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0일 월요일

오늘 나의 삶이

약5:13-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야고보서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고난중에는 기도를 즐거움중에는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13).
고난중에는 기도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일이 잘 되어 즐거울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감사와 찬송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다가 응답이 되면 감사를 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당연한 것을 권면했는지 모릅니다.
고난중에는 기도를 즐거움중에는 찬송을!

또한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14).
병든 사람이 의술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의술을 초월한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그러나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목회자의 의무입니다(14).

기도를 하되 믿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15, 17-18).
기도는 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해야 기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이 기도를 그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교회의 할일은 진리에서 떠난 자들을 진리안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19-20).
교회가 무관심해서 진리에서 떠나 이단에 빠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서로 서로 믿음을 견코케 해주고 진리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나의 삶이 남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 격려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2013년 9월 28일 토요일

인내

약5:7-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야고보는 '인내'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농부의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농부는 땀흘려 농사를 지은 후 자연의 섭리를 바라고 열매를 기다립니다(7).

당시 성도들은 주님이 왜 빨리 재림하시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입니다.

밧모섬의 사도요한도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재림은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에 오십니다.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8).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9)
원망과 불평은 인내의 결핍에서 옵니다.

선지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많은 박해와 고독속에 살았지만 인내했습니다(10).

욥은 고난 중에  그의 인내를 하나님에게 시험(Test) 받았습니다.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으로 부터 상급을 받았습니다(11).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상급을 주십니다.

야고보는 맹세에 대해 가르쳐 주셨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마5:34-37)
본문에서도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12).

쉽게 말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과장된 말, 자랑하는 말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우리의 약함을 알기에
맞는 것은 '맞다' 아닌것은 '아니다'라고만 하면 됩니다(12).
쓸데없는 말, 허탄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어생활부터 신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신실하시듯이....

2013년 9월 27일 금요일

부자들에게

약5: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야고보는 '불의한 부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부자로 살면서 신앙을 잘 지키가 힘들수 있습니다.

주님도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막10:23).

하지만 본문은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가 잘못되었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이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들은 일꾼들에게 임금을 잘라먹으면서  부를 축적했습니다(4).
고용주가 직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악한 일입니다

그들의 삯이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십니다.
예레미야도 품삯을 주지 않는 부자를 향해 경고했습니다.
".. 자기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렘22:13)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들의 편이십니다(렘22:3).

이들은 부를 선한 일에 사용하지 않고 사치하고 방종했습니다(5)
이들은 재물의 힘으로 힘없은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사용했습니다(6).

물론 모든 부자가 불의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쉽게 교만할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믿고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2013년 9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의 계획

약4:13-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야고보는 당시 이곳 저곳 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장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3).
내일 일을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14).

예수님도 누가복음12장에서 어떤 부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그 해 수입이 많아져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지을려고 계획했습니다.
이젠 있을만큼 있으니 남은 여생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그의 생명을 자신이 주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랑은 허탄것입니다(16)

겸손함으로 주님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입니(15).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계획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다른 계획을 가지시고 나를 이끄십니다.

그분의 계획은 완전하십니다(15).

2013년 9월 25일 수요일

겸손으로..

약4:7-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7).
마귀를 대적하지 않으면 유혹의 선을 쉽게 넘어갈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차던지 더웁던지 하라고 하셨습니다(계3:15).
뭐든지 적당하게(?) 사는 사람은 늘 유혹앞에 맥을 못춥니다.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마귀를 대적할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마귀를 대적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했습니다(8)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10).
주님처럼 무엇이든 하나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7).
죄에 대해 애통해야 합니다(9).

세상이 주는 죄의 오염으로 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합니다(8).

이런 변화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교만하지 않고 남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11).

모든 판단은 유일한 판단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고

내가 할 일은 겸손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12).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겸손한 자에게

약4: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든 싸움과 다툼의 근원은 정욕이라고 말씀합니다(1).
정욕은 자신만을 즐겁게 해달라는 죄악된 본성입니다.

정욕은 모든 시기와 질투를 가져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정욕에서 왔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일려고 했던 이유도 정욕에서 왔습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정욕적일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온갖 범죄가 인간의 정욕에 기초합니다(2).

정욕은 모든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너뜨립니다(3).

정욕적인 사람은 세상에 끌릴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과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세상과 가까울수록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4).

