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1일 목요일

고상한 생각

사람은 생각하는데 따라 사람의 격이 달라진다. 고상한 생각,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인품이 형성이 되고 좋지 않는 생각을 하면 그 생각대로 그 사람이 형성이 된다.가끔 주변에 좋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날때 마다 행복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부러운 생각이 더 앞지른다.참으로 격이 높고 고상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힌 사람들, 말씀에 사로잡혀 늘 말씀안에서 계획하고 말씀을 통해 그 생각이 신령하고 고상한 사람들이들은 스스로도 행복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다. 이왕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면서 이런 삶을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세상에도 행복하고 주님 앞에 가서는 상급을 받는 정말 축복된 삶인것이다.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이사야32:8)

2007년 5월 24일 목요일

편견

사람들은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본다. 그러다 보면 오해하는 일도 많이 생기고 마음에 상처도 받고 그리고 분노 하기도 한다. 인간이 이만큼 오류 투성이다.

그런데 편견을 버리기가 참으로 힘이 든다. 이것은 비단 개인만이 아니다. 인종간에 편견이 있을수 있고, 문화, 언어의 충격에서 오는 편견도 있다.그중에 인종간에 편견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악이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이런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다.특히 백인들만 모인 교회는 흑인들이나 동양인들은 들어가기가 매우 낯설다.

과거 유대나라도 이런 인종적인 편견이 있었다. 그것은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드시면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의 선행을 비유로 들면서 유대인들이 가진 고정적인 편견을 깨트리셨다.

평소 사마리아인들들을 무시하는 유대인중 하나가 강도를 만났는데 정작 그를 도와준 사람은 제사장도 아니고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편견 인종적인 편견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죄악임을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곳 캐나다에 살면서 특히 다민족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혹 이런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아니한지 오늘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두려운 마음이 든다.

2007년 5월 21일 월요일

하나님의 일군

교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한다. 물론 교회에서 성직자로 세움을 받은 사람을 일군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따지면 모든 성도들이 다 일군이다.그러면 일군이 하는일이 무엇인가? 무엇보다더 믿음이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하는것이다.

남을 강하게 할려면 자신이 먼저 강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강함은 영적으로 강함을 말한다.

영적으로 강해질려면 기도와 말씀 묵상을 습관화 해야 한다. 운동을 하면 신체가 건강해지듯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것은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강하게 하는것이다.

그리고 일군은 믿음을 격려 하는것이다. 약한 형제를 판단하지 말고 그들을 늘 격려하고 믿음을 세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말로 되는것 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는것이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를 사모 해야 한다.

"…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며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살전3:3)

2007년 5월 15일 화요일

자녀 교육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리고 자녀를 양육해야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

하나님이 자녀를 부모에게 맡기실때는 이런 책임을 부여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성경에 자녀를 교육 시키면 부모는 쉼을 얻는다고 잠언에 나와 있다.

자녀들 가운데 평생 부모에게 짐을 지워 주는 자녀가 잇는 반면, 부모를 영광스럽게 해주는 자녀가 있다. 이것은 교육의 결과이다.

자녀 교육이 잘되었을때 부모의 마음에 쉼이 있다. 왜냐하면 부모는 언제나 자식 생각을 하기에 그러하다.

자녀 입장에서도 부모에게 효도 하는 것은 스스로가 설수 있는 자리에 서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효도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 부터 교육을 시켜서 자녀들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호감을 갖고 그래서 성공적인 삶을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것이 축복된 가정이 아니겠는가?

2007년 5월 11일 금요일

어버이 주일을 맞이 하면서

효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부끄러워 진다.

필자는 효자가 아니기에 그러하다.

세상에서 부모님을 그렇게 공경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부러워 진다. 나도 저렇게 해보았으면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의 아버님은 캐나다에 오는해에 세상을 떠나셨다. 살아생전에 좀더 더 잘해드릴걸 하는 마음은 늘 구태의연한 생각이라고 생각해보았지만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리고 필자의 어머님은 서울에 살고 계신다. 한국의 전통적인 예를 보아서 장남인 필자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데 지금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그래서 늘 죄송한 마음으로 산다.

