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6일 월요일

진리를 전하는 자

렘11:1-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례미야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순종할 것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1-17).

사회적으로 온갖 악행이 일어나고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 하는 일입니다

안전을 보장받을수 없지만 멧시지를 전해야 하는 선지자의 고뇌를 엿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18-23절은 애가로 가득차 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를 해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나돗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레미야를 미워하기 보다는 그가 전하는 멧시지를 미워했습니다(21).
그렇습니다. 설교자가 그가 전하는 멧시지로 인기를 누리기보다는
때로는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가 진리의 밀씀을 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전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21-22).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마지막 인사

고전16:1-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속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이방인 교회들이 힘을 모아 이들을 도왔다고 언급합니다(1-4. 고후8-9, 롬15:25-32).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이 있었고,
디모데(10)를 고린도에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4:17).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돌봄을 위해 디모데를 다시 보낼려고 합니다.

디모데가 고린도에 가게 되면 그를 신임하고 그가 사역을 힘있게 하도록 도와줄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10-11).바울의 목회자적인 마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왜 고린도 사람 스데바나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와 함께  바울이 있는 에베소에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은 지금 스데바나집에  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15).

바울의 마지막 인사는 여러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들이 어려운 가운데도 그들의 믿음이 견고해짐을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2천년전의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우리에게 전달이 되는 느낌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따뜻한 안부의 인사
바울의 말이 오늘 우리의 귓가에도 들리는듯 합니다.

저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Peace and grace in Christ!!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주님을 위해

고전15:35-5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날 것인가?
부활의 몸은 어떤 몸일까? 신앙인라면 누구나 가질수 있는 질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갖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이에대해  현재의 몸은 죽지만 영원한 새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42-44).

현재의 몸은 첫 번째의 아담의 몸이지만
새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동일한 몸입니다(46).

주님이 다시 오실때
 죽은 자들이 먼저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것이고(살전4:16)
살아있는자는 영광의 몸으로 바뀔것입니다(52).
이일을 행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롬8:11).

생각만 해도 영화의 한 장면과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속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바울이  본장의 마지막부분에서 권면한 것 처럼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58).

주님을 위해 행하였던  모든 수고는 때로는 어떤 것은  미미하게 보여도
절대로 헛되지 않음을  압니다.



2014년 6월 11일 수요일

부활

고전15: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울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실제 목격한 사도들과 수백명의 사람들을 나열하며(5-7)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실제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적 권위도
자신은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이지만(9)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목격한 것에 두고  있습니다(8).

바울과 같이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9)
변화가 되고 은혜로 사도가 된 것 자체가(10)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임을 증거해줍니다.

주님의 부활을 친히 목격한
사도들이 전한  부활의 주님을 믿기에

오늘도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내세에 소망을 두며 살아갑니다(19).

2014년 6월 9일 월요일

무엇이 다른지를..

고전14:1-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배에 대한 바울의 관심은  질서 있고 남의 믿음을 세워주는데 있습니다.
그는 방언을 금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위해 정상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4).

그는 방언보다 예언을 더 중시했습니다.
교회기초는 방언이 아닌 예언이었습니다(고전12:10,28).

예언은 사도시대와 교회시대와 구분됩니다.
사도시대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앞으로 일어날 어떤 사건에 대해 예언했습니다(행11,21).

그러나 교회시대는 설교가 그것을 대체 하였습니다.
설교자들은 사도들이 닦아놓은 터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견고하게 집을 지어나갑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말한다' 라는 단어를 24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유법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악기도 그 소리로 분별 할 수 있고(7)
모든 소리에는 다 뜻이 있듯이(10)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의  말씀도 세상에 분병하게 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복음대로 살 때  사이비 이단들과 복음이 무엇이 다른지를 분명하게 보여줄수 있습니다.

2014년 6월 7일 토요일

사랑은

고전12:31-13: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12장 마지막절에서 가장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면서 12장을 끝맺었습니다.
가장 귀한 은사는 13장과 14장1절 사이에 10번에 걸쳐 등장하는 단어인 사랑(아가페)입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4-7절 사이에 나타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를 말합니다.

어떻게 남을 대하느냐?
아무리 거짓으로 위장을 해도 사랑(아가페)이 아닌 것은  금방 드러납니다.

13장을 처음 읽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상상해보십시오.

4절-7절에 나타난 사랑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내가 어떻게 실천하며, 체험하는 지를 생각해봅니다.

"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4-7).



2014년 6월 6일 금요일

은혜를 사모

고전12:21-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전12장은 성령님의 은사를  다룬 내용입니다.
한몸에  기능이 다른  여러 지체가 있듯이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 또한 다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방언 하는 사람들이 가진 소위 ' 영적 엘리트주의' 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경고하기 위해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맨 나중에 올려놓은 것 같습니다.

모든 은사는  성령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지체로서의 교회의 참모습입니다.

바울은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여지를 남겨놓고 12장을 맺고 있습니다.
사모하라는 말은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또한 그 은혜를 깨닫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 처럼(시42:1)
오늘도 나의 영혼의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