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교회2천년 역사는 선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 유대인 전도,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한 이방인 전도, 특히 바울은 선교사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바울의 삶과 그의 전생애는 선교를 위해 뿌려진 하나의 제물이었다. 그러면 그가 왜 그렇게 미친 사람 처럼 전도에 열중을 하였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였기에 그러하다.
믿는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신 하나님의 택정의 비밀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격하였고,
자신을 구원하신 이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는 한 영혼이라도 구원 할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그후 바울의 뒤를 이어 수많은 선교사들이 교회 역사를 장식했다. 그중에도
아도니람 저드슨, 윌리엄캐리, 존 패튼, 헨리 마틴, 알렉산더 더프 같은 인물들이다.
필자는 오늘날 교회안에서도 이런 선교사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도한다.그럴려면 이런 선교의 동기를 제공해준 강력한 구원의 교리가 오늘 교회 강단에서 이 복음이 흘러 넘쳐야 할것이다.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반응
사람은 좋은일이나 좋지 않는일에 무엇이든지 반응을 보이길 마련이다. 좋은일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물론 좋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좋지 않는일에 반응은 여러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낙담, 우울, 분노… 이런것들은 우리의 몸과도 상관관계에 있다. 그래서 건강을 해치고 무엇보다 신앙인으로 더욱 치명적인 나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준다.
그래서 반응 조절을 어떻게 하는냐? 이것이 관건이다. 좋은 일이 있을때나 좋지 않는일이 있을 때 그 현상만 보고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일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반응은 어떤 현상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반응의 뿌리는 하나님 한분이시다.
그러면 어떤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요란하게 기뻐 하거나 아니면 낙심하거나 분노 하는 일이 없게 될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나의 삶을 인도 하시는 주관자 라는 사실이기에 그러하다. 특히 고난을 당하는 형제들은 현상에 따라 반응을 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더 근원적인 상태 즉 하나님속으로 들어가서 나의 문제를 바라 본다면 사도 바울처럼 모든 상황속에서 감사 하는 신앙이 될것이다.
“ 항상 기뻐 하라” (살전5:16)
2007년 8월 7일 화요일
경건의 유익(딤전4:8)
요즈음 사람들은 소위 웰빙 웰빙을 외치면서 살을 뺀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하긴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는가?
식사 조절, 운동… 그리고 어떤 음식을 먹는가? 여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육체의 연습이다.
성경에 보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라고 했다. 이런 것들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리 건강 관리를 잘 한다 할지라도 사람의 몸은 세월과 함께 점점 노쇠해지고, 약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다.
경건이란 하나님에 대한 태도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의 자세를 말한다.
인간의 육체는 점점 노쇠해 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면 갈수록 이것이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이것은 영원한 세계에 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말한다.
현세에서 하나님을 잘 경외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삶을 복되게 할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큰 상급을 주신다는 약속은 성경 여러곳에서 약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육체 보다는 영혼 중심, 현세중심이 아니라 내세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것이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