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7일 금요일

무엇을 원하시는지

행10: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보기드물게 이방인으로서 경건하게 살며 선행에 힘을 썼던 사람의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넬료로 그의 위치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을수도 있고, 힘으로 약자들 위에 군림할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난 그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늘 선행에 힘을 썼던 사람입니다(1-2).
그것도 자신만 그렇게 한것이 아니라 그의 온집안 사람들에 선행에 힘을 썼습니다.

또한 늘 기도생활에 힘을 썼습니다(2).

하나님은 이런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어 만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장면입니다(4). 처음으로 천사를 만나는 영적 경험을 한 고넬료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곧 천사가 시키는대로 순종을 합니다(5-8).

구제를 하고, 남을 돕는것은 가장 실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님을 증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에 보아도 하나님은 과부와 고아들 즉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셨듯이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사회의 약자들에게 역시 관심을 가지십니다.

나의 수입이 많든 적든, 상황이 어떻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남을 돕는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물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실것입니다.

본문의 고넬료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베드로를 보면서..

행9:32-4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의 촛점은 사울에게서 베드로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는 스데반의 순교후(행7:54-8:1) 흩어진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사방으로 두루다녔습니다(32).

룻다와 욥바에는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이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32,38).

베드로가 행한 첫번째 이적의 대상은 그지역 성도들(32)에게 알려진 애니아였습니다. 이 사람은 8년동안 중풍으로 고생을 했는데 그를 고쳐주었습니다(33-34).

두번째는 욥바에서 일어났습니다. 도르가라는 여성도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게되었습니다.
이분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아왔습니다(36). 베드로가 죽은 도르가를 살렸습니다(40).

이 두사 건은 두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많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35,42).

기적은 항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행하실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도구로 사용받았습니다.

본문에서 특히한점은 이 두가지 엄청난 기적을 행하고 베드로는 그곳을 떠나지않고 여러날 그들과 함께 머물며 그들에게 믿음을 북돋아주었습니다(43).

그가 중풍병자를 고치고, 더나아가 죽은자를 살렸는데 요즈음 같으면 VIP 대접을 받았을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머문곳은 가죽제품을 만드는 집이었습니다. 아마 가죽 냄새가 늘 진동을 하였을것입니다.(43). 베드로의 겸손을 보게됩니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요즈음 목회자들이 너무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2012년 12월 5일 수요일

도우심이 없이는

행9:19-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사울의 회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큰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사울이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섰울때는  좋아했지만  이제는  사울을 죽일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을 따랐던 제자들이 급히 피신을 시켰습니다(25).

한편,예루살렘의 제자들 역시 사울의 회심을 의심했습니다(26).  그러나  후에는  사울의 진심을 알고 죽음의 위협 앞에 있는 사울을 피신 시켰습니다(25)/

 하나님은  때때로  복음을 전할때에  어려움을 허락하실때가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일에는 어려움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그때 절망하기 쉽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의  종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세상의 일도 그러하지만 특히 주님의 일은 내힘이 아닌  주님의 힘으로 하는것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늘 무릎을 꿇지 않고는 한순간도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사탄의 공격앞에 패하게 됩니다.

주님이 늘 깨어 있으라고 하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초대교회는 든든히 서가고 구원 받는 숫자가 더해갔습니다(31).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기에 오늘도 주님앞에 더욱 무릎을 꿇습니다.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마음의 벽

행9:10-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아나니아와 사울의 만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도우라는 어려운 책무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내키지 않는, 싫은 일이었습니다(13).

주님은 사울을 도우라고 재차 말씀하셨습니다(15). 아나니아는 싫었지만  순종을 합니다. 결국  사울을 "형제"라고 부릅니다(17).

교회를 박해하는일에 앞장섰던 사울이 아니니아로 부터 형제라는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또한 본문에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관계성을 엿볼수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초대교회 성도들 같은 공동체 의식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인지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을 '오픈' 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더우기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사울처럼)을 선뜻 돕는것이 쉬운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이 생각하는것과 다릅니다.
때로는 사람의 기준에 못미쳐도 하나님은 그를  변화시켜 그분의  택하신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15).

 오늘 나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신앙적으로 도와야 할 사람은  없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마음의 벽을 가지고 어떤이는  형제,자매처럼,어떤이는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지는 않습니까?

 마음의 벽이 있다면 그것을 허물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눈이 열려서

행9: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사울은 날카로운 지성, 높은 교육을 받은 유대인으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대제사장으로 부터 위임을 받아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좇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사람들처럼(눅24:18-20), 아마 사울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전에 주님을 본적이 있거나 아니면 주님의 대한 이야기를 들었음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당시 사울은 주님이 어떤분임을 알지못하였고, 이해할수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영의 눈을 열기위해 육신의 눈을 멀게하셨습니다(8). 또한 마음의 문을 열기위해 그에게 " ..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4).

사울은 주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확실히 사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만났습니다. 그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장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대로 가던길을 막으시고 고통을 주실 때 가 있습니다. 예기치 않는 힘든일을 당할때가 있습니다.  그 모든순간이 하나님의 간섭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나의 영의 눈이 열려서 그것이 나와 생각이 틀려도
내가 보기엔 불편한 일일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도록 기도하십시오.

2012년 12월 2일 일요일

가만히 있어

시편46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시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힘이시라고" 하면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1). 또한 마지막절은 " 우리의 피난처" 라고 하며 끝내고 있습니다(11).

'우리'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반복되고 있음은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곧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에 한하여 그러합니다

그리고 10절에 보면 " ..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두가지 논점이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뭔가 않좋은 상황을 만났을때 이 말씀은 큰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마틴루터는 두려움이 올때마다  이 시편 말씀을 읽고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서 그분이 하나님됨을 알수 있습니까?

본문에서 시편기자는 자연의 엄청난 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2-3).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인간은 힘을 쓸수가 없습니다.전쟁의 참상처럼(6,9)  지진, 수나미, 토네이도 등 .. 자연재해 참상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러나 시편기자의 촛점은 이런 참상이 아닌 그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맞추어져 있습니다(4-9).

TV, 신문,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수 있습니다. 좋은일 보다 좋지 않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그 가운데도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눈이 맞추어져야합니다.

본문의 키워드(Key word)는 '가만히 있어'(10) 라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어려움에 있었을때 나를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3절 말씀의 기도가 나올것입니다. " ...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2012년 12월 1일 토요일

그 어떤것도

아가서7:9-8:1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오늘 본문은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에 대해 많은 의미를 주는 구절을 든다면 8:6-7절 말씀일것입니다.

 아가서를 묵상해오면서 이 부부가 서로에게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지,  서로를 얼마나 위하는지, 서로를 얼마나 사모하는지를 보아왔습니다(4:9-10).

한때는 서로에게  힘든시간도 있었지만(5장), 그럼에도 서로가  얼마나 강하게 묶여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 입니다(8:6)

본문에서 이 부부의 애정과, 애정 표현을 보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어떤 물로도  끌수 없는 하나님의 불과 같습니다(8:6-7).
또한  홍수와 수나미,같은 천재지변(天災地變)으로도  빼앗아 갈수 없습니다(7).

그래서 바울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로마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아갈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