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7일 목요일

박해

행4:13-22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교회역사 2천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신앙때문에 모진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서의  박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박해는 신앙을 꺽는 것이 아닌,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무리 교회를 없앨려고 하였어도 그럴수록 교회는 더욱 생명력 있게 성장을 하였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편안하면  영적인 힘을 잃어 버리고 부패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늘 적당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6천명의 선교사들 모두가 추방을 당했습니다. 교회지도자들은 수감이 되었고, 처형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70만명이었던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모진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50여년이 지난 오늘날 삼자교회(정부에서 인정하는)가 아닌 가정 교회의 교인 숫자는 5천만에서 7천만으로 불어났습니다. 70만명에서 100배에 해당하는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그것도 모진 박해의 시기에..  산헤드린 공회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16).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드로가 행한 기적을 부인할 수 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방치 했다가는 더 큰 일이 일어날지 몰라 방책을 세우는 중 이들이 할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예수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 말라는 것 뿐이었습니다(18).  초대교회는 모진 박해속에서도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 않고 계속해서 성장해 갔습니다.  신앙때문에 박해를 받지 않는 땅에서 살면서 '박해'라는 말은 현장감이 덜 합니다.  그러나  자유와 안락함이 어떤면에서 신앙에 더 큰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면에서 박해 아닌 박해가 될 수 있습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캐나다의 교회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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