자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신실한 동역자들을 각 교회마다 많이 세워주시길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2013년 11월 27일 수요일

늘 기도에

골4: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 생활을 강조함으로 본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힘쓰라고 했습니다(2). 주님도 항상 기도할것을(눅18:1)을 강조하셨습니다.
 기도가 중요한지 알면서도 기도를 많이 못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힘쓰지 않으면 기도생활을 제대로 할수 없습니다. 기도는 힘을 써야 합니다.

기도에 힘을 쓸뿐만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라고 했습니다(2, 빌4:6)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항상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유익함이기때문에 응답을 빨리 주시거나 늦게 주시거나 아니면 없어도 늘 감사함 뿐입니다.
기도와 감사는 항상 동반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복음전도자로서 자신의 건강이나 안전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3) 기도를 부탁합니다. 전도도 하나님이 전도할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허락해주셔야 할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문을 여시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행16:14).

또한 불신자들에겐 지혜롭게 행할것을 당부합니다(5).
주님도 뱀처럼 지혜로울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10:16).

내적으로는 늘 기도에 힘쓰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로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는 언어문제에 나타납니다. 말을 할때 항상 은혜스럽게 소금(지혜)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해야할것입니다(6).

늘 기도에 힘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과 지혜를(행6:3) 넘치도록 부어주실줄 믿습니다.아-멘

2013년 11월 26일 화요일

주님을

골3:18-4: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가정생활, 사회생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대한 원칙은 서로에 대한 책임을 강조합니다.
아내는 복종의 책임이 있습니다(18).
 남편은 사랑의 책임이 있습니다(19).
자녀는 순종의 책임이 있습니다(20,엡6:1).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며 노엽게 하지 아니할 책임이 있습니다(21,엡6:4).
직장에서는 윗사람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순종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22).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의와공평으로 대할 책임이 있습니다(4:1).

이런원칙과 책임은 인간의 윤리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 안에서 마땅한것"(18), "주 안에서 기쁘시게 하는 것"(20)"너희 주 그리스도를 섬긴다"(24)  "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것"(4:1)을 강조했습니다.

가정생활, 직장 생활, 무슨일이던지 사람을 기쁘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것을 다 주님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새 사람

골3:12-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10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 말씀과 연결된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의 옷을 입은 자입니다(10).
새 것이 된 자입니다(고후5:17).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고후5:21).

새 사람의 옷은 긍휼과, 자비, 겸손, 온유 , 오래참음의 옷입니다(12).
오래참음으로 서로 용납할수 있습니다(13).
긍휼과 자비함으로 서로 용서할수 있습니다(13).
거기에 사랑을 더해 온전해집니다(14).

사랑은 이 모든 아름다운 덕들의 출발점입니다.

또한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습니다(15).
내마음에 평화가 넘쳐야 남과 화평할수 있습니다.

그 평화스러운 마음에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것입니다(16-17)

새 사람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새 사람의 모습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할수록 이런 아름다운 덕들이 절로 나타날것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15:5).  

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그리스도의 옷

골3: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어떤옷을 입느냐에 따라느끼는 감정이 다릅니다.
정장을 입을때와 캐쥬얼 차림일때 느낌과 행동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갈3:27).
거듭나지 못했을때 입었던 죄의 옷과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자의 생각과 감정 의지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는  모든 촛점이 그리스도에게 향해 있습니다(1-2).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으니 옛 옷은 이미 벗은 자입니다(9).

옛 옷이 무엇입니까? 모든 종류의 부도덕한 행동입니다(5-8).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자는 지식에 까지 새로워졌습니다(10)
그 지식은 성령을 통해 얻은 영적 지식입니다. 영적 통찰력입니다.
이전에 없었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을 통해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분과 더욱 연합한자로 살아갑니다.

연합한자는 자신에 자아에 대해 죽은 자요, 그리스도에 대해 산자입니다(갈2:20).

나의 생각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사는 자인지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오늘

골2:7절을 오늘의 묵상입니다.
" 그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게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 신앙의 뿌리는 그리스도안입니다.
그리안에 뿌리를 박으므로 많은 영적 열매를 맺습니다.
힘든일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넉넉히 이길수 있습니다(요16:33).
이것이 영력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같은 모습으로 강건하게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영력입니다.
믿습니다 라는 말이 아닌 강건한 심령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더욱 믿음에 굳건하게 섭니다.
하나님 한 분만 생각하며 사는 믿음은 어떤 분주함에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더나아가 감사함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은 그 신앙 인격의 척도입니다.

주님!
오늘 주안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에 굳건히 서게 하시고 감사함이 넘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

2013년 11월 18일 월요일

바울의 기도

골1:1-1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바울의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로 부터 골로새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고 (8)그들을 위해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9).

먼저 바울은 이들의 신령한 지혜를  위해 기도합니다(9).
신령한 지혜는 성령님이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분이시기에(고전2:10),
성령님의 지혜를 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도하심을 받을수 있습니다(9).

 선한 열매를 맺고(10), 모든 능력을 받고(11),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11)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러모양의 문제앞에 직면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가 필요합니다.

 어려움 가운데 기쁨으로 모든것을 견디고 오래 참을수 있는것은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바울이 기도한 내용이 오늘 저의 기도제목이 되기를원합니다.
신령한 지혜, 선한 열매, 모든 능력,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을 주옵소서 아- 멘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필요한것만을..

출35:30-36: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성막을 지을 기술자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브사렐과 오홀리압(30,34)이었습니다. 그외에 다른 기술자들도 있었습니다36:2).

특히 브사렐과 오홀리압은 손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인것 같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일을 하기도 하지만 남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34-35).

하지만 자신들의 뛰어난 기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그 일을 잘하도록 성령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31,34).

기술자들만이 아니라 성막을 만들 재료가 필요합니다
백성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그 재료들을 가져왔습니다(3).

너무 많이 가져와서 수량이 넘쳐났습니다.
이들은 모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가져오는 것을 중지 시켰습니다(4-7).

성막을 지을 물량만을 확보했습니다.
이들에게는 탐심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필요하게만 있으면 됩니다.
문제는 너무 과하게 있을때 생겨나고 탐심이 생겨 타락하게 만듭니다.
목회자이던 일반 성도이던 예외가 아닙니다

주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잠언기자의 기도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30:8)

2013년 11월 14일 목요일

얼굴

출34:29-3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모세가 두 번째 증거의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처음 증거의 돌판을 받고 내려왔을때 모세의 눈에 비친 광경은 금송아지가 있었고 그 앞에서 백성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었습니다(32:19)

 모세는 분노했고 돌판을 내던져 깨트렸습니다(32:19).
하나님은 모세에게 증거의 돌판을 다시 주시기 위해 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34:1-2).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 했습니다(30).

얼마나 얼굴에서 빛이 났으면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웠을까요?(33)
그의 얼굴에서 난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얼굴도 해와 같이 빛이 났습니다(마7:2)
스데반의 얼굴도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행6:15)

얼굴은 사람의 마음의 거울입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지를 알수 있을것 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친 나의 얼굴을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주의 길을..

출33:12-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모세와 하나님과 대화하는 내용입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때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는 하시지만 함께 하시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33:3).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  땅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15). 그는 하나님께 논쟁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 말을 하기전 이미 주의 길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13).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증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16).

인간이 하나님과 어찌 논쟁할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셨습니다(14).

주님이 함께 하심을 바라는 마음,
주님의 인도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

하나님은 이마음을 보셨습니다.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모세를 쉬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14).

그렇습니다
 "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13) 가 오늘 아침의 첫 기도입니다.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회막

출33:7-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주거하는 진을 떠나 하나님을 만나는 곳인 회막을 만들었습니다(7)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면 백성들은 자신들의 장막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회막으로 들어가는  모세의 모습을 바라봅니다(8).

모세가 들어간 회막에 구름기둥이 회막을 둘러쌉니다(9).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합니다.

백성들이 구름기둥이 회막문에 둘러 쌓인것을 보면 자기들이 거처하는 장막문에서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립니다(10).

하나님은 모세와 친구와 대면하듯이 말씀하셨습니다(11).

상상만해도 진기하고 장엄한 장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어느 때, 어느장소에서든지  만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막'처럼 때로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규칙척으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회막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곳은 나의 영력의 장소입니다.

나의 회막은 어디입니까?
아니면 오늘부터라도 나의 회막을 만들어봄이 어떨까요?

2013년 11월 7일 목요일

우상

출32:1-1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지 40일이 되었는데(24:18)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신상을 만들어 달라고 아론에게 요구를 합니다(1).

하나님은 어떤 신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20:23),
아론은 이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사람들을 두려워해  타협을 합니다(2-4).
아론이 그들의 요구에 굴복한 것을 보면 아론의 눈에는 그들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모든 불신앙적 행동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그것이 곧 자신의 올무가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상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것은 애굽의 우상문화를 버리지 못한 이유때문입니다

이들은 애굽 사람들이 우상앞에서 먹고 마시며 춤을 춘것 같은 행동을 신상앞에서 행했습니다(6).

하나님을 불신하는 세상에만 우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것 처럼 하나님의 백성안에도 우상이 존재합니다.
교회안에도 우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좇고 그분의 거룩함에 동참하기보다는 자기 만족을 위해 하나님께 요구만 합니다.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자신을 나타낼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이 우상앞에서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먹고 마시고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6)

하지만 누구를 탓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만큼 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은혜가 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합니다

2013년 11월 6일 수요일

안식일

출31:12-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13).
안식일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엿새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날이면서(15)
동시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세상의 다른 민족과 구별되게 하셨습니다.
하루를 하나님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음으로 구별된 민족임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안식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엄하게 하셨습니다(13-14).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성수함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천국 생활에 모형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안에서 쉼과 기쁨과 평안의 모형입니다.

 걱정, 근심이 많은 일상을 떠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영적인 교제를 통해
영적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날이 안식일(주일)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셨습니다(막2:27).

나를 위해 안식일(주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3년 11월 2일 토요일

말씀으로 떠는 자

사66: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 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떠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 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주님은 "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기에 말씀앞에 겸손할수 있고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외부적인 종교예식이 아닙니다(3).

말씀을 인해 '떠는 것' 입니다.
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인해 ' 떠는 자' 들에게 위로하시고 계십니다(5)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세상으로 부터 미움을 받습니다(딤후3:12).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에 기쁨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있고,
담대함이 있습니다(요16:33).

이들을 박해하는 자들을 하나님은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그들의 행위에 보응하시겠다고 했습니다(5-6).

역사가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박해하고 미워했던 사람들의 말로가 어떻했는지를...

2013년 10월 31일 목요일

탄식하며

사64: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의 중보기도의 내용입니다.
 이사야는 자기 민족을 구원하시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임하실때 산들이 흔들리고 민족들이 그분 앞에서 떨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1-3).

하나님이 임하심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을 위함입니다(4).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지만 하나님을 앙망하기에 참을수 있습니다.
힘든 가운데도 그분을 늘 바라봅니다.

이사야는 자기 민족의 죄악을 인해 탄식합니다(6-7).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지해 기도하고 있습니다(8-12).

하나님!너무 분노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사실을 보아달라고!

