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1일 목요일

고상한 생각

사람은 생각하는데 따라 사람의 격이 달라진다. 고상한 생각,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인품이 형성이 되고 좋지 않는 생각을 하면 그 생각대로 그 사람이 형성이 된다.가끔 주변에 좋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날때 마다 행복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부러운 생각이 더 앞지른다.참으로 격이 높고 고상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힌 사람들, 말씀에 사로잡혀 늘 말씀안에서 계획하고 말씀을 통해 그 생각이 신령하고 고상한 사람들이들은 스스로도 행복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다. 이왕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면서 이런 삶을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세상에도 행복하고 주님 앞에 가서는 상급을 받는 정말 축복된 삶인것이다.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이사야32:8)

2007년 5월 24일 목요일

편견

사람들은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본다. 그러다 보면 오해하는 일도 많이 생기고 마음에 상처도 받고 그리고 분노 하기도 한다. 인간이 이만큼 오류 투성이다.

그런데 편견을 버리기가 참으로 힘이 든다. 이것은 비단 개인만이 아니다. 인종간에 편견이 있을수 있고, 문화, 언어의 충격에서 오는 편견도 있다.그중에 인종간에 편견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악이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이런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다.특히 백인들만 모인 교회는 흑인들이나 동양인들은 들어가기가 매우 낯설다.

과거 유대나라도 이런 인종적인 편견이 있었다. 그것은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드시면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의 선행을 비유로 들면서 유대인들이 가진 고정적인 편견을 깨트리셨다.

평소 사마리아인들들을 무시하는 유대인중 하나가 강도를 만났는데 정작 그를 도와준 사람은 제사장도 아니고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편견 인종적인 편견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죄악임을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곳 캐나다에 살면서 특히 다민족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혹 이런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아니한지 오늘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두려운 마음이 든다.

2007년 5월 21일 월요일

하나님의 일군

교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한다. 물론 교회에서 성직자로 세움을 받은 사람을 일군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따지면 모든 성도들이 다 일군이다.그러면 일군이 하는일이 무엇인가? 무엇보다더 믿음이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하는것이다.

남을 강하게 할려면 자신이 먼저 강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강함은 영적으로 강함을 말한다.

영적으로 강해질려면 기도와 말씀 묵상을 습관화 해야 한다. 운동을 하면 신체가 건강해지듯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것은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강하게 하는것이다.

그리고 일군은 믿음을 격려 하는것이다. 약한 형제를 판단하지 말고 그들을 늘 격려하고 믿음을 세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말로 되는것 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는것이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를 사모 해야 한다.

"…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며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살전3:3)

2007년 5월 15일 화요일

자녀 교육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리고 자녀를 양육해야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

하나님이 자녀를 부모에게 맡기실때는 이런 책임을 부여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성경에 자녀를 교육 시키면 부모는 쉼을 얻는다고 잠언에 나와 있다.

자녀들 가운데 평생 부모에게 짐을 지워 주는 자녀가 잇는 반면, 부모를 영광스럽게 해주는 자녀가 있다. 이것은 교육의 결과이다.

자녀 교육이 잘되었을때 부모의 마음에 쉼이 있다. 왜냐하면 부모는 언제나 자식 생각을 하기에 그러하다.

자녀 입장에서도 부모에게 효도 하는 것은 스스로가 설수 있는 자리에 서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효도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 부터 교육을 시켜서 자녀들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호감을 갖고 그래서 성공적인 삶을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것이 축복된 가정이 아니겠는가?

2007년 5월 11일 금요일

어버이 주일을 맞이 하면서

효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부끄러워 진다.

필자는 효자가 아니기에 그러하다.

세상에서 부모님을 그렇게 공경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부러워 진다. 나도 저렇게 해보았으면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의 아버님은 캐나다에 오는해에 세상을 떠나셨다. 살아생전에 좀더 더 잘해드릴걸 하는 마음은 늘 구태의연한 생각이라고 생각해보았지만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리고 필자의 어머님은 서울에 살고 계신다. 한국의 전통적인 예를 보아서 장남인 필자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데 지금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그래서 늘 죄송한 마음으로 산다.

그러나 신앙인의 견지에서 보면 어머님을 위해 기도하는것이 가장 어머니를 위한 선물이 아닌가 한다.

라는것은 공경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공경은 내적인 마음의 자세이다. 마음으로 늘 어머니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는 것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것은 필자를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인도해주신 부모님의 큰 사랑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 한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고향의 푸근한 마음을 느낄수 있어서 감사 하고 좋은 신앙의 부모님을 저에게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2007년 5월 9일 수요일

자조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은 사무엘 존스의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노력하고 땀흘리고 애쓰는 사람을 도우신다. 성경에도 "네가 땀을 흘려야 밥을 먹을것이다" 라고 하지 않앗는가?

노동이란 하나님의 형벌로 주어진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것이다. 노동하는자는 정신이 건강해지고 육체도 건강해진다.

노동하지 않고 빈둥 빈둥 노는자는 정신도 황폐해진다. 어느 가족이 소위 피씨방에서 하루종일 지내는 가정이 잇었다. 남자는 일도 하지않고 하루 종일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게임을 하엿다.

옆에는 부인과 11살 먹은 딸아이 그리고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아이가 잇었다. 이들은 이 피시방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라면을 끓여 먹고, 씻지 못해서 냄새가 나서 피시방 주인이 나가 달라고 하면 다른 피시방을 전전한다.

때로는 거리에서 잠을 잔다. 소위 노숙자 가정이었다. 남자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고 노동판에서 일을 하고 오면 그 돈으로 피시방에서 생활을 했다.

정말 심각한 지경에 잇었다. 문제는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아이들 장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결국 방송국이 이들을 알게 되었고, 결국 이들은 주위 도움으로 임대 아파트도 얻고, 재활의 길을 걸을수가 잇었다.

이것을 보면서 아무리 힘들고 그래도 어떻게 지경까지 사람이 갈수 잇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게으름이 만성화 되면 결국 그것에 익숙해진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무슨일이던 마다 하지 않고 해야 한다. 일을 하고 보람을 찾는것이 아니라 일을 함으로 보람을 찾는것이 바로 인생인것이다.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 그시간에 일을 하라! 무엇이던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하기에 나름이다.

위대함은 다른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바로 열심이 일을 하는데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을 하는존재로 만드셨고 일을 통해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2007년 5월 8일 화요일

평화를 만드는자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하루가 멀다하게 폭력 사건 살인 사건, 테러, 자동차 충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는 좋지 않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요함, 평화, 사랑, 은혜 이런 단어들과는 정말 거리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단어는 오직 교회안에서만 설교에서만 들을수 있는 단어와 경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오직 평화를 만들고 사랑을 만들고 고요함을 만드는 존재는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아닌가 한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자는 평화를 만드는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다(5)

그렇다. 그래서 이것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말씀이다. 평화가 없는곳에 평화를 만들고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만는 이것이 우리가 할일이다. 이것이 구원 받았다고 하는 믿음의 하나의 표시이기도 하다.

우선 우리 가정부터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 평화가 넘치는 가정,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과 건강도 넘친다. 그리고 나아가 교회에 평화를 만들도록 해보자.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평화를 만드는 것을 힘을 보자. 그안에 참된 천국의 행복과 기쁨을 경험 하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