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1일 금요일

골리앗

삼상17:28-5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거대한 체구, 승리를 장담하는 목소리, 오만함의 극치.. 이에 비해  골리앗은 완벽한 무장을 했습니다(5-6). 대단한 무기들을 지녔습니다. 역설적인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잘 갖추어진 무기를 지닌 블레셋 군대와 위압감을 주는 거인의 모습만 보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원수를 보았습니다. 분노가 치밀었습니다(26).

그는 즉각 이 거인과 싸울려고 채비를 갖추었습니다(32).

다윗은 큰 형 엘리압으로 부터 모욕에 가까운 책망을 들었습니다(28). 사울왕까지 결전에 나서는 다윗의 기를 꺽어 놓았습니다(33).

자신을 건방지게 여기는 형과 용기는 커녕 낙담케 하는 말을 듣는 현실앞에서  그는  즉각 그것을 거부했습니다(29,37,45).

다윗의 눈엔 골리앗이 거인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이 하나님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눈이 고정 된 사람은 문제를 문제시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막대기와 돌 다섯 개, 물매를 들고 즉각 그 거인을 향했습니다(40,48).  갑옷, 투구, 칼과 창은 거추 스러울 뿐입니다. 그에게는 전략이나 전술도 없었습니다.어떻게 보면 무모한 싸움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라는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 무기야 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는  평소에 사용했던 것들을  들었습니다. 결국 승리는 다윗의 편이었습니다(50).

다윗과 일전을 벌인 거인 골리앗은 나의 삶속에도 있습니다.
내가 싸워야 할 이 거인이 누구입니까?
질병, 경제적 어려움, 가정 문제등 입니까?

그러나 다윗이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하나님은  골리앗 보다 크신 분 이시다'는 사실을...



2013년 5월 30일 목요일

믿음으로

삼상17:1-2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세상 세력을 상징하는 블레셋 군대가 도전해왔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양쪽 군대가 서로 대치 상태에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용사 한 사람이 나와서 일대일 결투를 벌일것을 제안했습니다.

상대는 골리앗, 이 거인을 보고 이스라엘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싸울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4-11). 두려워 도망하였습니다(24).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도 여전히 양떼를 지키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가장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양떼를  맹수들로 부터 보호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음식을  전달하라고 다윗을  심부름 보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려고 간것이 아니었습니다(17-18).때때로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다윗은 심부름을 갖다가 골리앗의 말을 듣게 되었고(23), 하나님을 모욕하는 소리를 듣고  분노가 치밀었습니다(26).

사실 이스라엘에서 골리앗을 상대할 유일한 사람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백성의 지도자였고, 전쟁에 능한 용사였지만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년이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다윗과 사울의 모습이 역력히 비교 됩니다.

본문에서 주의를 끌고 있는것은 "골리앗이 올라왔다"(25)는 말씀입니다. 골리앗은 골짜기를 넘어 이스라엘 쪽으로 가까이 다가 왔습니다. 그가 나에게 다가 왔습니다. 그가 내게 다가와 내 생각을 지배하면 않됩니다. 그가 다가와 나에게 불신앙을 심어주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여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소년 다윗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골리앗과 믿음으로 맞섰습니다.

오늘도 소년 다윗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과 믿음으로 맞서십시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하나님의 눈

삼상16:1-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다음 계획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을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1).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외모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7).
우리 사회는 사람을 뽑을때 아직 학연, 지연을 보는 나쁜 관행이 있습니다.

아니면 피부색, 성별, 나이, 문화적 차별을 둘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할때도 학벌, 설교를 얼마나 잘하는가? 카리스마가 있는가?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혼 상대자를 고를때도 학벌이나 경제적 능력을 먼저 봅니다.

본문의  이새도 8명의 아들중 막내인 다윗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당신의 아들이  이들이 전부입니까? 하고 물을때 까지 다윗은 생각 조차 않했습니다(11).

내가 이새의 집 옆집에 살았어도 다윗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을것입니다. 그는 베들레헴 언덕에서 양을 지키는, 홍조( 紅潮)를 띤 얼굴을 가진(12) 시골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될 줄을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다윗은 사람들의 눈에 띈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눈여겨 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맞는 사람"(행13:22)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란 마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시51:6).