그러면서 왜 아직 우리에게 잠잠하시는지
우리가 당하는 괴로움을 왜 그냥 나두시지는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기도는 탄식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탄식하며 그분에게 나아와 부르짖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주님께서도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잔 자들에게 내게로 오라" 하셨습니다(마11:28)




2013년 10월 29일 화요일

성령의 기름부으심

사61:1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이 이사야에게 기름 붓듯이 임하셨습니다(1).
기름은 상처를 완하 시키고, 치료하기도 하고 기계가 잘돌아가도록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세상을 이길수 있습니다.
교회사역도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열매가 있습니다.

기름부으심이 없이 하는 사역은 열심히 하기는 하나 헛돌다가 탈진해버리고 맙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의 목적은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기 위함입니다.
압제당하고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기 위함입니다.

주변에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들이 많습니다.
뭔가 모르게 눌려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하고,
그들의 심령을 치유케하고
그들에게 참된 자유함을 주기 위해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합니다.
오늘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사모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2013년 10월 28일 월요일

회복케 하시는

사60:1-1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벨론은 두렵고 포악한 나라였습니다.
하바국 선지자는 바벨론에 대해서 " 사납고 성급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힘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합1:6,11).

얼마나 사납고 교만하고 오만한 사람들이었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 하셨으니 당시 그들의 고통이 어떠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베론의 침략에 대해 "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한 만민을 가린다"고 표현 했습니다(2). 어두움이 세상을 지배하고  포악하고 악한 사람들의 세상 같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다스리시고 지배하시는 분은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의 막대기인 도구에 불과합니다.

오늘 세상에도 세계의 열강들이 그들의 힘을 과시해도  우스운 일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캄캄한 암흑속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소망의 소식을 말씀합니다.

빛이 임할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것입니다(1).

오랫동안 잊혀진것 같은 시온에서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경륜과 역사가 일어날것입니다.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앞으로 오게 될것입니다(5-7).

이스라엘의 고통이  은총과 축복으로 바뀔것입니다(10)

예루살렘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감상이 아닌 은혜로 인함입니다(10).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분의 시간에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계21:5).






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하나님의 것

고전3:1-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신앙적으로 어린아이와 같다고 단언합니다(1).
고린도 교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질투로 분쟁이 있었습니다(3).

바울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고 아볼로를 따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더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들, 아볼로가 더 낫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4).

아볼로는 아볼로대로 바울은 바울대로 각자 주신 사명과 은사대로 사역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의 씨를 심은자라면 아볼로는 물을 준자입니다.
그러나 결국 신앙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5-7).

사람이 믿음을 줄수 없고, 사람이 믿음을 자라게 할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교회가  경쟁을 하고 목회자들을 서로 비교한다면 고린도 교회와 다를바 없습니다.
교회가 유명해지고 목사가 유명해지고 자랑을 한다면 바울이 말한대로 어린아이와 같은 교회입니다.

각자 주신 은사대로 사명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위에(11).
터를  잘 닦고, 조심스럽게 세워가는 것이(10) 사역자가 할 일이요,

그에 대한 상급은 훗날 하나님앞에서 나타날것입니다(12-15).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모든 사역자들은 성도들을 위해 존재합니다(22).
그리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23).

결론은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2013년 10월 24일 목요일

성령이 주시는 것

고전2:6-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육의 사람은 육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육신의 감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삽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10)
영적인 분별과 통찰력을 주십니다(14).

영의 일은 육으로는 알수 없습니다.
도리어 어리석어 보입니다(행2:13,14).

영적인 것은 영으로만이 알수 있습니다(13).

세상이 악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이 잘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육신에 사람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이 세상을 다스리심과,
주님이 다시오심을 알고 시대를 분별하며 살아갑니다.

이 깊은 통찰력은 오직 성령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2013년 10월 23일 수요일

십자가

고전1:18-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입니다(18).

유대인들은 항상 기적을 구했습니다. 헬라인들은 항상 지혜를 찾았습니다(22).
사람들이 찾는 것은 항상 동일입니다. 모양은 다른것 같지만 내용은 항상 같습니다.
기적과 지혜를 찾는 인간의 눈에는 수치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는 참으로 어리석어 보일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24;2:2).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우리의 '의' '거룩함' '구원'이십니다(30)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의로워지고 거룩해지고 구원을 받는  세가지가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바울은 단순했습니다.
십자가만 전했습니다(2:2),
성령님만 의지했습니다(2:4)

세상엔 지혜로운 자가 많고 지식이 있는 자가 많지만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만을 전하면 됩니다.

그러면 구원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이 세상 어떤 존재보다 강하시기 때문입니다(28).

십자가를 묵상하고 십자가의 복음속에 사는 자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우리의 모든 중심은

고저1:10-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내부적으로 분열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지도자들을 존경한 일은 좋은 일있었지만  이것이 지나쳐 파당이 생겼습니다(12).

이일은 바울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같은 마음으로 서로 합하라고 강력히 권명합니다(10)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위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14-15).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17).
복음을 전할때도 화려한 언변으로 전하지 않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17).

인간의 지혜와 화려한 언변을 앞세우다 보면 십자가의 복음보다 그것이 더 중심이 될수 있기때문입니다. 그것을 경계하였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오직 복음만을 생각하는 바울의 자세는 큰 본을 보여줍니다.

베드로, 바울, 아볼로, 루터, 칼빈 위대한 영적지도들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와 차별이 없는 한 형제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2013년 10월 18일 금요일

피할길을 주시는

삼상29: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투가 임박했습니다(1). 다윗도 어쩔수 없이 그의 부하들과 이스라엘과 전투대열에 서게 되었습니다(2).

막상 전투가 일어나면 다윗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싸워야 하겠습니까?
 다윗은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상당히 신뢰했습니다. 그에게 망명처를 제공해던 은인이기도 합니다(3).
다윗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왕의 생각과 신하들의 생각이 달랐습니다(4).
신하들은 여전히 다윗을 의심의 눈으로 보았고 그를 전쟁에 못나오도록 왕에게 건의를 했습니다(4).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아기스왕은 결국 다윗을 전쟁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6-11)

다윗의 고민이 한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할길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절망하는 사람

삼상28:1-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절망의 시간에 절망하는 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는 사울왕입니다.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해왔습니다(1,4).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였던 사무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3).
사무엘이 살아 있었을 때는 그나마 뭔가 모르는 위안이 있었지만 이젠 그것 마져 사라졌습니다.

블레셋 군대를 직면한 사울은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6).

하나님의 침묵은 그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더 큰불안에 빠지게 했습니다.
결국 자신이 몰아낸 무당을 찾아갑니다(3,6).

엔돌에 사는  신접한 여인은 죽은 사무엘을 불러올렸습니다(13-14).
이해가 잘안되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죽은 사무엘의 영을 통해 하나님은 사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에 패할것이고 죽음을 당할것이라는 말씀입니다(19).

그러면 하나님이 왜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사울에게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죽은자들과 산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물질세계나 영의 세계 모든것이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사탄도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사울은 이 말을 듣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을 떠난자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겐 하나님은  도움이시요 방패가 되십니다(시115:11).

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하나님의...

삼상27: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신뢰할수가 없었습니다.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피신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21:10).

첫 번째는 혼자의 몸으로 갔었지만 이번에는 600명의 부하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러면 왜 다윗이 아기스에게 갔습니까?
믿음이 약해져서 그런것입니까?
블레셋땅으로 피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사울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셨듯이 블레셋 사람들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입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다윗이 기도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1).

그가 블레셋땅으로 피한것은 하나님께 기도해서 움직인것이 아닌 그의 생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순간적으로 약해졌음이 분명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순간적으로 약해져 인간적인 수단에 의지할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앞에 정당화 될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댓가를 하나님이 치루게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선택하신 사람에게 떠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잘못된 동기로 행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도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시23:6)라고 고백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나의 삶속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는줄 믿습니다.

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결국은..

삼상26:17-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대신 그의 창을 가져갔습니다(22).
창은 사울의 권력을 상징합니다.

사울은 이 창으로 다윗을 죽일려고 했습니다(18:11;19:10).

사울이 다윗을 죽일려고 좇아다녔지만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속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25)

다윗이 왕이 되어야함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자를 자신의 손으로 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사는 사람은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모든것을 맡깁니다.

모든 시간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결국은 의가 승리합니다. 이것을 다윗을 통해 볼수 있습니다.

" ...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2013년 10월 14일 월요일

하나님의 시간

삼상26:1-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수 있는 두 번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 두번의 기회를 주심으로 다윗을 시험(Test)하시는지 모릅니다.

첫 번째의 경우는 사울이 다윗이 숨어 있는 동굴에 들어와서 쉬고 있었을 때 입니다(삼상24).
본문은 사울이 다윗을 잡을려고 광야로 들어온 경우입니다.

다윗은 그들을 먼저 공격함으로 제압할수 있었습니다(6-8).
첫 번경우와 달리 이번에는 마음이 흔들리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이 행하시기게끔 계속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하의 말(8)을 따르지 않았습니다(9).
오직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10).

하나님의 방법의 순종하기 위해서는 댓가를 계속 치루어야 합니다.
 위험과 도피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힘든 생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역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도 역시 그것을 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하나님의 시간)가 이르면 거두게 하실것입니다(갈6:9).

2013년 10월 11일 금요일

오늘도

요17:6-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사도들을 위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특히 주님은 자신의 기도가 세상을 위한 기도가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사도들 혹은 내게 주신자(택한자)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9).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하지만(행1:8),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주신자(택한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세상에서 보호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11).
주님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은 성도들의 삶에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키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1).
이단이 아닌 이상 교회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되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바울도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빌2:2).

또한 이들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16).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어서 세상에서 이들을 데려 가달라고 하시지 않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그들의 삶속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하셨습니다(17-19).

이천년전 주님의 기도는  여전히 오늘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골3:1, 히1:3,히10:12),
  우리를 위해 여전히 중보기도 하시고 계십니다(히7:25).

주님의 중보기도가 있기에 오늘도 그분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013년 10월 10일 목요일

하나님의 자녀는

요17: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가 기록된 장입니다.
주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기도하셨습니다(1). 아무 꺼리낌 없이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기도했지만(눅18:13) 주님은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으로서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시면서 자신이 십자가에 죽을 때를 아셨습니다(1).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창세전에 이미 예정된 사건입니다.

그것을 위해 세상에 오셨고, 그때가 이르렀음을 아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심을 아셨습니다.

인간의 눈에 십자가는 수치스럽고,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은 십자가외에는 자랑할것이 없다고 했습니다(갈6:14)

주님은 영생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생은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길은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14:6).
그리스도만이 중보자이십니다(딤전2:5)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모시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삶이 영생입니다. 우리가 죽어 들어갈 천국에서는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는 삶을 사는 곳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삶의 촛점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을 엿볼수 있습니다.
성자하나님은 성부하나님을 높이시고, 성부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을 증거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본받아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빌2:3)
존경하기를 먼저해야합니다(롬12:10)


2013년 10월 9일 수요일

같은 말씀을

요16:25-3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오셨고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28-30).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셔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임을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27).

깊은 진리의 말씀이라도 듣는 사람이 수용 능력이 있을때 해야 합니다.
때에 맞는 말을 해야합니다(잠25:11).

