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2-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흔히 '온유, 겸손, 부드러움' 이렇게 말할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성전안의 예수님의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분노로 가득차서 채찍을 휘두르며, 양과 소를 내어 좇으시고, 돈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다 쏟으시고, 그들의 상을 뒤엎으셨습니다(15). 이렇게 화를 내시는 주님의 모습은 처음일 것 입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의 삶과 예배의 중심지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이 순수하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 사람들의 마음을 흩트리고, 예배자의 마음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성전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탐욕과 상업주의..일그러진 모습들이 주님의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가 예루살렘 성전처럼 일그러지게 된다면 오늘도 역시 주님은 분노하실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장 순수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드려,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섬기는 우리의 공동체는 주님 보시기에 어떠합니까?
2013년 1월 6일 일요일
감사로
시50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아삽의 시편입니다. 시편에는 아삽의 시편이 몇군데 있습니다(46-49;73-83). 그중에도 본 시편은 아삽의 시편 가운데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아삽은 다윗이 임명한 3명의 성가대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본 시편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를 든다면 '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 함을 들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의 날씨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1-6).
또한 하나님은 무엇이든 부족하신것이 없는 분 입니다(7-15). 세상의 모든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10-12;24:1).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만을 의지 하기를 원하십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적인 법칙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거나 다른 것을 의지 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파괴하는 것 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고난의 시간에 그분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15).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 에게 은혜를 주십니다(23).
이렇게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존재가 하나님을 잊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슬픈 현상이 있습니다(22). 이런일들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마땅히 우리는 항상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은을 예배자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그분께 나아가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본 시편은 아삽의 시편입니다. 시편에는 아삽의 시편이 몇군데 있습니다(46-49;73-83). 그중에도 본 시편은 아삽의 시편 가운데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아삽은 다윗이 임명한 3명의 성가대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본 시편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를 든다면 '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 함을 들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의 날씨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1-6).
또한 하나님은 무엇이든 부족하신것이 없는 분 입니다(7-15). 세상의 모든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10-12;24:1).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만을 의지 하기를 원하십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적인 법칙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거나 다른 것을 의지 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파괴하는 것 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고난의 시간에 그분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15).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 에게 은혜를 주십니다(23).
이렇게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존재가 하나님을 잊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슬픈 현상이 있습니다(22). 이런일들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마땅히 우리는 항상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은을 예배자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그분께 나아가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2013년 1월 5일 토요일
새로운 변화
요2: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면 한 가정이 새롭게 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누구나 축하합니다. 그리고 뒷이어 계속 되는 연회에 참석하면 서로 함께 즐거움을 나눕니다.
가나라는 곳에도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잔치가 벌어졌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한참 흥겨운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부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모든 잔치에 절대로 빠질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즐거웠던 잔치 분위기가 매우 썰렁하게(?) 끝을 맺었을것입니다.
포도주를 만드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어떤 설교나 의식이 아닌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이 엿보입니다.
새로 만들어진 포도주로 인해 잔지의 분위기는 한 층 더 고조 되었습니다. 처음에 내놓은 포도주나 주님이 만드신 포도주나 질이 같음을 보고 연회장이 신랑을 칭찬을 합니다(9-10;사25:6).
이 기적은 성육신 하신 주님이 베푸신 첫 번 째의 기적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은 앞으로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실 포도주와 같은 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요6:54).
오늘도 주님은 이 기적을 다시 베풀고 계십니다.
마치 웅덩이에 있는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이 성령을 통해 죽은 심령을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심령으로 바꾸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채워(7) 포도주로 가득히 변했듯이(8) 충만하고 영원한 행복을 주님은 오늘도 그분을 영접하는 자 에게 주십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히면 변화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나의 삶에 변화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까?
정직하게 그분의 도움을 구하십시오(3).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단순하게 순종하십시오(5).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면 한 가정이 새롭게 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누구나 축하합니다. 그리고 뒷이어 계속 되는 연회에 참석하면 서로 함께 즐거움을 나눕니다.
