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4: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보아스는 사업이나 법적인 소송문제를 다루는 성문에서 결혼 문제를 의논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진행과정속에 하나님의 섭리, 룻에 대한 보아스의 사랑, 문제를 법적,이성적, 합리적으로 다루는 보아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보아스는 법적으로 자기보다 나오미의 땅을 먼저 살 수 있는 친척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허락할 듯 하다가(4), 룻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거절을 했습니다(5-6). 여기에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2:3).
세상의 모든일, 사소한 일이던, 복잡한 일이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 어느것 하나도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드디어 보아스는 나오미의 땅을 사고, 룻을 아내로 맞이합니다(9-10). 나오미의 기도가 응답되는 순간입니다(2:19-20).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기도가 선행(先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지만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이 행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의 땅을 사고 이방여인 룻을 아내로 맞이 하는 장면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이던 이방인이던 그분의 피로 사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구원의 은혜를 예표해주고 있습니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아스를 통해 나타납니다. 유대인이던, 이방인이던 오직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셔서 신부로 맞이 하셨습니다. 나를 신부 되게하심을 찬양합니다.
룻의 삶속에 임하셨던 하나님의 은혜! 이 아침에 그 은혜에 감격하여 경배드립니다.
2012년 9월 6일 목요일
신실
룻3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를 결혼시키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유대 전통에는 형제나 가까운 친적이 죽으면 그의 부인과 결혼을해 대를 잇게 해주는 '계대결혼'이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근거한 풍습입니다(신25:5-10).
나오미는 적임자가 친척중에 하나였던 보아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알수 없는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지만(12), 나오미의 생각으로는 보아스야 말로 룻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임을 믿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에게 프러포즈(Propose) 하게끔 용기를 줍니다. 요즈음도 여자가 먼저 프러포즈하면 좀 멋적지요. 룻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보아스의 도덕성을 믿었습니다(7). 아무리 보아스가 좋은 사람이라도 룻의 행동에는 큰 용기가 필요 했습니다.
룻은 나오미, 보아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의외로 보아스는 적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10). 보아스는 룻의 의도를 알아채리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젊은 과부가 젊은 사람을 배우자로 찾아 자신의 길을 가지 않고 죽은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늙은 자신과 결혼을 할려고 하는 마음..
보아스는 이스라엘사람이요, 남자요, 부자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 네가 베푼 '인애'(kindness, NIV) .. 친절을 베푼것은 자신인데 룻이라고 말합니다.
친절(Kindness)은 히브리말로 '신실'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신실은 하나님에게 사용해야 할 단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룻에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룻기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룻기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룻의 신실함, 보아스의 신실함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룻기를 묵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신실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주여! 오늘 신실하고 진실하게 살게 하소서!!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를 결혼시키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유대 전통에는 형제나 가까운 친적이 죽으면 그의 부인과 결혼을해 대를 잇게 해주는 '계대결혼'이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근거한 풍습입니다(신25:5-10).
나오미는 적임자가 친척중에 하나였던 보아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알수 없는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지만(12), 나오미의 생각으로는 보아스야 말로 룻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임을 믿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에게 프러포즈(Propose) 하게끔 용기를 줍니다. 요즈음도 여자가 먼저 프러포즈하면 좀 멋적지요. 룻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보아스의 도덕성을 믿었습니다(7). 아무리 보아스가 좋은 사람이라도 룻의 행동에는 큰 용기가 필요 했습니다.
룻은 나오미, 보아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의외로 보아스는 적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10). 보아스는 룻의 의도를 알아채리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젊은 과부가 젊은 사람을 배우자로 찾아 자신의 길을 가지 않고 죽은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늙은 자신과 결혼을 할려고 하는 마음..
보아스는 이스라엘사람이요, 남자요, 부자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 네가 베푼 '인애'(kindness, NIV) .. 친절을 베푼것은 자신인데 룻이라고 말합니다.