주님은 잠시 후 자신이 받으실 고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잡히시면 제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겠고,  각기 제살길을 찾아 도망갈것이라고 하셨습니다(32).

3년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주님을 따랐던 그들이었지만 막상 위험한 일을 당하면 도망을 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불변하십니다.
그들은 다 도망가지만 아버지는 주님과 여전히 함께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32).

그럼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해할수 없는 힘든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셨던 같은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2013년 10월 8일 화요일

주님의 이름으로

요16:16-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제자들을 떠나신다는 주님의 말씀에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고,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에겐 더욱 이해가 될리가 없습니다(17).

이 말씀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심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승천하심으로 육의 눈으로는 더이상 주님을 볼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가심으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영의 눈을 열게 하셔서 영의 눈으로 주님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의 눈으로 매일 보면서 살아갑니다.
영으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주님이 조금 있으면 이라고 하셨습니다.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긴 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잠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도 잠간입니다(약4:14).
잠간 후면 주님을 만날 시간이 옵니다.
그때 기쁨이 충만할것입니다.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것입니다(22).

그리고 무엇이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하나님아버지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3). 기도응답의 기쁨은 비길데 없이 큽니다(24)

오늘도 주님의 약속하신바를 믿고 전능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아버지앞에 나아갑니다.

2013년 10월 7일 월요일

성령님

요16:5-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아버지께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5).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감히 물어보지 못하고 근심에 쌓였습니다(6).

이것을 아신 주님은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그러면서 또 한 분을 소개하십니다.
그분은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은 성령님이 오셔서 하실 일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성령님은 책망하시는 일을 하십니다(8).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뭔가 마음에 불편함을 주십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책망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13).
말씀을 읽고 묵상할때 나의 심령에 말씀을 조명해주십니다.
성경은 머리로 읽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심령으로 읽는 책입니다.
성령님이 조명해주시지 아니하시면 성경을 수없이 많이 읽어도  알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세상의 다른 책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딤후3:16).

또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냅니다(14).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가 아무리 훌륭하게 보여도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드러내십니다.


2013년 10월 5일 토요일

진심으로

요15:18-16: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박해를 받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박해가 임할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18).

주님을 따르면 뭔가 큰 이익을 보겠지. 세상적으로 출세를 하겠지 생각했다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실제 야고보와 요한이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막10:35-37).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것은 미움을 받는 길입니다.
세상과 그리스도는 정반대기이기 때문입니다(요7:7).

주님은 빛이시지만 세상은 어두움입니다(요8:12).
어두움은 빛을 미워합니다. 불의함은 의로움을 적대시 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불의한  유대인들에게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둘다 같지않았기 때문입니다.

참 선지자(이사야, 예레미야등)들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적당히 믿으면 미움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19).
하지만 주님이 경고 하신 것 처럼 진실로 주님을 따르면 박해를 받습니다(16:1-4).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실로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주님이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실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막8:38;눅9:26).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2013년 10월 3일 목요일

열매

요15: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참 빛(요1:9), 생명의 떡(요6:35,48), 살아있는 떡(요6:51),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요6:69),길과 진리, 생명(요14:6) 그리고 본문에서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비유했습니다(시80:8).
그러나 이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참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1)

포도나무에는 가지들이 있습니다. 가지들 가운데 열매를 맺는 가지고 있고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농부(하나님)가 제거해버립니다(2).
주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주님에게 붙어있지 않는 외식하는 사람들이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입니다.

열매를 맺는 참된 성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진실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가지 스스로 열매를 맺을수 없다고 하셨습니다(4)
죄성이 있는 인간은 늘 생각을 해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각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롬8:7-8).

그러므로 주님안에 거할때에, 주님에게 붙어 있을때에(5-6)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는 성령의 은혜로 맺어지는 신앙 인격의 열매요(갈5:22-23),
다른 영혼을 주님앞으로 인도하는 열매입니다(잠11:3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는 것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속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분은 농부이시기 때문입니다(1)

농부가 바라는 것은 열매입니다.

2013년 10월 1일 화요일

천국의 길

요14:1-1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나그네와 행인에게는 머물곳이 필요합니다. 안식할 곳이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나그네와 행인" 같다고 말씀했습니다(벧전2:11).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갈 집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우리가 갈집이 하늘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집은 주님이 친히 우리를 위해 준비하셨다고 하셨습니다(2-3).

그 집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3).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시116:15).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짐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빌1:23).
그집에서 영원히 안식할 것입니다(계14:13).

그 집으로 가는 길이 바로 주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6).

천국의 길이시고, 진리가 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찬양합니다(6).

2013년 9월 30일 월요일

오늘 나의 삶이

약5:13-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야고보서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고난중에는 기도를 즐거움중에는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13).
고난중에는 기도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일이 잘 되어 즐거울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감사와 찬송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다가 응답이 되면 감사를 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당연한 것을 권면했는지 모릅니다.
고난중에는 기도를 즐거움중에는 찬송을!

또한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14).
병든 사람이 의술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의술을 초월한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그러나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목회자의 의무입니다(14).

기도를 하되 믿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15, 17-18).
기도는 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해야 기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이 기도를 그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교회의 할일은 진리에서 떠난 자들을 진리안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19-20).
교회가 무관심해서 진리에서 떠나 이단에 빠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서로 서로 믿음을 견코케 해주고 진리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나의 삶이 남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 격려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2013년 9월 28일 토요일

인내

약5:7-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야고보는 '인내'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농부의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농부는 땀흘려 농사를 지은 후 자연의 섭리를 바라고 열매를 기다립니다(7).

당시 성도들은 주님이 왜 빨리 재림하시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입니다.

밧모섬의 사도요한도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재림은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에 오십니다.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8).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9)
원망과 불평은 인내의 결핍에서 옵니다.

선지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많은 박해와 고독속에 살았지만 인내했습니다(10).

욥은 고난 중에  그의 인내를 하나님에게 시험(Test) 받았습니다.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으로 부터 상급을 받았습니다(11).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상급을 주십니다.

야고보는 맹세에 대해 가르쳐 주셨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마5:34-37)
본문에서도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12).

쉽게 말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과장된 말, 자랑하는 말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우리의 약함을 알기에
맞는 것은 '맞다' 아닌것은 '아니다'라고만 하면 됩니다(12).
쓸데없는 말, 허탄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어생활부터 신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신실하시듯이....

2013년 9월 27일 금요일

부자들에게

약5: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야고보는 '불의한 부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부자로 살면서 신앙을 잘 지키가 힘들수 있습니다.

주님도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막10:23).

하지만 본문은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가 잘못되었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이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들은 일꾼들에게 임금을 잘라먹으면서  부를 축적했습니다(4).
고용주가 직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악한 일입니다

그들의 삯이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십니다.
예레미야도 품삯을 주지 않는 부자를 향해 경고했습니다.
".. 자기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렘22:13)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들의 편이십니다(렘22:3).

이들은 부를 선한 일에 사용하지 않고 사치하고 방종했습니다(5)
이들은 재물의 힘으로 힘없은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사용했습니다(6).

물론 모든 부자가 불의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쉽게 교만할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믿고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2013년 9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의 계획

약4:13-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야고보는 당시 이곳 저곳 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장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3).
내일 일을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14).

예수님도 누가복음12장에서 어떤 부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그 해 수입이 많아져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지을려고 계획했습니다.
이젠 있을만큼 있으니 남은 여생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그의 생명을 자신이 주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랑은 허탄것입니다(16)

겸손함으로 주님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입니(15).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계획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다른 계획을 가지시고 나를 이끄십니다.

그분의 계획은 완전하십니다(15).

2013년 9월 25일 수요일

겸손으로..

약4:7-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7).
마귀를 대적하지 않으면 유혹의 선을 쉽게 넘어갈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차던지 더웁던지 하라고 하셨습니다(계3:15).
뭐든지 적당하게(?) 사는 사람은 늘 유혹앞에 맥을 못춥니다.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마귀를 대적할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마귀를 대적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했습니다(8)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10).
주님처럼 무엇이든 하나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7).
죄에 대해 애통해야 합니다(9).

세상이 주는 죄의 오염으로 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합니다(8).

이런 변화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교만하지 않고 남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11).

모든 판단은 유일한 판단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고

내가 할 일은 겸손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12).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겸손한 자에게

약4: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든 싸움과 다툼의 근원은 정욕이라고 말씀합니다(1).
정욕은 자신만을 즐겁게 해달라는 죄악된 본성입니다.

정욕은 모든 시기와 질투를 가져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정욕에서 왔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일려고 했던 이유도 정욕에서 왔습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정욕적일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온갖 범죄가 인간의 정욕에 기초합니다(2).

정욕은 모든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너뜨립니다(3).

정욕적인 사람은 세상에 끌릴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과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세상과 가까울수록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4).

정욕과 교만은 서로 형제간입니다.
둘 다 자신에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모든 정욕과 교만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앞에서 겸손하셨듯이.
주님이 남을 위해 희생하신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듯이

겸손으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 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6).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하나님의 지혜

약3:13-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지혜는 두 가지가 있음을 본문은 말씀합니다.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 있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있습니다.

 지혜는 그의 생각과 행동속에 드러납니다(13).
무엇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마음속에 이기심과 독한 시기심이  있다면 다툼으로 나타납니다(15)

다툼과 혼란은 모든 악한 일을 가져오고(16).
모든 관계를 손상 시킵니다. 깊은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지혜라고 했습니다.

다른 지혜는 하나님에게 오는 참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는 이기심이 아닌 다른 사람 중심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그 지혜의 열매가 나타납니다(17).
한마디로 모든 선함이요, 치유입니다.

그러나 이 선한 지혜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행하는 방법은 화평으로 하는 것입니다(18)
선한 일이라고 독선적으로 하면 금방 마귀의 지혜로 바뀔수 있습니다.
 화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지혜로 살고싶습니다

2013년 9월 21일 토요일

말에 대해

약3: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야고보는 '말'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말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대부분에 '말'때문입니다.
또한  어떤이에게 말로 상처를 준 것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잘 아물지 않습니다.

말실수를 한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잘 기억하지 못해도  상처를 받은 사람은 기억이 선명합니다.

말을 상징하는 혀는  매우 작은 지체이지만(5), 통제되지 않는 혀의 파괴력은 엄청납니다(6).

야고보는 잘못된 언어에 대해 첫째는 자랑하는 것(5), 다른 하나는 저주하는 것(9)을 들었습니다. 이 두가지는 쉽게 범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찬송이 나오고 저주도 함께 나올수 있습니다(9-12).
아침에는 찬송을 불러도 얼마후에는  밥상앞에서 형제나 자매에 대해 험담을 할수 있습니다.

입은 간사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간사한 입까지 거듭남을 말합니다.

2013년 9월 20일 금요일

행함으로

약2:14-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참된  믿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좋은 의향을 가지고 이론상으로 그렇다고 동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 참 안되었다, 긍휼한 마음만 가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줄 믿습니다.
하고 말만 한다면 안됩니다(15-16).

행동이 없고, 생각만 하고 말만 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17,26).

사탄도 하나님이 계심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습니다(19).