가나라는 곳에도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잔치가 벌어졌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한참 흥겨운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부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모든 잔치에 절대로 빠질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즐거웠던 잔치 분위기가 매우 썰렁하게(?) 끝을 맺었을것입니다.
포도주를 만드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어떤 설교나 의식이 아닌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이 엿보입니다.
새로 만들어진 포도주로 인해 잔지의 분위기는 한 층 더 고조 되었습니다. 처음에 내놓은 포도주나 주님이 만드신 포도주나 질이 같음을 보고 연회장이 신랑을 칭찬을 합니다(9-10;사25:6).
이 기적은 성육신 하신 주님이 베푸신 첫 번 째의 기적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은 앞으로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실 포도주와 같은 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요6:54).
오늘도 주님은 이 기적을 다시 베풀고 계십니다.
마치 웅덩이에 있는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이 성령을 통해 죽은 심령을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심령으로 바꾸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채워(7) 포도주로 가득히 변했듯이(8) 충만하고 영원한 행복을 주님은 오늘도 그분을 영접하는 자 에게 주십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히면 변화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나의 삶에 변화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까?
정직하게 그분의 도움을 구하십시오(3).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단순하게 순종하십시오(5).
2013년 1월 4일 금요일
나의 나다나엘
요1:43-5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 한 사람씩 제자들을 삼고 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 그리고 본문의 나다나엘입니다.
본문은 나다나엘이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마처럼(20:25), 나다나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빌립이 주님에 대해서 말하자(45), 그는 즉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 이 날 수 있느냐?"하는 반응을 보입니다(46). 그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와서 보라"(46)고 하는 빌립의 초청에 응하고 있는 것 을 잘 보아야 합니다.
예상밖으로,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고(47), 그는 매우 놀라워합니다(48). 결국 제자가 됩니다(49).
이런 일련의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나다나엘이었지만 그는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정직했습니다. 또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의 마음에 간사가 없다고 했습니다(47).
주님이 간사가 없다고 칭찬하신 것 처럼 주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영안을 더 밝히 열어 주실 것 입니다(51).
오늘 누구에게 "와서 보라"고 주님앞으로 인도할 나의 나다나엘을 누구입니까?
주님은 한 사람 한 사람씩 제자들을 삼고 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 그리고 본문의 나다나엘입니다.
본문은 나다나엘이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마처럼(20:25), 나다나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빌립이 주님에 대해서 말하자(45), 그는 즉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 이 날 수 있느냐?"하는 반응을 보입니다(46). 그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와서 보라"(46)고 하는 빌립의 초청에 응하고 있는 것 을 잘 보아야 합니다.
예상밖으로,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고(47), 그는 매우 놀라워합니다(48). 결국 제자가 됩니다(49).
이런 일련의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나다나엘이었지만 그는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정직했습니다. 또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의 마음에 간사가 없다고 했습니다(47).
주님이 간사가 없다고 칭찬하신 것 처럼 주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영안을 더 밝히 열어 주실 것 입니다(51).
오늘 누구에게 "와서 보라"고 주님앞으로 인도할 나의 나다나엘을 누구입니까?
2013년 1월 3일 목요일
무엇을 원하느냐?
요1:35-4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멀리서 2명의 제자가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갑자기 그들을 향해 돌아섰을때 이들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 두 사람에게 "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들은 매우 당황해하며 엉겁결에 " 지금 어디에 사십니까?" 하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와서 보라"로 하셨습니다(38-39).
복음서를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것은 주님은 " 네가 나를 위해 이것 혹은 저것을 해줄수 있느냐?고 묻지 아니하시고, 항상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늘 사람들을 주의깊게 바라보시고 그들의 관심에 집중하셨습니다.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또한 주님을 만난 베드로에게 네가 장차 ...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42).
그 후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요21:15-19,행2:14-41).
주님이 항상 물으셨던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많은 것을 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건강, 평안한 마음, 장래에 대한 방향 등등..