하나님의 눈은 오늘도 마음이 진실한 사람을 향하십니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선함

삼상15:1-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과 전쟁을 하라고 명령하시는 내용으로 본문은 시작됩니다. 남자나 여자 할것없이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어린아이, 갓난 아이에 이르기까지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2).

사울이 자신이 직접 전쟁을 계획하며 이런 말을 했다면 혹은 사무엘이 했다면  조금은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그런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무자비한 학살(?)에 가까운 명령을 하셨습니다.

매우 야만적인 명령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는 그분의 성품과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내리신 이유가 있습니다. 아멜렉은 에서의 자손입니다(창36:12). 이스라엘이 출애굽 당시 이스엘에 대해 짐승같이 잔인하게 행하였던 포악한 민족이었습니다( 출17:8, 신25:17-18). 하나님은 악에 대해 반드시 행한대로 갚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사울이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9) 그는 부분적으로 순종했지만 온전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합리적이고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사무엘에게 거짓을 말하며, 다른이들에게 책임전가를 했습니다(21).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각은 그 순간 몇몇 그의 부하들과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결국 붙잡혔지만..(33).

500년후 또 다른 아말렉 사람이 모든 이스라엘을 멸절 시킬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각의 직계 후손인 하만이었습니다(에스더3:1).

내 생각, 계획이 합리적이고 옳게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것은  선한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앞에서 선(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입니다.

2013년 5월 27일 월요일

하나님의 시간

삼상13:1-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군영을 침략했습니다(3). 이것은 선전포고를 한 행위와 같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싸울려고 군열을 정비했습니다. 그 수가 "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다"고 했습니다(5). 이스라엘 백성이 겁을 먹기에 충분했습니다(6-7).

사무엘은 자신이 와서 번제외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이 행할것을 가르칠때까지 길갈에서 7일동안 기다리라고 말하고 떠난적이 있습니다(10;8).

사울은 사무엘을 7일동안 기다렸지만 사무엘에 나타나지 않자  매우 초조했습니다(8).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매우 위급한 상황에 있었습니다(6-7).

사울은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에 자기가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9).
사울이 번제를 드리자 사무엘이 도착한것을 보면 사울이 얼마나 믿음 없이 초조해하였는지  알수 있습니다(10).

사무엘의 책망에 사울은 회개함이 없이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11-12).

본문의 사울의 모습은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삶에 큰 도전을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이 될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2013년 5월 26일 일요일

나의 하나님

시68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은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본 시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능력, 자비, 섬세하신 사랑. 모든것을 종합해서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물리쳐 달라고 하였습니다(1).
 훌륭한 군인이었던 다윗은 군대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앞에  앞서  인도하셨습니다(7).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을 흩으셨습니다(2,12,14).

다윗은 이일을 회상하며 경외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 합니다(4,19).
언제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28).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아닌 그분의 섬세하심을 묘사하였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고, 고독한 자,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5-6).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보십니다. 곤핍한 자를 다시 견고하게 하시고, 인생의 짐을 져 주십니다(19).

전능하신 하나님, 섬세하신 그분의 돌보심..
생활속에서 당하는 스트레스, 가정의 문제, 남에게 말못할 나만의 고민과 사정 모든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매일 그분의 도우심과 인도를 구하십시오.
그분의 능력과 사랑을 의지하며...

2013년 5월 25일 토요일

동일하신

롬8:18-3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육신의 안목으로 살지않고 영적 안목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수록 영안이 열려 현재를 초월한 하나님의 큰 그림의 계획을 볼 수 있습니다.(18, 19-21).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만물도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만물은 항상 그대로 있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쇠하고 부패해집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때가 되면 지고, 때가 되면 꺽이고, 때가 되면 낡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실 날이 있습니다(계21:5). 모든 만물이 고통속에서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2).

저희집 큰 아이를 낳을 때 아내의 모습을 아직 기억합니다. 땀과 피로에 쌓인 얼굴, 말로 표현할수 없는 고통, 두려움.. 이런 긴 긴장과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환희에 찬 얼굴로 아기를 안고 있던 모습..

현재 이 세상의 삶이 그렇습니다.
슬픔, 이별, 질병, 자연재해, 수많은  사고와 사건들.. 이런 고통의 과정들은  하나님이 이루실   영광의 날을 기다리는 연장선상일뿐 입니다.

