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7일 목요일

사42: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 나의 종"(1)이라는 단어가 본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면 이 종은 누구입니까?
우선 이스라엘이 주님의 종입니다(41:9).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종입니다(고후6:4).

또한  '종'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보여줍니다.

이'종'은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시시고 기뻐하시는 존재입니다(1).  조용한 권위와 긍휼롸 진실과 정의를 가지신 분 입니다(2-3).

빛을 가져오시고(6-7), 영광을 받으시고(8), 성령을 통해 능력을 행하십니다(1,6).

가장 위대한 종,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을 따르는 자 들의 완벽한 종의 모델이 되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종의 입에서는 주님의 말씀 처럼 " 나는 무익한 사람이고 내가 해야 할일을 한것 뿐이라고 말이 있을 뿐입니다"(눅17:10).

종은 주인이 받아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한는 자 가 아닙니다. 오직 주인을 위해 일할뿐입니다.
종은 오직 섬기는 자요, 종은 주인이 기뻐하면 그것으로 행복해하는 자 입니다.

새 교황이 탄생했다고  세계인들이 열광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이라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더 열광하며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앞에 화려한 가운을 입고 등장한 그의 모습속엔  2천년전 유대땅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인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신것 처럼  낮고 겸손하며 섬기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사순절 기간을 지내면서 그리스도의 종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2013년 3월 6일 수요일

미래의 소망으로..

사41:1-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매일 세계각국에서 일어나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북한의 핵문제, 세계경제위기, 시리아 내전등 세계는 늘 불안정하게 보입니다.

이사야가 본문을 기록할 당시에도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도 복잡한 국제정세 아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있던 바벨론도 이제는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강자로 페르시아가 점점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 핵심 인물이 페르시아왕 고레스입니다. 물론 이사야가 예언한지 160년후의 일이지만 이사야는 고레스가가  세계정복 전쟁에 나설것이고 그의 발길이 닿는 곳 마다 나라들을 정복할것임을 말씀합니다(3).

남에 나라에 포로 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야말로 가장 작고 힘이없고,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14). 그러나 이사야는 그런 상황에서 살고 있던 이들에게 희망의 멧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대국들이 횡포를 부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약한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결국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 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입니다(1-4).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것,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를때 "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8)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실것입니다(14).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한 종입니다(9).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환경을 새롭게 하실것 입니다(17-20).

이사야의 멧시지는 이스라엘에게 큰 위안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현재 매일 같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결국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습니다. 모든일들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실것 입니다(롬8:28). 이것이 역사의 종착점입니다.

이러한 미래의 소망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샬롬!

2013년 3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의 은혜

사40:12-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의존적인 존재입니다.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영광과 경배를 드리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의 본분을 떠나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인간인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가르칠수 없고(13-14), 인간이 아무리 귀한 것을 드려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16).

이 세상, 세상의 나라들도 그 어떤것들도 하나님 눈 앞에는 ' 빈 것' 같은 존재입니다(17).

자연적인 인간(구원받지 못한)은 하나님을 그들의 크기에 맟출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우상입니다(18-19).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어떤분이심을 소개하며 그분의 위대하심, 장엄하심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을 비교하며 우리의 눈을 창조주 하나님께로 이끌고 있습니다(22-31).

 인간의 존재가  나약해도 하나님에게는 결코 하찮은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너무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기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말만 들어도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2013년 3월 4일 월요일

영광의 하나님

사40: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집앞마당에 잔디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두가지일을 동시에 해야합니다. 하나는 잡초를 제거해주는것과 다른 하나는 잔디를 자라게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이와같습니다.
영광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은 악인들은 심판하시고, 의인들에게는 축복으로 임하십니다.

침례(세례) 요한이 주님이 행하실 사역에 대해 소개할때 본문의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자신은 물로 침례(세례)를 주지만 주님은 불과 성령으로 침례(세례)를 주시겠다고 했습니다(눅3:16).

본문 1-2절에서는 위로하라는 음성이 들리더니 6-7절에는 위로와 정반대의 말씀이 나옵니다
 인간의 육체는 풀과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풀처럼 때가 되면 마르고, 꽃처럼  그 아름다움도 시든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것들은  한시적(限時的)입니다. 인간이 가진 부귀영화, 영광은 때가되면  시들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영광은 영원하십니다.