그러나 신앙인의 견지에서 보면 어머님을 위해 기도하는것이 가장 어머니를 위한 선물이 아닌가 한다.

라는것은 공경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공경은 내적인 마음의 자세이다. 마음으로 늘 어머니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는 것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것은 필자를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인도해주신 부모님의 큰 사랑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 한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고향의 푸근한 마음을 느낄수 있어서 감사 하고 좋은 신앙의 부모님을 저에게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2007년 5월 9일 수요일

자조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은 사무엘 존스의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노력하고 땀흘리고 애쓰는 사람을 도우신다. 성경에도 "네가 땀을 흘려야 밥을 먹을것이다" 라고 하지 않앗는가?

노동이란 하나님의 형벌로 주어진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것이다. 노동하는자는 정신이 건강해지고 육체도 건강해진다.

노동하지 않고 빈둥 빈둥 노는자는 정신도 황폐해진다. 어느 가족이 소위 피씨방에서 하루종일 지내는 가정이 잇었다. 남자는 일도 하지않고 하루 종일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게임을 하엿다.

옆에는 부인과 11살 먹은 딸아이 그리고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아이가 잇었다. 이들은 이 피시방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라면을 끓여 먹고, 씻지 못해서 냄새가 나서 피시방 주인이 나가 달라고 하면 다른 피시방을 전전한다.

때로는 거리에서 잠을 잔다. 소위 노숙자 가정이었다. 남자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고 노동판에서 일을 하고 오면 그 돈으로 피시방에서 생활을 했다.

정말 심각한 지경에 잇었다. 문제는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아이들 장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결국 방송국이 이들을 알게 되었고, 결국 이들은 주위 도움으로 임대 아파트도 얻고, 재활의 길을 걸을수가 잇었다.

이것을 보면서 아무리 힘들고 그래도 어떻게 지경까지 사람이 갈수 잇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게으름이 만성화 되면 결국 그것에 익숙해진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무슨일이던 마다 하지 않고 해야 한다. 일을 하고 보람을 찾는것이 아니라 일을 함으로 보람을 찾는것이 바로 인생인것이다.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 그시간에 일을 하라! 무엇이던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하기에 나름이다.

위대함은 다른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바로 열심이 일을 하는데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을 하는존재로 만드셨고 일을 통해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2007년 5월 8일 화요일

평화를 만드는자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하루가 멀다하게 폭력 사건 살인 사건, 테러, 자동차 충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는 좋지 않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요함, 평화, 사랑, 은혜 이런 단어들과는 정말 거리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단어는 오직 교회안에서만 설교에서만 들을수 있는 단어와 경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오직 평화를 만들고 사랑을 만들고 고요함을 만드는 존재는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아닌가 한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자는 평화를 만드는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다(5)

그렇다. 그래서 이것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말씀이다. 평화가 없는곳에 평화를 만들고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만는 이것이 우리가 할일이다. 이것이 구원 받았다고 하는 믿음의 하나의 표시이기도 하다.

우선 우리 가정부터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 평화가 넘치는 가정,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과 건강도 넘친다. 그리고 나아가 교회에 평화를 만들도록 해보자.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평화를 만드는 것을 힘을 보자. 그안에 참된 천국의 행복과 기쁨을 경험 하게 될것이다.

2007년 5월 7일 월요일


죠지 뮬러의 생애
죠지 뮬러는 1805년 9월 27일 프로이젠 (현 독일)의 크로펜스타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거의 19세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1898년 3월10일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동안 1859년에 일어난 대각성 부흥운동을 목격한 사람이었고 그리고 디엘 무디와 찰스 스펄젼과 동역을 하였고, 허드슨 테일러의 소위 “믿음 선교”에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생애 대부분을 영국 브리스톨에서 보내었고 66년동안 브리스톨에서 목회 사역을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유명했던 것은 고아원 사역이었다 그는 5개의 큰 고아원을 세웠고 그의 생애동안 10,024명의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는 일주일에 3번 걸쳐 설교를 했는데 1830년부터 1898년 까지 적어도 만번의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그가 70이 되었을때는 그가 87세가 될때까지 17년 동안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42개의 나라를 여행을 하였고, 적어도 평균 하루에 한번 정도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삼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1892년 그의 선교여행 말기(이때 뮬러의 나이 87세) 에서부터 1898년 3월에 그가 죽기까지 그는 그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고 그리고 1834년 그가 28세때 세운 성경연구원에서 사역을 하였다 이때가 92세였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할수 있는한 매일 일했고, 하루종일 일했고, 그리고 지난 70년동안 이일은 나에게 쉬운일이었다”

