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5일 토요일

이시대를 살아갈수록

히13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바다속의 물고기들의 세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을 것 입니다.
다이버가 물고기들에게 접근하면, 도망을 가고, 해저(海底)가 클로즈업(close-up) 되고,,
해저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의 지혜에 탄복할 뿐 입니다.

본문에도 아름다운 해저의 세계처럼 교회 생활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히브리서 처음 독자였던 초대교회는 로마의 권력자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외부세계의 사람들과 분명한 구별이 있었습니다.

가령, '나그네' 를 환대하는 것(2),  누구에게든지 관대하게 대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관대하신분임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자 들을 방문해 용기를 주었고, 신앙으로  그들을 세워주었습니다(3). 당시만해도 감옥을 찾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동정심이 아닌  고통 당하는 사람들과 동일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3). 또한 음란했던 로마사회풍조에 따르지 않고 성적(性的) 순결함을 지키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4-5).

본문은 로마시대나 오늘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사회로 부터 격리 아닌 격리 즉 외로움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고립된듯한 삶이다 보니 공동체에는 이단이 쉽게 침투할 수 있었고(9), 영적지도력에 잘 따르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는 등(17) 내적인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별된 삶과 영적인 힘으로 거대한 로마세계를 변화 시켜 갔던것 입니다.

세상이 다 그런데 우리는 별건가? 이것이 아닌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다워질때 우리 주변부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단순한 진리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갈수록 더 실감있게 다가옵니다...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히12:14-2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하나의 시적표현 처럼 느껴집니다.
히브리서 첫 번 독자들은 새언약으로 들어간 첫 번째 세대임을 기억 하면서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옛 언약하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말씀 하실 때 불붙는 시내산에서 흑운,흑암,폭풍을 동반 하면서 말씀 하셨습니다.(18-21). 하나님의 임재는 이렇게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을 자주 대면했던 모세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21)고 했습니다.

어떤 짐승이나 보통사람들은 하나님이 현존 하시는 산 에 접근 할 수 없었습니다(20).하나님은  백성을 대표하는 선지자,제사장을 통해서만 말씀 하셨습니다.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분이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통해 언제든지,어느곳에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10:20).

우리는 수 많은 구원받은 성도들과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이 있는 하늘의 예루살렘과 시온 산으로  초청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22-24). 나의 거룩한 열정과 경건은 살아계신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예배를 드리십니까?

2012년 8월 23일 목요일

신앙의 경주

히12: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요 논점을 잃어버리진 않았습니다.  " ... 포기하지 말고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열심히 하라"(1) 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신앙의 경주자 입니다.  경기장에서 경주자들은  달리기전 목표지점을 응시 합니다. 그것은 목표지점까지 절력질주 하겠다는 것 입니다.신앙의 경주 하는 우리도 목표지점을 응시해야 합니다. 목표지점은 주님이십니다(2).

주님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기쁨이 있었기에 십자가의 '고통',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주님의 기쁨의 근원은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는 것이고, 원래 오셨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기쁨 이었습니다(2).

신앙의 경주자에게도 예비해 두신 기쁨이 있습니다. 물론 잘 달리면 좋은 일이지만, 만일  목표지점(주님)을 향해 제대로 뛰지 않는다면 고난(징계)을 주실 것입니다. 징계가 없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이 된 증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잘달리는 것도 기쁘지만, 힘든일이 오는 것도  기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표시이기에...(7-11).

그리스도인의 삶을 정의 한다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단순한 삶입니다. 목표를 향해 뛰는데  쓸데 없는 것들, 방해하는 것들, 무거운 것들을  버리십시오.  그래야 주님을 향해 힘껏 달릴 수 있습니다.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믿음때문에

히11:32-4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해가다가 더 추가하고 싶었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믿음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 들을 당했고, 이겨냈습니다.

히브리서 처음 독자들도 믿음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의 상황과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화(調和) 시키길 원했습니다.

