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7일 토요일

축복된 위험

행6:8-15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공통된 심리가 있다면 돋보일려는 마음일 것 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미친 존재감'이 되고 싶은 욕구' 입니다. 그러나 유명해지고 싶은 것은 일종의 권력추구입니다. 왜냐하면 유명하다는 것 때문에 특권의식이 생기고, 횡포를 부릴 수 있습니다. ..

스데반도 초대교회에서 매우 두드러졌던 사람 이었습니다. 그는 첫 일곱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교회안...이나, 밖에서도 매우 주목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유명해지를 원했던 사람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가지 갈망, 즉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되는 것 이었습니다. 사도는 아니었지만 능력있게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스데반에 대해 몇가지 특징을 기록 합니다.
첫째,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6:3),
둘째,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6:5),
셋째,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6:8),
넷째,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6:10).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로 말하는 그를 대적자들은 어떤 논리로 대항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세상 지식과 논리로 무장을 해도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가 넘치는 사람앞에는 압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논리로 스데반을 당하지 못하자 대적자들은 사람을 매수하여 스데반을 모함하도록 거짓말을 하게 하고 결국 법정(산헤드린 공회)에 세우게 하였습니다(11-12). .. 논쟁에서 지면 감정이 상하고, 결국 폭력적인 수단으로 상대방을 제압 할려고 합니다. 사탄은 인간의 이런 악한본성을 사용합니다. 주님도 이같은 방식으로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습니다.....

스데반은 탁월하게 사역을 감당했음에도, 엄청난 반대와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닮을수록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어떤 때는 주님을 닮은 것 때문에 비판과 거부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된 '위험'임을, 스데반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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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6일 금요일

영적 분별력

행6:1-7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사람들이 모인곳에는 다툼과 불평이 쉽게 일어날수 있습니다. 은혜가 충만했던 초대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교회안에는 대표적으로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두 부류가 존재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세계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사람들인데 헬라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태어난 본토 사람들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부류는 당시 유대사회에 서로 경쟁자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안에 이 두부류 사람들 사이에 불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 발단은 '공평성"의 문제였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생활이 어려운 과부들을 도왔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의 대상에서 제외 되었던것 같습니다(1). 그래서 불평이 시작... 이를 간파한 사도들은 재빠른 수습에 들어갔습니다. 그 수습은 회의를 열어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것이 아닌, 오히려 자신들의 본질적인 일을 상실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2).그들이 해야 할 본분은 기도와 말씀 사역이었습니다(3-4).  기도없는 말씀 사역은  말씀을 듣는 영혼들을 병들게 합니다.  목회자가 기도와 말씀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상실한다면  교회안에는 은혜가 사라지고,  분쟁과 파당이 생길수 있고.. 결국 많은 시험에 직면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마귀의 이 궤계를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일곱 집사를 선택하여 그들로  구제사역을 하게 하고 자신들은 본분에 충실할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뽑은 일곱명의 집사들의 이름들이 다 헬라말인것을 보면(5), 소외감을 느꼈던 헬라파 유대인들의 마음을 헤아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분열의 위기에 놓였던 예루살렘 교회는 다시 정상을 되찾았습니다(7).
본문을 묵상하면 교회안에  영적 분별력과  영적 지혜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이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니면 마귀의 역사인지? 식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함을 느낍니다.


2012년 7월 5일 목요일

그들을 위해..

행5:33-42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공산치하 루마니아에서 여러해 동안 투옥 생활을 하였던 리차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가 그의 감옥생활의 경험을 기록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고난으로 인해 파괴되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If prison wall speak, 참조).  ..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도들을 감옥에 넣고, 위협하고 심지어 죽일려고 하였어도(33), 그들의 신앙을  약화시키거나 파괴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모욕을 당하게 됨 을 영광 스럽게 여기고 기뻐 하였습니다(41). 본문을 묵상하면서, 만일 내가 사도들이 처한 그런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아마 서슬퍼런 산헤드린 공회의 위협에 못이겨 굴복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복음을 전하기는 하되, 숨죽인채 비밀리에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사도들처럼 어느 때든지, 어느 곳에든지 두려움 없이 거리낌없이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황에 부딪히지 못한 저로서는 뭐라고 말할 수 가 없습니다. 모르긴해도, 투옥을 당하거나, 매를 맞거나, 심한 모욕을 당하였다면, 사도들 처럼 기뻐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분노, 원한.. 하지만 사도들은 자신들이 당한 것에 대해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산에서 가르치신 말씀을 기억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십자가의 복음은 인간의 '의' '자랑' '교만'이 아닌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영광' '겸손'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본성과 대치됩니다. 그러기에  박해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 지금도  흰두교와 모슬렘 나라에서  혹은 공산권에서 복음 때문에  투옥, 테러, 위협을 당하면서 신앙을 지키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또한  북한에서 복음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고난을 당하는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자유의 땅에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빚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물으실지 모릅니다.