그는 1898년 3월9일 수요일에 그의 교회에서 저녁 기도회를 인도하였고 그 다음날 아침에 차를 한잔 마신 다음 조용히 주님의 나라로 갔다.
그리고 장례식은 그 다음 월요일에 그가 66년동안 섬겨 왔던 브리스톨에서 엄숙하게 진행되었고 만여명의 사람들이 그의 장례를 지켜 보았다.

그는 그의 생애 동안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200번을 통독하였다.
그는 오직 기도로 현재의 화폐가치로 백만 달러의 돈을 고아들을 위해 사용하였고, 그리고 한번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직접적으로 돈을 요청한적이 없었다.

그는 적어도 68년동안 한번도 봉급을 받은적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그가 필요한 만큼의 돈을 보내도록 하였다. 그는 한번도 빚을 지거나 은행 대출을 받은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아달을 한번도 굶긴적이 없었다.그의 사역기간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이 연속적으로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뮬러는 두번 결혼을 하였다.
하나는 그가 25세때 메리그로브스(Mary Groves) 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그리고 그가 66세때 스산나산가(Suannah Sangar) 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다.메리는 그에게 4명의 아이들을 낳아 주었다. 그중에 엘리야라고 하는 아들은 한살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딸 루디아는 뮬러가 세운 성경 연구원 계승자인 제임스 라이트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첫번째 부인인 메리 그로브스는 1890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뮬러는 그가 죽기3년전에 두번째 부인을 잃게 된다.
뮬러는 메리와 39년동안 결혼생활을 하였고, 수산나와는 23년동안 결혼 생활을 하였다. 그가 64세 되던때에 그는 그의 첫번째 부인인 메리의 장례식에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그가 90세때 그는 두번째 부인인 수산나의 장례식에서 역시 설교를 하였다.

뮬러는 두아내를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내는 이별과 슬픔을 경험을 살깊이 경험해야 했다. 그는 고아들의 공급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일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았으나 그의 아내가 병석에 누워 있었을 때 그의 아내를 위한 기도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아니하셨다(이것도 뮬러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1870년 2월6일에 그의 첫번째 부인인 메리가 죽엇을 때 뮬러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녀를 이세상의 질고에서 해방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녀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죠지 뮬러는 자신에게는 믿음의 은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했다.그의 말을 들어 보자 “ 나는 고린도 전서 12:9에서 말씀하는 그런 믿음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주님을 의지했을뿐이다 진실된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 했을뿐이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셨다. 순간 순간 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셨다.”
그는 그의 전생애를 통해 고아들을 위해 오직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그의 필요를 채워 달라고 간구하였다.

원래 뮬러는 가정적으로 신앙적인 배경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불신자였고, 뮬러는 자라면서 거짓말을 잘했고, 도둑질을 잘햇다. 그의 나이 14세때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어머니가 죽어가는 그 시간에도 뮬러는 친구들고 거리에서 방황하면서 다녔다.

그리고 16세때 그는 도적질을 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갔고 그의 아버지는 그를 감옥에서 석방시키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고 그리고 그를 집에 데려다가 때리고 쉐멘벡(Schoenbeck) 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아버지는 뮬러를 할레(Halle) 대학으로 보내어 사역자가 되게 그를 준비 시켰다 왜냐하면 이렇게 한다면 뮬러가 새로운 생활을 할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뮬러는 이 학교 생활에서 영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그때가 1825년 11월 중순경이다. 이때의 뮬러의 나이가 20세 일 때 인데 그는 어느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헤로 그 모임에 계속해서 참석하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 . 그 모임은 뮬러의 일생의 중대한 터닝포인트를 제공하였다.