친절(Kindness)은 히브리말로 '신실'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신실은 하나님에게 사용해야 할 단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룻에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룻기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룻기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룻의 신실함, 보아스의 신실함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룻기를 묵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신실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주여! 오늘 신실하고 진실하게 살게 하소서!!
2012년 9월 5일 수요일
나오미와 룻처럼..
룻2:14-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룻은 매우 신실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쉼없이 일했습니다(7). 이런 룻의 모습이 보아스의 눈에 띄었습니다. 보아스는 그녀를 선대 했습니다.도리어 의아하게 생각 한것이 룻입니다. ' 나는 이방여인 인데 왜 나에게 친절을 베푸냐' 고 되물었습니다(10). 보아스는 룻의 신실함과 시어머니에게 행한 일들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11).
특히 인상적인 것은 보아스가 룻을 자기 식단에 초대 한 일입니다(14).그의 친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곡식베는 일꾼들에게 룻을 책망하지 못하게 했고(15), 또한 벤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룻으로 줍도록 했습니다(16).룻에 대한 보이스의 친절은 단순한 인간의 친절이 아닌 룻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에게 행한 친절 등 모든일을 나오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17-23).두 사람의 대화속에는 보아스에 대한 축복과 감사로 일관 했습니다. 사람들중에는 남에게 신세를 지고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도와준 사람, 고마운 사람을 잊지않고 감사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상식적이지만 인생사가 그렇지 못할 때 가 많습니다. 사람에게 고마워할줄 모르는 사람, 감사 할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산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은 잘 잊어도 섭섭하게 한 사람은 더 잘 생각납니다. 고마운 사람을 늘 잊지 않고 축복하고 감사하는 것 작은일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나오미와 룻처럼 말입니다....
룻은 매우 신실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쉼없이 일했습니다(7). 이런 룻의 모습이 보아스의 눈에 띄었습니다. 보아스는 그녀를 선대 했습니다.도리어 의아하게 생각 한것이 룻입니다. ' 나는 이방여인 인데 왜 나에게 친절을 베푸냐' 고 되물었습니다(10). 보아스는 룻의 신실함과 시어머니에게 행한 일들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11).
특히 인상적인 것은 보아스가 룻을 자기 식단에 초대 한 일입니다(14).그의 친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곡식베는 일꾼들에게 룻을 책망하지 못하게 했고(15), 또한 벤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룻으로 줍도록 했습니다(16).룻에 대한 보이스의 친절은 단순한 인간의 친절이 아닌 룻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에게 행한 친절 등 모든일을 나오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17-23).두 사람의 대화속에는 보아스에 대한 축복과 감사로 일관 했습니다. 사람들중에는 남에게 신세를 지고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도와준 사람, 고마운 사람을 잊지않고 감사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상식적이지만 인생사가 그렇지 못할 때 가 많습니다. 사람에게 고마워할줄 모르는 사람, 감사 할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산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은 잘 잊어도 섭섭하게 한 사람은 더 잘 생각납니다. 고마운 사람을 늘 잊지 않고 축복하고 감사하는 것 작은일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나오미와 룻처럼 말입니다....
2012년 9월 4일 화요일
절망을 넘어
룻1:19-2: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나오미는 그의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나오미를 알아봅니다. "나오미가 아니냐?"(19).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합니다(20). 나오미는 ' 즐거움' 이라는 의미이고, 마라는 '괴로움' 이라는 의미 입니다.
나오미는 " 전능자가 자신을 슬프게 했다"고 했습니다(20). 나오미는 하나님을 '전능자'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샤다이(Shaddai) 즉 세상의 지배자 라는 뜻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의 주권과 연결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일 자신에게 일어난 고난이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 우연을 바로 잡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절망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고난을 거두어 가실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소망중에 주님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오미가 겪은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도 한번도 그를 떠난적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영혼의 깊은 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떠나신적이 없으심을 기억하십시오.