야고보는 이렇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하면서. 두 사람의 예를듭니다.
아브라함과 라합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아닌 이삭을 드림으로 그의 믿음이 증명되었습니다(24).

죄가운데 살던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심판이 여리고 임할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릎쓰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 주었습니다. 그녀는 믿음대로 행하였습니다(25).

말 말 말 말 이 아닌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하루가 되고 싶습니다.

2013년 9월 19일 목요일

어떤 마음으로..

약2: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1).

세상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높은 자와 낮은 자를 차별합니다.
부자는 우대하고 가난한 자는 업신 여김을 받을수 있습니다

물질주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사는 세상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에 이런 현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2-4).

부자는 세상에서도 우대 받고 교회와서도  우대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업신여김을 받고 교회와서도 업신 여김을 받았습니다(6).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인간이 타락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그 자체에 존귀함이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로 보지 않고, 가진 소유나  위치를 보아 가치를 판단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거창하게 나갈것이 없습니다.

사람을 대할때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 에서 출발합니다(8).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참된 경건

약1:19-2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19).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일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속히 하고 듣는것은 천천히 합니다. 화도 속히 냅니다.
화가 나면 상스러운 말까지 합니다.

자신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가  그 사람의 경건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불안정한 마음, 분노가 있는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수 없습니다(21).

또한 말씀을 받는 것은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닌 실천함을 말합니다(22).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성경을 통독합니다. 암송합니다. 묵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고 실천이 없다면 말쟁이와 다를바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 입니다.(22).

참된 경건은 말로  떠드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입니다. 그 진실은 조용한 행동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 세상을 본 받지 않는 것입니다(27).

말이 아닌 진실함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참된 경건입니다.

2013년 9월 17일 화요일

하나님은 ...

약1:12-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삶의  모든 부분을 주관하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책임입니까? 내가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의 책임입니까?

야고보에는 ' 아니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고 아무도 시험(유혹)하지 않으십니다(13).

우리는 쉽게 죄에 끌릴 수 있는 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죄는 욕심에서 비롯됩니다(15).

죄를 짓는 사람은 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점점 자라 나의 생각을 지배하면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14-15).

누구나 유혹의 문앞에 설 수 있지만 그 문을 단호히 닫는 것은 나에게 있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리켜 빛들이 아버지이시라고 했습니다(17).

모든 선함과 모든 아름다움과 은사와 은혜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17).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18).

오늘도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의 하나님과 동행하면
어두움과 유혹의 세력이 왔다가도 힘없이 도망갈 것입니다.

2013년 9월 16일 월요일

하나님만이..

약1: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초대교회는 여러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안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고 밖으로는 로마 정부의 감시하에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안팎으로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자체가 시련이 보장된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이런 시련을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2).

시련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되고 인내를 통해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3-4).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성숙한 믿음입니다.성숙한 믿음은 시련을 통해 만들어져 갑니다.

야고보는 시련을 통한 성숙한 믿음과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자녀된 우리 역시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래서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5).

하나님께 구하는 자의 자세는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6).
믿음이 없이 구하는 것은 응답이 없습니다(7).
두 마음을 품은 자와 같습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모든 일에 불안정합니다(8).

세상에 모든 것은 항상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한 사람이 되고 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9-11).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잘되는 것은  내일 힘들 수 있습니다. 오늘 힘드는  것은 내일 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잘되거나 잘되지 않거나에 별로 동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주관하십니다.

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악을 선으로

삼상24:1-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을 좇던 사울은 용변을 보러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숨어 있었습니다(3).

사울에게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못한 채 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죽일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고 다윗을 설득했습니다(4).

사울을 죽임은 정처없이 도망다니는 자신의 처지를 끝낼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끝을 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겉옷 자락만을 살짝 베었습니다(4).

그것조차도 마음에 찔려했습니다(5).

상황이 어떻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자신에 다짐했고 부하들을 설득했습니다(6-7).

다윗은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도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이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이 행동은 사울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19).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은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은 자유함과 평강을 주셨을 것입니다.
진짜 승자는 왕이 아닌 도망자 다윗이었습니다

원수의 입(사울)에서 조차 " 하나님이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다"는 축복의 말이 나왔습니다(19).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악을 선으로 갚는 자에게 선으로 갚으시고 그 악을 대신 갚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하나님의 인도

삼상22:1-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은 계속 도망을 다녔습니다. 이번에는 아둘람 굴로 피신했습니다.
이때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 빚진 사람, 마음에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 다윗을 따랐습니다(2).

어려움이 처해 있으면 나만 이런일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붙혀주셨고 서로 위안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들을 용사로 훈련 시켰고, 강한 군대를  이루었지만, 사울에게 절대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피신을 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늘 하나님의 인도를 구했습니다(3).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 모압왕에게 부탁을해 모압땅으로 피신을 시켰습니다(4)

이유없이 자신을 죽일려고 하는 사울!
하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사울을 존중하는 다윗을  하나님은 매순간 마다 인도하셨습니다(5).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가족들이 몰살을 당했을때(18-19), 그들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였습니다(22).

사울의 리더십은 점점 망가지고 있고, 다윗의 리더십은 점점 세워져갑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씩 움직였기에 다윗은 사울에게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필요한 것은

삼상21:1-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은 그를 따르는 몇몇 사람들과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놉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온 이유를 아히멜렉에게 거짓으로 둘러댔습니다(2).

그는 굶주렸고, 고달팠습니다.

허기를 채울려고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요구했습니다(3).

제사장에게는 보통의 떡은 없고 그가 줄수 있는 것은 거룩한 떡(진설병)만 뿐이었습니다(6).
진설병은 제사장만이 먹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히멜렉은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자를 돕기 위해 그 룰(rule)을 깨트렸습니다. 결국 그는 이 일을 통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합니다(삼상22).

다윗은 블레셋으로 도망을 칩니다.
블레셋 왕앞에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10-11),

 미친 사람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렸습니다(13).

그는 미친 사람 연기를 하면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비참한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기에 중심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때 그는 시편 56편을 지었다고 합니다.
"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시56: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그 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도망자

삼상20:18-4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사울의 마음을 알아 다윗에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요나단은  계획을 세웠습니다(18-22).

다윗은 들에 숨어서 기다렸습니다.

초하루 축제일에 요나단은 왕의 식탁에 참석하지 않은 다윗에 대한 사울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첫 째날에는 아무  말이 없던 사울은 두 번째 날에도 다윗이 참석하지 않자 다윗의 동정을 요나단에게 물었습니다(27).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마음은 명확해졌습니다(30-31). 사울은 다윗을 변호하는 요나단 까지 죽일려고 했습니다(33).

다윗은 본격적으로 피신생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때 부터 다윗의 연단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바로 왕의 자리를 주지 않고 많은 고난을 겪게 하신 후 주셨습니다.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그의 신앙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었습니다.

다시는 만날수 없을지 모르는 다윗과 요나단은 헤어지면서 서로 맹세를 했습니다(42).

후에 다윗은 친구와 한 맹세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의리를 지켜습니다.
그가 왕이 된 후 요나단의 장애를 가진 아들 므비보셋을 극진히 보살폈습니다(삼하9).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짐은 슬픈일입니다.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는 것은 고난의 삶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위해 그 다음단계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2013년 9월 10일 화요일

친구

삼상20: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질투심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반면에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진실한 친구였습니다(18:3). 하지만 요나단은 큰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친구를 죽일려고 하고, 자신은 왕자의 신분이고, 친구는 큰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요나단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3). 다윗은 사울이 자신은 계속 죽이고 싶어하는 지를 알고 싶었습니다(7).

요나단은 사울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다윗에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12-13).

요나단과 다윗의 진실한 우정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이 두사람의 우정은 나의 죄를 위해 아무 조건없이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나의 주님이시요, 진실한 친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해주고 있습니다(막10:45).

이 세상에서 요나단과 다윗처럼 신앙에서 진실한 우정을 나눌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나그네길을 가는 여정에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2013년 9월 9일 월요일

하나님의 손길

삼상19:1-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시기심은 더욱 강도를 더해갔습니다. 사울은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 앞에서 다윗을 죽이라고 공포했습니다(1)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충직한 부하요, 아들과 같은 사위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하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1,10,15).

하지만 요나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1). 그는 다윗을 도왔고, 변호했고 그의 생명을 보호 할려고 힘을 썼습니다.(2,4-7).

다윗의 아내 미갈 역시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다윗을 보호했습니다(12).

선지자 사무엘은 다윗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었습니다(18)

사람들을 움직여서 다윗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당시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행복한 도망자' 였습니다.

반면에 사울의 삶은 비폐(疲弊)했습니다. 그는 늘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질투와 미움만으로 가득찼습니다. 악한 영이 임해 그를 더욱 괴롭혔습니다(9).

그래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6).마귀의 속성은 이중성입니다.
광명한 천사의 모습이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보이기도합니다.

사울이 그의 권력을 총동원해서 다윗을 죽일려고 했어도 하나님이 선택한 다윗을 해할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분의 자녀된 우리의 삶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믿습니다.

2013년 9월 8일 일요일

공의로서

시82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와 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한마디로 공의로운 통치입니다.

정부와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 통치자들을 가리켜 " 신들"(1,6), " 지존자의 아들들"(6) 이라고 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이들에게 권위를 주신 것은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들이  악인의 낯을 보아서(2) 봐주기  재판을 한다면  하나님이 용납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항상 사회적 약자편임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에게도 그것을 원하십니다(3).

정부가 할일은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올바른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을 두려워하며 공권력을 제대로 행하지 않는 나라,
도리어 그들의 눈치를 보거나 지지를 받기를 원한다면  나라가 바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공의로운 통치, 올바른 법집행, 하나님이 정부를 세우신 목적에 따라 바른 통치가 임할때  하나님은 그 나라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재판장이십니다.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8).

대한민국이 공의로 통치되고,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세워져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3년 9월 6일 금요일

이름없이 빛없이..

롬16: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16절까지 29명의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들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요, 영적지도자였습니다. 큰 능력을 받은 신령한 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신실한 신앙의 동지들을 주셨습니다. 그의 사역을 돕는 동역자들을 주셨습니다.

좋은 신앙의 동역자들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충성스럽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면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들을 붙혀주십니다.

여러사람들 가운데 특히 바울에게 인상깊은 사람들이 몇몇이 있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가(아굴라의 아내)와 아굴라를 언급하면서 그들은 바울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3-4).

또한 '사랑하는 에베네도'(5), '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8), '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12). 바울은 이들이 행한 일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자신을 친 자식처럼 대해준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루퍼의 어머니'입니다. 루퍼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13). 루퍼의 어머니는 바울에게 많은 용기와 위안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복음 사역을 바울 혼자 감당하게 하지 않으시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그를 돕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그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들의 이름들이 성경책에 기록된 것처럼,
오늘도 주안에서 이름없이 빛없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름들이
주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2013년 9월 5일 목요일

오늘도...

롬15:23-3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린도에 머물고 있던 바울은 로마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스페인이었습니다(23).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의 성도들과 영적인 교제로  신령한 기쁨을 나누기를 원했습니다(24).