그 성경공부 모임에서 뮬러는 비로서 중생을 하게 된다. 그후 뮬러는 런던 선교사 협회의 선교사가 되어 영국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뮬러는 1829년 그해 여름에 몸이 아파서 테인 마우스(Teignmouth) 라고 하는 도시로 휴양을 떠난다. 그곳에서 10일동안 그의 생애에 큰 영향력을 끼친 어떤 사람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은혜의 교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구원의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 그분께서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것들 공급해주실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는 정규적인 봉급을 받지 않기로 작정을 했고 자기의 충족을 위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용청을 하지 않기로 그는 작정을 하였다.

뮬러는 기도를 했고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그분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레포트를 발간하였다. 이렇게 매해 마다 발간된 그의 레포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이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아원 사역에 도움을 주었다. 뮬러는 자기가 발간하는 레포트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의 방법임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뮬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당신이 할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시오 그렇다고 당신 한일을 믿지 마시오 오직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뮬러의 이런 믿음의 뿌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었다. 때로는 뮬러에게 금전적인 위기가 왔을때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 금전적인 필요를 채울 방법이 어떻게 오는지를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오직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전증하신 분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신다면 그들은 도움을 보내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분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뮬러의 믿음의 뿌리였다.

또한 뮬러에게 있어서 최대의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시하신 것을 보는 일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해지는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이다.그래서 뮬러는 71세가 되었을 때 젊은 신앙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사랑하는 형제 들이여 여러분들이 영적인 기쁨을 유지하는 길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는 일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 속사람을 양육하는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차례대로 규칙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자기가 좋아하는곳만 읽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영적인 앉은뱅이가 될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회심한 후 첫번 4년동안 영적인 성장이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성경을 읽는데 게을리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전체를 나의 마음으로 규칙적으로 읽어 갔을 때 나는 영적으로 몰라보게 성장 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47년동안 나의 마음에는 평화와 기쁨이 충만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성경 전체를 100번 정도 통독하였고 내가 그것을 되풀이 해서 읽을 때 마다 나의 영혼은 신선해졌으며 그리고 평화와 기쁨이 날로 더 해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뮬러의 고백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뮬러의 이 경건 생활의 방법은 그가 죽는날 까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 알고 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고 그것을 묵상하는 일이다 나의 속사람의 양식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파이프를 통해 물이 흐르듯이 나의 마음을 통해 말씀을 읽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것을 생각하고 숙고하고 그리고 마음에 적용하는 것이다.”
뮬러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쉼을 얻고 그리고 평화와 기쁨속에 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뮬러의 삶속에서 죠지 뮬러는 하나님 안에서 그의 영혼이 행복함을 누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는 보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의 하나님 안에서 깊은 확신속에서 뮬러는 세상의 욕망과 두려움에서 자유함을 누릴수 있엇던 것이다. 한마디로 뮬러의 생애는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생애 였다.

2007년 5월 5일 토요일

난소암 강의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013687

어린이날



오늘은 토요일이다.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것 같다. 필자에게는 토요일은 일종의 휴일인 셈이다. 내일 설교 원고를 가다듬고, 이것 거것 생각도 하고 가족들과 대화도 나누고…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는 끊임 없이 바쁜 생활을 보낸다.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할 시간도 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바로 어린이 날이다.(고국)


한때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매우 천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강제로라도 어린이 날을 만드신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공이 너무나 크다.



어린이는 그야 말로 꿈나무들이다. 어릴적 시간이 그의 인생을 좌우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어릴적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어릴적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울때 그것 이상 축복은 없을것이다.



요즈음 주위를 돌아보면 깨어진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그럴때 가장 상처를 받는 이들이 바로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에게 상처를 주는것은 일종의 살인 행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소자 사람을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우는 것이 낫다고 하신것이다.



우리집에도 아이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아무쪼록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음도 건강, 육체도 건강, 영적으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경건한 사람으로 커 가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