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3일 수요일

순종과 사랑

수23:1-11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시간이 흘러 모처럼 만 에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1). 어느덧 여호수아도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약 90세 였습니다.(유대의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애굽에서 40년, 광야 40년, 정복전쟁 7년) 세상을 떠날 날 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는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당부를 하였습니다(2).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동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회상 시켰습니다(3). 우리도 한 번 씩 과거를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면 그동안 나 혼자 걸어온 길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가 있었고, 그분의 돌보심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혹  하나님을 떠날까봐, 하나님을 잊어버릴까봐  걱정하는 노지도자의 모습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제비를 뽑아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을 나누었지만 그것은 오직 자신들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 임을 재차 강조 하였읍니다(3).그럼에도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 할 위험이  있음을 알았습니다(7).이스라엘이 쉽게 가나안 문화에 동화  될수 있음을 알았기에.. 세상 문화는 항상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라고 하였습니다(6). 그리고  "..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라"(11).고 했습니다. 세상 문화의 동화되지 않는 길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힘껏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입니다. 만일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기전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 주소서! 기도하는 것 이 먼저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순종과 사랑은 서로 분리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도피성

수20:1-9 절 말씀 묵상 내용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아니면 남에게 해를 가한적이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예기치 않는 일 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이와같은 일 들이 있었습니다. 나의 의도와는 달리 않좋은 일 들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고로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일어 날 수 있습니다(3). 구약시대에는 보편적으로 "눈에는 눈"으로 하는 원칙이 통하는 사회였습니다(신19:21). 누가 나의 가족중 한 사람을 죽였다면 그 사람을 찾아내어 반드시 보복하는 것이 정당화 된 시대  였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첩보기관인 모사드(Mossad)가 자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은 반드시 찾아내어 보복 하는 원리가  여기에서 나온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사람을 죽인 경우는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서 '은신처'를 제공 하도록 하였습니다(10).  이것이 도피성입니다. .. 구약시대에 48개의 레위 성읍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6개의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3개는 요단 동쪽에 있었고, 3개는 요단 서쪽에 있었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이 도피성으로 피하면 살 수 가 있었습니다. 이 도피성은 바로 갈보리 언덕의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시해주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행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우리의 모든 죄 가 사함 받을 수 있는 도피성이 그분의 십자가 입니다. 또한 도피성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지 않고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주님의 품도 항상 열려 있습니다. " ..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좇지 아니하리라"(요6:37). 죄로 고민하십니까? 주님 앞으로 오십시오. 그분은 언제든지 우리를 맞이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85세에..

수14:6-15절 묵상 내용입니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노령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노령화 사회에도 85세는 여전히 많은 나이입니다. 은퇴를 해서 연금을 받으며 유유자적하게 살 나이에 뭔가를 새로히 시도 해 본다는 것은 모험적인  일입니다. 갈렙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85세의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일에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갈렙을  통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확신의 사람이었습니다(7).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사람이었습니다(14). 남이 선택하지 않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습니다(8).  선택할뿐만 아니라 그것을 갈망하였습니다(10). 그는 매우 강건하였고, 에너지가 넘쳤습니다(11).특히 하나님을 위해.. 또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의 소유자 였습니다(9-10).  그의 믿음대로  거인족에 속하는 아낙사람중에도 가장 큰 사람들이 살고 있던 헤브론을 정복하였습니다(14). '거인중에도 거인' 족들을 대패 시켰다는 것 입니다.그중에 흥미를 끄는 구절이 있습니다. " ..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15).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하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가만히 있었다면  평화가 없었을텐데 갈렙이 그 땅 을 정복하자  평화가 찾아왔다는 이야기 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믿음으로 그 땅을 다 평정하였습니다. 갈렙은  볼 수록 매력이 넘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85세가 되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제 나이 85세가 되면 과연 갈렙처럼 행 할 수 있을까? ....  여러분은 어떠 하십니까?

2012년 6월 10일 일요일

믿을 것

시20:7-8 "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들은 비틀 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믿을 구석이 어디 있습니까? 만일 인간의 힘으로 성취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임시적인 것 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을 분 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다윗은 그의 삶속에서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전쟁터에서 .. 그가 관찰한바  전쟁에서도 병거와 말을 의지 하는 사람은 비틀 거리고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 는 절대로 비틀거리거나, 패하지 않았습니다. 승리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 이 분 을 찬양하고 오늘도 의지 합니다. 다윗의 경험이요, 우리의 경험이었고, 신앙 고백입니다.

