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1일 금요일

의인의 삶

렘5: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이 간음죄를 짓고 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린적이 있습니다.
" 내속에 진실함을 원하시오니"(시51:6).

하지만 예레미야 시대에는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징계하시고 고통을 주셔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3).

예루살렘 거리에서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의인 한 사람을 찾을수 없었습니다(1).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사람이 없었던 것처럼(창18)...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이나 소돔과 고모라는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곡해하고 있었습니다(12).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는 운명에 처한 유다백성들입니다(6,14-17).

본문에 예루살렘에 의인 한 사람이 생명인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사람이 생명인 것처럼

나는  주위를 살리는 의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해봅니다.

2014년 1월 30일 목요일

하나님의 슬픔

렘4:19-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예레미야의 슬픈 탄식으로 시작 됩니다.
" 슬프고 아프다 나 마음속이 아프고..(19)

비록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이것은 곧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이 당할 고난은 필연적입니다.
 장차 바벨론의 침략으로 유다가 당할 비참한 광경을 예레미야는 알고 있습니다(20,29)

바벨론을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더욱 아프십니다

마치 아버지가 마지막 수단으로 자녀를 징계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슬픔의 말씀입니다.

오늘도  이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을 보시며
오래참으시며 다 회개하도록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벧후3:9)

2014년 1월 28일 화요일

처음사랑

렘2:1-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의 예레미야의 멧시지는 매우 생생합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은  신혼때의 신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인도를 잘 따랐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이 사막일지라도 그분을 의지하며 따랐습니다(2)

하지만 이들이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으로 들어왔을때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겼다고 했습니다(4-8).

깃딤 섬들에 사는 사람들, 게달에 사는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바꾸지 않았습니다(10-11).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도  고집스럽게  그들의 신을 섬기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신을 따른다는 것입니다(11).

이것은 하나님과 싸우는 일이며(9), 하늘도 놀랄일입니다(12).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계2:4)
모습 그것이 혹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2014년 1월 27일 월요일

부르심에

렘1:1-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1).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태어나기전 그를 선지자로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4-5).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예레미야는 모세와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출4:10)
즉 자신은 말을 잘할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6).

이런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확신을  주시기 위해 두 가지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살구나무 환상입니다(11)
모든 나무들이 겨울잠을 자지만 살구나무는 겨울동안에 깨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깨어서 때가 되면 이루심을 말씀합니다.

다른 하나는 끓는 가마의 환상입니다(13)
이것은 바벨론에 의해 유대백성들에게 임할 환난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할때 그와 그의 멧시지가 거부를 당할것이라고 하셨습니다(19). 그럼에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8).

하나님이 부르심에는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그 부르심에 충성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고전4:2).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제한되는 자유

고전10:234-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교도 신전에서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것을  엄격히 경계하였습니다(14-22).

하지만 본문은 다른 장소에서 먹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25), 혹은 불신자 집에 초청 받았을때 먹는 문제입니다(27).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 가운데는 이교도 신전에서 나온 것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비록 제물이었지만 파는 상품이었기에  먹어도 가하다고 했습니다(25).
음식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다 선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 보시게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창1).
또한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26).

영적인것만 선한 것이고 물질은 무조건 악하다고 하는 것은 성경이 아닌
이교도 사상(영지주의)입니다.

음식은 다 선한것이기에 불신자 집에 초청을 받아 음식을 먹어도  상관이 없습니다(27),
그러나 음식이 제물에 사용되었던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말을 한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합니다(28-29).

본문은 성경에 명시되지 않는 일을  행하는 경우에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31)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일인가?(32-33)
이 두가지 관점에서 행해야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겐 자유가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것인가?
에 따라 나의 자유가 제한 받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히 다른 사람의 종이 되는 자세(고후4:5)

그래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바울을 본받는 오늘의 삶을 살겠습니다(11:1).

2014년 1월 24일 금요일

겸하여

고전10:14-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이교도 신전에 앉아 우상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14).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에 참예하는 사람입니다.
성찬에 참예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을  의미합니다(16-17).
  그리스도의 지체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고전6: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먹는 것이 하나님의 제단에 참여한 것 처럼
이교도 신전에서 우상 제물을 먹는 것 바로 우상제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18).