초대교회시절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핍박을 받고, 생명의 위협도 감수해야 했고, 온갖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이미 앞서 고문, 죽임을 당했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음을 그들에게 강조하고 싶었습니다(35-37). 자신들만 힘든 일을 겪는다 생각하면 낙심합니다. 하지만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도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했음을 상기시켜 주면  위로가 됩니다.

 베드로도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용기를 주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4). 바울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행14:22, 빌3:10,딤후3:12).

오늘도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믿음 때문에 모진 고난을 당하고 있음을 기억 하십시오.박해 받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www.opendoorsuk.org).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믿음은...

히11:20-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현재의 믿음은 장래의 결과로 이어집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과 야곱을 예로 듭니다. 이삭은 "  야곱과 에서의 앞날을 축복" 했고,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했습니다.당시 그들의 믿음은 다음세대의 축복의 결과로 나타났습니다(20-21). 부모님들의 아름다운 믿음은 자녀와 그 다음세대들의 축복으로 나타남을 믿습니다.

믿음은 장래의 두려움을 이기게 해줍니다(23).  또한 믿음은 현재의 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보다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게 합니다(24-26).

본문에 나오는 믿음의 정의는 현재가 아닌 장래입니다. 믿음은 나의 마음을 현재가(좋은일이던, 나쁜일이던) 아닌 다가올 일에 두게 해줍니다.

 믿음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열어 놓게 합니다. 믿음은 홍해와 같은 안전하지 않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는 방패막이 됩니다(29-30).

인상적인 것은 '라합'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31). 왜 라합의 이름이 있습니까? 히브리서 처음 독자들도  라합앞에서' 왜?' 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기생이요, 이방여인이요, 유대인들 눈에는 명백한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장래의 상급을 위해 현재의 위험한 일을 기꺼이 한 그녀를 하나님은 같은 종류의 믿음의 소유자로 보셨습니다. 믿음의 영웅의 반열(班列)에 올려 놓았습니다.

'믿음'이란 단어는 '위험'이란 단어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합니다. 믿음이 있기에 위험을 무릎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어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까? 부? 안락함? 평판?...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믿음의 용사

히11:1-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11장은 '믿음'장으로 유명합니다. 본문을 읽어가다 보면 큰 용기를 얻습니다.  본문에서 믿음의 챔피언(Champion)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우리도 이들처럼 행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려줍니다.

본문에는 '믿음'의 정의(定義)가 나타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6). '믿음은 의로 이끌어준다'(7). '믿음은 순종의 원동력이 된다'(8-9).

특히 인상적인 구절은 "아벨은 죽었지만  그의 믿음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말한다"(4) 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한 사람의 삶의 역사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임을 표시해줌을 말합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집니다(3). 이것을 믿음으로 반응하여 행동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본문의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주저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용감할려면 용감한 척 이라도 해야 용감해질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 처럼 따라 행하면 나도 믿음의 용사처럼 살아가지 아니할까요?


2012년 8월 19일 일요일

교만

시30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기자는  죽음에 직면에  있습니다(3).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대적자들인지(?),  심각한 병인지(?), 알수 없지만...  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8).
무엇이 그를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었습니까? 왜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셨습니까?
명확히 알수 있습니다(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한마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 하기보다는 자기에 대한 믿음으로 이끕니다. 특히 '잘나갈때'그러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고난으로 이끄는 지름길임을 다윗은 발견했습니다.

성경에는 교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악하고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도무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시10:4, 쉬운성경).
"교만은 파멸의 선봉장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잠16:18) 등등...

때론 하나님은 교만을 치료하시기 위해 환난의 용광로에 넣으십니다. 교만한 마음 앞에 그분의 "얼굴을 숨기십니다"(7).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입니다. 교만은 치료받아야 할 영적질병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교만을 치료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본 시편을 끝맺고 있습니다(12).
내 마음에는 교만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지켜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