홀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시는 기쁨이 있지만  성도가 함께 모여 기도하며 말씀안에서 교제할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위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주셨습니다.

글라디오 황제 때에 임한 흉년으로 인해 유대지방에 기근이 심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경제적인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헌금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25).

바울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으로 빚진자라고 했습니다(26-27).복음이 유대로 부터 전파 되었기에 이들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27).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빚진자입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 나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해주는 사람  그들에게 신령한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들은 기쁨으로 헌금을 했습니다(27).

바울은 자신을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의 핍박 자들로 부터 보호해달라는 것과 무사히 구제 헌금을 전달하고 로마 교회에 갈수 있도록..(30-32).

자신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소명을 잘 수행할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기도를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오늘도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평강으로 우리 심령을 지켜 주실줄 믿습니다(33).

2013년 9월 4일 수요일

나는 바울처럼?

롬15:14-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소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15-16). 자신의 소명은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복음의 제사장' 이었습니다(16).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 시키기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소명에 따라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17-20).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18).

그 역사는  복음의 말씀과 말씀을 통해 나타난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18).
자신의 능력과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님의 감화를 사모했습니다.

복음을 듣는자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감화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약함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이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을 사모했습니다.
믿음은 인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역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져 교회가 세워진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20).

사도 바울이 보여준 본은
오늘  교회들이 따라야 할 본입니다.

나는 바울처럼 사역을 하고 있습니까?

2013년 9월 3일 화요일

그리스도인의 삶

롬15:7-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받으셨습니까?(7)
나의 행위가 완전해서 받으신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심판 받아야 할 마땅한 죄인이지만 믿음을 통해 그분의 은혜로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납하신 것 처럼 우리도 서로 포용하라고 하십니다(7).

주님은 십자가로 모든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8-9).

진리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화평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참된 신앙에서 모든 기쁨과 영적 평안이 나옵니다(13).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일에 평안을 느낍니다.
늘 하나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심을 영적인 감각으로 느낍니다.

무슨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다는 영적 예지(豫知)를 갖기에
 소망이 넘칩니다(13)

오늘도 소망의 하나님께서 성령안에서 모든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넘치는 하루가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2013년 9월 2일 월요일

덕을 세우는 것

롬15: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교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실제적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이해하고 포용하라고 했습니다(1).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1), 이웃(형제, 자매)을 기쁘게 하는 자 입니다(2).그 본을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습니다(3).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고 했습니다(3,5).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위해 사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사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주님을 본 받으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과 인내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화평을 이루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겸손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겸손한것과 인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덕을 세울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인내와 용기를 주십니다(5).

선을 행할수 있는 영력을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영적인 힘을 주십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도의 문이 더욱 활짝 열릴것입니다(6).

2013년 9월 1일 일요일

하나님의 음성

시81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유월절에 애독(愛讀)되던 말씀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1-4). 하나님을 찬송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찬송하는 자의 심령이 힘을 얻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 하게끔 했습니다(6-10).

입을 크게 열라고 했습니다(10).
입을 크게 열어야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듯이  믿음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크게 임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11-12).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의 완악한 대로 버려 두셨습니다(12).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징벌하실때도 있지만  그냥 버려두시기도 합니다. 마음이 완악한 사람이 변화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그대로 버려두시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부르십니다(13-16).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그들을 만족케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입니다.

나의 모습에는 옛 이스라엘의 모습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보다는 내 생각대로 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다른것을 의지하고 다른데서 위안을 찾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매일 나에게 말씀하시는데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내가 너무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아니한지요?

2013년 8월 30일 금요일

샬롬

사54: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본문의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는 여인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민족을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이방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입니다.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노래하라고 초청하십니다(1).
현재 고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회복 시키시고 번성 시키실 날이 올것입니다(2).

하나님의 나라가 이와같습니다.
예수님이 열두명의 제자를 삼으실때는 이들은 매우 적은 무리들이었습니다. 열두명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 되도록 하셨습니다.

본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절의 " 휘장(텐트)이 도시로 바뀌었습니다(11-17).
하나님이 그들의 장막터를 넓히셨습니다. 그 도시(예루살렘)의 성벽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의 축복이 넘쳐나는 곳입니다(13).

계시록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아름다움과 그분의 평강이 넘쳐나는 곳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신 예루살렘 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볼 것이고  그곳에서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원한 평강(Shalom)속에 살 것입니다.

2013년 8월 29일 목요일

고난의 종

사52:13-53: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하게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내 종이라고 하셨습니다(52:13).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철저하게 순종하실 분이기에 그분을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참된 종이셨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이 보내신 종은 사람들의 기준과 다른분이셨습니다.겉보기에 보잘것이 없습니다(53:2). 멸시를 당하실 만큼(53:3) 외형적으로 내세울것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위해 찔림을 당하시고, 상함을 입으시고, 징계를 받으셨습니다(53:5).
억울함을 당하시면서도 침묵하셨습니다(53:7).남에게 악한 일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53:9). 말에도 죄가 없으셨습니다(53:9).

그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의로운 종'이십니다(53:11). 그분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십니다. 즉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됩니다. 바울은 이 지식이 너무 귀하고 고상하기에  모든것을 해로 여겼습니다(빌3:8).

나의 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묵상하면 할수록 나의 영혼이 정화됩니다.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내가 너무 교만하고, 거짓된 삶을 사는지를 알게 됩니다.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종의 모습을 보여주신 주님!
오늘 저의 영혼을 정화시켜 주소서!

2013년 8월 27일 화요일

시온의 영광

사51: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징계가운데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그분의 행하심의 끝은 항상 소망이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항상 그분을 찾고 그분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과거를 기억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깨트리신적이 없으십니다(1-2). 하나님은 과거에 항상 신실하셨습니다. 이것이 비록 이들이 포로중에 있다 해도  희망을 놓지 않는 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을 다시 회복 하실 것입니다. 시온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다시 임할 것입니다(3). 시온에서 나갈 하나님의 율법이 온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4-5). 장차 메시야이신 주님께서 그 땅에 오셔서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얼마나 흥분되게 만드는 예언입니까? 이들은 고난 (포로생활)가운데서 소망이 넘쳤습니다.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있기에 사람들의 멸시와 훼방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7).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리스도의 말씀이 세상을 이깁니다.

주님의 말씀이 심령에 가득한 사람은 어떤 힘들일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듭니다(9-11).  "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풀어달라고"(9)기도 하였습니다 . 그리고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났습니다(12-16).

특히 11절에는 구원 받은 자들의 기쁨이 나타납니다. 구속 받은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와 노래하고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위에 있습니다. 슬픔과 탄식이 달아났습니다.

이것은 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을 읽는것과 같습니다.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고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 곡하는 것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것입니다(계21:4).

그리스도안에서 받은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이 바벨론 포로 생활 같은 이 세상을 통과할수 있는 힘을 줍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구원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미래를 믿음으로 기다리며 오늘을 시작합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입니다. 샬롬!

2013년 8월 26일 월요일

주님처럼

사50: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옛날 유대나라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내어 보낼때 이혼증서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간음함이 없이 이혼을 당할 경우입니다. 일종의 증명서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간음했을 경우는 이혼증서 없이 집에서 내어보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남편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혼증서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즉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 잡혀간 것은 그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먼저 배반했기 때문입니다(1).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를 촉구했지만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2). 반응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강팍한 증거였습니다. 강팍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언합니다. 그분은 학자의 혀를 가지셨습니다. 곤핍한자들을 살리시는 말을 하십니다(4).

어떤말은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 어떤말은 남을 낙심케 합니다. 하지만 어떤말은 남을 살립니다. 영혼을 소생케 합니다. 그 말은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자는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또한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꺼히 고난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6-7). 주님은 철저하게 순종하심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원한 모델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순종하여 수치를 당하시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8). 아버지께서 함께 하심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님처럼 온유와 겸손으로 옷입은 사람이지만 믿음으로 당당함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함의 본을 보여주신 주님처럼
오늘도 순종함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당당함속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2013년 8월 25일 일요일

답답하고 힘들때..

시80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얼굴 빛'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어" 달라고 반복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3,7,19).

하나님의 얼굴 빛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사는 것이 성도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목자로 부르고 있습니다(1).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영원한 목자이십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따라갑니다.

하나님의 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인도를 따릅니다. 인간의 소리를 듣고,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양이 아닙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하면 하나님의 참된 양들이 모여들것 입니다

하나님은 목자이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시편 기자가 지칭하는 것은 북쪽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입니다(8-16). 하나님은 그 포도나무를 번성케 하셨습니다(8-11).

그러나 하나님은 그 포도나무의 담을 허셨습니다(12). 들짐승들의 먹잇감이 되게 하셨습니다(13). 포도나무에서 아무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바라는 것은 포도열매이지 나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열매를 바라십니다.

시편기자는 모든것이 암울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14).

답답하고 힘들때 일수록 시편기자처럼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그때 더욱 새로워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2013년 8월 22일 목요일

하나님의 말씀에...

사48:12-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말씀을 들으라고 초청하십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바벨론에서 그들을 구하시려는 계획을 알수 없습니다(14,45:1).

본문의 강조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16).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계획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약속, 그분의 성품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함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살아야 축복된 삶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17).

매일 매일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마땅히 행해야 할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마음에 평강이 임하지 않습니다.
평화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임합니다(18).

또한 치유는 말씀을 들을때 생깁니다. 말씀을 들어야 영혼이 치유됩니다.
우리는 매일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분의 계획은 항상 선하십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에게는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롬8:28). 하나님의 행하심은 반드시 선입니다.

하나님은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천만년, 억만년 후에도 그분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19).

오늘도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앞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를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2013년 8월 21일 수요일

진실함으로

사48: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앞으로 바벨론으로 잡혀갈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바벨론에 살게되지만 이들의 소속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입니다(2).

하나님은 이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었습니다(1).
진실하지 못한 것은 위선입니다. 위선은 가장 큰 악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선자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 했지만  내면에는 명예심이 가득찼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들이 영광 받기를 더 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늘 존경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들 보다 주님에게로 향하기 시작하자 시기와 질투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을때도 온갖 중상모략을 다했습니다.

진실이 없는 신앙은 가장 큰 악으로 발전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이 없는 이들을 향해 " 네 목은 쇠의 힘줄이고, 네 이마는 놋"이라고 했습니다(4).

이들에게 필요한것은 고난의 풀무불에서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10). 즉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통해 연단을 받아야합니다. 쇠의 힘줄 같은 마음과 놋과 같은 이마는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해야 부드러워집니다. 교만이란 병은 고난을 통해 치료 받을 수 있는 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심은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 위함입니다(11).

하나님의 관심은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데 있습니다.
나의 삶을 통해 늘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오직 구원자는

사47:1-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경에 바벨론은 교만과 오만함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성경의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창11, 계17-19).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될 때를 바라보며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해 일시적으로 바벨론을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교만한 바벨론을 하나님이 심판 하실 것입니다(9-11).

바벨론은 앗수를 정복하고 거대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거대해지자 곧 자만과 안일, 방종에 빠졌습니다(8). 교만했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교만해서는 않됩니다. 사람의 일도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잘 되는 것 같지만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날씨와 같이 기복이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길은 하나님앞에서 겸손한 것입니다.