세상은 온통 우상으로 둘러 쌓여있습니다.
돈, 쾌락, 섹스, 명성... 이런 우상들이 세상과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그리스도이라 하면서  이런 우상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면
이방신전에서 우상제물을 먹는것과 같습니다(20).

주의잔과 귀신의 잔(세상의 우상)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을 겸하여 참여하지는 않습니까?(21)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신앙생활

고전9:19-2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19).
자기 부인의 모습입니다(눅9:23).
종의 모습입니다.
그가 왜 이런 모습을 취합니까? 더 많은 사람들을 주님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19).

사람들을 주님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말의 설득이나 강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모습으로, 희생의 모습으로 됩니다.

주님도 종의 모습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빌2:6-11).

또한 그는 복음 전파의 융통성을 보입니다.
그 융통성은 복음진리를 거스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모습으로(20),
율법이 없는 자(이방인)에게는 율법이 없는 자처럼(21),
약한 자들(진리 지식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22)
행했습니다.

그 목적도 오로지 "얻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즉 사람들을 그리스도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는  신앙생활을 경주자에 비유했습니다.
경주자의 특징은 ' 절제' 입니다(25).

바울은 금욕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절제하는 생활입니다.
절제는 경건 생활의 바탕이 됩니다.

경주자 향방없이 달리지 않는 것 처럼
신앙생활도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므로 단순함입니다.

오직 주님외에 모든 군더더기는 버리는 것입니다.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바울의 본

고전9:1-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1-2), 고린도 교회로 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전도 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왜 그런 권리를 가질수 있습니까?

이에대해 그는 일하는 사람은 정당한 댓가를 받음이 당연하고(7),
구약성경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고(8-9,13),
주님이 친히 명령하신 것(14)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권리를 포기하고(15-18),

자신이 수고해서 자기 생활비뿐 아니라 동역자의 생활비도 감당했습니다(행20:34).

그것은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서이고(12),
약한 고리도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고후11:9).

바울의 생활은 눈코 뜰새 없이 바빴을것입니다.
복음 전도에 전력 투구했을뿐만 아니라(딤후4:6),
생활비까지 벌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이 모습은 물질에 노예가 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해있는 교회에 큰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는 복음이 열매를 맺는 것으로 기뻐하는 자이지(빌1:12)
보수를 바라고 일하는 자가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자유케

고전8: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을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4),
그 음식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10).

그러나 지식이 약한 사람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약한 양심'을 가졌다고 했습니다(7).

이 약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런 음식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 하며 강요하며
그들의 양심을 상하게 한다면,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곧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12,눅17:2).

교회안에 모든 사람들이 같은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신앙양심이 중요하듯이 남의 신앙양심도 중요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그 믿음대로 행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죄가 됩니다(롬14:23).

교회는 서로 덕을 세우고
서로를 자유케 하는 곳입니다.

자유함이 없다면 그것은 성령공동체가 아닐것입니다(고후3:17).

2014년 1월 18일 토요일

희년의 축복

레25:8-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오십 년째 해를 희년이라고 합니다.
희년에는 땅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줍니다.
노예가 된 자는 자유케 됩니다(10).
손상된 모든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습니다.

땅도 경작하지 않고 쉬게 됩니다(11-12).

평화와 자유와 회복의 축복의 해가 희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희년을 주신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시는(사61:1)

모든 죄의 노예로 부터 자유게 하시는 (요8:32-36)
그분의 사역을 상징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긍휼과 자비,의와 평화, 치유의
주님께서 주시는 희년의 축복을 오늘도  모든 이들에게 전합니다!! 아-멘

2014년 1월 17일 금요일

영적인 행복

레23:1-1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육체적으로 쉬는 날이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입니다(3).

주님도 안식일을 우리를 위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막2:27).
바쁘게 살고 힘든 일이 많은 세상에서 안식일의 주인이신(막2:28)
주님안에서 안식함으로 천국의 맛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기를 제정하신 것 같습니다(4-8).
이 절기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선하심을 상기 시키기 위함이요,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은혜가 앞으로도 계속 될것임을 상기 시켜 믿음을 새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초실절(유월절 다음 처음 안식일 다음날)을 만드시고 처음 익은 곡식단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셨습니다(9-14).

