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6일 금요일

빛의 자녀

요13:18-3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은 예언의 성취였습니다(18). 주님은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줄 알았습니다(21,26).

복음서에는 가룟  유다앞에 ' 예수를 판 자' 라는 꼬리표를 붙힙니다(마10:4;막3:19;눅6:16). 유다가 자신을 팔자임을 아시지만 주님은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전혀 티를 내시지 않았기에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 돈궤를 맡은 유다를 신뢰하는 줄 알았습니다(29).

유다의 운명을 알고 계셨던 주님은 아픈  마음으로 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유다에게 친히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셨습니다(26). 가까운 친구에게 친밀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른 제자들 처럼 그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사탄은 주님이 유다를 포기하도록 계획했지만 주님은 마지막까지 유다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사탄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27).

마음의 큰 고통을 느끼시면서 주님은 유다에게 "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습니다(27).
속히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뭔지 모르는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요한은 그 시간이 "밤"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0). 유다의 영적 상태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유다와 같이 밤에 속한 자가 아니라 낮에  속한자 입니다.

오늘도 빛의 자녀로  살기를 원합니다.

2013년 8월 15일 목요일

참된 설교

요13: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한복음의 후반부(13-20)는 영광의 책이라고 이름을 붙혀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영광은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 십자가의 달리심으로 극치를 이루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십자가의 달리신 그분의 겸손을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시각적인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고대 중동지역에서는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습니다(눅7:44). 집에 노예로 하여금 손님의 발을 씻도록 했습니다.

노예는 손님이 도착을 하면 발을 씻어주었지만 주님은 저녁을 먹는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2,4).

주의 만찬은 이 만큼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겸손과 섬김의 마음이 없이는 만찬에 참여할수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주님이 우리의 죄를 씻기전까지는 우리는 온 갖 죄악으로 더러운자임을 말씀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이 행동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가 어떤자임을 보여주십니다.

말로 울고 웃기고 감동을 주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설교자가 설교한대로 삶을 살때 그 설교가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일것입니다.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주님은...

요12:37-5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유대인들이 여전히 주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합니다(37). 그는 이사야 선지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38-40). 이사야 선지는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이 완고한대로 버려두셨음을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의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완고한채로 그대로 두신다면 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아도 믿지 않습니다. 죄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회개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고 주님앞으로 온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종교지도자들과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숨으셨습니다(36).

관원들 가운데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 못했습니다(42). 요한은 이들을 가리켜 "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 이라고 했습니다(43). 다른말로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명예를 사랑해서 주님을 믿는다고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돈과 마찬가지로 명예심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예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나중에 하나님에게 비참하게 버림을 받을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정열을 다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외치셨습니다(44-47).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자이시고 주님을 믿는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44-47).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것이 아닌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13년 8월 13일 화요일

영광

요12:27-3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다(23). 그러면서도 주님은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27).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분의 고뇌와 갈등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것이 인성을 입으신 그분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경험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히4:15).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의 연약함을 경험하셨고, 너무나 잘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완벽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두려움과 갈등이 있었지만 철저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제가 이 일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까?"(27) 하셨습니다.

또한 영광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영광은 자신의 영광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28).

사탄은  자신이 영광을 받고, 자신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지만 주님은 아버지가 영광을 받고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셨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복종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친히 보여주신 본이십니다.

주님은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려 올라가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2). 들려 올라가는 것은 보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눈에는 모진 형벌이요, 수치이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사람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그 자체가 영광이 됩니다.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주님을 따르는 자

요12:20-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전에 주님은 자신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2:4;7:6).
본문에서는 " 인자가 영광을 얻을 시간이 왔다고" 하셨습니다(23). 제자들은 아마 이 말씀을 듣고 뭔가 모르는 큰 기대감으로 부풀었을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주님을 환영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12-13). 바리새인들 조차 " 온 세상이 그를 따른다"고  인정했습니다(19).

그러나 예수님이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것은 왕의 대관식이 아닌 죽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알의 밀을 말씀하셨습니다(24).

주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의 영광을 얻는 자가 아니라 한 알이 밀처럼 죽는 것을 말합니다.
얻음이 아니라 잃음을 말합니다. 가짐이 아니라 버림을 말합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얻고자 합니다.
희생보다는 영광을 얻을려고 합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을 섬기자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귀히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26). 주님을 섬기는 것은 곧 주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2013년 8월 10일 토요일

나의 삶속에

요12:12-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11). 예수님의 명성은 재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유월절 명절이 다가왔고 예루살렘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 다는 소식을 듣고 큰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12).

전쟁에 승리한 개선 장군에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환영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전통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보자 종려나무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호산나' 하고 외쳤습니다(13).
호산나는 ' 도와주소서'(시118:25-26)라는 의미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13).

수 많은 외침의 환성속에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이들의 외침에 대해 주님은 어린 나귀를 타심으로 응답하셨습니다(14). 스가랴 의 말씀대로 행하심입니다(14).

요한은 예수님이 왜 나귀를 타셨는지? 주님의 행동을 제자들은 그 시간에 깨닫지 못했다고 진술합니다(16).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나서야  나귀를 타신 주님이 스가랴 선지의 예언의 성취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비로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삶속에 다가온 어려운일들을 넘기고 나서야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깨닫게 될때가 많습니다.

개선장군은 멋있는 말을 타고 가야 상식에 맞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평화와 겸손을 상징합니다..

그분의 나라는 평화와 겸손의 나라입니다.
그분의 나라는 군대의 힘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으로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오늘 나의 삶속에 평화와 겸손, 희생과 섬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2013년 8월 9일 금요일

교회는

요12: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육 일전에 나사로가 살고 있는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2). 마태와 마가는 이 연회장소를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마26:7;막14:3). 아마 잔치가 시몬의 집에서 열렸는데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도 함께 초청을 받은 듯 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마르다는 분주했습니다(2). 음식을 접대하는데 바빴습니다. 이런 봉사도 귀한일이지만 말씀을 배우는 것, 영적인일에 힘을 쓰는 것이 더욱 귀합니다.

진리를 배우지 않고 분주한 사람은 영적으로 쉽게 메마르게 됩니다. 쉽게 지칩니다.
쉼이 없습니다. 진리안에서 견고함이 없기에 상황에 따라 변할수 있습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녀는 비싼 향유 약300그램을 가지고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3). 오빠 나사로를 살려주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주님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음식들보다 이 일을 더욱 기뻐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은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7).

주님은 기뻐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이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다면 더 좋지 않은가? 하고 비판했습니다. 요한은 그에대해 그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말하기보다는 탐심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5-6). 그는 물질중심의 사람입니다. 무엇이든 돈으로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어떤집에 사느냐?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느냐? 여기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물론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13:29).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가 먼저 입니다(8). 복음이 없이 구제만 한다면 그것은 자선 사업이지 전도가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지, 자선 사업하는 곳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