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1:17-2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그의 가르침이 유대인들에게 커다란 반감을 사고 있음을 들었습니다.(21).
사실 바울은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할례에 대해
참 할례는 외부적인 할례가 아닌 마음에 행함을 가르쳤습니다(롬2:25-29).
그러면서도 복음외에 다른 문제로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해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롬14:13-14).
야고보는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이 반감을 완화 시키기 위해
바울로 하여금 결례를 행하며, 예루살렘 교회에 서원한 사람들의 머리깍는 비용을 지불할 것을 제안했습니다(24).이렇게 함으로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어줄려고 했습니다.
야고보의 제안은 지혜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속박으로 자유케 하셨습니다(롬8:1-2, 갈5:1).
그럼에도 교회연합과 복음을 위해 때로는 그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진리에 위배되지 않는 한).
우리는 세상의 문화에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지만(요일2:15-17).
이 세상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위해 세상 문화에 지배를 받는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것입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2014년 2월 27일 목요일
오늘 내가
행21: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을 성령님께서는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두로에서는 형제들을 통해 하셨고(4), 가이사랴에서는 아가보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11).
모든 형제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간곡히 권면했습니다(4,12).
하지만 바울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고난과 순교를 각오하고 있었습니다(13).
그는 복음전도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당시 바울 곁에 있었다면 우리는 바울에게 무엇이라고 말할것입니까?
그에게 간곡하게 권하여 우리 곁에 머물게 할것입니까?
아니면 고난 받을 그를 격려 할것입니까?
우리는 그의 안전을 더 생각할 것입니까?
아니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할것입니까?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면제해주신다고 약속하신적이 없으십니다(요16:33).
그러나 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순간에서든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돌아보고 격려'가 필요 합니다(히10:24)
오늘 내가 기도하고 격려해줄,사역자나 형제, 자매는 누구입니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을 성령님께서는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두로에서는 형제들을 통해 하셨고(4), 가이사랴에서는 아가보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11).
모든 형제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간곡히 권면했습니다(4,12).
하지만 바울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고난과 순교를 각오하고 있었습니다(13).
그는 복음전도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당시 바울 곁에 있었다면 우리는 바울에게 무엇이라고 말할것입니까?
그에게 간곡하게 권하여 우리 곁에 머물게 할것입니까?
아니면 고난 받을 그를 격려 할것입니까?
우리는 그의 안전을 더 생각할 것입니까?
아니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할것입니까?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면제해주신다고 약속하신적이 없으십니다(요16:33).
그러나 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순간에서든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돌아보고 격려'가 필요 합니다(히10:24)
오늘 내가 기도하고 격려해줄,사역자나 형제, 자매는 누구입니까?
2014년 2월 26일 수요일
바울처럼
행20:13-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항상 개인이나 대중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려고 힘을 썼습니다(20).
이것이 "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임을(24)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본문에서의 바울처럼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직업이 있고, 가정이 있고, 사회생활이 있고, 혹은 취미나 여가 생활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처럼 동일하게 부르심을 받지는 않았습니다(약3:1)
모두가 다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동일합니다.
바울과 같이 열심을 품고 주를 위해 사는 것일겁니다(롬14:8).
주님!
오늘 저의 삶이 헛된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시고
바울 처럼 살게 하소서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항상 개인이나 대중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려고 힘을 썼습니다(20).
이것이 "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임을(24)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본문에서의 바울처럼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직업이 있고, 가정이 있고, 사회생활이 있고, 혹은 취미나 여가 생활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처럼 동일하게 부르심을 받지는 않았습니다(약3:1)
모두가 다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동일합니다.
바울과 같이 열심을 품고 주를 위해 사는 것일겁니다(롬14:8).
주님!
오늘 저의 삶이 헛된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시고
바울 처럼 살게 하소서
모든 능력은..
행20:25-3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교우들과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25).
바울은 3년동안 에베소에서 쉬지 않고 복음 진리를 가르쳤고 눈물로 목양을 했습니다(31).
마치 자녀들을 양육하는 아버지처럼, 교회의 지도자로서, 동역자로서, 교회의 한멤버로서, 신앙의 친구로서 그들을 섬겼기에 그들과의 이별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떠나면 거짓선생들이 교회에 들어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변형시키고 양떼들을 헤칠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30).
항상 양떼들을 걱정하는 목자로서 바울을 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과 은혜의 말씀에 그들의 영혼을 맡겼습니다(32).
목회자가 힘쓰고 수고하지만 바울처럼 나머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양들을 맡기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교우들과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25).
바울은 3년동안 에베소에서 쉬지 않고 복음 진리를 가르쳤고 눈물로 목양을 했습니다(31).