이웃나라들을 정복하고 잘 나갔던 바벨론은 사치, 안일 방종속에  자기들을 하나님 같이 여기게 되었습니다(12-13). 사람도 그렇습니다. 교만해지면 안일과 방종,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처럼 되어버립니다.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바벨론 처럼 강대한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1-3).
교만한자가 가진것이 없어지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세상에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그 어떤 존재도 없습니다.

오직 구원자는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입니다(4).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하나님만이

사46: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를 통해 그의 백성들이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외치십니다.
이들은 바벨론 우상들을 섬겨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문화에 동화되어 살았습니다. 바벨론 신들을 섬겼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벨(태양신)은 바벨론 신들중 주요한 신입니다. 느보는 벨의 종에 해당하는 신입니다. 바벨론이 외세의 침략으로 정복 당해 이 우상들이 외국으로 끌려 가게 되었습니다. 짐승들이 우상들을 운반했습니다(1).짐승들에게 '무건운 짐'만 되는 존재들이었습니다(1).

이런 우상들이 어떻게 그들을 도울수 있겠습니까? 이들 우상들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반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돌보셨습니다.
늙을 때까지 돌보시고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그들을 품으신다고 하셨습니다(3-4).

부모가 자녀를 늙을 때까지 돌볼수 없습니다.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품을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우상에 대한 경고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해물입니다.

우리시대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물질주의, 소비주의, 사회복지, 경험, 지식, 건강,..

하나님! 오늘 나의 삶에 하나님만이 중심이 되게 하소서!! 아-멘

2013년 8월 18일 일요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시79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폐허가 되었습니다.
시편기자는 그 처참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졌습니다(1). 하나님의 종들의 시체가 가득했습니다(2-3).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방과 조롱을 당했습니다(4). 하나님의 땅이 황폐해졌습니다(7).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을 간구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징계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8-9).

그러나 시편기자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의 동기에는 단순히 주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는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을 당할까봐 입니다(10).
그는 '하나님이여!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의 기업의 땅이(1), 주의 거룩한 성전이(1), 주의 종들이(2), 주의 성도들이(2)...
그의 간구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영광과 이름을 위해서입니다(9).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 ...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라"(레19:2)고 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게 살아야 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훼손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2013년 8월 16일 금요일

빛의 자녀

요13:18-3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은 예언의 성취였습니다(18). 주님은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줄 알았습니다(21,26).

복음서에는 가룟  유다앞에 ' 예수를 판 자' 라는 꼬리표를 붙힙니다(마10:4;막3:19;눅6:16). 유다가 자신을 팔자임을 아시지만 주님은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전혀 티를 내시지 않았기에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 돈궤를 맡은 유다를 신뢰하는 줄 알았습니다(29).

유다의 운명을 알고 계셨던 주님은 아픈  마음으로 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유다에게 친히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셨습니다(26). 가까운 친구에게 친밀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른 제자들 처럼 그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사탄은 주님이 유다를 포기하도록 계획했지만 주님은 마지막까지 유다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사탄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27).

마음의 큰 고통을 느끼시면서 주님은 유다에게 "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습니다(27).
속히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뭔지 모르는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요한은 그 시간이 "밤"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0). 유다의 영적 상태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유다와 같이 밤에 속한 자가 아니라 낮에  속한자 입니다.

오늘도 빛의 자녀로  살기를 원합니다.

2013년 8월 15일 목요일

참된 설교

요13: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한복음의 후반부(13-20)는 영광의 책이라고 이름을 붙혀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영광은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 십자가의 달리심으로 극치를 이루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십자가의 달리신 그분의 겸손을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시각적인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고대 중동지역에서는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습니다(눅7:44). 집에 노예로 하여금 손님의 발을 씻도록 했습니다.

노예는 손님이 도착을 하면 발을 씻어주었지만 주님은 저녁을 먹는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2,4).

주의 만찬은 이 만큼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겸손과 섬김의 마음이 없이는 만찬에 참여할수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주님이 우리의 죄를 씻기전까지는 우리는 온 갖 죄악으로 더러운자임을 말씀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이 행동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가 어떤자임을 보여주십니다.

말로 울고 웃기고 감동을 주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설교자가 설교한대로 삶을 살때 그 설교가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일것입니다.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주님은...

요12:37-5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유대인들이 여전히 주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합니다(37). 그는 이사야 선지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38-40). 이사야 선지는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이 완고한대로 버려두셨음을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의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완고한채로 그대로 두신다면 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아도 믿지 않습니다. 죄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회개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고 주님앞으로 온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종교지도자들과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숨으셨습니다(36).

관원들 가운데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 못했습니다(42). 요한은 이들을 가리켜 "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 이라고 했습니다(43). 다른말로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명예를 사랑해서 주님을 믿는다고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돈과 마찬가지로 명예심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예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나중에 하나님에게 비참하게 버림을 받을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정열을 다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외치셨습니다(44-47).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자이시고 주님을 믿는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44-47).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것이 아닌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13년 8월 13일 화요일

영광

요12:27-3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다(23). 그러면서도 주님은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27).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분의 고뇌와 갈등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것이 인성을 입으신 그분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경험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히4:15).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의 연약함을 경험하셨고, 너무나 잘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완벽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두려움과 갈등이 있었지만 철저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제가 이 일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까?"(27) 하셨습니다.

또한 영광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영광은 자신의 영광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28).

사탄은  자신이 영광을 받고, 자신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지만 주님은 아버지가 영광을 받고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셨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복종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친히 보여주신 본이십니다.

주님은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려 올라가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2). 들려 올라가는 것은 보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눈에는 모진 형벌이요, 수치이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사람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그 자체가 영광이 됩니다.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주님을 따르는 자

요12:20-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전에 주님은 자신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2:4;7:6).
본문에서는 " 인자가 영광을 얻을 시간이 왔다고" 하셨습니다(23). 제자들은 아마 이 말씀을 듣고 뭔가 모르는 큰 기대감으로 부풀었을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주님을 환영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12-13). 바리새인들 조차 " 온 세상이 그를 따른다"고  인정했습니다(19).

그러나 예수님이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것은 왕의 대관식이 아닌 죽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알의 밀을 말씀하셨습니다(24).

주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의 영광을 얻는 자가 아니라 한 알이 밀처럼 죽는 것을 말합니다.
얻음이 아니라 잃음을 말합니다. 가짐이 아니라 버림을 말합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얻고자 합니다.
희생보다는 영광을 얻을려고 합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을 섬기자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귀히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26). 주님을 섬기는 것은 곧 주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2013년 8월 10일 토요일

나의 삶속에

요12:12-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11). 예수님의 명성은 재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유월절 명절이 다가왔고 예루살렘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 다는 소식을 듣고 큰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12).

전쟁에 승리한 개선 장군에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환영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전통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보자 종려나무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호산나' 하고 외쳤습니다(13).
호산나는 ' 도와주소서'(시118:25-26)라는 의미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13).

수 많은 외침의 환성속에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이들의 외침에 대해 주님은 어린 나귀를 타심으로 응답하셨습니다(14). 스가랴 의 말씀대로 행하심입니다(14).

요한은 예수님이 왜 나귀를 타셨는지? 주님의 행동을 제자들은 그 시간에 깨닫지 못했다고 진술합니다(16).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나서야  나귀를 타신 주님이 스가랴 선지의 예언의 성취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비로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삶속에 다가온 어려운일들을 넘기고 나서야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깨닫게 될때가 많습니다.

개선장군은 멋있는 말을 타고 가야 상식에 맞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평화와 겸손을 상징합니다..

그분의 나라는 평화와 겸손의 나라입니다.
그분의 나라는 군대의 힘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으로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오늘 나의 삶속에 평화와 겸손, 희생과 섬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2013년 8월 9일 금요일

교회는

요12: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육 일전에 나사로가 살고 있는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2). 마태와 마가는 이 연회장소를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마26:7;막14:3). 아마 잔치가 시몬의 집에서 열렸는데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도 함께 초청을 받은 듯 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마르다는 분주했습니다(2). 음식을 접대하는데 바빴습니다. 이런 봉사도 귀한일이지만 말씀을 배우는 것, 영적인일에 힘을 쓰는 것이 더욱 귀합니다.

진리를 배우지 않고 분주한 사람은 영적으로 쉽게 메마르게 됩니다. 쉽게 지칩니다.
쉼이 없습니다. 진리안에서 견고함이 없기에 상황에 따라 변할수 있습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녀는 비싼 향유 약300그램을 가지고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3). 오빠 나사로를 살려주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주님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음식들보다 이 일을 더욱 기뻐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은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7).

주님은 기뻐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이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다면 더 좋지 않은가? 하고 비판했습니다. 요한은 그에대해 그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말하기보다는 탐심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5-6). 그는 물질중심의 사람입니다. 무엇이든 돈으로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어떤집에 사느냐?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느냐? 여기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물론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13:29).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가 먼저 입니다(8). 복음이 없이 구제만 한다면 그것은 자선 사업이지 전도가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지, 자선 사업하는 곳이 아닙니다.

2013년 8월 8일 목요일

나는 어디에?

요11:45-5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이 나사로를 살리자 이를 본 많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었습니다(45).
반면에 어떤 사람은  믿는 것을 거부하고, 주님을 해하려고 바리새인들에게 고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46).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이 행하시는 많은 표적을 알고 있었습니다(47).
하지만 이들의 특징은 강팍함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권위가  손상 받지는 않을까, 그들의 위치가  예수님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을까,  예수님때문에 사람들이 동요한다면 로마정부가 탄압하지는 않을까?(48)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이라 하면서 생각은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가장 불행한 일을 종교를 통해 출세하고,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직업을 통해 출세를 했다면 차라리 떳떳 할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왜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면서 애통해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공회에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 인해 로마군대의 위협이 있으니 예수 한 사람만 희생 시키면 안전하다고 발언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신 메시야는 아닌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는 생각보다 세상적인 계산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위치는 대제사장이지만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가야바가 비록 잘못된 동기로 말을 했지만, 유대의 공직자로서 최초로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예언 하게 된 것입니다(49-52).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합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계획을 세웠고(53),
주님은 이것을 아시고 깊은 광야 한 마을로 피하셨습니다(54).
아직 잡히실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순종하십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좇아가는 주님과
남들이 우러러 보는  대제사장이요, 종교지도자들이지만 세상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세상적인 방법만 좇는 이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있습니까?

2013년 8월 7일 수요일

울고계시는 주님

요11:28-4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대 헬라인들은 신(神)은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예수님은 정반대이십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구절은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더라"(35)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님은 친구 나사로의 죽음앞에서 우셨습니다.

본문에는 비통히 여기셨다는 말씀이 두 번 나옵니다(33,38). 이때 예수님의 감정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사로의 죽음앞에서 흘리신 눈물은 단순히 슬픔의 눈물이 아닙니다.
인간의 고난을 보시는 의분의 눈물이십니다.
죄로 인해 세상에 찾아온 고통과 죽음을 보시는 의분의 눈물이셨습니다.

"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외치시는"(43) 주님의 모습은 죽음을 향해 맹렬한 분노를 발하시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죽음에 대해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고전15:26)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원수입니다.
죽음을 가져다 준 죄는 원수중에도 원수입니다.