하나님의 손은 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째째하게 구하는 것 보다 큰것을 구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째째하게 구한다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을 작게 여긴다는 뜻일것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고 물으십니다
멀리서 2명의 제자가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갑자기 그들을 향해 돌아섰을때 이들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 두 사람에게 "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들은 매우 당황해하며 엉겁결에 " 지금 어디에 사십니까?" 하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와서 보라"로 하셨습니다(38-39).
복음서를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것은 주님은 " 네가 나를 위해 이것 혹은 저것을 해줄수 있느냐?고 묻지 아니하시고, 항상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늘 사람들을 주의깊게 바라보시고 그들의 관심에 집중하셨습니다.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또한 주님을 만난 베드로에게 네가 장차 ...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42).
그 후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요21:15-19,행2:14-41).
주님이 항상 물으셨던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많은 것을 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건강, 평안한 마음, 장래에 대한 방향 등등..
하나님의 손은 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째째하게 구하는 것 보다 큰것을 구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째째하게 구한다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을 작게 여긴다는 뜻일것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고 물으십니다
2013년 1월 2일 수요일
준비
요1:19-3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세례(침례)요한이 등장합니다. 당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전하는 강력한 멧시지, 그의 옷차림, 그의 삶,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위기를 느낀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을 보내어 요한의 정체를 알기를 원했습니다(19).이들이 요한에게 와서 한 말은 '당신은 누구냐?' 하는 질문입니다(22).
'당신은 누구냐?' 하는 질문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만일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의 적개적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에대해 요한은 두 가지 대답을 합니다.
자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외치는 광야의 소리"라는 것입니다(23).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소개하는 것 입니다. 즉 "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이심을 소개하는 사람이라는 것 입니다.
이런 요한의 정체성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소리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는 증거자의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이를 위해 부르셨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의무는 첫째는 예배요, 둘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 입니다.
바울은 이에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오늘 누구에게든 그리스도를 증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본문에는 세례(침례)요한이 등장합니다. 당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전하는 강력한 멧시지, 그의 옷차림, 그의 삶,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위기를 느낀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을 보내어 요한의 정체를 알기를 원했습니다(19).이들이 요한에게 와서 한 말은 '당신은 누구냐?' 하는 질문입니다(22).
'당신은 누구냐?' 하는 질문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만일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의 적개적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에대해 요한은 두 가지 대답을 합니다.
자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외치는 광야의 소리"라는 것입니다(23).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소개하는 것 입니다. 즉 "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이심을 소개하는 사람이라는 것 입니다.
이런 요한의 정체성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소리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는 증거자의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이를 위해 부르셨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의무는 첫째는 예배요, 둘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 입니다.
바울은 이에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오늘 누구에게든 그리스도를 증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2013년 1월 1일 화요일
올해
요1:1-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1). 그리고 이 말씀이 " 육신이 되셨습니다"(14).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계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매우 모험적인 일입니다.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다 포기하시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으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을때 겸손한자들만이 그분의 오심을 조용히 환영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모험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의 근거한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그분을 영접하는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고(12), 질병과 죄악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 치유와 회복과 용서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용서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속에는 우리 삶속에 겸손하게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네가지 단어를 찾을수 있습니다.
생명(4), 빛(9), 은혜,(14), 진리(14)입니다. 이 단어들은 그분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올해, 생명, 빛, 은혜, 진리로 충만한 아름다운 해가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본문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1). 그리고 이 말씀이 " 육신이 되셨습니다"(14).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계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매우 모험적인 일입니다.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다 포기하시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으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을때 겸손한자들만이 그분의 오심을 조용히 환영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모험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의 근거한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그분을 영접하는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고(12), 질병과 죄악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 치유와 회복과 용서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용서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속에는 우리 삶속에 겸손하게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네가지 단어를 찾을수 있습니다.
생명(4), 빛(9), 은혜,(14), 진리(14)입니다. 이 단어들은 그분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올해, 생명, 빛, 은혜, 진리로 충만한 아름다운 해가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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