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시험을 받을 때

마4: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장면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시험 받으심은 그분의 공생애 사역 시작 부터 사탄을 제압하고 시작하심이(눅11:20-22)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주님에게 세 번에 걸쳐 시험을 했습니다(3,6,9).
주님은 세 번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험을 받을때에 하나님의 말씀(계19:13)으로 사탄을 이겨야 함을 몸소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주님이 친히 시험을 받으셨기에
시험 받는 자를 능히 도우시는(히2:18),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자 역할을 하시기 위함입니다(히4:14).

어떤 시험이든지 말씀으로 이길 수 있고,
대제사장이신 우리의 신실한 중보자 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든든합니다.


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성령님

마3:13-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침례(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침례(세례)를 받으시러 오시자 매우 당황했습니다(13-14).

자신이 주님에게 침례(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오십니까? 하면서 사양했습니다(14).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침례(세례)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요당강에서의 두 분의 대화는 의미심장합니다(15).

주님은 침례(세례)가 필요없는 죄를 모르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가 침례(세례)를 받으심은 죄가 없으신 그분이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는 속죄 사역의 출발을 알림을 말합니다(벧전3:18).

또한 예수님이 침례(세례)를 받으심은 요단강에서 수많은 사람들앞에 진행된 왕의 대관식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17)라는 음성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16).

주님에게 임한 성령은 불과 같은 성령이 아니라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마11:29) ,
종으로(막10:45),
고난당하심으로 (사53:2-3) 오심을 성령이 보여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양명성이 있습니다.
불과 같은 성령님은(행2:3)를 강하고 담대하게(행4:13) 하시고,

비둘기 같은 성령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빌2:5).

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회개

마3: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침례(세례) 요한의 모습이 나옵니다.
요한이 언제부터 광야에서 살았는지 알수 없지만, 광야에서 살면서
특이한 생활을 했습니다(4).

본문에 소개된 그의 모습만 보아도 그는 매우 야성(野性)적인 사람임을 알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던 사두개인이던(7), 누구든 거침없이 설교했고,
그의 설교는 매우 강렬했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고(8),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조리 잘려 불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습니다(10).

직선적이고 강렬한 설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세례)를 받았습니다(5-6).

그는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야(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11-12),
그분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했고(11),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는 
오늘날 사역자들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8) 유대 광야에서 외쳤던 요한의 목소리가 
오늘도 나에게 들리는듯 합니다.

바울도 역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엡5:8).

" 귀 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의 주권

마2:13-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 안 다음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하나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에게는 꿈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눅1:26-28),
요셉에게는 꿈으로 지시하셨습니다(1:20;13).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게 하심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먼 여행길을 떠납니다(14).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이들은 다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19-20).
다시 돌아와 안전한 곳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22-23).

마태는 이일이 이미 오래전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일임을 상기 시킵니다(15,17,18,23).

헤롯의 영아들  학살 사건(16),
세상에 오시자 마자 아기 예수님의 애굽의 피신 생활(19).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의 작정하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일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처럼(13,16),
지금 이시간도 테러와 압제를 피해 이웃나라로 피신해가는 수많은 난민들이 있습니다.
시리아와 지금 내전 상태에 있는 남수단과 같은 곳의 사람들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역사와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믿기에(사45:7),
오늘도 세계 평화와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2013년 12월 25일 수요일

만유의 주

마2: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천문학자들이었고 멀리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성경학자들을 따르면 이들이 도착한 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약18개월이 지난 후라고 합니다.

주님이 탄생한 곳은 말구유였는데(눅2:16),
본문에 이들이 찾아온곳은 집이었습니다(11).
이것을 보면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들은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머나먼 길을 마다않고
 새로 탄생하신 왕을  뵈로 왔습니다(2).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가 계신집에 들어가 그앞에 엎드렸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11)

새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헤롯의 심기를 불편하게했습니다(3).
헤롯은 아기예수가 있는 곳을 찾을려고 애를 썼지만
박사들은   헤롯을 속였습니다(12).

마태복음의 처음 독자인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인 박사들이 그들의 메시야에게 경배한것을 불편하게 느꼈을것입니다.

하지만 아기예수의 탄생에 첫 이방인들이 찾은것은 주님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로 오셨음을 마태는 보여주길 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엡1:22).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임마누엘

마1:18-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요셉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요셉은 " 의로운 사람" 이었기에 이일을 누구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파혼을 할려고 했습니다(19).

마리아는 순종과 소박함을 겸비한 처녀였고(눅1:38),
요셉은 조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보면 주님이 왜 이 가정에 오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에 나타나셔서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으로 된 것임을 알리셨습니다(20).
아기의 이름을 " 예수"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이는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 부터 구원할 자이시기에(21)...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신 메시야가 오셔서 모든 압제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것을 열망해왔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사야의 예언처럼(22-23),
주님은 소박한 가정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요란스럽거나 화려하지 않고
조용히 겸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운데 '임마누엘'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그 은혜의 경륜

마1: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임을 믿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가계도를 그린다면 나로 부터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다른 방법으로  가계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이새와 다윗을 그리고(2-6),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부터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7-16).

마태는 여기서 4명의 여인들을 언급하는데,
이 여인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아니고,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다말은(3,창38)은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두 아들을 낳았고,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은 여리고성의 창녀였습니다(5,수2;6:22-25).

보아스는 모압여인 룻과 결혼을 했습니다(5,룻1-4).
다윗의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은 우리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6,삼하11).

인간이 세운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눈이 다릅니다.
어떤이는  여기에 언급된 여인들 처럼  도저히 수준에 못미치는(?)는 사람이지만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자녀로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고전1:27).

이 어찌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엡3:1) 아니고는  어찌 설명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