그런 중에도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질 영광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이기 때문입니다(23). 성령님이 오셔서 고통이 많은 세상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맛보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말은 환희에 찬 찬송처럼 보입니다.
모든 순간에도 나를 붙잡으시는 하나님,
그 어떤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떼어놓을수 없습니다(35, 38-39).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합니다. 아-멘










2013년 5월 24일 금요일

양자

롬8: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1세기 로마 제국안에서는 가끔 부자들이 노예 가운데 어린 소년이나 소녀를 양자 혹은 양녀로 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노예의 신분이었던 소년이나 소녀가 양자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양자가 된 아이는 옛 생활이 아닌 새 생활이 시작됨을 말해줍니다.
새 환경, 새 가족들, 그리고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 양자됨'을 예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분의 양자로 삼으셨습니다(14-15).
이제는 두려워하는 노예, 죄의 종이 아닌 나를 자유케 하셨습니다(15).

나에게는 새로운 가족(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공동체(그리스도의 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17).

그리스도안에서 '의로워진것'은 법적인 관계를 말하지만, '양자됨'은 가족관계를 말합니다. 의로워진것 보다 양자됨이 더 큰 축복입니다.

칭의보다 양자됨이 하나님과 더 풍성한 관계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내가  그분의 자녀라는 것!
무슨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감사와 찬양으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2013년 5월 23일 목요일

갈등

롬7:7-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내면의 갈등을 숨기지 않고 독자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죄와 갈등이 있습니다(23). 바울의 말은  나에게 큰 위안을 줍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했는데...

나에게도 바울과 같은 갈등이 있기 때문입니다(25).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내면에는 이중성이 있습니다(22-23).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다른 하나는 그분을 저항합니다.

이것들이 숨어 있다가 자주 나타나서 나로  힘들게 합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와 유혹으로 힘들어합니다.
남을 비방하고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봅니다.
남을 용서하고 싶지만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봅니다.
탐심을 버리고 싶지만 여전히 탐심이 나타납니다.
주예수 보다더 귀한것은 없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부터 영광을 받기를 원합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감사한것은 주님이 나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주님은 나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개인적 죄의 갈등이 무엇인지를 주님께 정직하게 말하십시오.
주님이 나에게 자유함을 주실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주님의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음을 믿습니다.

2013년 5월 22일 수요일

결혼

롬7: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옛날 유대사회는 남성중심의 사회였습니다. 결혼하면 아내는 철저하게 남편에게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어야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2).

그때 비로서 재혼할수 있었습니다(3).

바울은 결혼을 예를 들어 죄와 율법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남편은 죄를 의미합니다. 율법을 의미합니다. 아내는  믿는 자를 말합니다.

같은 원리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죄와 율법에서 자유로워졌음을 말씀합니다(4).
전에는 죄에 예속되었고, 죄와 결혼해서 살았고, 율법과 결혼해 율법의 정죄속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와 재혼했습니다. 의에 예속되어  살아갑니다.
정죄가 아닌 자유와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이제는 자유가 있다면  그리스도를 향한 자유요,
열매가 있다면  새 남편 그리스도와 동거함으로 맺는 의의 열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의와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하루가 되십시오.

2013년 5월 21일 화요일

주인이 누구입니까?

롬6:15-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노예제도는 고대 로마세계의 보편적인 제도였습니다. 비록 노예이였지만 좋은 주인을 만나면  대우를 받을수 있고, 결혼도 할수 있었고, 재산도 모을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가 없었습니다. 노예는 전적으로 주인의 소유였습니다.노예는 언제나 노예였습니다.

바울은 노예를 예를 들면서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누가 나의 삶에 주인이냐? 입니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것이 무엇입니까? 용서하지 못한 마음, 미움, 복수, 이기적인 마음,탐욕, 등 이 나를 지배하며 죄의 종이 될때 나의 영혼은  황폐해질수 밖에 없습니다(21).

매일 누구를 주인으로 삼을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의의 종'으로 산다면 자유와 치유와 기쁨으로 살고(22), 그 열매는 영생입니다(23).

오늘도 '의의 종'으로 주님과 더불어  자유와 치유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이 되십시오.