풀이마르고 꽃이 시듬은 하나님의 영광을 강렬한 태양에 비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떠오르는 태양과 같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산들도, 골짜기도 방해할수 없습니다(3-5).

태양처럼 떠오르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거룩하지 못한것들은  태우시고 시들하게 만드십니다(7).

또한 하나님의 임재는 목자의 모습으로 임하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그분의 능력의 팔로 어린양을 품에 안으시고 보호하십니다(11).

그의 품에서 빼앗아갈자 없습니다.

영광의 하나님!
떠오르는 태양처럼 임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목자와 같이 오셔서 나를 그분의 팔오 안으시는 영광의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2013년 3월 3일 일요일

공의

시편58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세상의 불의함은 타락한 인간 본성에서 나온 결과(結果 )입니다.
특히 권력은 쉽게 부패하며 권력자들은 쉽게 타락할수 있습니다(1-2).

시편기자는 불의한자들, 혹은 타락한 권력자들의 악행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3-5).

더 나아가 이들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6-9)

악인들의 망함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 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11).

캐나다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이런 악한자들의 횡포를 잘 느끼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한국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질 것 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매일의 삶속에서 이런 악한자들이 악행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더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지구 곳곳에는 불의가 더 융성하고, 불의하고 악한 권력이 사람들을 압제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저 북한 땅 정치범 수용소에서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비록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한국 사회이지만 아직도 가진자들의 횡포가 있습니다.
 악덕 기업주들의 횡포에 시달려도 말한마디 못하고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불의!
힘이 없어서 당하고만 사는 사람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곳에서 압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도록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2013년 3월 2일 토요일

언제 어디서든

행16:16-4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12)였고, 군인도시로 로마의 많은 군인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조용한 이 도시를 소용돌이치게 만들었습니다.

복음은 불의한 세상에 소동을 일으킵니다. 박해가 임하든, 변화가 일어나든 일은 일어납니다.
왜 박해를 받습니까? 십자가의 복음은 죄로 인한 인간의 교만(자기의 의)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왜 변화가 일어납니까?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여종이 점을 쳐 얻어진 많은 수입으로 안락하게 살아가던 여종의 주인에 수입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고(19), 자신들이 없어진것을 안 간수가 자살할 마음을 가지게 했고(27)또한 감옥에서 조용히 떠나기를 거부했습니다(37).

그가 전한 복음을 들은자들은  삶과 태도가 변화되었습니다(34,40).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가다보면  이렇게 많은 일들을 목겨하게 됩니다. 때로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핍박을 당하고 기적이 나타나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구원과 삶의 변화..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드라마틱합니다.

또한 바울은 복음을 전할 기회만 주어지면 회당이든, 감옥이든 서슴치 않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반드시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복음이 전해질때  절대로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바울처럼 언제 어디에서든 복음을 전하십시오.

세 가지 요소

행16:6-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로 바울 일행은 유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누가는 바울의 두 번째 전도여행을 통해 바울이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13).
하지만 그는 많은 이방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점치는 여종, 그의 고용주(16),간수(29), 평범한 시민들(17:17), 철학자들(17:18).

바울의 첫 번 전도여행에서 성령님의 주도적 인도하심을 보았습니다(13:1-4). 본문에서도 성령은 바울이 전혀 생각 하지 못한 곳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바울의 생각으론 아시아쪽으로 가는것이 좋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곳은 경제 활동이 활발한곳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합리적인 일입니다.그러나 바울 일행은 아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습니다(6).

내가 편한곳, 내 생각에 더 합당한곳, 더 익숙한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생각과 다른곳, 전혀 다른일들을 하길 원하시고 인도 하실때가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또다시 성령님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바울은 20:6까지 드로아(8)에서 복음을 전할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한 하십니다
.성령님은 드라마틱하게 바울 일행을 빌립보로 이끄셨습니다.
빌립보에 도착하자  바울은  평소 습관대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빌립보에는 회당이없었습니다(회당은 최소 10명이 있어야 생길수있음)

회당과 비슷한 기도처가 있었고  그곳의 대부분은 여자들이었습니다(13).
이들이 나중에 빌립보 교회의 기초가 됩니다.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고 본격적인 유럽전도가 이루어집니다. 유럽전도는 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회당이나 기도처를 찾는 인간의 상식과 성령님의 간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이 합쳐져 이루어졌습니다.

상식(Common Sense), 성령님의 간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세 가지 요소임을 다시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