마치 자녀들을 양육하는 아버지처럼, 교회의 지도자로서, 동역자로서, 교회의 한멤버로서, 신앙의 친구로서 그들을 섬겼기에 그들과의 이별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떠나면 거짓선생들이 교회에 들어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변형시키고 양떼들을 헤칠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30).
항상 양떼들을 걱정하는 목자로서 바울을 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과 은혜의 말씀에 그들의 영혼을 맡겼습니다(32).
목회자가 힘쓰고 수고하지만 바울처럼 나머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양들을 맡기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에..
2014년 2월 24일 월요일
복음전도는
렘10:1-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는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이 행하는 가장 어리석고 무식한 행동입니다(14).
예레미야는 생명이 없고(5,9), 헛된(15) 우상과 살아계신 (10),
만물의 조성자이신(16) 하나님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가장 끈길긴 죄악입니다.
율법을 알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다백성들에게 우상 숭배가 넘쳐났고,
바울이 격분을 했던 철학의 도시로 알려진 지성적인 아덴에서도 우상이 넘쳐났습니다(행17:16). 우상숭배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보여주는 실증입니다.
오늘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돈, 섹스, 권력의 우상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복음전도는 어리석고 무식한 인간의 본분을 되찾게 해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는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이 행하는 가장 어리석고 무식한 행동입니다(14).
예레미야는 생명이 없고(5,9), 헛된(15) 우상과 살아계신 (10),
만물의 조성자이신(16) 하나님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가장 끈길긴 죄악입니다.
율법을 알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다백성들에게 우상 숭배가 넘쳐났고,
바울이 격분을 했던 철학의 도시로 알려진 지성적인 아덴에서도 우상이 넘쳐났습니다(행17:16). 우상숭배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보여주는 실증입니다.
오늘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돈, 섹스, 권력의 우상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복음전도는 어리석고 무식한 인간의 본분을 되찾게 해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 하는 것'이지요.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주변에
렘8:18-9: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예레미야의 고뇌가 잘표현 되어 있습니다.
망해가는 유다와 백성들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를 잘보여줍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감정을 백성들과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상함이 곧 자신이 상함이' 이라고 생각합니다 (21).
마치 자신이 병들어 치료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병들어 있는(죄악으로) 백성이 길르앗의 유향과 의술로 치료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22).(당시 길르앗은 의술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들에게 닥칠 모진 고난을 보면서
안타까워 주야로 울겠다고 하고 있습니다(9:1).
하지만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죄악을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9:2)
그의 감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그의 감정은 복잡하였지만 그것은 진실한 선지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그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슬픔과 탄식!
주변에 그리스도없이 죄악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본문에는 예레미야의 고뇌가 잘표현 되어 있습니다.
망해가는 유다와 백성들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를 잘보여줍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감정을 백성들과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상함이 곧 자신이 상함이' 이라고 생각합니다 (21).
마치 자신이 병들어 치료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병들어 있는(죄악으로) 백성이 길르앗의 유향과 의술로 치료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22).(당시 길르앗은 의술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들에게 닥칠 모진 고난을 보면서
안타까워 주야로 울겠다고 하고 있습니다(9:1).
하지만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죄악을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9:2)
그의 감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그의 감정은 복잡하였지만 그것은 진실한 선지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그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슬픔과 탄식!
주변에 그리스도없이 죄악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2014년 2월 19일 수요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
렘7:1-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다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항상 보호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대해 예레미야는 '아니오' 라고 대답했습니다(4)
만일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고 정의를 행한다면 하나님이 보호하시지만
그렇지 않다면 거룩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도 예외가 아닐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떠날것입니다.
전에 엘리가 제사장으로 사역했던 실로처럼 말입니다(12-15).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대표하는 곳입니다(11)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보이는 곳입니다.
유다사람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2)
한편으로는 이교도들이 섬기던 ' 하늘의 여왕'께 예배했습니다(18).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16).
역겨워하셨습니다
무슨 기도이던 하나님이 다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향기가 아닌(계5;8)
역겨운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 보다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유다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항상 보호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대해 예레미야는 '아니오' 라고 대답했습니다(4)
만일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고 정의를 행한다면 하나님이 보호하시지만
그렇지 않다면 거룩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도 예외가 아닐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떠날것입니다.
전에 엘리가 제사장으로 사역했던 실로처럼 말입니다(12-15).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대표하는 곳입니다(11)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보이는 곳입니다.
유다사람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2)
한편으로는 이교도들이 섬기던 ' 하늘의 여왕'께 예배했습니다(18).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16).
역겨워하셨습니다
무슨 기도이던 하나님이 다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향기가 아닌(계5;8)
역겨운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 보다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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