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31일 목요일

자족한 마음

딤전6:3-1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이단 사상을 가리치는 거짓 선생들의 실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라는 가면을 쓰면서 혼란에 빠트립니다(1:3-4;4:1-2;4).
영적으로 교만합니다.
 자신들만이 성경을 많이 알고,자신들의 가르침만이 구원을 준다고 유혹합니다.

특히  논쟁하기를 좋아합니다(4).
또한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여깁니다(5).
 결국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됩니다.

이단교리를 가르치는 자들도 결국 돈이고
그리스도인들도 돈때문에 유혹을 받기에

바울은  물질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돈은 하나님이 필요의 수단으로 주신 것이지
돈이 목적이 되어 돈을 사랑해서는 아니됩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10).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해서 지갑을 열고 신용 카드를 꺼내놓고 혹은 지폐를 손에 들고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고 외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한 마음이 중요합니다(7-8).
자족한 마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타납니다.

거기에 잠된 자유함이 있습니다.



2014년 7월 29일 화요일

목회자의 자세

딤전5: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목회의 원리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부모처럼, 형제 자매 처럼 대하라고 했습니다(1-2)
목회자는  교인 어느 누구한테도 소홀이 대해서는 아니됨을 말씀합니다.
목회자가 양들을 대할때의 자세는 한마디로 존경심입니다(3,17;6:1).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느낌으로도 다 알수 있습니다.

교인들을 진실함으로 섬기며, 존경하는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심을 믿습니다(행20:28).

이런 존경과 헌신,영혼을 위한 수고는
영력(성령님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합니다.

2014년 7월 24일 목요일

교회지도자

딤전3: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지도자 혹은 목회자의 삶의 기준은 매우 높습니다(1).
본문에 열거된 내용을 보면(2-4)
교회지도자나 목회자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느낍니다.

한마디로 양떼들의 본을 보이지 못한다면 그들을 인도할수 없고,
그가 전하는 멧시지와 삶이 동일하지 않는다면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할수 있습니다.

교회앞에서의 모습과 뒤에서의 모습이 동일해야
하나님이 더욱 영력을 주시고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영적권위가 생깁니다.

본문을 통해 교회지도자들이나 목회자들을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연약한 그릇이기에
그들을 위해 기도 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2014년 7월 22일 화요일

선한 싸움

딤전1:12-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사도바울의 전도의 열정은 그가 받은 은혜에서 나타났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 섰던 사람이 신실한 주님의 종이 된 것은 참신비스럽습니다.

변하기 어려운 존재인 사람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함이 없이는 설명되지 않습니다(12-16).

이어서 그는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서 선한 싸움을 잘싸우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18).
바울은 자신의 전도사역과 목회사역을 통해 싸우지 않고는 감당할수 없기에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선한 싸움은 우리가 주님앞에 갈때 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건강해야 싸울수 있습니다.
영혼의 건강과 보약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언(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18).



2014년 7월 19일 토요일

티끌과 재가운데

욥42: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했던 욥은 결국 하나님앞에 회개하기에 이릅니다.
그가 회개한 이유는 하나님앞에서 무지하게 말했기 때문입니다(3).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러 말하는 것은 건방진 이야기이지요.

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2).
자신을 티끌과 재처럼 여깁니다(6).

고난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도 때로는 욥처럼 절망하고 분노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은 인간이 티끌과 재와 같은 존재임을 알게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무릎을 꿇는 축복의 시간이 됩니다.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잊어버리고
혼자 분노하고 절망한적이 있습니까?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무지하게 말한적이 있습니까?

욥처럼 티끌과 재가운데서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2014년 7월 17일 목요일

하나님은..

욥40:1-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서 두 번에 걸쳐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38:1;6).
C. S 루이스는 " 하나님은 평안속에서는 우리에게 속삭이지만, 고난 가운데서는 큰 소리로 외치신다"고 했습니다.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더 가깝게 들을수 있는 시간일 것입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메가폰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시지만 듣지 못하는 영적으로 귀먹은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욥은 그동안 자신을 변호 할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의 말씀앞에 대답할말을 잃었습니다(3-5).

하나님은 욥에게 그분이 '의'에 근원임을 다시 상기 시키셨습니다(8).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 할수 있는 수용능력이 없어도(13-24)

하나님은 항상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분임을 믿습니다(롬8:28).