하나님께 드리는 것 자체도 영적 즐거움이요, 행복입니다.

이것 역시 이 세상에서 천국의 맛을 누리는 기쁨입니다.

2014년 1월 16일 목요일

바른 관계

레19:1-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두가지 관계의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성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듯이 다른 사람들과도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처럼 거룩해야 합니다(2).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합니다(4).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긍휼과 자비로(9,10,14),
정직함과 의로움으로(11-13,15,16),
선한양심과 진실함으로 (17-18)로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미6:8).

주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내용이라고 하셨습니다(마22:40).

바울도 "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꺼리낌이 없기를 힘쓴다"(행24:16)고
했습니다.

내가 사람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알수 있습니다(요13:35).

2014년 1월 14일 화요일

성결

레11:1-12, 41-4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셨습니다.
노아시대에도 이 개념이 있었습니다(창7:2).

 하나님이 창조하신 짐승들을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함으로 구분하신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깨끗하지 못한 짐승은 위생과 건강에 좋지 못함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구분하신 것은 위생적인면 보다는  성결함을 가르시기 위함입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함'입니다.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분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구별된 사람이기에 구별된 삶을 살도록 가르치십니다.

주님도 우리가 '하나님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으라'(마5:48)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말라"(엡5:3)고 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보시기에 온갖 더러운 것은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

구별된 택한 백성으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벧전2:9)살겠습니다.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번제

레1: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번제의 원뜻은 '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번제는 헌신을 나타내는 제사입니다.

번제의 마지막 순서로 제사장들은  제물을 불사릅니다.
제사장들이 제물을 불사르면 "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9,13,17)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예배는 '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또한 온전한 예배는 번제물을 완전히 불사르듯이 나의 전인격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입니다.

번제는 성막에서 매일 드리려집니다(레6:9)
매일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헌신해야 합니다.

안식일에는 번제를 두 번 드렸습니다(민28:9)
주일에는 더욱 예배에 힘쓰고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합니다.

그래서 한 주간을 세상을 좇는 자가 아닌(요일2:15-16),
하나님께 드린 번제물(헌신자)로  살아갈수 있습니다.


2014년 1월 10일 금요일

단순함과 지혜

마7:13-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남을 판단하지말라고(7:1-2) 말씀하신 주님은
본문에서는 중요한 선택과 지혜로운 분별력을 촉구하셨습니다.

그 선택은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13-14).
좁은 길은 남들이 다가는 넓은 길이 아닙니다.
겉보기에 좋고 화려한 길이 아닙니다.

그길은 길이 좁고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이길은 참되게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눅9:23).

또한 분별은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것입니다(15).
주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지혜로운 어른 같은 분별력 양면성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재주가 그럴싸한 사람,
카리스마가 있어서 사람들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
사람들이 환호하는 사람
하지만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할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20).

사도요한도 "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4:1)
고 했습니다.

갈수록 더욱 분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날마다 단순한 믿음과 영적지혜를 구해야 할것 같습니다.



2014년 1월 9일 목요일

판단

마7: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 를  가르치십니다.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4).

물론 건전한 비판을 금하시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금하시는 것은 자기가 재판장이 되어 남을 정죄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만이 계십니다(약4:12).
즉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 정죄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일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가르치심을 본받아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롬12:10)

 남을 정죄하는 자가 아니라
오늘도 주님의 제자로 살겠습니다(요13:35).



2014년 1월 8일 수요일

걱정

마6:25-3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여러가지 일로 걱정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중에도 비중을 많이 차지 하는 것이 경제 문제일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주님의 말씀을 읽을때마다 큰 위안을 받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상기시키십니다(32).
그분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시고(6:11),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아시는 분임을 강조하셨습니다(32).

물론 노동과 땀이 있어야 하지만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채우시되  내가 생각하는 모든것에 더욱 넘치게 하시고(엡3:30),
풍성하게 하시는 분입니다(빌4:19).