부지런한 룻은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기 시작합니다(2:2-3). 나중에 일어날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미는 보아스와 룻이 맺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패배, 죽음,기근, 절망스러운 환경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
이제는 새로운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오미 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절망은 절망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용기와 믿음의 힘을 발휘하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느 시간, 어느 순간에도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그의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나오미를 알아봅니다. "나오미가 아니냐?"(19).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합니다(20). 나오미는 ' 즐거움' 이라는 의미이고, 마라는 '괴로움' 이라는 의미 입니다.
나오미는 " 전능자가 자신을 슬프게 했다"고 했습니다(20). 나오미는 하나님을 '전능자'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샤다이(Shaddai) 즉 세상의 지배자 라는 뜻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의 주권과 연결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일 자신에게 일어난 고난이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 우연을 바로 잡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절망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고난을 거두어 가실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소망중에 주님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오미가 겪은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도 한번도 그를 떠난적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영혼의 깊은 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떠나신적이 없으심을 기억하십시오.
부지런한 룻은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기 시작합니다(2:2-3). 나중에 일어날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미는 보아스와 룻이 맺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패배, 죽음,기근, 절망스러운 환경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
이제는 새로운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오미 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절망은 절망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용기와 믿음의 힘을 발휘하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느 시간, 어느 순간에도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2012년 9월 3일 월요일
평범속에..
룻1:1-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룻기는 사사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룻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사소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을 자세히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 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사별(死別)한 과부들을 중심으로 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룻기에는 이름이 중요합니다. 특히 히브리 문화에서 이름은 그들의 인물됨을 말합니다. 이름은 곧 인격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의미인데 그가 살던 베들레헴(떡의 집)에 흉년(凶年)이 들자 가족들을 데리고 모압땅으로 이민을 떠납니다(1). 얼마후 엘리멜렉은 세상을 떠나고(3), 10년후에 두 아들 마져 세상을 떠납니다(4-5). 결국 시어머니, 두 며느리들만 남습니다.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지만 거기에서 더 큰 환난을 만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안에 있을때에만이 안식과 영적 평안이 있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쾌적함, 아름다움, 멋진'을 의미하지만 그의 삶에 닥친 가슴 아픈 일들은 그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방 땅에서 슬픈 일을 당한 나오미를 볼 때, 이민생활을 하는 저로서는 나오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려고 결심을 합니다(6). 나오미 자신은 떠나지만 두 자부들은 모압에 남아 있기를 권했으나 결국 룻은 그의 시어머니를 따라 갈려고 결심합니다(16-18).
나오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려는 마음,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갈려는 마음,
한 가정의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습니다.
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속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음을 믿습니다.그러므로 평범속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룻기는 사사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룻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사소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을 자세히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 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사별(死別)한 과부들을 중심으로 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룻기에는 이름이 중요합니다. 특히 히브리 문화에서 이름은 그들의 인물됨을 말합니다. 이름은 곧 인격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의미인데 그가 살던 베들레헴(떡의 집)에 흉년(凶年)이 들자 가족들을 데리고 모압땅으로 이민을 떠납니다(1). 얼마후 엘리멜렉은 세상을 떠나고(3), 10년후에 두 아들 마져 세상을 떠납니다(4-5). 결국 시어머니, 두 며느리들만 남습니다.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지만 거기에서 더 큰 환난을 만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안에 있을때에만이 안식과 영적 평안이 있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쾌적함, 아름다움, 멋진'을 의미하지만 그의 삶에 닥친 가슴 아픈 일들은 그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방 땅에서 슬픈 일을 당한 나오미를 볼 때, 이민생활을 하는 저로서는 나오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려고 결심을 합니다(6). 나오미 자신은 떠나지만 두 자부들은 모압에 남아 있기를 권했으나 결국 룻은 그의 시어머니를 따라 갈려고 결심합니다(16-18).
나오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려는 마음,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갈려는 마음,
한 가정의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습니다.
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속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음을 믿습니다.그러므로 평범속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2012년 9월 2일 일요일
회개
시32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롬4:6-8절에서 본 시편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안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의 완벽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어떤 기록도 가지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 죄를 범하면 전과자가 되지만 하나님에게는 전과자가 없습니다.