2013년 5월 20일 월요일

그리스도와 연합

롬6:1-1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를 믿는것은 그분과 연합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옛 생활을 따라 살아갑니까? 그럴수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합니다(2).
옛 생활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모든 부분'- 자기중심, 탐욕, 미움, 위선, 죄에 중독되어 노예처럼 살던 삶 등
그렇다고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는 죄에 대해 저항력이 없었는데 이제는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갑니다(4,5,8,11).

전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구별조차 할수 없었지만 이제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할수 있게 되었습니다(6). 이것이 그리스도와 연합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함을 만민이 알게 해달라"고  했던  어느 신앙인의 고백이 바로  오늘 나의 고백임을 믿습니다.

2013년 5월 19일 일요일

성령강림

시67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기도의 형태로 쓰여진 아름다운 시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축복을 주시고, 그분의 얼굴 빛을 비추십니다(1).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공평하게 다스리시고 이끄십니다(4).
그분의 길과 구원이 온 땅, 모든 나라에 알려져(2), 땅위의 모든 사람들이 기쁨으로 그분을 예배하고 찬양합니다(3-5)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이 많은 열매를 내고 땅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6-7).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젼입니다.

오늘은 유대인 절기로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처음 추수를해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교회절기로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모든것을 회복하시고, 치유하시고, 하나님의 영적 추수를 행하십니다.

요엘을 통해 약속하셨던 "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겠다"(요엘2:28)고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성령님!  나의 심령과 섬기는 교회에 당신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아- 멘

2013년 5월 18일 토요일

하나님이

요엘3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엘서 마지막장은  심판과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일시적으로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지만  결국은  회복과 축복으로 역전 시키시는 분임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요엘은 다가오는 '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에 이방인들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1-16).

이사야와 미가는 요엘과 비슷한 환상을 보았습니다."칼로 쟁기를 만들고, 창으로 낫을 만듭니다"(사2:4;미가4:3).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평화의 환상이었습니다

요엘이 본 환상은 비슷했지만 정반대였습니다. "쟁기로 칼을 만들고, 낫으로 창을 만듭니다"(10). 이방인들을 향한 심판의 환상이었습니다.

요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화와 번영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언했습니다(17-21).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임할것입니다(2,3,5,6).하나님의 분노가  그의 백성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임할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십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의 자녀들(우리)을 지키시는 아버지의 손길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멘

2013년 5월 17일 금요일

축복의 날

요엘2:18-3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 큰 재앙으로 황폐해질것임을 예언한 요엘의 예언은 반전 됩니다.
재앙에서 벗어난 그 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21-24).

본문은 여행자로 하여금 그곳을 여행하도록 충동을 느끼게 하는 팜플렛을 읽는 느낌을 갖습니다.

황폐해진 땅이 아름답고 기름진 곳으로 바뀌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백성을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함에 있습니다(18).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21-22).
기뻐하고 즐거워하고(23), 하나님을 찬송할 뿐입니다(26).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됨으로 얻어지는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떤 쾌락과 비교할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회복은 물질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24).

먹고 사는 경제 문제는 간단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 이 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처럼 나두지 않으시고 그들 가운데 계십니다(27).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계십니다.

모든 이들에게 그분의 영을 부어주실 것입니다(28).
다시 오실 주님의 날이 있습니다(31). 이날은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의 날이되지만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 들에게는 구원과 기쁨과 축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샬롬!



2013년 5월 16일 목요일

우리 하나님

요엘2:12-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다에 임할 메뚜기 재앙, 그들을 침략할 이웃의 강한 군대(앗수르)로 벗어날 길이 무엇입니까? 요엘은 분명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재앙을 바라보고, 무서운 군대를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입니다.

모든 백성이,,, 젊은이든, 늙은이든, 제사장이든, 일반 백성이든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입니다(13).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15-17).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은 모든 촛점을 하나님에게 두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재앙을 내리실분도 거두어가실분도 앗수르 군대를 이기게 하실분도 하나님이십니다(14).

이스라엘 처럼 고난의 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요엘은 하나님에 대해 "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시를 더디하시며 인애(仁愛)가 크신 분"(13)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2013년 5월 15일 수요일

주님의 날

요엘2: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을 읽는 우리와 말씀을 전하는 요엘이 느끼는 감정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이 예언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해줍니다.