본문을 묵상하다가 앗시스의 프란시스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살았지만 아이처럼 단순하게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평생 자유로움과 기쁨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이렇게 (단순함과 자유함과 기쁨) 살아야 함을
주님이  본문에서 가르치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2014년 1월 7일 화요일

돈과 하나님

마6:16-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바른신앙 생활에 대해 계속해서 도전하고 계십니다.
'은밀한 구제' ' 은밀한 기도' 또한 본문의 ' 은밀한 금식'(16-18)을 가르치십니다.

금식의 목적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그 마음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기 위함입니다.

구제, 기도, 금식,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진실함'입니다.

또한 주님은  '탐욕'을 경계하셨습니다.
이것을 마몬(Mammon)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과거나 현대나 시대를 초월해서 마몬의 힘은 그 어떤것 보다 강력합니다.
물질주의, 돈,,, 강렬한 욕망이요, 유혹입니다.

그 어떤곳에도 돈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돈으로 부터 온갖 죄악이 시작이 됩니다(딤전6:10).

주님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24).

돈과 하나님
나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요?(21)

2014년 1월 6일 월요일

주님의 가르침

마6:1-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구제(2,3)와 기도할때(5-15)에 어떻게 해야함을 가르치십니다.
 구제와 경건생활에서 받는 강렬한 유혹은 " 사람에게 보일려고" 하는 유혹입니다.

사람에게 보일려고 하는 유혹은 '사람에게 영광을 받고자 하는 마음'입니다(2).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셨습니다.바른 기도는 그 시작이  하나님과 관련된 기도를  하고 다음이 우리와 관련해서 기도해야함을 말씀하셨습니다(9-13).

또한 기도를 가르치신 후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14-15).

왜입니까?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기전 먼저 나의 죄를 용서 받아야 그 기도가 상달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남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남에게 악감을 품고, 미움을 품으면서 나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는 자를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15).

본문의 주님의 가르침을 볼 때
나는 언제나 주님의 가르치심과 거꾸러 행동하고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2014년 1월 4일 토요일

계명

마5:33-4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유대의 랍비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랍비들은 하나님께 맹세하는 것도 지켜야 하지만, 그러나 맹세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행한대로 덜도 말고 더더 말고 당한대로 복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같은 종교, 같은 유대인만이 이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반면에 주님은 헛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33-37)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하셨습니댜(39-44).
그렇다고 정당 방어를 금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정당한 방어를 위해 하나님은 정부를 세우셨고, 공권력을 세우셨습니다(롬13:1).
이웃을 사랑하되 그 한계를 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43-48)

그리스도인이 산상 설교대로 산다면 세상은 변화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산상설교대로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주님이 우리가 지키지 못할 것을 가르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산상 설교는 내 힘과 내 의지로 지킬수 없습니다.

성령을 따라 지킬수 있습니다(갈5:16).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을 입증해줍니다(요14:21).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절제

마5:21-3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살인과 간음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살인과 간음을 경고했습니다(출20:13-14).

살인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남의 생명을 강제로 앗아 가는 흉악한 죄악입니다.
간음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몸에 대해 죄를 범하는 행동입니다(고전3:16-17)

이 두죄는  개인적인 사람과의 관계, 신성한 가정, 사회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주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분노하는 것도 살인으로 규정하셨습니다(22).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을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28).

예수님이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이 죄들은  살아가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바울의 고백처럼 "곤고한 사람" 처럼(롬7:24)
느껴집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나를 통제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인 절제(Self- control)입니다(갈5:23).

2014년 1월 1일 수요일

새해의 복

마5: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 복' 이라는 말을 싫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 행복' 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 행복'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부' 와 '명성' 으로 부터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본문의 주님의 말씀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주님은 " 심령의 가난함","애통함" " 온유함"이 참 복임을 말씀하십니다(3-5).

 세상사람들은 ' 자기중심' '명성' '야망' 등을 좇아  살지만
주님은 이와 정반대의 삶을 살라고 가르치십니다(6-9).

주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 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은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가 주는 행복과 세상이 주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요18:36).

자신을 비우신 주님의 겸손과(빌2:5),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요15:20)
참된 행복임을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빌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