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아름다움

아가서6:4-7: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랑과 감정을 실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녀의 육체의 아름다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품이 넘치는 자세(7:1), 그녀의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매력(6:10)을 종합한 말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육체적인것에만 국한된것이 아니라,  기품과  자체의 매력, 모든 조화 속에서 우러나옵니다.

미(美)의 기준은 모든 아름다움의 조화입니다.

본문에서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을 그린 이 사람처럼, 우리의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신부인 교회를 보시는 눈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각자의 개성, 내게 속한 모든것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이렇게 아름답게 보시고 사랑하심을 깨달으십니까?

뿐만아니라 신랑되시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묵상하는 오늘 하루가 되십시오.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변함이 없으신

아가서5:2-6: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을 읽으면 흐름이 반전되어  무슨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알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입니다.

남편이 집에 늦게 들어왔는가봅니다. 그의 머리는 이슬에 젖어있습니다(2). 아내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습니다(3).

그녀는 남편을 맞이할려고 벗었던 옷을 다시 입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화가 났는지 문을 열어주지 않고 밖에 세워두었습니다.

남편이 문을 열어달라고 부르니까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 마침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4-5). 하지만 남편은 자취(?)를 남긴채 이미 다른데로 가버렸습니다(6).

그녀는 남편과 화해할려고 애를 썼지만  때는 늦었습니다.남편은 이미 가버린 상태입니다.

인간관계는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습니다. 살면서 남과 부딪힐때가 많습니다. 남편과 아내도 그렇습니다.

그럴 때 어느 한편이  먼저 화해 할려고 애를 쓰다가 거절을 당한다면 그 사람 역시 마음의 문을 닫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깨어진 관계가 회복하기가 힘들때가 있습니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기전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을 연상케 해줍니다. 변덕을 부리는 쪽은 하나님이 아닌 바로 나입니다. 그럼에도 변함이 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주는  본문입니다.
항상 변함이 없으신  주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나의 사랑하는

아가서4:1-5: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지금  두사람은 결혼을 했습니다(8-12,5:1).
본문은 신랑이 자신의 신부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가득 넘쳐 있습니다.

현대인의 귀로 들어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남녀 간에 사랑입니다.

어떤 시인은 사랑에는 다섯가지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좋은 선물을 줄려고 애를 쓰고,  섬기고, 육체적인 친밀감... 연애하는 젊은 연인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본문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수려한 미사여구로 자신의 신부에게 사랑을 표현합니다. 결혼을해 한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남편과 아내사이에서 이런 표현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결혼하면 오히려 서로에게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어떤때는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가정, 특히 아내와 남편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남편을 서로가 더욱 귀히 여기며 살아가야함을 본문을 묵상하면서 생각하게 해줍니다.

오늘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남편이나 아내에게 
또한 하나님에게  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나의 삶속에

아가서2:8-3: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애틋한 감정을 주며 출발하고 있습니다. 여인은 집에 있고, 이 여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를 부르고 있습니다(8). 그러나 그녀는 그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는 창살틈으로 그녀를 엿보고 있습니다(9).

그러나 반전이 되어 3장이 시작되면서 이 여인은 그 사람의 구애에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1-4). 도리어 그녀가 그를 찾고 있습니다(2).

그녀는 그를 자신의 어머니집으로 인도 하고 있습니다(4). 이것은 온가족이 그를 환영하는 의미이고, 이 여인이 그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또한 아주 섬세하면서도, 사려깊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고 있습니다(5).

드디어 이들이 결혼을 합니다.
 6-11절에는 이들의 결혼식 장면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에 의하면 이 사람은 그녀를 자신의 신부라고 6번을 부르고 있습니다(4:8-12;5:1)

본문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를 표상해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녀의 가장 내밀한 방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십시오(4).

나의 사랑하는 주님을 나의 삶의 어느부분에 모시고 계십니까?

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합당한 감사와 찬양

아가서1:1-2: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아가서는 한편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읽는 느낌을줍니다. 그러나 아가서는 깊은 영적의미가 담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에는 왕(솔로몬)으로부터사랑을 받는  한 여성이 등장합니다 (2-4). 이 여인은 왕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왕이 어떻게  자기 같은 사람을 좋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가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6절을 요약하면 그녀의 피부가 검다는데 있습니다(원래 검은 것이 아닌 햇볕에 거슬림,6).

그녀는 예쁜모델과 같은  스타일이 아닌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로 부터 거절을 당할까봐, 어딘가에 숨과 싶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를 향한 왕의 마음은 여전히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9-13).

본문이 주는 영적인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이 여인처럼 죄로 검게 거슬린 나를 과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의 은혜와 자비하심은 한이 없으십니다. 왜냐햐면  영원한 중재자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하나님과 나와의 대화록이라고  바꿔 생각해보십시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분께 합당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십시오.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신랑되시는 그리스도

시편45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왕을 위한 말씀입니다. 이 왕은 특별한 사람인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2,7).

아가서와 같이 이 시편은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8절이하에는 결혼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결혼은 한마디로 웅장합니다(8-15).

세상의 모든 결혼식은 다 기쁘고 인생에서 특별한 행사 입니다. 결혼은 떠남을 의미합니다.
부모로 부터 떠남을 말합니다. 작년에 영국의 왕자 윌리암과 게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왕자도 결혼을 하면 새로운 관계를 위해 그의 가족을 떠나야 합니다(10, 창2:24, 엡5:31).

신약성경은 신랑으로서 그리스도, 신부로서 교회를 말씀합니다(고후11:2,엡5:27, 계19:7,21:9)
본 시편도 신랑 그리스도와 신부인 우리와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신부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랑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상해보십시오.

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내일 종말이..

막13:28-3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13장 전체는 두 사건이 얽혀져 있습니다. 그들중 하나는 과거의 사건 즉 예루살렘 성전 파괴(14) 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사건으로 주님의 재림입니다(26).

본문은 무화과나무잎의 비유를 드시면서 주님은 재림과 연관시키시고 계십니다. 무화과 나무 가지고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것은 여름이 가까워짐을 표시해줍니다(28).

무화과 나무잎의 징조 처럼 5-13절의 사건은 재림의 하나의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십니다(32).

주님이 재림을 말씀하실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삶의 변화입니다. 주님 재림 시기를 알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앞에서 합당한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재림에 대해 우리가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갑자기 오실것이라는 사실입니다(35-36).

본문 말씀은 2천년전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이지만 21세기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경고의 말씀입니다(31).

우리주변에는 항상 거짓 메시야, 굴절된 인간관계, 박해등이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지가 오래되었지만, 그분의 초림이 역사적인 사건임이 분명하셨듯이 재림도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 ' 깨어있으라'(31)가 2천년전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고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만일 내일 종말이 온다는 것을 안다면 오늘 나의 삶에서 변화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왜 아직 변화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