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4일 토요일

민감성

행8:26-40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부러움으로 빌립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의 사역을 명확히,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장면을 보면서 말입니다(26).  빌립처럼 저의 사역도 그렇게 인도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은  빌립으로 하여금 이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후 홀연히 그분이 원하시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39-40). 상상이 잘 안되는 장면입니다.  사마리에서 전도하던 빌립을 가사로 가게 하시고, 내시를 만나게 하시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지시하시고(29)..  비단 빌립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빌립에게 말씀하셨던 성령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많은부분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그냥 지나치는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영적민감성이 있다면 성령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빌립이 입을 열었습니다"(35).  문자적으로 말하면 "빌립이 그의 입을 열었다"고 해야 합니다. 입을 열지 않고는 복음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전하자는 가 없이는 들을 수 없습니다.  듣는 자가 없이는 전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전하게 하시고, 듣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빌립으로 전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지성과 감정, 의지가  없는 로버트 처럼 움직인것은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접고, 성령님의 인도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생각이 많습니까? 생각이 많으면 민감해질 수 없습니다. 분주하면 민감해 질 수 없습니다. 고독하지 않고는 민감해 질 수 없습니다. 때로는 외로움과 고독에 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참지 못합니다. 빠른 속도와 분주함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  빌립을 보면서 단순함을 봅니다. 해야 할것과 하지 말아야 할것을 구분함을 봅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면 되고, 악한 것은 피하면 됩니다. 단순함은 영적 민감성과 관계가 깊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해야 성령님이 예리하게 사용하실 것 입니다.



2012년 7월 13일 금요일

시몬을 보면서..

행8:9-25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사마리아에 시몬은  마술사였습니다.  마술을 행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자칭 큰 자라 하며 하나님 처럼 군림했습니다(9). 하지만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자 그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짜는 진짜가 나타나면 그 정체가 밝혀집니다. 가짜도 내심 진짜를 존경하게됩니다. 시몬이 그러했습니다. 자신이 전혀 경험해 보지못했던, 알지도 못했던 신기한 것들을 빌립을 통해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습니다(13). 할수만 있으면 빌립이 행하는 능력을 자신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돈을 주고라도 그 능력을 사고 싶었습니다. 성령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19-20). 시몬의 실수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빌립과 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영적 능력을 가지길 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로 부터 이전보다  더 큰 주목을 받기를 원했기에... 사역자들도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합니다. 주님이 입혀주시는 능력이있어야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능력있는 사역을 통해 유명해지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면  시몬의 모습과 다를바 없습니다. 둘째,그의 실수는 하나님과 거래를 할려고 했습니다. ..  하나님! 저의 신앙을 보십시오. 주일을 성수 하고, 성실하게 십일조를 드리고, 매일 성경을 읽고, 정한 시간에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혹은  조건을 달면서.. 주님! 저에게 이렇게 이렇게 해주신다면 저는 주님을 위해 이것, 이것을 하겠습니다. 이 역시 시몬의 모습과 다를바 없습니다.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마7:11). 그것은 정확히  선물입니다. 선물은 사거나, 댓가나  혹은  거래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닙니다.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나에게는 시몬과 같은 마음은 없습니까?

2012년 7월 12일 목요일

도구

행7:54-8:8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회개는 커녕 마치 짐승들 처럼 이를 갈았습니다(54).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달려들어(57),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첫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더 모진 박해가 초대교회에 다가왔습니다. 사도외에는 모두다 피난길에 올랐습니다(8:1). 모진 고난이 오고 박해가 찾아왔지만 이들의 믿음은 연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 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8:4). 박해로 인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주님께서 이들을 통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통해 도리어 기쁨이 넘쳤습니다. 특히 사마리아 지역으로 피신해 사역을 하던 빌립집사의 사역은 두드러졌습니다(8:5-8). 빌립도 스데반 처럼(6:8-10)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  유대인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교회를 무섭게 핍박할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핍박을 통해 힘든 것 보다, 이들을 통해 일어나는 기적, 치유, 거듭되는 사람들의 회심으로 인해 도리어 기쁨이 넘쳤습니다. 또한  앞으로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해 무슨 일 을 계속하실지 모르는 알수 없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는 일을 당할 경우가 많습니다.  기쁜일도 있지만,  실망할때가 더 많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함으로 모진 박해가 찾아온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실망할 일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교회로 하여금  이방인 선교를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고난이라는 수단을 통해). 고난과 박해가 없었다면, 흩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교는 커녕 안일과 부패에 빠질수 있습니다. 고여있으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는 실망, 낙심, 좌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건 마다 하나님의 뜻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도구일뿐입니다. 도구는 주인의 손에 있을뿐, 실망이나 좌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

2012년 7월 11일 수요일

먼저 자신에게..

