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4일 화요일

절망을 넘어

룻1:19-2: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나오미는 그의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나오미를 알아봅니다. "나오미가 아니냐?"(19).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합니다(20). 나오미는 ' 즐거움' 이라는 의미이고, 마라는 '괴로움' 이라는 의미 입니다.

나오미는 " 전능자가 자신을 슬프게 했다"고 했습니다(20). 나오미는 하나님을 '전능자'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샤다이(Shaddai) 즉 세상의 지배자 라는 뜻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의 주권과 연결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일 자신에게 일어난  고난이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 우연을 바로 잡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절망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고난을 거두어 가실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소망중에 주님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오미가 겪은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도 한번도 그를 떠난적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영혼의 깊은 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떠나신적이 없으심을 기억하십시오.

부지런한 룻은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기 시작합니다(2:2-3). 나중에 일어날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미는 보아스와 룻이 맺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패배, 죽음,기근,  절망스러운 환경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
이제는 새로운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오미 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절망은 절망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용기와 믿음의 힘을 발휘하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느 시간, 어느 순간에도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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