본 시편은 명확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1.축복(1-2). 죄를 범하지 않는 것도 축복이지만(시1:1), 죄를 범해 회개하여 용서를 받는것도 축복입니다.
#2. 죄를 고백함의 실제성(3-4).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마음이 어둡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가만이 있어도 두렵고 불안합니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함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립니다.
#3. 하나님의 용서(5).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자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해주셔습니다.
사죄의 경험은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6-7). 생활속에 찬송이 넘쳐납니다. 찬송은 용서 받은 자의 기쁨의 표현입니다. 마음에 죄가 있을때, 회개하지 못할 때 찬송을 부를 수 없습니다. 찬양을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사죄의 경험을 한 다윗은 " .. 내 마음이 구원의 노래로 주님을 찬양한다"(7)고 했습니다. 그는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더욱 힘이 넘쳤고, 기쁨이 넘쳤을 것 입니다.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은 다윗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조언할 수 있었습니다(8-9). 그것은 주님을 신뢰하고 죄를 고백한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경험입니다(10).또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입니다(11).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롬4:6-8절에서 본 시편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안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의 완벽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어떤 기록도 가지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 죄를 범하면 전과자가 되지만 하나님에게는 전과자가 없습니다.
본 시편은 명확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1.축복(1-2). 죄를 범하지 않는 것도 축복이지만(시1:1), 죄를 범해 회개하여 용서를 받는것도 축복입니다.
#2. 죄를 고백함의 실제성(3-4).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마음이 어둡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가만이 있어도 두렵고 불안합니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함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립니다.
#3. 하나님의 용서(5).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자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해주셔습니다.
사죄의 경험은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6-7). 생활속에 찬송이 넘쳐납니다. 찬송은 용서 받은 자의 기쁨의 표현입니다. 마음에 죄가 있을때, 회개하지 못할 때 찬송을 부를 수 없습니다. 찬양을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사죄의 경험을 한 다윗은 " .. 내 마음이 구원의 노래로 주님을 찬양한다"(7)고 했습니다. 그는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더욱 힘이 넘쳤고, 기쁨이 넘쳤을 것 입니다.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은 다윗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조언할 수 있었습니다(8-9). 그것은 주님을 신뢰하고 죄를 고백한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경험입니다(10).또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입니다(11).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2012년 9월 1일 토요일
마지막 승리
옵1:17-2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오바다의 예언은 구약의 선지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네가지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 심판의 약속', 이유', 내용' 또한 '구원과 회복' 이라는 패턴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영적안목을 넓혀줍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만나는 흉악한 범죄, 가슴아픈 일들, ... 잠시 악이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 무사히 넘어가지 않을 것 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세워 질것입니다. 선지서에서 보는 것 처럼 하나님의 '의' 는 악한 자 들에게 대한 무자비한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깊은 상징적인 멧시지가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 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은혜의 출발을 말씀합니다.
본문의 이스라엘(혹은 유대)의 회복 과 에돔의 멸망(17-18)은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를 상징해줍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랑과 은혜의 법이 지배 하는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 날 천국 운동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보고, 성경의 안목으로 신문을 보면, 현재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일어나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도래하는 그 날,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 하기를 원합니다.
오바다의 예언은 구약의 선지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네가지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 심판의 약속', 이유', 내용' 또한 '구원과 회복' 이라는 패턴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영적안목을 넓혀줍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만나는 흉악한 범죄, 가슴아픈 일들, ... 잠시 악이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 무사히 넘어가지 않을 것 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세워 질것입니다. 선지서에서 보는 것 처럼 하나님의 '의' 는 악한 자 들에게 대한 무자비한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깊은 상징적인 멧시지가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 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은혜의 출발을 말씀합니다.
본문의 이스라엘(혹은 유대)의 회복 과 에돔의 멸망(17-18)은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를 상징해줍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랑과 은혜의 법이 지배 하는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 날 천국 운동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보고, 성경의 안목으로 신문을 보면, 현재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일어나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도래하는 그 날,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 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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