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근원은 비뚤어진 자기 중심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가진자는 끊임없이 더 가질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적 빈곤'이 더 나타납니다. 물론 정당한 '부'(정직하게 땀흘려 이룬)는 죄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정당한 부'도 나눔과 돌봄이 실천이 이루어질때 그 부의 정당성이 나타납니다. 나눔과 돌봄은 부한자들이 가져야할 도덕적 책임입니다.그리고 나눔과 돌봄은 인간의 비뚤어진 탐욕을 이길수 있는 무기이기도 합니다.
"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6:17-18)
2012년 3월 30일 금요일
핍박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가운데 하나는 일거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할일이 없는 사람은 생기가 없고,마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쁘게 일하는 사람을 보시면 늘 활기가 넘치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핍박이 없는 신앙은 무기력하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핍박은 우리의 신앙에 유익을 줍니다. 안일함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교만함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신앙적 긴장은 더욱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게 해줍니다. 기도를 더 힘있게 하고 주님을 의지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핍박과 고난 없는 것 보다 적당하게 있는것이 은혜 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각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기도 합니다.주님도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5:10) 말씀하셨지요... 오늘 아침 핍박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만함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신앙적 긴장은 더욱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게 해줍니다. 기도를 더 힘있게 하고 주님을 의지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핍박과 고난 없는 것 보다 적당하게 있는것이 은혜 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각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기도 합니다.주님도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5:10) 말씀하셨지요... 오늘 아침 핍박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2012년 3월 28일 수요일
노동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 가운데 하나가 일(노동)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 하실때 일하는 존재로 즉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노동)은 타락의 결과로 나타난것이 아니라, 타락전 창조시부터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타락후 그 일이 힘들게 느껴 진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일하는 동기가 다 다릅니다. 그러나 일(노동)이 단지 생계를 위함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고 하기 싫은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의무에 해당되는것이기에 구속하고 억압하는 기능을 줍니다. 그러나 일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요, 다른이들을 섬기고, 사회를 섬기는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서로 섬기면서 살게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게끔 하셨습니다. 서로 서로 섬기면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서로의 섬김이 바로 일(노동)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주님도 세상에 계실때 목수로 일하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사도 바울도 열심히 텐트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창조적이고 일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을 통해서 참된 인격이 형성이 되고, 노동을 통해서 인간다와집니다. 오늘도 일터에서 힘을 냅시다!!
사람은 서로 서로 섬기면서 살게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게끔 하셨습니다. 서로 서로 섬기면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서로의 섬김이 바로 일(노동)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주님도 세상에 계실때 목수로 일하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사도 바울도 열심히 텐트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창조적이고 일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을 통해서 참된 인격이 형성이 되고, 노동을 통해서 인간다와집니다. 오늘도 일터에서 힘을 냅시다!!
2012년 3월 26일 월요일
평가
사람을 평가할때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때는 얼굴만 보고, 어떤때는 말한마디를 듣고 쉽게 평가합니다. 이런 편견으로 사람을 보는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가령 누가 나에 대해 말할때 나의 단면만 보고 평가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사람은 오랜 시간이 흘러야 그 사람의 진면모를 볼수 있습니다. 아무리 단점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장점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는 도량을 넓게 키워야 되지 않을까요? 사실 사랑이란 거창한데서 출발하지 않고, 편견을 갖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큰 도량으로 대할때 시작 되는것 입니다. 마치 복음서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모델 처럼 말입니다.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가령 누가 나에 대해 말할때 나의 단면만 보고 평가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사람은 오랜 시간이 흘러야 그 사람의 진면모를 볼수 있습니다. 아무리 단점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장점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는 도량을 넓게 키워야 되지 않을까요? 사실 사랑이란 거창한데서 출발하지 않고, 편견을 갖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큰 도량으로 대할때 시작 되는것 입니다. 마치 복음서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모델 처럼 말입니다.
2012년 3월 25일 일요일
독경생활
" 재주가 다른이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말라 나처럼 어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에는 이루었다. 모든것은 힘쓰고 노력하는데 달려 있다"
이 말은 조선시대의 명문장자요, 시인이었던 김득신(1604-1684)의 말입니다. 그는 일명 조선시대의 독서왕으로 불리웁니다. 조선시대이 선비들은 책을 읽는 게 업무여서 많이 읽은 것은 특별한 자랑거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김득신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그는 <사기>의 백이전을 무려 1억1만 3천번을 읽었습니다.... 이밖에도 한유의 '사설'을 1만3천번, 악어문을 1만4천번, 노자전을 2만번, 능허대기를 2만 5백번씩이나 읽었습니다. 김득신은 옛 글 36편을 읽은 횟수를 '고문삼육수독수기'에 기록했는데 1만번에 미치지 못하면 아예 기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그는 어릴적 천연두를 앓은 탓인지 머리가 둔했습니다. 열 살 무렵에 글을 익히시 시작했느나 돌아서면 잊어버렸습니다.. 이런 둔재로 태어났으나 초인적인 노력으로 당대의 시인이자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상주, 조선 명문가독서교육법 참조-
조선시대의 선비들의 독서와 특히 김득신의 독서 생활을 보면서 끊임없이 반복 독서로 한권의 책을 통달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김득신 처럼 성경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 마치 몸에서 성경의 피가 흐르도록 한다면 우리의 삶속에서 말씀의 능력이 나도 모르게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요?
이 말은 조선시대의 명문장자요, 시인이었던 김득신(1604-1684)의 말입니다. 그는 일명 조선시대의 독서왕으로 불리웁니다. 조선시대이 선비들은 책을 읽는 게 업무여서 많이 읽은 것은 특별한 자랑거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김득신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그는 <사기>의 백이전을 무려 1억1만 3천번을 읽었습니다.... 이밖에도 한유의 '사설'을 1만3천번, 악어문을 1만4천번, 노자전을 2만번, 능허대기를 2만 5백번씩이나 읽었습니다. 김득신은 옛 글 36편을 읽은 횟수를 '고문삼육수독수기'에 기록했는데 1만번에 미치지 못하면 아예 기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그는 어릴적 천연두를 앓은 탓인지 머리가 둔했습니다. 열 살 무렵에 글을 익히시 시작했느나 돌아서면 잊어버렸습니다.. 이런 둔재로 태어났으나 초인적인 노력으로 당대의 시인이자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상주, 조선 명문가독서교육법 참조-
조선시대의 선비들의 독서와 특히 김득신의 독서 생활을 보면서 끊임없이 반복 독서로 한권의 책을 통달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김득신 처럼 성경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 마치 몸에서 성경의 피가 흐르도록 한다면 우리의 삶속에서 말씀의 능력이 나도 모르게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요?
2012년 3월 24일 토요일
교회
교회는 본질상 하나요 거룩합니다.비록, 외형적으로는 여러 교단들이 있어서 나누어진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성령님이 하나로 묶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시고, 교회를 성화 시키십니다. 어떤때는 교회가 나누어진것 같아 보이고, 거룩하지 않는것 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이 전해지는 교회마다 성령님이 붙들고 계시고, 하나 되게 하십니다. 서양교회이든, 동양 교회이든, 무슨 교파이든 초월해서 성령님은 모든 교회들을 하나도 묶고 계십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신비스러운 사역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신비스러운 사역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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