정욕과 교만은 서로 형제간입니다.
둘 다 자신에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모든 정욕과 교만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앞에서 겸손하셨듯이.
주님이 남을 위해 희생하신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듯이

겸손으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 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6).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하나님의 지혜

약3:13-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지혜는 두 가지가 있음을 본문은 말씀합니다.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 있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있습니다.

 지혜는 그의 생각과 행동속에 드러납니다(13).
무엇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마음속에 이기심과 독한 시기심이  있다면 다툼으로 나타납니다(15)

다툼과 혼란은 모든 악한 일을 가져오고(16).
모든 관계를 손상 시킵니다. 깊은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지혜라고 했습니다.

다른 지혜는 하나님에게 오는 참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는 이기심이 아닌 다른 사람 중심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그 지혜의 열매가 나타납니다(17).
한마디로 모든 선함이요, 치유입니다.

그러나 이 선한 지혜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행하는 방법은 화평으로 하는 것입니다(18)
선한 일이라고 독선적으로 하면 금방 마귀의 지혜로 바뀔수 있습니다.
 화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지혜로 살고싶습니다

2013년 9월 21일 토요일

말에 대해

약3: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야고보는 '말'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말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대부분에 '말'때문입니다.
또한  어떤이에게 말로 상처를 준 것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잘 아물지 않습니다.

말실수를 한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잘 기억하지 못해도  상처를 받은 사람은 기억이 선명합니다.

말을 상징하는 혀는  매우 작은 지체이지만(5), 통제되지 않는 혀의 파괴력은 엄청납니다(6).

야고보는 잘못된 언어에 대해 첫째는 자랑하는 것(5), 다른 하나는 저주하는 것(9)을 들었습니다. 이 두가지는 쉽게 범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찬송이 나오고 저주도 함께 나올수 있습니다(9-12).
아침에는 찬송을 불러도 얼마후에는  밥상앞에서 형제나 자매에 대해 험담을 할수 있습니다.

입은 간사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간사한 입까지 거듭남을 말합니다.

2013년 9월 20일 금요일

행함으로

약2:14-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참된  믿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좋은 의향을 가지고 이론상으로 그렇다고 동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 참 안되었다, 긍휼한 마음만 가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줄 믿습니다.
하고 말만 한다면 안됩니다(15-16).

행동이 없고, 생각만 하고 말만 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17,26).

사탄도 하나님이 계심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습니다(19).

야고보는 이렇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하면서. 두 사람의 예를듭니다.
아브라함과 라합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아닌 이삭을 드림으로 그의 믿음이 증명되었습니다(24).

죄가운데 살던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심판이 여리고 임할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릎쓰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 주었습니다. 그녀는 믿음대로 행하였습니다(25).

말 말 말 말 이 아닌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하루가 되고 싶습니다.

2013년 9월 19일 목요일

어떤 마음으로..

약2: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1).

세상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높은 자와 낮은 자를 차별합니다.
부자는 우대하고 가난한 자는 업신 여김을 받을수 있습니다

물질주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사는 세상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에 이런 현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2-4).

부자는 세상에서도 우대 받고 교회와서도  우대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업신여김을 받고 교회와서도 업신 여김을 받았습니다(6).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인간이 타락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그 자체에 존귀함이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로 보지 않고, 가진 소유나  위치를 보아 가치를 판단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거창하게 나갈것이 없습니다.

사람을 대할때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 에서 출발합니다(8).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참된 경건

약1:19-2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19).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일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속히 하고 듣는것은 천천히 합니다. 화도 속히 냅니다.
화가 나면 상스러운 말까지 합니다.

자신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가  그 사람의 경건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불안정한 마음, 분노가 있는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수 없습니다(21).

또한 말씀을 받는 것은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닌 실천함을 말합니다(22).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성경을 통독합니다. 암송합니다. 묵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고 실천이 없다면 말쟁이와 다를바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 입니다.(22).

참된 경건은 말로  떠드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입니다. 그 진실은 조용한 행동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 세상을 본 받지 않는 것입니다(27).

말이 아닌 진실함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참된 경건입니다.

2013년 9월 17일 화요일

하나님은 ...

약1:12-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삶의  모든 부분을 주관하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책임입니까? 내가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의 책임입니까?

야고보에는 ' 아니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고 아무도 시험(유혹)하지 않으십니다(13).