본문은 메뚜기떼의 재앙이 아닌 강한 이웃나라(앗수르)의 침략을 예언한 말씀입니다(11).
무슨 재앙이던 그 뒤에는 그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기 위해 강한 나라를 일으켜 도구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합1:6-11).

국가이던 개인의 삶이던 그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국력이 세어져도,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번창해도 하나님이 거두어가시면 순식간에 황무한 사막이 될 수 있습니다(3).

요엘은 '여호와의 날' 을 두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1,11).
이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요엘이 ' 여호와의 날'을 상시 시키듯이, 주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주님의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도적같이 임합니다(살전5:2).

우리는  생일을 기억합니다. 결혼 기념일을 기억합니다. 그외에 여러 기념일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주님이 재림하실날을 늘 기억하며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013년 5월 14일 화요일

위험한 일을 당할때

요엘1:13-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엘선지는 메뚜기떼의 재앙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16-20).
씨를 뿌렸지만 흙덩이 아래에서 메말라 죽었습니다. 창고는 텅텅 비었습니다. 짐승들은 배가 고파 울부짖습니다.

사람이 당하는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경제적 고통일것입니다.
공중의 새들과 하찮게 보이는 들풀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루도 살아 갈수 없는 우리의 삶입니다. 창고를 채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창고를 텅텅 비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큰 재앙에 직면한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을 해야합니까?
요엘은 금식하며 회개해야 함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13-14).

이들이 무슨 죄를 범했는지를 요엘은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고 있는것임이 분명합니다.

위험한 일을 당할때 본능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도망을 갑니까?
피할곳을 찾습니까?
아니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앞으로 나아갑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2013년 5월 13일 월요일

요엘의 예언

요엘1: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남쪽 유다에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이전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홍수나 태풍이 있었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2).

요엘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끔찍한 재해가 올것임을 예언했습니다(4,6,10-12).
모든 땅이 메뚜기떼로 인해 황폐해질것입니다.

포도주가 없어질것이고(5),
수확이 전혀없어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마저 없을 것입니다(9).
유다의 죄악때문입니다.

요엘의 예언은 탄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 황폐해질것을 보며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도 자주 잊고 살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도 잊은채 살아갈때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 요엘서는 잠자고 있는 우리의 심령을 깨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늘 하나님께서

시66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아마 앗수르 산헤립의 침략에서 벗어난 후 기록된 말씀아닌가 싶습니다.
국가적 큰 위기를 벗어난 후 쓰여진 말씀입니다.

시편기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1-2).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행하셨던 일을 보라고 초청합니다.
큰 위기에서 구원하심(5-6), 보호하심(9), 회복하심(12).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난을 허락하심으로 연단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10)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과거에 행하셨던 일을 지금도 하시고 미래에도 하실것 입니다.

과거 나의 삶속에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해보십시오.
살아오면서 위기의 순간도 있었고, 아픔의 순간도 있었고, 기쁨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언제나 나의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땅에 떨어질수 없듯이,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없었습니다.

나의 삶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습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나의 삶속에서 떠나지 않음을 믿습니다.

본 시편기자 처럼 " 나의 혀로 높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17)

2013년 5월 11일 토요일

바꾸시는 하나님

미7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미가는 앞으로 다가올 심판과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였습니다(1-6).
그가 본 하나님의 백성들은 " 두 손으로 악을 행하기에 부지런했습니다"(3)
그 사회가 얼마나 악했으면 이런 표현을 썼겠습니까?

불신이 극에 달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믿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도 믿을수가 없었습니다(5-7).

사회가 부패할수록 부모.자식사이도 이렇게 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것은 죄성을 가진 인간을 믿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대상은 신실하신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선지자는 탄식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인트는 미가의 예언이 탄식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탄식이 곧 찬양과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찬양과 기도로 바뀔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분인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긍휼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18-20).

그의 백성들을 징계하시지만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는 하나님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기에 그의 결론은 찬양과 기도였습니다.

언제나  믿음과 감사와 찬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3년 5월 10일 금요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미6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죄를 범해도 예물만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것이라는 생각을 미가 시대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6-7).부자들과 권력자들이 더욱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은 이들에게 반문(反問) 하셨습니다.

