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인곳에는 다툼과 불평이 쉽게 일어날수 있습니다. 은혜가 충만했던 초대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교회안에는 대표적으로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두 부류가 존재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세계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사람들인데 헬라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태어난 본토 사람들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부류는 당시 유대사회에 서로 경쟁자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안에 이 두부류 사람들 사이에 불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 발단은 '공평성"의 문제였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생활이 어려운 과부들을 도왔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의 대상에서 제외 되었던것 같습니다(1). 그래서 불평이 시작... 이를 간파한 사도들은 재빠른 수습에 들어갔습니다. 그 수습은 회의를 열어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것이 아닌, 오히려 자신들의 본질적인 일을 상실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2).그들이 해야 할 본분은 기도와 말씀 사역이었습니다(3-4). 기도없는 말씀 사역은 말씀을 듣는 영혼들을 병들게 합니다. 목회자가 기도와 말씀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상실한다면 교회안에는 은혜가 사라지고, 분쟁과 파당이 생길수 있고.. 결국 많은 시험에 직면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마귀의 이 궤계를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일곱 집사를 선택하여 그들로 구제사역을 하게 하고 자신들은 본분에 충실할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뽑은 일곱명의 집사들의 이름들이 다 헬라말인것을 보면(5), 소외감을 느꼈던 헬라파 유대인들의 마음을 헤아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분열의 위기에 놓였던 예루살렘 교회는 다시 정상을 되찾았습니다(7).
본문을 묵상하면 교회안에 영적 분별력과 영적 지혜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이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니면 마귀의 역사인지? 식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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