우리는 쉽게 죄에 끌릴 수 있는 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죄는 욕심에서 비롯됩니다(15).

죄를 짓는 사람은 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점점 자라 나의 생각을 지배하면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14-15).

누구나 유혹의 문앞에 설 수 있지만 그 문을 단호히 닫는 것은 나에게 있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리켜 빛들이 아버지이시라고 했습니다(17).

모든 선함과 모든 아름다움과 은사와 은혜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17).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18).

오늘도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의 하나님과 동행하면
어두움과 유혹의 세력이 왔다가도 힘없이 도망갈 것입니다.

2013년 9월 16일 월요일

하나님만이..

약1: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초대교회는 여러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안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고 밖으로는 로마 정부의 감시하에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안팎으로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자체가 시련이 보장된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이런 시련을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2).

시련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되고 인내를 통해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3-4).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성숙한 믿음입니다.성숙한 믿음은 시련을 통해 만들어져 갑니다.

야고보는 시련을 통한 성숙한 믿음과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자녀된 우리 역시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래서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5).

하나님께 구하는 자의 자세는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6).
믿음이 없이 구하는 것은 응답이 없습니다(7).
두 마음을 품은 자와 같습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모든 일에 불안정합니다(8).

세상에 모든 것은 항상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한 사람이 되고 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9-11).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잘되는 것은  내일 힘들 수 있습니다. 오늘 힘드는  것은 내일 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잘되거나 잘되지 않거나에 별로 동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주관하십니다.

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악을 선으로

삼상24:1-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을 좇던 사울은 용변을 보러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숨어 있었습니다(3).

사울에게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못한 채 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죽일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고 다윗을 설득했습니다(4).

사울을 죽임은 정처없이 도망다니는 자신의 처지를 끝낼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끝을 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겉옷 자락만을 살짝 베었습니다(4).

그것조차도 마음에 찔려했습니다(5).

상황이 어떻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자신에 다짐했고 부하들을 설득했습니다(6-7).

다윗은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도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이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이 행동은 사울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19).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은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은 자유함과 평강을 주셨을 것입니다.
진짜 승자는 왕이 아닌 도망자 다윗이었습니다

원수의 입(사울)에서 조차 " 하나님이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다"는 축복의 말이 나왔습니다(19).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악을 선으로 갚는 자에게 선으로 갚으시고 그 악을 대신 갚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하나님의 인도

삼상22:1-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은 계속 도망을 다녔습니다. 이번에는 아둘람 굴로 피신했습니다.
이때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 빚진 사람, 마음에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 다윗을 따랐습니다(2).

어려움이 처해 있으면 나만 이런일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붙혀주셨고 서로 위안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들을 용사로 훈련 시켰고, 강한 군대를  이루었지만, 사울에게 절대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피신을 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늘 하나님의 인도를 구했습니다(3).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 모압왕에게 부탁을해 모압땅으로 피신을 시켰습니다(4)

이유없이 자신을 죽일려고 하는 사울!
하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사울을 존중하는 다윗을  하나님은 매순간 마다 인도하셨습니다(5).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가족들이 몰살을 당했을때(18-19), 그들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였습니다(22).

사울의 리더십은 점점 망가지고 있고, 다윗의 리더십은 점점 세워져갑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씩 움직였기에 다윗은 사울에게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필요한 것은

삼상21:1-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은 그를 따르는 몇몇 사람들과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놉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온 이유를 아히멜렉에게 거짓으로 둘러댔습니다(2).

그는 굶주렸고, 고달팠습니다.

허기를 채울려고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요구했습니다(3).

제사장에게는 보통의 떡은 없고 그가 줄수 있는 것은 거룩한 떡(진설병)만 뿐이었습니다(6).
진설병은 제사장만이 먹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히멜렉은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자를 돕기 위해 그 룰(rule)을 깨트렸습니다. 결국 그는 이 일을 통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합니다(삼상22).

다윗은 블레셋으로 도망을 칩니다.
블레셋 왕앞에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10-11),

 미친 사람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렸습니다(13).

그는 미친 사람 연기를 하면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비참한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기에 중심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때 그는 시편 56편을 지었다고 합니다.
"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시56: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그 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도망자

삼상20:18-4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사울의 마음을 알아 다윗에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요나단은  계획을 세웠습니다(18-22).

