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4일 월요일

사회적 책임

어떤 사물을 판단할 때는 정 반 이 있습니다. 정도 일리 있고 반도 일리 있습니다. 그리고 종합해서 가장 객관적인 사실에 가까운 것을 도출합니다. 김세윤 교수의 글은 미국 선거전에 이미 저도 읽었습니다. 이분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김세윤 교수가 말하는 기독교적인 가치를 힐러리가 당선 되면 실현 될 수 있습니까? 소위 ' 관용' ' 배려' 라는 미명아래 '동성애' ' 낙태'를 묵인해도 된단 말입니까? 물론 이들의 인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죄악이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행정부 아래 소위 PC(정치적 올바름) 슬로건 아래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성탄절에도 다른 종교를 배려한다는 의미로 'Happy holiday' 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겠다고 했던 초기 청교도들의 건국 이념과도 배치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유일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사는 캐나다는 이미 오래전 부터 PC(정치적 올바름)가 시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종교를 묻는 것 조차 실례로 여겨지는 분위기, 전도도 함부로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성탄절에는 ' 'Happy holiday' ' 라고 부릅니다. 캐네디언 크리스찬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꺼립니다. 지금 서양 캐네디언 교회는 지리멸렬합니다. 소위 ' 인권' 이라는 미명아래 복음의 유일성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지금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미국도 이와비슷한 형태로 갈뻔했습니다. 물론 '관용' '배려' '인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죄는 죄입니다. 동성애와 낙태는 죄악입니다.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못한다면 선교는 왜 합니까? 복음의 유일성보다 ' 관용과' ' 배려'를 더 중요시한다면 다른 종교도 존중해야 하고 전도도 선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는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가나안 일곱족속을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죽이라고 하셨을까요? 이들의 인권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왜 바울은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라고 했습니까? PC에 따르면 바울이 이런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도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왜 디도에게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 두 번 훈계한 다음 멀리하라고 하였나요?(딛3:10). 이단도 인권을 존중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 관용' ' 배려' 인권도 귀하지만 그것 보다 더 귀한 것은 복음입니다.
왜 미국의 많은 복음적은 그리스도인들이 트럼프에게 몰표를 주었습니까?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중 '무너진 기독교적 가치를 다시 세우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얼마나 실천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렇다고 트럼프에게 표를 준 그리스도인들을 근본주의자라고 한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김세윤 교수의 사고는 ' 세속적 근본주의'에 가깝습니다

김세윤 교수는 ' 종북 프레임' 으로 박근혜를 뽑았다고 말합니다. 종북을 종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 나쁩니까? 북한 사악한 3대 김씨 왕조를 추종하는 놈들이 제대로 된 놈들입니까?
그당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세운 것은 하나님이 필요하니까 세우셨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법적으로 분명히 밝혀서 헌법에 따라 처벌도 받고 물러나던지 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헌법적 가치를 지켜야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13:1-2에서 말한 요지입니다.  김세윤 교수님은 탁월한 신약신학자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신학이 다 올바름이냐? 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김세윤 교수가 있는 플러신학교의 신학은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좌파적 성향이 있는 학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 신복음주의자' 들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벤쿠버의 탁월한 복음주의 신학교인 Regent 신학교는 플러신학교를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봅니다. 김세윤 교수가 속한 학교, 그의 신학적인 분위기는 얼마든지 그와 같은 주장을 하며 힐러리를 지지 하는 것이 자연 스러운 것입니다. 저의 스승이셨고 저의 영적 메토이신 John Stott 는 복음의 균형을 강조하셨습니다.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 말입니다. 사회적 책임은 이 사회에 곳곳에 복음적 가치를 세우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면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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