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분별

민14:26-4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열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는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들은 두려움과 원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일로 인해 이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40년은 정탐한 날 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친 날수 입니다(13:15,40).

불신앙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으로 죽음을 당했습니다(36-37).

이런 아픔의 시간이 지난 후 비로서 이들은  가나안 정복에 나서겠다고  결정을 합니다(40).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41).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42).

그러나 이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올라가 대패하고 맙니다(45).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시간과 늘 정반대로 행했습니다.

이들이 전쟁하러 올라간 사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진영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44)
하나님의 시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령께서 오늘 ,'나의 마음의 눈을 열어서'(엡1:18)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며 순종케 하기를 기도합니다.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누구의 말에

민13:1-3,17-3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끔 했습니다(1-2).
모세는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내어 하나 하나 조사한 후 보고하게끔 했습니다(17-20).

이들은 돌아올때  에스골 골짜게에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고 석류와 무화과를 따서 왔습니다(23)

이들은 와! 이곳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구나 하며 탄복했습니다(27).
그러나 그곳은 거인들이 살고 있었고(28),
이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 처럼 보였습니다(33).

갈렙(30)과 여호수아를 제외한(수14:6) 다른 사람들은 그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와 이들 사이에 논쟁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여러 소리들이 섞여서 들립니다.
하나님편에 선자들과(갈렙과 여호수아) 불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소리가 함께 들립니다.

나는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두가지 사건

민11:16-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성령이 70인장로들에게 임했고(25)
 심지어는   자기 장막에 있던 엘닷과 메닷에게도 임해
예언을 했습니다(26).

큰 그림으로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의 축복의 상징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만나대신 고기를 냄새가 싫어하도록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20).

그것은 메추라기였습니다(31).

그러나 그 고기에 탐심을 부린 이들에게- 하나님의 재앙이 임했습니다(33).
이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 두이야기에는 축복과 심판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욥도 "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므로 화도 받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욥2:10).

삶이 형통할때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늘 겸손하며
넘어질까 조심해야합니다(고전10:12)

2014년 4월 23일 수요일

가장 안전한 길

민9:15-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어떻게 통과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 하나님과 함께' 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보여주는 구름기둥(낮)과 불기둥(밤)이 이들을 인도했습니다(15-16).

구름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백성들도 진행했고.
멈추면 백성들도 머물렀습니다.

얼마동안 머물지 알수 없었습니다, 하루가 될수 있고 아니면 한 달, 일년이 될수 있습니다(22).

하나님은 이들에게 언제 떠날것인지 얼마동안 머물것인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에 따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우리의 삶도 그러합니다
그분이 가라면 가고
머물라 하면 머물고..
오직 순종으로 인도함을 받을 뿐입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2014년 4월 21일 월요일

동일한 요구

민3: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모세와 아론의 가계를 기록한 말씀입니다(1).
모세와 아론은 레위지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출2)

레위지파에 속한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성막을 돌보는 일을 했고(7),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도록 했습니다((10).

또한 평소에  이일을 감당하기 위한 삶이 요구 되었습니다(레10:8-11).

모든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도(벧전2:9)

오늘 우리에게 동일한 요구를 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2014년 4월 18일 금요일

주님의 은혜

마27:45-5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장면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죽음은 죄의 결과로 온 것이고(롬6:23),
죽음후에도 영혼은 의식하며 존재합니다(눅16).

그러나 육체적 죽음보다 더 무서운것은 영적 죽음입니다.
영적 죽음은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육체적 죽음을 당하셨습니다(50).
그리고 성부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신 것 같은 영적 죽음도 경험하셨습니다(46).

십자가에서의 육체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수 없지만,세상의 죄를 짊어지신영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과 비할바가 못됩니다(사53:4-5).

주님은 이 고통중에 십자가상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으셨습니다(시22:24).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진정한 강자

마27:11-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빌라도 앞에서 선 주님은 총독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거짓으로 자신을 고소하는 무리들에게 침묵으로 일관 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빌라도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14).

빌라도의 부인까지 나서서 주님의 무죄를 주장하고 주님을 석방하라고 남편을 설득하였지만(19), 빌라도는 무리가 두려워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결정을 합니다(24-26).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사람들의 큰 함성앞에 침묵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주님의 모습과

권력자이면서도 " 내가 예수를 어떻게 하랴"(22)고 묻는 빌라도의 연약함이 대조를 이룹니다.

고난주간에 주님의 침묵을 배웁니다.