미가는 오므리와 아합의 예를 듭니다(16).
오므리와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왕들이었습니다.
미가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을 했습니다(16).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곳곳마다 탐욕과 악함이 극에 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순합니다.
수많은 제물, 가장 귀한 제물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 정의를 행하고, 인자함과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8).

내가 정의롭지 못하고 , 인자와 겸손함이 없이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된 경건일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아-멘-

2013년 5월 9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미5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미가서는 앗수르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던(주전701) 히스기야 시대에 기록된 것 같습니다.

미가서를 읽어가다보면 자주 혼동을 느낍니다.다른 시대에 일어난 다른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기록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산헤립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은것, 바벨론 포로귀환,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심판의 날 등 시대를 초월한 사건들이 나열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유다자손들에게  땅을 분배 할때에  언급조차 없었던(수15)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온세상을 구원하실 주님이 오실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이 있습니다(2).

 하나님의 백성은 군대의 힘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함을 강조합니다(10).
요새를 의지하지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함을 강조합니다(11).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은 때로는 갑갑하고 답답함을 느낄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승리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산헤립으로 부터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다시 그들을 귀환시키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를 평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5).
평강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요16:33).

오늘도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세상을 이기십시오. 아-멘

2013년 5월 8일 수요일

평화와 축복

미4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멧시지를 전한 미가는  방향을 돌려 소망의 멧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장차 끝날에  복음을 통해 수 많은 이방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오게 될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1-4). 우리는  오늘 일어날 일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하루가 천년이요 천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가야합니다(10).
죄를 범했기에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이들을 순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 하시려는 것 입니다. 그래야 이들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을 기뻐하였습니다(11).
이방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과 계획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12).

때로는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사랑과 신실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항상 평화와 축복 입니다.
이 하나님의 평화와 축복을 전합니다. 아-멘

2013년 5월 7일 화요일

좋은 설교자

미2:6-3: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미가시대의 이스라엘 사회는 총체적으로 부패했습니다.
지도층의 부패는 정도가 심했습니다. 정치인, 제사장, 선지자 할 것 없이 백성을 신앙적으로 바르게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타락했습니다(3:11).

본문에서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선지자들의 타락입니다.
선지자들은 먹을것을 위해 예언했습니다(3:5). 돈을 위해 예언을 했습니다(3:11).

선지자를 사칭한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이 득실했습니다(2:11).

선지자는 하나님의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 입니다. 덧붙히거나 감할수 없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해습니다.
이익이 없을때는 쉽게 돌변하여 듣기 좋지 않는 예언을 하였습니다(3:5).

미가가 예언할때는 지도자들은 예언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2:6).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전하는 참선지자(미가)와 거짓 선지자들이 공존했습니다.

설교자의 중요성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설교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올바르게 전해 듣는이로 하여금 회개케 합니다.
그들의 믿음을 순전하고 견곤하게 해줍니다.

거짓 설교자는 듣는이들의 마음을 기쁘게만 해줍니다.

사람들 귀에 좋은말만 하는 설교자는 조심해야 합니다.

2013년 5월 6일 월요일

하나님이 주신 축복

미가1:1-2:5 오늘의 묵상입니다.
미가는 주전 8세기에 활동한 남쪽 유다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리실 심판의 멧시지를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2).

야곱(북왕국), 유다(남왕국)이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했습니다(5,7).

우상들이 자신들의 삶을 윤택해주리라고 믿었습니다.

우상숭배와 같은 신앙의 타락은 반드시 도덕적 타락을 가져옵니다.
성적인 타락이 이어졌습니다. 성전세를 창기들이 챙겼고, 창기들은 그 돈으로 더 비싼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사회 곳곳에는 탐욕과 부정이 판을 쳤습니다. 부자와 힘이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습니다(2:2).

사람들은 돈으로 우상을 만들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수 없었습니다.

미가는 자신이 전할 멧시지에 대해 매우 비통해했습니다(8).
하지만 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의 목록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물질, 시간, 재능...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할지를 생각해보십시오.