다윗은 들에 숨어서 기다렸습니다.

초하루 축제일에 요나단은 왕의 식탁에 참석하지 않은 다윗에 대한 사울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첫 째날에는 아무  말이 없던 사울은 두 번째 날에도 다윗이 참석하지 않자 다윗의 동정을 요나단에게 물었습니다(27).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마음은 명확해졌습니다(30-31). 사울은 다윗을 변호하는 요나단 까지 죽일려고 했습니다(33).

다윗은 본격적으로 피신생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때 부터 다윗의 연단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바로 왕의 자리를 주지 않고 많은 고난을 겪게 하신 후 주셨습니다.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그의 신앙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었습니다.

다시는 만날수 없을지 모르는 다윗과 요나단은 헤어지면서 서로 맹세를 했습니다(42).

후에 다윗은 친구와 한 맹세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의리를 지켜습니다.
그가 왕이 된 후 요나단의 장애를 가진 아들 므비보셋을 극진히 보살폈습니다(삼하9).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짐은 슬픈일입니다.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는 것은 고난의 삶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위해 그 다음단계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2013년 9월 10일 화요일

친구

삼상20: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질투심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반면에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진실한 친구였습니다(18:3). 하지만 요나단은 큰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친구를 죽일려고 하고, 자신은 왕자의 신분이고, 친구는 큰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요나단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3). 다윗은 사울이 자신은 계속 죽이고 싶어하는 지를 알고 싶었습니다(7).

요나단은 사울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다윗에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12-13).

요나단과 다윗의 진실한 우정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이 두사람의 우정은 나의 죄를 위해 아무 조건없이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나의 주님이시요, 진실한 친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해주고 있습니다(막10:45).

이 세상에서 요나단과 다윗처럼 신앙에서 진실한 우정을 나눌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나그네길을 가는 여정에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2013년 9월 9일 월요일

하나님의 손길

삼상19:1-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시기심은 더욱 강도를 더해갔습니다. 사울은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 앞에서 다윗을 죽이라고 공포했습니다(1)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충직한 부하요, 아들과 같은 사위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하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1,10,15).

하지만 요나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1). 그는 다윗을 도왔고, 변호했고 그의 생명을 보호 할려고 힘을 썼습니다.(2,4-7).

다윗의 아내 미갈 역시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다윗을 보호했습니다(12).

선지자 사무엘은 다윗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었습니다(18)

사람들을 움직여서 다윗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당시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행복한 도망자' 였습니다.

반면에 사울의 삶은 비폐(疲弊)했습니다. 그는 늘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질투와 미움만으로 가득찼습니다. 악한 영이 임해 그를 더욱 괴롭혔습니다(9).

그래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6).마귀의 속성은 이중성입니다.
광명한 천사의 모습이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보이기도합니다.

사울이 그의 권력을 총동원해서 다윗을 죽일려고 했어도 하나님이 선택한 다윗을 해할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분의 자녀된 우리의 삶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믿습니다.

2013년 9월 8일 일요일

공의로서

시82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와 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한마디로 공의로운 통치입니다.

정부와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 통치자들을 가리켜 " 신들"(1,6), " 지존자의 아들들"(6) 이라고 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이들에게 권위를 주신 것은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들이  악인의 낯을 보아서(2) 봐주기  재판을 한다면  하나님이 용납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항상 사회적 약자편임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에게도 그것을 원하십니다(3).

정부가 할일은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올바른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을 두려워하며 공권력을 제대로 행하지 않는 나라,
도리어 그들의 눈치를 보거나 지지를 받기를 원한다면  나라가 바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공의로운 통치, 올바른 법집행, 하나님이 정부를 세우신 목적에 따라 바른 통치가 임할때  하나님은 그 나라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재판장이십니다.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8).

대한민국이 공의로 통치되고,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세워져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3년 9월 6일 금요일

이름없이 빛없이..

롬16: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16절까지 29명의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들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요, 영적지도자였습니다. 큰 능력을 받은 신령한 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신실한 신앙의 동지들을 주셨습니다. 그의 사역을 돕는 동역자들을 주셨습니다.

좋은 신앙의 동역자들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충성스럽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면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들을 붙혀주십니다.

여러사람들 가운데 특히 바울에게 인상깊은 사람들이 몇몇이 있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가(아굴라의 아내)와 아굴라를 언급하면서 그들은 바울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3-4).