참믿음은 말로 떠는 자가 아니라
침묵하며  행함으로 그믿음을 표현하는 것이고
 행함은 곧 믿음에서 나옴을 주님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됩니다.

주님과 빌리도의 모습
누가 진정한 강자의 모습입니까?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돕는 은혜

마26:69-7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이 그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는
 이름과는  달리 믿음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예언 하신대로(34)
주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70,72,74)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며 주님을 부인하여(74)
위험을 피할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닭이 울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 통곡을 했습니다(75)..

어떤때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사랑한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어떤때는 베드로 처럼  말과 행동이 다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므로  매일 '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히4:16)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2014년 4월 11일 금요일

고난의 비밀

마26:47-5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3년동안 훈련 시키고 동고 동락 했던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이었습니다.

유다는  천연덕 스럽게  예수님께 다가가 입을 맞추었습니다(49).
주님은 자신에게 입맞추는 배신자를 향하여 ' 친구'라고 불렀습니다(50).

곧 이어 돌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제자중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자
주님은 도리어 제자의 행동을 꾸짖었습니다(51-52).

원수를 사랑하고 가르치신대로(마5:44)
마지막 순간에도 행함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자기 중심, 이기적인 삶에 찌든 우리의 삶에 다시 한 번 도전을 주십니다.

삶에 고난이 올 때 우리는 고난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어떤때는 고난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지만,
어떤때는 그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고난을 당했던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비밀'을 알기를 원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빌3:10).

2014년 4월 9일 수요일

오늘도

마26:31-3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할 것이라고 예언 하셨습니다(31).
주님의 말을 듣던 베드로는 다른 이들이 주님을 버릴 지라도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장담했습니다(33).

베드로가 왜 이렇게 장담했을까요?
일종의 영웅심리일까요?
아니면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에서 나온 말인가요?

주님은 베드로가  특정한 시간(밤)에,
특정한 소리(닭 울기 전)가 울리기 전,
특정한 숫자(3번) 로 주님을 부인 할 것임을 구체적으로 예언하셨습니다(34).

하지만 본문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의 도우심을 구하기 보다는
아직도 장담하고 있습니다(35).

복음서는 초대 교회 위대한 지도였던 베드로의 연약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성도들도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고전10:12).

나도  언제든지 말과 행동으로 주님을 부인 할 수 있기에

오늘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2014년 4월 7일 월요일

두 사람중

마26: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두명의 정반대의 사람이 나옵니다.
귀한 향유를 주님께 부은 한 여인입니다(7).
그녀는 이행위로 비난을 받았습니다(8-9).

하지만 주님은 이 여인의 행동은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고(12),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녀의  행동도 기억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3).

주님의 제자가 아니었지만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주님께 부었던 이 여인과
주님을 3년동안 따르면서 훈련받았지만  은30에 주님을 판 가룟 유다(14-15)
가 서로 대비됩니다.

두 사람중에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나는 매일 참된 예배자로서 주님을 섬깁니까?
아니면 나의 필요에 의해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2014년 4월 4일 금요일

잠17:1-2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말은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도구입니다.
상처를 줄수 있고 남을 넘어뜨릴수 있습니다(4,7,9,10).
말을 통해 싸우게 되고, 남을 속이고, 화를 당하기도 합니다(14,19,20).

반면에 주님의 말씀은 항상 은혜스러웠습니다(눅4:22).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에서도 '용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눅23:34).
그분의 생명의 말씀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 왔습니다(롬1:16).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진다고 했습니다(28).
그러므로 말을 적게 하고 선을 행하는데 힘을 써야합니다(갈6:10).

주님! 오늘 저의 입술을 주장하사
말을 적게 하고, 말을 하되  그 말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소망과 위로와 남을 치유하는 말을 하게 하소서! 아-멘

2014년 4월 2일 수요일

마음의 즐거움

잠15:1-3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건강과 행복을 다른데서 찾지 마십시오.
건강과 행복은 마음의 즐거움에 있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13).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지만(고후7:10),
마음이 즐거우면 항상 잔치하는 삶이 됩니다(15).
또한 마음이 즐거우면 그 인격도 품위가 있고 선량해집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기쁨의 기름으로 슬픔을 대신하게 하고
찬송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 하게 하신 분을 소개 했습니다(사61:3)

이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하고
기쁘게 해줍니다(고후4:4)

오늘도 주님께서 이 충만한 기쁨속에  살게하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