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31일 금요일

소망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소망의 출발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경의 모든 예언을 그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푯대를 향하여 달려갑니다(빌3:14)

성경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증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으로 증거됩니다. 그 능력은 영적 능력입니다. 영적 능력은 말씀에 사로잡힐때 주어집니다(사도바울, 행18:5).

에베소에서 아볼로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행18:28).

무엇이든 성경으로 해결하십시오.

2015년 7월 30일 목요일

하나님의 말씀

매일 말을 하며서 살아가갑니다. 말을 하지만 어떤말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말, 불평하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등등.. 좋지 않는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말 대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며 살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며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2015년 7월 29일 수요일

나이가 많아져

나이가 많아져 늙은이가 되면 이젠 할 일이 없다고 느껴지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힘쓰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힘을 쓰는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후손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일입니다. 이런 노년의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주님이 부르시면 깨끗하게 주님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71:18)

2015년 7월 28일 화요일

푯대를 향하여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삯을 받습니다. 삯을 받지 않고 강제로 일을 한다면 일 자체가 지옥일것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신앙생활은  보상이 따릅니다. 그 상을 위하여 믿음의 선배들은  달려 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위해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내세에는 주님이 주시는 상급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오늘도 달려갑니다.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2015년 7월 27일 월요일

모본

바울은 전도자로서, 목회자로서, 선교사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바울은 모든일에 모본을 보였습니다. 설교와 가르침은 기술이 아니라 삶과의 일치입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가르침과 행함이 일치된 지도자들,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있을때 그 주변은 이미 복음화 될 것입니다.

"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행20:35).

2015년 7월 24일 금요일

미래를 향해

어제의 일은 오늘의 거울입니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없습니다.
과거, 현재와 미래는 동일 선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속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좋은일이었던  좋지 않았던 일이었던..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마11:1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눅9:62). 푯대(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갑니다(빌3:14).

과거는 중요하지만 매여 있지 않습니다. 앞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전7:10).

2015년 7월 22일 수요일

겸손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가장 쉬운 지름길입니다. 하지만  겸손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자아에는 죄성이 있어서 겸손 보다 교만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이기적이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죄성의 뿌리에서 나옵니다. 자기 숭배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면서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셨습니다(빌2).

겸손하기 위해서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허리를 동이는 것은 겸손 하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늘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만해질수 없습니다.

"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신실함

이익에 따라 바뀌는 세상속에 삽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신실함을 말합니다.
신실함은 심지가 견고가 한 것이요(사26:3), 충성됨을 말합니다(딤후2:2).

시편기자는 신실한 길을 택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신실함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시119:30)

2015년 7월 17일 금요일

인권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왜 인권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까? 인간의 절대적 가치때문입니다.
그 절대적 가치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에 기인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이성, 도덕성, 사회성이  증거입니다.
이 기능들은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인간은 사랑을 수용할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수용할수 있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최고의 창조물입니다.

 이 시각에서 인권이 출발합니다.

시작과 끝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역사를 만드셨고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세상에는 독재자들, 테러리스트들,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 우리 눈에는 이들의 존재가 이해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임할때(계21:1), 만물이 새로워질때(계21:5) 현자연질서가 불살라질때(벧후3:7)영원한  악의 종말은 임하게 될 것입니다(계21;8).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7)

2015년 7월 16일 목요일

선택

탈북자들의 말을 들으면 배고픔을 면하려, 혹은 자유를 찾으려  탈북했다는 말을 종종듣습니다.

배고픔을 면하려는 것도 일종의 자유를 찾는 것입니다.
자유가 귀하기에 자유를 얻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친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하셨습니다(요8:32)

자유는 모든 행복의 근원입니다.
가장 큰 불행은 속박된채 끌려 다니는 삶입니다.
종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주님은 종과 자유 두가지를 제시하셨습니다.

종이 되는 것과 자유인이 되는 것 선택하기에 따름입니다.

"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예를 메지 말라"(갈5:1).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2015년 7월 14일 화요일

인간의 존엄함

주님은 세상에 계실때 병든자 . 상처받은자,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자 사회적 약자들을 도우셨습니다. 주님의 모습은  인간의 존엄함을 행함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합니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 어린아이, 장애인 할것 없이 누구나..

요즈음에 잇슈가 되어 있는 북한의 인권문제

그리스도인으로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무관심 하거나  외면한다면 .....

"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계명을 지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2:26)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말이 아닌 행함으로 그 믿음을 증명합니다.

말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것도 부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말이 능력이 있으려면 말과 행함이 함께 나타날때 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말로도 표현하지만 행함으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느니라"(요15:10)

2015년 7월 10일 금요일

선함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이 지극히 선함입니다. 고난도 평화도 그분안에서 선함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역사의 마지막도 그분의 선함을 이루실 것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 하노라"(빌1:6)

2015년 7월 3일 금요일

고난을 통해

성경은 고난을 통해 거룩과 성숙함을 이루게 한다고 가르친다. 고난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함을 배우게 하고, 나타낸다.

 사도베드로는 고난에 대해 " 육체의 고난은 죄를 멈추게 한다"고(벧전4:1) 했다.

 만일 고난이 이런 영적 성장을 이룬다면 "고난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것"(약1:2)이 이런 이유일것이다.

좋은 나라

좋은 나라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나라일것입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 것입니다. 청결한 나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의로운 나라입니다. 공의가 없는 경제, 공의가 없는 민주주의, 공의가 없는 청결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공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공의는 평등성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공의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공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잠언에도 "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잠14:34) 했습니다.
살기좋은 나라는 공의로운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완벽한 공의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