또한 '사랑하는 에베네도'(5), '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8), '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12). 바울은 이들이 행한 일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자신을 친 자식처럼 대해준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루퍼의 어머니'입니다. 루퍼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13). 루퍼의 어머니는 바울에게 많은 용기와 위안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복음 사역을 바울 혼자 감당하게 하지 않으시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그를 돕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그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들의 이름들이 성경책에 기록된 것처럼,
오늘도 주안에서 이름없이 빛없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름들이
주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2013년 9월 5일 목요일

오늘도...

롬15:23-3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린도에 머물고 있던 바울은 로마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스페인이었습니다(23).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의 성도들과 영적인 교제로  신령한 기쁨을 나누기를 원했습니다(24).

홀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시는 기쁨이 있지만  성도가 함께 모여 기도하며 말씀안에서 교제할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위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주셨습니다.

글라디오 황제 때에 임한 흉년으로 인해 유대지방에 기근이 심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경제적인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헌금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25).

바울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으로 빚진자라고 했습니다(26-27).복음이 유대로 부터 전파 되었기에 이들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27).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빚진자입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 나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해주는 사람  그들에게 신령한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들은 기쁨으로 헌금을 했습니다(27).

바울은 자신을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의 핍박 자들로 부터 보호해달라는 것과 무사히 구제 헌금을 전달하고 로마 교회에 갈수 있도록..(30-32).

자신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소명을 잘 수행할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기도를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오늘도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평강으로 우리 심령을 지켜 주실줄 믿습니다(33).

2013년 9월 4일 수요일

나는 바울처럼?

롬15:14-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소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15-16). 자신의 소명은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복음의 제사장' 이었습니다(16).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 시키기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소명에 따라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17-20).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18).

그 역사는  복음의 말씀과 말씀을 통해 나타난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18).
자신의 능력과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님의 감화를 사모했습니다.

복음을 듣는자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감화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약함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이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을 사모했습니다.
믿음은 인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역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져 교회가 세워진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20).

사도 바울이 보여준 본은
오늘  교회들이 따라야 할 본입니다.

나는 바울처럼 사역을 하고 있습니까?

2013년 9월 3일 화요일

그리스도인의 삶

롬15:7-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받으셨습니까?(7)
나의 행위가 완전해서 받으신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심판 받아야 할 마땅한 죄인이지만 믿음을 통해 그분의 은혜로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납하신 것 처럼 우리도 서로 포용하라고 하십니다(7).

주님은 십자가로 모든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8-9).

진리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화평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참된 신앙에서 모든 기쁨과 영적 평안이 나옵니다(13).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일에 평안을 느낍니다.
늘 하나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심을 영적인 감각으로 느낍니다.

무슨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다는 영적 예지(豫知)를 갖기에
 소망이 넘칩니다(13)

오늘도 소망의 하나님께서 성령안에서 모든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넘치는 하루가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2013년 9월 2일 월요일

덕을 세우는 것

롬15: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교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실제적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이해하고 포용하라고 했습니다(1).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1), 이웃(형제, 자매)을 기쁘게 하는 자 입니다(2).그 본을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습니다(3).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고 했습니다(3,5).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위해 사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사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주님을 본 받으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과 인내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화평을 이루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겸손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겸손한것과 인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덕을 세울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인내와 용기를 주십니다(5).

선을 행할수 있는 영력을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영적인 힘을 주십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도의 문이 더욱 활짝 열릴것입니다(6).

2013년 9월 1일 일요일

하나님의 음성

시81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유월절에 애독(愛讀)되던 말씀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1-4). 하나님을 찬송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찬송하는 자의 심령이 힘을 얻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 하게끔 했습니다(6-10).

입을 크게 열라고 했습니다(10).
입을 크게 열어야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듯이  믿음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크게 임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11-12).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의 완악한 대로 버려 두셨습니다(12).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징벌하실때도 있지만  그냥 버려두시기도 합니다. 마음이 완악한 사람이 변화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그대로 버려두시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부르십니다(13-16).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그들을 만족케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입니다.

나의 모습에는 옛 이스라엘의 모습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보다는 내 생각대로 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다른것을 의지하고 다른데서 위안을 찾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매일 나에게 말씀하시는데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내가 너무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아니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