2013년 5월 5일 일요일

새로운 주간에도

시65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매일 나의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살때가 많습니다.
일터에서, 일상생활의 잡다한 일 들 속에서, 생활 구석 구석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본 시편기자는 음식, 풍년, 비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4,9,10,11-13).
하나님이 차별없이 베푸시는 자연 은총을 누리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한이 없으신 자비와  삶을 돌보시는 은총,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돌아오는 새로운 주간에도 하나님이  변함없이 베푸실 그분의 선하심과 임재하심을 생각해보십시오.

2013년 5월 4일 토요일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

요7:45-8: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전도대상자 가운데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마음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해가 바뀌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는 상태에 있습니다. 참 미쩍지근합니다.
니고데모가 그런 사람인것 같습니다.

일찌기 니고데모는 주님을 찾아온적이 있습니다(3:1-21).
그는 주님에 대해 호기김이 많았고 공손한 태도로 주님을 대했습니다.

본문에도 니고데모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에 대해  변호를 하였습니다(51-53).

 주님이 죽으신 후 장사 지낼 때  몰약을 들고 다시 나타났습니다(19:38-42).
니고데모는 '미스터리'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고, 그를 변호했고, 공손하게 주님을 대했지만 분명하게 신앙을 고백한적은 없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주변에 예수님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이 마음을 열어 분명하게 주님을 영접하도록 기도하십시오.

2013년 5월 3일 금요일

생수

요7:25-4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본문에는 주님이 어디에서 오셨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27-28).

요한은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고 생명을 주시러 오신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1;1-14).

유대인들에게는 세 개의 큰 명절이 있습니다.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입니다.
본문은 장막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장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기억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한 주간이지만 하루를 더해 8일동안 지켰습니다.

이 기간에 매일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 행렬을 지어 성전 문에 들어와서 물을 붓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유월절 처럼 장막절 역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광야에 장막을 쳤듯이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1:14).  우리와 같이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며 사셨습니다.

장막절 마지막 날에 성전에 물을 붓는 무리들을 보시고 주님은 영적 생수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37-39). 인간이 만든 성전이 아닌 살아계신 새 성전이신(2:18-22)이신 그분에게 오는 자는 영적 소생함을 얻습니다.

세상은 광야와 같습니다. 한 주간 동안 세상에서 힘들게  살다가 주일이면 예배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공급받고 소생함을 받아  세상으로 파송받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활력이 넘치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은 주님이 공급하시는 영적 생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생수(성령)로 충만케 하셔서 나를 만나는이들에게 신령한 은혜를 강수처럼 전달하게 하소서! 아-멘

2013년 5월 2일 목요일

정직과 진실함

요7:14-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단기간의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면 속기 쉽습니다. 사람은 오랫동안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수 있다고 하셨습니다(17-18).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주님의 일을 빙자해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진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화려한 겉 모습만 보고 교회를 택한다면 속을수 있습니다.
진실함을 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경건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들속에는 율법의 정신인 자비와 사랑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였지만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요5) 정죄하였습니다.(23).

주님을 죽일려고 하는 마음까지 가졌습니다(19).

이들은 겉과 다르게 위선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영적 질병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자칫  이 질병에 걸릴수 있습니다.

항상 날마다 주님의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앞에서 정직함과 진실함을 유지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의  말이 아닌
나의 내면에 정직과 진실함입니다.

2013년 5월 1일 수요일

하나님의 시간

요7: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 시골 갈릴리를 떠나 초막절 축제가 열리는 큰 도시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조언을 햐였습니다. 이들은  큰 도시에 가서 활동해야 더 크게 성공할수 있고, 명성을 더욱 얻을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3).

예수님의 형제들은 세상의 영광을 구하였습니다. 반면에 주님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예수님의 형제들에 대해 요한은 이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5).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의 영광보다 세상의 영광을 구한다면 그는 주님의 형제들처럼 아직 불신자일지 모릅니다.

형제들의 말에 주님은 거부하셨고(8-9), 나중에 은밀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10).

주님은 사람의 말에 따라 움직이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셨습니다(6). 복음서에 나타난 주님은 어떤때는 비밀리에, 어떤때는 공개적으로  대중들에게 나타나심을 보게됩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나 생각이 아닌  항상 올바른 시간(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맞추어 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저의 삶이 저의 계획이나 생각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살게 인도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