2012년 6월 9일 토요일

무엇이 부족한 지?

행4:32-37 묵상 내용입니다.
사도들이 풀려 난 후  함께 모여 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지자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4:31). 이어서  서로 '하나됨'이 나타났습니다. 교회가 하나되는것은 '하나가 됩시다'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친다고 되는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하나가 됩니다. 또한 이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오너쉽을 포기했습니다(32).  자기 재산들을 팔아 판 값을 사도들에게 주면, 사도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34). 이런 연유로  교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이상적인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 했습니다. 믿음과 생활이 일치했습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못해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설교와 삶이 일치하지 못해 스스로의 모습 앞에 절망 할 때가 많습니다. 거듭된 실패에도 소망이 있는 것은  본문을 통해 성령이 충만하면  말과 행동이, 신앙과 삶이 일치할 수 있구나! 함을 재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은 일회성이 아닌 계속성임을 말씀하신것 같습니다. .. 구브로 사람인 요셉이라고 하는 바나바의 순수한 헌신이 이어졌습니다(36-37).
탐욕과 이기심이 가득찬  세상, 물질이 우상화 된 세상, 세상과 쉽게 동화 되어가는 현대 교회에 자극을 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과 내가 섬기는 교회 모습과 비교 해 보십시오. 만일 우리 교회가 초대 교회를 많이 닮았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아니면 부족한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부족 한 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2012년 6월 8일 금요일

하찮은 일

행4:23-31 묵상 내용입니다.
가끔 컴퓨터에 문제가 발생 할 때가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침투했던가? 그럴때는 바이러스를 치료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 될 때 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드드라이브에 문제가 생겨 컴퓨터가 완전히 '먹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경우는 하는 수 없이 윈도우를 재 설치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가끔 '먹통'이 되는 일 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반응은  자신이 해야합니다. 심한 경우 패닉(Panic) 상태에 빠질 수 있고, 아니면 누군가를 비방 할 수 있고, 아니면 새로운 길을 모색 할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에서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을 기다리던 형제, 자매들에게 가서 자신들이 당한 일 과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의 말을 이야기 했습니다(23). 이 말을 들은 그들은 낙심하거나 두려워않고 즉시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첫째,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기도 하였습니다(24).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계시의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25-26). 시편2편의 다윗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세상의 군왕들과 관리들이 함께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 하였다"는 것 입니다. 셋째는 역사의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27). 본디어 빌라도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이 합세해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결국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였습니다. ..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해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창조와 계시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 위대하신 하나님과 자신들이 당한 일들을 비교해 볼때 그 일들은 너무나 작고, 보잘것이 없는 것 들 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권력으로 아무리 그들을 위협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보잘것 없는 하찮은 일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그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작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것 들입니다. 그것에  잡혀있지 말고, 눈을 들어 창조와 계시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오. 그것들은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하찮은 일로 보일것 입니다.

2012년 6월 7일 목요일

박해

행4:13-22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교회역사 2천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신앙때문에 모진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서의  박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박해는 신앙을 꺽는 것이 아닌,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무리 교회를 없앨려고 하였어도 그럴수록 교회는 더욱 생명력 있게 성장을 하였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편안하면  영적인 힘을 잃어 버리고 부패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늘 적당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6천명의 선교사들 모두가 추방을 당했습니다. 교회지도자들은 수감이 되었고, 처형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70만명이었던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모진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50여년이 지난 오늘날 삼자교회(정부에서 인정하는)가 아닌 가정 교회의 교인 숫자는 5천만에서 7천만으로 불어났습니다. 70만명에서 100배에 해당하는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그것도 모진 박해의 시기에..  산헤드린 공회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16).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드로가 행한 기적을 부인할 수 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방치 했다가는 더 큰 일이 일어날지 몰라 방책을 세우는 중 이들이 할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예수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 말라는 것 뿐이었습니다(18).  초대교회는 모진 박해속에서도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 않고 계속해서 성장해 갔습니다.  신앙때문에 박해를 받지 않는 땅에서 살면서 '박해'라는 말은 현장감이 덜 합니다.  그러나  자유와 안락함이 어떤면에서 신앙에 더 큰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면에서 박해 아닌 박해가 될 수 있습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캐나다의 교회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