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7일 수요일

하나님의 선택

창48:1-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세상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규칙이란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역할을 해줍니다.
야곱의 시대에는 장자권이 있었습니다. 장자는 가정의 제사장인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아버지의 소유를 두배로 받을수 있고,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는 축복된 특권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본문에는 야곱이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손자들이었지만, 야곱은 아들처럼 대하고 있습니다(5)

이상하게 야곱은 형인 므낫세가 아닌 동생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을 얹어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13-14). 이 장면을 본 요셉은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오른손을 다시 므낫세에게로 옮기려 했습니다(17).

비록 장자라도 장자권을 잃어버리고 동생에게 장자의 축복이 넘어가는 예를 창세기를 통해 볼수 있습니다. 가령, 가인 대신 셋이 그러했고(창5), 이스마엘 대신 이삭(창21), 에서 대신 야곱(창27), 므낫세 대신 에브라임(본문).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기준으로 알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인간의 상식과 규칙을 넘어설때가 많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울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천국의 기업을 이어받을 자녀가 되었습니다(롬8:15-17).

인간의 기준과 상식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먼저 무엇을?

창47:13-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현대의 최첨단의 기술 문명은 그 어느때보다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윤택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이런 기술문명의 혜택은 창조력의 산물입니다.

요셉은 지혜가 탁월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 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요셉과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더욱 느껴집니다.

본문의 요셉의 계획은 애굽사람들의 소유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취하므로 그들이 생활을 유지하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그들의 돈을(15), 다음은 가축을(17), 다음은 땅을 마지막으로는 그들 자신(20-21)이었습니다.

이렇게 기근의 시대에 곡식을 얻는 것은 그 어떤것으로도 힘이 드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였을까? 얼마든지 자선적인 행동을 할 수가 있는데도..?

사실 요셉의 행동은 구약의 가르침에 기인한것 입니다(레25:14-43). 비록 요셉이 그들의 소유물들을 취하고,또한 땅의 소유권을 포기하게 하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마치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처럼..

요셉은 그들에게 20퍼센트의 세금만 거두고 나머지의 이익은 그들이 가지도록 해서 그들이 풍족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애굽인들은 자신들의 소유물이나 자신들을 바로왕에게 바침으로 삶을 영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그들의 것을 바로왕에게 바침으로 삶을 영위해간것 처럼, 우리 소유와 삶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주실 풍성한 은혜를 위해 먼저 내가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나의 무엇을 주님께 드리겠습니까?

2012년 11월 5일 월요일

하나님의 인도

창47: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창46장에서 야곱은 그의 아들들과 그들에게  속한 온 집안 식구와 함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건너와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의 가족이 바로왕을 만났을때 그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환대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바로를 만나기전 해야할 말을 미리 준비 시켰습니다(46:33-34).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함을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런면에서 형들의 대답은 완벽한 것입니다(3-4).바로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는 이들이 요구한것 보다 더 많은 부분을 보너스로 주었습니다.

가장 좋은 땅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그들을 신뢰해 바로의 가축들을 돌보는 관리인으로 취직을 시켜주었습니다(6).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넘치도록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때로는 좋은 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험악한 길을 만나고 심지어는 막다른 길목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럴때는 가던길을 멈추게 됩니다. 그러면 뜻밖에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기에서 험한길을 걸었던 과정속에서 힘들었던 것들이 회복이 되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분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2012년 11월 4일 일요일

늘 나를

시41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많은 얼룩이 있습니다. 본문의 시편기자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원치않는 병에 걸리기도 하고(3), 때로는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고 이렇게 육체와 정서의 고통을 당할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삶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언제든지 접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남에게 심한말을 듣기도 합니다(5-6), 때로는 남으로 부터 판단을 받기도 합니다(7).

심지어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으로 부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9).

더욱이 영적인 고통을 당합니다. 죄가 생각이 나고. 나는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죄인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음에도.. 이런 깊은 영혼의 밤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삶속에 받는 여러가지 고통들을  그의 백성이라고 면제해준다고 하신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하나님은 이런 고통을 견딜수 있는 힘을 주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문제가 닥쳐와도, 어떤 마음의 상처를 받아도 문제 될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1-3),  삶에 일어나는 문제들보다 더욱 강하게,더욱 능력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탁하고 있습니다(11-12).

늘 나를 강건하게 하시고 능력으로 붙드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변에

살후3:6-18, 오늘의 묵상입니다.
현재 세계경제가 어려워짐으로 미국, 캐나다의 실업율이 증가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고 싶지만 일자리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안에 문제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6-11).이 경고는 일을 하고 싶으나 할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일할수 있는 여건이 충분함에도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초대교회는 첫 출발때 부터 교회안에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구제제도가 있었습니다(행4:34-35, 6:1-2). 불행하게도 데살로니가 교회안에는 이런 교회의 제도를 남용하는 이 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지만 교회의 도움을 받으면서 게으르고 안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노동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원리입니다. 노동은 타락으로 인해 생긴것이 아닌 타락이전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은(창1:28)은 노동의 명령입니다. 노동이 힘든것이 아니라 타락으로 노동이 힘들어 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일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직업을 천시하지 않고 신성하게 여기며 그 노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노동관입니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벗어나는 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바울은 직업을 갖지 않고, 게으르게 살면서 문제를 일삼는 이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6,12, 살전4:11-12;5:14). 하지만 교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사랑으로 해결해야 합니다(6,14,15).

특히 바울은 친히 자신이 본을 보였습니다. 그도 역시 주야로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섬겼습니다(7-9).

 주변에 일을 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2012년 11월 2일 금요일

나의 기도

살후3: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고, 당할것입니다. 바울이 받은 고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고후11:23-29).

 본문의 마지막절 5절을 보면 새삼스러운일이 아님을 더욱 느낍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1-2).

바울은 직면한 박해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때마다 자신을 도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장 적당한 표현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라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심약한자라도  기도할때에 그를  강하게 하시고, 상황을 바꾸어주시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늘 경청(傾聽)하시기 때문입니다(3).

본문에서 바울의 또 다른 기도제목을 볼 수 있습니다(1,2,5). 그는 자신의 안전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고, 복음이 잘 증거 되도록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바울의 이런 자세는 오늘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이 본 받아야할 모습입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을  고난으로 부터 구원해달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것을 견딜수 있는 힘을 달라는 것 입니다(5).

요즈음 나에게 힘든일이 있습니까? 그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012년 11월 1일 목요일

적그리스도

살후2: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불법의 아들입니다(4).

바울은 여기서 그에 대해 더 이상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지는 않습니다(9-11).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것을 예상하며 살아야 합니다(9,마24:11,12,23,24).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들의 도시에서 역사는 불법의 아들의 힘을 잘 알고 있습니다(7,행17:5-9). 어느때나 어디에서든지 사탄의 역사는 강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마귀를 이미 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적 그리스도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든지 두려워 하지 말고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이 흉흉하고 불법이 판을 치고, 사회가 더 악해진다 해도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견고하게 서야 합니다(16).

이것이 적그리스도를 이길수 있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