행7:37-53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스데반은 해박한 성경지식과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그의 청중들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역사적인 이야기는  무의미 합니다. 누구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조상들이  하나님께 보여준  불신실했던 모습과 선지자들을  핍박했던 것들을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마 본문 50절 까지는 스데반의 설교에 동의 했을 것 입니다. 갑자기 스데반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도  같은 사람들이다"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51). 자신들에게는 무감각 했던 이들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성경을 읽고 남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조상들의 행한 일들을 알고, 자신들도 같은 일을 행하였지만, 자신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 일 수 있고,  바로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자칫 말씀의 잣대를  자신 보다 남에게  들이댈수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다는 사람일수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형은 경건한 것 같지만 속에는 감추어진 은밀한 죄가 있을 수 있고, 겉은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내면에는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차 있을수 있습니다. 남을 위로한다고 하지만 위로 받아야 할 사람, 치유한다고 하지만  치유받아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닌 자신입니다. 말씀을 통해 새로워져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은 '남이 아닌 먼저 자신에게'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부르심

행7:17-34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스데반은  계속되는 그의 설교에서 모세의 생애를 이야기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한 지도자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수여한 사람입니다. 출생 때 부터가 범상치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장 극심한 고난을 받을 당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가 태어났을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20) 였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아이'라고 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가 넘쳤던' 사람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태어날 시기에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은  다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태어난 처음 3개월은 친어머니에게서 양육을 받고 그 후 애굽의 궁중에 입양이 되어 궁중에서 양육을 받았습니다(21). 모세를 보호하시는 섬세한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애굽의 궁중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몸속에는 히브리 사람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  철저한 히브리 사람임을 자각하였습니다. 동족이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혈기를 발산했습니다(24). 40세에  하나님이 자신을 민족을 구원할 지도자로 삼았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25). 결국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에게 거부를 당한다면 ' 부르심' 을 의심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도 오랫동안 목회가 뜻대로 잘 안될 땐  부르심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34).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부르심을 외면, 도망을 쳤다면, 하나님은 도망친 그 장소에  찾아가셔서 다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사전에는 '포기'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들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  성직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일만 성직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  세속적인 직업, 모두 성직입니다. 성직이 아닌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삶 자체가 성직입니다. 그 일이 무엇이 되었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일과 세속의 일을 구분하여 생각한다면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직업에  불성실 하다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그런 부분이  없습니까?

2012년 7월 9일 월요일

이루어가시는..

행7:1-16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억울하게 공회앞에 서게 된 스데반은 자신이 옳다 그르다 하고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법정에 세운 사람들과 공회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스데반은 역사에 해박했고, 유대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복음과 연결 시키는 탁월한 영적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는 매우 긴 설교였습니다. 그의 설교에서 스데반은 2가지 주요 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유대 지도자들은 오랜 역사동안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자주 배척했다는 사실, 둘째,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단계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첫번 준비가  아브라함을 선택하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창12:3).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 구별하신 민족입니다.스데반이  설교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와 역사를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시고, 보내시고, 약속하시고, 징계하시고, 구원하시고. ..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순례의 길 마다 하나님의 기가막힌  인도가 있으셨습니다. 때로는 어떤 사건을 통해, 기쁘던, 좋지 않던,  아픔을 주시기도. .. 그분의 계획에 따라 주권적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는  이성으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넓고,  깊으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계획을  삶속에서 극히 작은 부분만 볼 수 있습니다. 신실한 주님의 종이었던 스데반이나, 사사건건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하던  유대지도자들이나,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주권속에서 볼 때 한 줌에 재에 불과 합니다. 인간의 역사, 세상에 돌아가는 일들..  무슨일이던 너무 기뻐하거나, 낙심하거나, 흥분하거나, 요란하게 떠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루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조용히 그분의 주권에 순종할 뿐입니다.  다만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위대한 뜻이  삶과,가정에, 교회와 나라에 이루어지도록 기도  하는 것 뿐입니다.

2012년 7월 8일 일요일

들을 때 마다

시24편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이 시편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권능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위대하시고 , 존재하는 모든것들이 다 그분의 것입니다. 이분의 이 능력이 초대교회를 통해 그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초대교회는 살아 있고 능력이 넘쳤으며 많은 표적과 기사들, 악한 영에 눌린 자들 수 많은 병자들이 치유받고, 그들이 증거하는 복음을 통해 죄악에서 신음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는 일들이  매일 일어났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투옥된 그분의 종들을 구하기 위해 천사를 보내시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경외하고 순종해야 할 분입니다. 하지만 시편기자는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데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분의 존전앞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3). 하지만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려면 '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 존전앞에 나아가기를 원하는자는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4)가 되어야 함을 강조 합니다. .. 여기 '손'이라 함은 행동을 상징합니다.  '손(행위), 마음, 말' 이 등장합니다.  손과 마음과 말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즉 마음이 정결해야 행동과 말이 정결할수 있고, 행동이 정결하고  말이 정결함은 마음의 정결함을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이 의가 있어야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은  그 '의'를 하나님에게서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 ..즉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의는 하나님의 의 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의 보혈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그의 피 믿으오!".
주님의 보혈! 수 없이 듣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상한것은  들을 때 마다 영혼이  살아나고, 들을 때 마다 죄에서 자유케 되고, 들을 때 마다 영적으로 소생하는 힘이 생깁니다.
 주의 보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