2012년 7월 4일 수요일

어떻게 반응을 ..

행5:17-32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사도들에 의해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자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이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기를 원했는데 뜻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백성들의 관심이 거기에 쏠리자, 위기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부랴 부랴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17-18).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할려고 애를 써도  소용 없는 일 입니다. 철통같은 옥문, 늘 긴장하면서 죄인들을 살피는 간수들이 있었지만(23),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사도들을 구하셨습니다(19-20). 천사는 사도들을 구하면서 성전에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계속 가르치라고 했습니다(20). 반대로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엄금했습니다(4:17; 28). .. 자유의 땅에서 사는 대부분의 우리는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거나,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법정에 서 본 경험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법정에서 전도하지 말라고 판결을  받은 적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때때로 반대나 방해에 부딪히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 부터... 교회안에서도 내 신앙에 방해 인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때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합니까? 이에대해  베드로와 사도들이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 하니라"(29).

2012년 7월 3일 화요일

당신을 사모합니다.

행5:12-16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본문은 놀라운 광경으로 시작됩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다"(12)고 했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던 사도들은 불과 몇주전만 해도, 예수님이 붙잡히자 도망을 쳤던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을때도 문을  틀어 잠그고  숨죽이며 숨어지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이들을 통해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지나갈 때 혹 그의 그림자라도 덮히면 병이 나을까 하고 바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5). 사람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능력있는 말씀과 그가 행하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베드로는 불과 몇주전만 해도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공개된 장소에서는 자신의 신앙을 숨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만일 그런 경우가 있었다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부끄러움? 죄책감? 후회?
이 말씀은  큰 용기를  줍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들은 애써 주님을 부인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척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오시자  몇주전의 문을  걸어 잠그고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젠  사람들의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13)이 되었습니다.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능력 있는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14). 목회의 능력도, 능력있는 신앙생활도, 담대함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함도, 원초적이고 단순한것 같지만 답은 하나입니다. 성령님에게 있습니다. 성령님! 당신을 사모합니다.

2012년 7월 2일 월요일

나의 마음에는 ...

행5:1-11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은혜가 충만했던 초대 교회에 첫 번 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그 판값 얼마는 감추고 나머지만 헌금을  드린데서 비롯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거짓을  행하였다는 이유였습니다. .. 거짓말이나, 거짓된 행동은 다른 죄에 비해  쉽게 범할 수 있는  있는 죄입니다.  4:36-37에서" 바나바는 그의 소유를 팔아 그 판값 전부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금했습니다". 하지만 아나니아는 그의 소유를 판 값 전부가 아닌 일부만 드렸습니다. 바나바와 아나니아의 차이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 바나바가  전부를 헌금하자 교회에서 칭찬을 한몸에 받은 것 같습니다. 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아나니아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바나바의 흉내를 내고 싶었습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돕기 위해 소유를 판것 보다 바나바 처럼 남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기를  더 원했습니다. 두 사람의 큰 차이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특히 베드로가 아나니아를 책망하는 내용에서  이것을  엿볼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문제를 삼은 것은  아나니아가 자신의 소유를 팔지 않아서도 아니요, 헌금을 드리지 않아서도 아니요, 또한 일부를 나두고 나머지만 드린데 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다 드린것 처럼 믿게 하는데 있었습니다(3-4).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의 자세 보다 오직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 칭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 선행을 하는 것은 좋으나 선행을 할 때는 행해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그 원칙을 가르치셨습니다.   "선행을 할 때에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하라"고 하셨습니다"(마6:1-4). 하지만 아나니아의 자세는 주님이 가르치신것과 정반대 였습니다 . 하나님은 나의 선행보다 나의 마음의  자세를 더 보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의 마음에는 아나니아와 같은 마음은 없습니까?

2012년 7월 1일 일요일

나의 목자

시23편 말씀 묵상 내용입니다.
이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움을 많이 당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편은 믿음, 용기, 위안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실 그가 이시편을 기록할 당시 어느때 보다 그에겐 용기와 위로가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압살롬의 반란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반란도 반란이지만, 자신의 친 혈육인 아들이 자신을 죽일려고 하는 상황을 맞이한 그는 아버지로서의 고뇌와 갈등은 이루 말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상태 였습니다(2-3). 또한 위험에 직면에 있었고(4), 원수들에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5).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역시 이 시편은 큰 위안을 줍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선하십니다. 그분은 필요를 공급하시고, 보호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위안을 얻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그분의 신실함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뒤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것이 어디 있었습니까?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도우셨고,보호하셨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셨는지... 그분은 언제,어디서나 영원히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