2014년 7월 15일 화요일

가장 가까운 친구

욥19:1-2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난중에 있는 욥은 깊은 고독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피한다고 했습니다(13-22).
전에 가까웠던 사람들도, 심지어는 가족들까지도 자신을 타인처럼 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고난중에 있는 욥과 함께 있으면서 오랜 시간 침묵하던 친구들도(2:11-13)
위로는 커녕 욥을 비난했습니다(1).

그럼에도 그와 함께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욥은 그를 "대속자"라고 불렀습니다(25).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중에 있는 사람은 친구도 없고  마치 홀로 있는 것 처럼 느껴져도
"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가 계시니"(잠18:24),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히7:25)
주님이십니다.

2014년 7월 12일 토요일

고난중에 있는 사람에게

욥6:1-3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욥은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13,26).
그의 친구들의 논쟁은 그를 더욱 절망 가운데로 몰아 넣었습니다(25-27).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던진 말한마디가 그에게 용기를 주거나
아니면 더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욥의 친구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창조 하셨습니다(창2:18).
특히 고난중에 있을 때 말입니다.

고난중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를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욥이 갈망했던 것이 이것이었습니다(14,26,27).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고난중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를 판단하지 말고 그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때로는...

욥4:1-2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욥의 세 친구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욥을 위로 할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위로가 전혀 없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본문 뿐만 아니라 5장,15장,22장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의 말의 요지는 의인은 고난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7-8).

이 말은 고난중에 있는 욥의 폐부를 찌르는 말입니다.
위로가 아닌 깊은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엘리바스는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은 그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모르고 있습니다(시34:19)
하나님의 길은 인간이 생각하는 길과 다릅니다.
그분은 항상 옳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영적으로 너무 우둔하기에
"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소서"(욥34:32)
하며 그분을 온전히 믿고 따릅니다.

2014년 7월 9일 수요일

두려움

욥3:1-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1장과 2장에서 욥은 불평없이 자신에게 일어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1-10).
존재 자체의 의문을 가졌습니다(20-24).

본문의 욥의 고백을 보면 그는 평소에 고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자신이 두려워 했던 것이 현실적으로 일어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25).

과거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두려움이 많습니다.

두려움에 집중하다보면  미리 자포자기 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지배할수는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좇는다"고 했습니다(요일4:18).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집중하면 할수록 두려움을 다룰수 있을 것입니다.

2014년 7월 7일 월요일

고난이 닥칠때

욥1:1-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욥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욥기의 저자는 두 번이나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1,8).
욥의 신앙 인격은 하나님도 인정하셨습니다(8).

욥은 고난 가운데서 두 가지 사실을 배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시는 절대자이시고,
또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무엇이던 절대 의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22).

그러기에 그는 항상 예배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5).

고난 가운데도 예배드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20).

고난중의 욥을 통해 배우는 것은

고난이 닥칠때 욥처럼 하나님이 어떤분이심을 알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2014년 7월 4일 금요일

연약한 믿음

마17:14-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산위에서 변형된 예수님의 모습과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기를 원했던 베드로(1-4).

하지만 항상 산위에서 살수는 없습니다.
절망적인 일이 많고 힘든일 많은 세상과 같은 산 밑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산밑으로 내려오자   귀신 들린 소년을 고치지 못해 애를 쓰던 제자들의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16).

주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17,20).

그리고 겨자씨 한 알의 믿음만 있어도 큰일을 할수 있음을 말씀 하셨습니다(20).

왜 겨자씨 한 알의 믿음입니까?

나의 믿음이 큰 것 같아도 언제나 작습니다.
불신으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 있기에
늘 신앙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늘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기도를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나에게 직면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십시오.

늘 믿음이 작기에

" 주여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막9:24)
하면서 말입니다.

2014년 7월 1일 화요일

주님을...

마16:13-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라는 논란은 주님이 오셨을때 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16).

베드로의 신앙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 동일합니다.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시려(막2:17)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빌2:6-7).

그럼에도 어떤이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선한 사람, 선생님, 종교지도자, 선지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 처럼(17).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아무리 가르쳐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화로 되는 것입니다(고전12:3).

예수를 더 깊이 아는 지식
홍수처럼 쏟아 지는 책들을 통함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그분과 깊은 영교에서 성령님을 통해 얻어 지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더 깊이 알고 따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