오늘  울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봅니다.

2013년 8월 6일 화요일

마르다의 신앙

요11:17-2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마르다와 마리아 가정에 큰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사랑하는 오빠가  병들었기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 SOS를 보냈지만 주님은 아무 반응이 없으셨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죽게 됩니다. 죽은지 사 일만에 주님은 이들 가정을 찾아오셨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던 마르다는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곧 나가 주님을 맞이했습니다(20).
주님을 만난 마르다의 첫 마디는 주님이 여기 계셨다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21).
섭섭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실줄 믿습니다(22). 이어서 나사로가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 때 제 오빠가 살아날줄 믿습니다"(24). 마르다가 신앙적으로 말하는 것 처럼 보여도 그의 말을 가만히 보면  확신이 없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기복이 심한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일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왠지 모르는 깊은 평안함을 느낍니다. 그에게서 영적인 안식을 얻습니다. 조용합니다. 그의 심령이 믿음안에서 잔잔한 평안함이 넘쳐남을 보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어떤분이심을 아는 것입니다(27).
마르다는 주님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주님이 나사로를 살리지 못할것 같은 말을합니다(39).

마르다의 신앙은 체계가 없었습니다. 그의 신앙이 체계가 없었던 것은 늘 분주하기만 했지, 진리의 말씀을 깊이 배우지 않았습니다.  말씀앞에  머물러 있지 않고 , 진리를 배우지 않으면 위기를 만나면 신앙이 흔들립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굳건히 서기 때문입니다.

2013년 8월 4일 일요일

나 란 존재

시78:1-3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시적인 형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의 역사는 고집스럽고 , 불순종, 그 마음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역사임을 이 시인은 강조합니다(8).

전쟁에 능한 에브라임 자손들이 가나안 정복을 성공하지 못한 것은  불신앙이 원인이었습니다(11). 이들 은 하나님의 수없는 능력을 친히 목격을 했습니다.

바다를 육지처럼 건넜습니다(13). 구름과 불 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14). 물이 귀한 광야에서 하나님은 반석을 깨트려 시원한 물을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습니다(15).

만나를 내려주셨고(24), 고기(메추라기)를 먼지 처럼 많이 보내주셨습니다(27).
그것도 금방 불평으로 바뀌었습니다(30).

하나님의 수 많은 기적을 보고도 정탐군들의 보고를 듣고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주저했습니다(32-33).

이들이 어려움속에서 회개한다고 하였지만(34-35), 진정성이 없었습니다(36-37). 진정성이 없는 회개는  하나님께 아첨하는 행동입니다(36).

아첨하는 것은 중심은 안그런데 겉모습만 포장할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회개에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 행동의 변화가 없는것은 하나님께 아첨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부패한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누가 탓할수 있겠습니까?
나의 내면에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고, 한 번 가면 다시 못 오는 바람같은 존재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39).

바람은 한 번 훗 불고 지나가면 흔적이 없듯이
'나' 란 존재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2013년 8월 3일 토요일

요란한 것

잠9:1-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지혜가 집을 짓는다고 했습니다(1). 집은 쉬는 곳입니다. 안식하는 곳입니다. 본문의 집은 교회를 비유합니다. 교회는 쉬는 곳입니다. 한  주간 광야 같은 세상에서 지쳐있던 영혼들이 예배를 통해 영적으로 안식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영혼의 집입니다.

이집에서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잔치를 배설해서(2) 여종을 보냅니다.마을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초청합니다(3). 와서 준비한 음식을 먹으라고 합니다(4-5). 세상에서 지친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음으로  신령한 기쁨을 얻습니다. 영적인 새힘을 얻습니다. 이곳이 교회입니다.

하지만 거만한 자를 꾸짖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움만 살뿐입니다(7-8). 교만한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들을수록 더욱 강팍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가 모세를 만날때 마다 마음이 더욱 강팍해졌듯이.. 이런 사람은 가만히 나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 시간에 지혜로운 사람을 훈계하는 것이 낫습니다(8-9).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입니다(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권면할때 그것을 받아 들이는 나의 자세를 보면 내가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지를 알수 있습니다.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겸손히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앞에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신령한 지혜를 넘치게 하십니다. 그만큼 말씀앞에 그 심령이 개방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유혹이 많습니다. 거짓된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본문은 이것을 미련한 여인으로 표현합니다(13). 이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요란합니다(13). 요란하게 포장해서, 뭔가 있는듯이 변장을 해서 사람들을 초청합니다(14-18).

지혜가 없는 사람은 겉모습에 잘속습니다(16).

하지만 요란한것은 속이는 것입니다.

2013년 8월 2일 금요일

문 곁에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잠8:22-3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27).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때 그리스도께서 건축사가 되셨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기쁨으로 넘쳤습니다(30). 인자들을 기뻐 하셨습니다(31). 즉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여 기뻐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솔로몬은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바울은 모든 만물이 그분에게서 창조 되었고, 그분을 위해 창조 되었다고 했습니다(골1:16). 그 분안에(그리스도)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골2:3).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영혼이 소생함을 얻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까?
날마다 문 곁에서 기다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34). 문 곁에서 기다리는 마음은 간절함과 정성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함과 정성으로 사모해야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건성으로  말씀을 대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열어주시지 않습니다.

마치 문 곁에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성경을 펼칩니다.


2013년 8월 1일 목요일

거저주시는

잠8:1-2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지혜가 부른다고 했습니다(1). 지혜는 영적 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입니다.

 지혜가 "길 가", "사거리", " 성문들 곁", 여러 출입문"에서 부릅니다(2-3). 현대로 말하면 쇼핑몰 이나 전철역 같은곳 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혜는 우주 만물에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시19).

하나님을 나타내지 않는 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주만물, 세상 모든곳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들이 있습니다(4-5). 왜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시14:1).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한데 그것을 모릅니다.  과학적 지식만 숭배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지식의 근원이신 창조주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내세가 있는줄 모르고 현세에만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모르고 교만, 거만함,악함과 거짓속에 살아갑니다(13).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입니다. 지혜가 이들을 향해 부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지혜가 금,은, 모든 보석 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10-11). 그가 가졌던 부로 영혼을 구원할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가 가진 영광으로 죄로 부터 자유할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세상의 금, 은, 보석 보다 가장 귀한 것이 하나님의 지혜(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가장 귀한 귀한것을 주십니다(19). 영원한 부요함을 주십니다. 세상의 돈으로 살수 없는 하늘의 기업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수고의 댓가가 아닌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21).

2013년 7월 31일 수요일

죄의 댓가

잠6:20-3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등이요,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악에 빠지 않게 인도하고 지켜줍니다(22-23). 특히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젊은 청년들을  성결케 해줍니다시119:9).

솔로몬은 성적 유혹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음란한 여자의 아름다움을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25).
 색(色)을 탐하는 자는 한 조각의 빵만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26). 이런 여자는 귀한 생명을 사냥하는 사람(26)입니다. 한마디로 신세를 망치게 됩니다.

그럴습니다. 성적인 쾌락에 빠진자는 육체와 영혼 모든것이 망가집니다.
 심령은 마비되고, 어두워집니다.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습니다.
고상함은 없어지고, 짐승 같은 존재가 됩니다.

요즈음은 간음이 통상적인 일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본문은 간음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간음하는 사람은  불을 품고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언제 탈지 모릅니다(27).
또한 맨발로 숯불을 밟는 사람입니다. 화상을 입을것입니다(28).

하나님은 간음을 도둑질 보다 더 악하게 보십니다(30-32).간음은 사회를 좀 먹고, 한 가정에 큰 상처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인해 상함과 수치를 당하고, 그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될것입니다(33).

무슨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간음에 대한 댓가를 반드시 치루십니다.

다윗이 간음함으로 하나님은 많은 고난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성군(聖君)이요, 위대한 신앙인이었지만  그는 간음이라는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평생의 수치였습니다.






2013년 7월 30일 화요일

미워해야

잠6:1-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남이 경제적으로 어려울때 그 사람을 위해 보증을 서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함부로 보증을 서는것을 경고 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고가 생길 경우 그 사람을 위해 책임질 경제적인 능력이 없이 보증을 서지 말라고 했습니다(1-3).

보증을 서는것만 아닌  일종의 과시욕에서 생각없이 말하고  약속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덫이 됩니다(2). 말을 조심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게으름에 대해 경고합니다. 게으른자에게 개미에게 지혜를 배우라고 했습니다(6). 게으름은 모든 죄악의 근원입니다. 게으름은 몸과 마음이 썩는 것과 같습니다.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다 부지런한것이 아닙니다. 세상일에는 부지런하지만 죽음 이후의 하나님의 심판, 영생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게으른자들입니다. 영적인 잠을 자는 자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게으른자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9-10).

육체의 행복은 수고와 땀을 흘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십니다. 신령한 행복도 영혼의 수고를 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참된 기쁨과 안식과 평강이 임합니다.

죄는 눈, 입, 발, 마음과 분쟁으로 짓습니다(13-14).
하나님은 모든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중에도  교만, 거짓말, 살인, 악한 일을 꾸미는 마음, 악한열심, 이간질(분쟁) 등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16-19).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들을 나도 미워해야 할것입니다.

2013년 7월 29일 월요일

유혹

잠5:1-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들에게 지혜, 명철, 근신, 지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 이것은 인간의 이성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영력입니다.

솔로몬이 현대인의 삶을 보았다면 그는 큰 충격을 받았을것입니다. 동성연애, 노출, 성적 자극으로 가득찬 영화,잡지등...

젊은이들의 마음을 쉽게 빼앗아가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의 시대에도 그는 그의 아들에게 음녀의 입술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3). 음녀의 입술은 꿀과 같이 달콤하고 기름보다 매끄럽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쾌락은 자극이 강합니다. 겉보기에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것이 덫입니다.  금방 독처럼 쓰고 양쪽 날이 선 칼처럼 변합니다(4).

명예를 빼앗깁니다(9).성적 유혹에 넘어간 자가 받는 수치는 하나님의 벌입니다. 다윗이 간음함으로 그는 명예의 큰 손상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들에게 음녀의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말라고 했습니다(8). 성적 유혹은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부인이 유혹을 피하기 위해 그곳을 도망쳤습니다.

좋지않는 영화, 좋지 않는 사진.. 영혼을 더럽게 하는 모든것들은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나로 죄를 짓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더 잘압니다.
나의 심령을 어둡게 하고, 나의 마음을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 .. 그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남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것,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가정(15-19) 이것이 지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임을 믿습니다.

2013년 7월 28일 일요일

영적침체

시77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어떤 좋지 않는 일이 시편기자에게 있습니다(1-3).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5-10)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 같은, 다시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성경(본 시편)을 기록할 만큼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영적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을 영혼의 밤(5)이라고 합니다.

이 시인뿐만 아니라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도  누구나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두려움과 걱정이 앞섭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해주지 않으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시인은 지금 이런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약함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10).

연약함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약한 존재이면서 강한 것 처럼 행동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바라볼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 시인은 절망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과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셨던 일을 회상하였습니다(15).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였습니다(16-19).모세와 아론을 통해  백성들을 인도하셨던 일을 생각했습니다(20). 여기에서 그는 큰 힘을 얻은것이 분명합니다.

누구나 영적침체를 경험할수 있습니다. 그럴때 이 시인처럼  지난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봄이 어떨까요? 과거에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의 삶을 붙잡으십니다. 그분은  미래에도 은혜를 주실것입다.

 그분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히13:8).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하나님앞에..

출24:1-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세는 산에 오를 때마다 몇몇 사람들만 데리고 올랐습니다(1,19:24). 모세와 동행한 사람들은 멀리서 하나님을 경배 할뿐 가까이 갈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자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응답했습니다(3,7).

그 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9-10).
이들이 하나님을 본 것은 하나님의 실체를 본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본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33:20).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만 보아도 기절합니다. 밧모섬에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죽은자 처럼 되었습니다(계1;17). 다니엘은 벙어리 처럼 되었습니다(단10:15).

'하나님을 보여달라 그러면 내가 믿겠다' 이것처럼 바보스러운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무사했던 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11).
이들의 본 하나님의 영광은 마치 청옥을 깔아놓은것 같고 하늘처럼 맑았습니다(10).

'청옥과 맑은 하늘' 하나님의 성결을 상징합니다. 이분의 영광을 보아도 이렇게 성결한데 하나님 그분 자체는  어떠하시겠습니까? 절대 성결하신 하나님앞에 죄인 된 인간은 갈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개의 돌판에 새긴 말씀(십계명)을 주시기 위해 모세를 다시 산으로 부르셨습니다(12). 이번에는 여호수아만 대동했습니다(13).

모세가 산에 올랐을때 하나님의 영광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구름이 육 일동안 산을 덮었습니다. 모세를 향한 음성이 나타났습니다(16). 산이 훨훨 타는 불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17). 장엄한 광경입니다.

모세는 사십 일 밤낮을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었습니다(18).

나는  하루중 얼마나  조용히 하나님앞에 머물러 있습니까?

하나님앞에 머물러 있는 그 시간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시간입니다.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오늘도 오직

출23:20-3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그것은 순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불신앙이 그들을 지배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육을 입은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그들의 길을 인도하겠다고 재차 약속하셨습니다(20-23). 광야를 통과하며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의 여정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여정과 같습니다.  주님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마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우상을 다 없애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땅에 사는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4). 바울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세상의 삶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롬12:2).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물질의 복도 주시고 장수의 복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5-26). 인간이 아무리 수명을 늘리려고 애를 써도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저절로 생긴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가나안땅에 살고 있는 족속들을 좇아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 좇아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좇아내시겠다고  하십니다. 한 번에 다 몰아내면  사람이 살지 않아 그 땅이 페허가 되기때문입니다. 들짐승이 많아져서 살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27-30).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섬세하신 사랑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주시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해결해주실 때가 있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함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향하셨던 것처럼 매일 매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섬세하신 사랑과 깊으신 섭리를 찬양합니다.

오늘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2013년 7월 25일 목요일

출23:1-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약한자의 편이시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정의롭고 정직한자의 편이십니다.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 사람들이 다 악한 일이 한다고 그들을 따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 만일 뇌물이 성행하는 공무원 사회에 뇌물을 받지 않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눈총을 받을것 입니다. 정직함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비에는 공정성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라고 무조건 봐주기식 재판을 하면 안됩니다(3). 가난한 자라고 억울하게 해서는 안됩니다(6-7).

뇌물을 받지말라고 하셨습니다(8). 힘있는 자리에 있으면 반드시 유혹이 있습니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한도가 없습니다.

같이 사는 외국인들에게 관대하라고 하셨습니다(9). 그들도 역시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했었습니다. 나그네의 심정을 잘 알것입니다.

농사를 짓되 여섯 해동안 짓고 소산물을 먹을수 있지만(10),칠 년째에는 땅을 묵혀두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저절로 자란것들을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이 먹게 하셨습니다(11).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것인지를 말씀해줍니다.

또한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수장절(초막절)입니다(14-17).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잊어 버립니다. 절기를 지켜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엄마 염소의 젖에 어린 새끼를 삶아 요리하지말라는 마지막 절 말씀이 특이합니다(19). 엄마 염소의 젖에 그의 어린 새끼를 삶는것은 얼마나 잔인합니까? 하나님은 금하셨습니다. 이들에게 자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십니다. 정직, 공정함, 용기, 너그러움, 자비입니다.

오늘 나의 삶속에 이런 덕(德)이 나타납니까?

2013년 7월 24일 수요일

십계명의 원리

출22:16-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결혼전에도 성관계가 빈번한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본문 첫 구절 말씀을 읽으면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처녀를 꾀어 잠자리를 같이 한경우 그 여자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16-17).

하나님은  영혼을 더럽게 하는 무당(18),비정상적인 성생활(19), 잡신을 섬기는 것(20) 모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더럽게 하는것들을 가증하게 보셨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하셨습니다(21-27). 특히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되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5-26). 정당하게 땀흘려 일해 얻은 수입이 아닌, 고리대금업, 투기, 약한 사람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부당한 수익을 올리는 것등..역시 하나님앞에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29-30).
하나님이 모든것에 우선이십니다. 나의 마음, 시간, 물질, 모든것이 그분이 우선입니다.

본문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성결하게 살아야 할것인가?
사업은 어떻게 해야할것인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모든 원리는 십계명안에 있습니다.


2013년 7월 23일 화요일

보상

출22:1-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때에 노예생활에 대한 보상을 받게끔 하겠다고 약속하신바 있습니다(3:21-22).

수고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보상을 해주는 것 하나님에 세우신 도덕질서입니다.

본문은 개인이 남의 재산에 피해를 주었을 경우에 대한 말씀입니다.
남의 것을 도둑질 했을때 5배 혹은4배로 갚습니다(1). 도적이 배상하지 못할경우 자신의 몸을 팔아서(종이됨)라도   배상을 해야 합니다(3).

남의 재산에 피해를 주었을 경우 배상(5-6), 남의 물건을 보관하다가 피해를 주었을 경우 (7-9), 남의 짐승을 빌려온 경우 손실이 일어났을 경우(10-15).

남에게 피해를 주었으면 반드시 보상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즉 정직과 책임입니다.

가령,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배상은 커녕 사죄한마디 않는.. 남의 나라 땅을 자기 나라 땅이라고 우기는 이웃나라의 모습을 보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를 위해를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더욱 느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 반드시 보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개인의 윤리일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입니다.

2013년 7월 21일 일요일

주관하시는 하나님

시76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했을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아 지은 시편입니다.

앗수르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던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고 산헤립을 두려워 하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앗수르인이 있습니다.
사업, 직장, 경제, 내가 부딪히는 모든 부분에서 야! 하나님을 믿지말고 나를 믿어!  속삭이는 앗수르가 있습니다.

앗수르인들이 무엇이라고 지껄여 대던 하나님은 하룻밤 사이에  그들을 패망케 하셨습니다.
호엄장담했던 그들은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하게 큰 소리치는 자들을 우습게 만드십니다.

 힘은 군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용맹함과 최강의 전력을 과시했던 그들이었지만 하나님이 꾸짖기만 하셔도 병거와 말이 움직일수가 없었습니다(6).

이 세상에 그 어떤 강한 세력도 하나님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습니다(3-8).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고통을 구원하시기 위해 심판하러 일어나셨다고 시인은 찬송합니다(9).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시간을 믿고 참고 기다립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분을 이 시인은 찬양합니다(10-12).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공평과 정직

출21: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사회의 주인과 종의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 사람이 종이 된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갚지 못하면 몸으로 때우겠다고 하며 종이 되었습니다.

한 번 종이 되면 영구히 되는 것이 아니라 육년동안만 종으로 일합니다. 그리고 칠 년이 되면 자유의 몸이 됩니다(2).

자유의 몸이 될때에 주인집에서 얻은 처자식들은 두고 나와야 합니다(4).
하지만 종이 가족들을 버릴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족들과 함께 주인집에서 계속 살 수 있습니다. 이때는 재판장에게 가서  공적으로 인증을 받고 영구한 종이 됩니다(5-6).

주인이 여종을 첩으로 삼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여종을 다른 사람에게 팔수 없습니다(8). 주인은 자기 아들에게  아내로 줄수 있습니다(9). 주인의 아들이 여종을 아내로 삼았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면  그 여자의 생활비를 보장해주어야 합니다(10). 만일 이 아들이 이것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여자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11).

본문은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이 주신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평함과 정직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업체를 운영하십니까? 공평함과 정직으로 직원들을 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부리는 입장에 있다면 공평함과 정직함으로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모든 부분에서 공평과 정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져야 할 윤리입니다.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참된 예배

출20:18-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두려워 했습니다(18).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조차 두려워했읍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모세를 통해 듣기를 원했습니다(19).

죄인된 인간이 어찌 하나님을 대면할수 있겠습니까? 밧모섬의 사도요한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계1:17).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다면 기절해서 요한처럼 죽은 자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신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2-23). 사람들는 눈에 보여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상이 만들어집니다. 신비감을 조성해서 마음을 현혹시킵니다. 참된 하나님은 보이는 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것 처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히11:1).

세상의 잡신들, 우상들은 복잡합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은 단순함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때도 다듬지 않는 돌로 쌓으라고 하셨습니다(25).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인위적(人爲的 )요소가 있어서는 않됩니다.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연출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은 층계로 제단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알몸이 드러날수 있습니다(26). 예배를  인도하는자나 예배를 드리는자 모두가 거룩해야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십계명

출20: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함을 가르쳐주는  기본이 되는 원칙입니다.

처음 네가지계명(3-11)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것인가? 에 대한 계명입니다. 우상숭배, 하나님의 이름, 안식일에 대한 것입니다.  핵심은 전심(全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전심은 다른것이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단순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는 단순함입니다.
단순한것이 강함입니다. 단순하지 않기에 약해집니다. 단순하지 않고 섞이기에 걱정과 근심이 생깁니다. 십계명의 첫 번 파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최대의 행복입니다.

두 번째 여섯가지 계명(12-17)은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부모공경,살인,간음, 도둑질,거짓증언,탐심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짓는 죄들이 다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계명입니다.사회적 책임에 대한 것입니다.

십계명의 원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예수 그리스도

출19:1-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오래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예배를 드릴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3:12). 이들이  애굽을 떠난 지 석 달 만에 시내 산에 도착했습니다(1) 이 산에서 이들은 율법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러 산에 올라갔습니다(3). 모세는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가 그분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고 맺은 언약에 순종하면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6).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8). 이들이 한 마음으로 응답한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은혜가 떠나면 금방 강팍해집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동안 모세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 있었고,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는 것을 백성들도 직접 듣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9).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결함입니다.
옷을 빨고(10), 산 주위에 갈수 있는 경계선을 정하고(12), 삼일동안 부부생활을 금하고(15)..
이만큼 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시내산 주변은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보십시오. '우뢰' '번개' '빽빽한 구름, '나팔소리' '연기' '불' 산전체가 크게 흔들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이 그런 표현이지 그 현장에 있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과 장엄함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그분앞에 나아갈수 있겠습니까?

이 위엄과 장엄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