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4일 목요일

그분의 선하신 뜻이

사44:24-2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매일 아침이 되면 지난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접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일들, 고국의 소식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일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하나님을 묵상하면 늘 든든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실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면서 하나님은 '구속자' '모태에서 부터 그들을 지으신분' ' 누구의 도움 없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24)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순간에 동시적으로 펼쳐 집니다.

이 하나님께서 황폐한 예루살렘을 다시 회복 시킬것입니다(26).

더욱 놀라운것은  예루살렘을 복원하는 일을 이방왕인 고레스를 통해 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28).

하나님은 고레스를 ' 내 목자' 라고 하셨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성취하시겠다고 하십니다(28).

고레스는 이사야 선지자 보다 100년 후의 사람입니다. 현재 그의 입에서 그가 전혀 알지못하는  100년 후의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알지 못하는 고레스와 같은 사람들의 손을 통하여 행하시기도 합니다.

오늘의 나의 삶과 세상의 모든 일도 하나님의 계획속에 선한신 뜻대로 이루어가심을 믿습니다.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모든 만물들이

사44:9-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고도의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어리석음은 여전합니다. 세상은 발전해도 인간의 죄성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대표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본문은 우상을 만드는자와 우상숭배하는자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방인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이사야는 우상을 만드는자의 허망함(9)을 말하면서  본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12-14절에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들이는 정성을 말씀합니다. 왜 우상을 만드는데 정성을 기울입니까? 허탄한 마음때문입니다(20).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되었고,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지성적이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존재로 창조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본래 창조된 본질에서 떠나게 되었고, 그것은 곧 허탄한 마음을 가질수 밖에 없습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영적 갈증이 곧 우상이라는 대안(代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져도 가져지지도 않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데서 비롯된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로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2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신것은 내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사야는 모든 창조물들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노래할것을 말하며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23).
그렇습니다. 이 아침에 모든 만물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은혜로 나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하나님은

사44:1-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댓가를 치루게 하는 것이 세상의 법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정에는 이와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정에 서 있는  느낌을 줍니다. 하나님의 재판의 결과는 당연히 이스라엘이 징벌에 합당한 죄를 범한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불순종, 반역 불신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이와 같습니다(43:25-28).

그럼에도 43:1; 44:1에는 '그러나'(But, NIV 영어성경 참조) 로 시작됩니다.
여기에는 징벌대신 은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온갖 죄악으로 얼룩짐에도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이들을 대하십니다.
마치 집을 나간 탕자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눅15:20). 이 아버지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온갖 죄악에도 불구하고 '여수룬'(의로운자, 2절)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그리스도안에서 의로운자, 성도라고 부르신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그들을 소생 시키십니다.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듯이 성령을 부어주시고, 축복을 그들 후손에게 계속 부어주심을 약속하십니다(3).

늘 마음이 변화무쌍한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셨습니다(8).

본문이 주는 멧시지는  은혜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나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현재와 미래

사43:14-2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께서 떡을 떼시면서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을때 옛것은(과거의 죄) 잊어버리고 현재의 구원함을 기억하며 감사 하라는 의미 입니다.

복음은 과거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구원의 삶, 미래에 받을 은혜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현재적이고 미래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예전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8). 대신 하나님이 행하실 새일을 보라고 하십니다(19).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메대바사의 군대를 사용하실것 입니다(14). 세상나라의 흥함과 망함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로 부터 나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역사를 만들어가시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처럼, 바벨론에서 구원하심은 이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때문이 아니라(22-24),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인함입니다(25-28).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그분의 은혜에 기초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시간이요, 미래적인 삶입니다.

예수 믿기전의 나의 삶의 간증은 한번으로 족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구원 받은 현재의 삶, 미래의 받을 은혜를 위해 뒤엣것은 생각하지 않고 앞을 향하여(그리스도) 좇아가는 삶이 신앙입니다.

주님! 뒤엣것은 잊고 앞엣것을 향해  힘껏 달리는 신앙의 경주를 잘 할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아-멘-

2013년 3월 10일 일요일

하나님은

시59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기자(다윗은)은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자신을 죽일려고 사울이 보낸 자 들에 의해 그의 집이 감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주인공의 집에 마구 총을 쏘아대며 그 집안에 있는 있는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찬 모습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본 시편 기자의 집도 이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만일 우리집이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수 있을까요?
그러나 시편기자는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가고 있습니다(3,6,7,14,15).

시편기자의 믿음과 자신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가득찬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

1-5절에 나타난 그의 절박한 기도, 마치 사냥개에 좇기는 짐승같은 처지에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가끔 우리도 걱정과 염려가 너무 커서 하나님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 혼자된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의 이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자신이 비록 감시하에 있지만 ,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8).

이런 믿음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9).
이날밤은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은 밤이지만(6,14), 다음 아침날에는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16).

항상 어려움을 찬송으로 바꾸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기"(9-10) 때문입니다. 아-멘.

2013년 3월 9일 토요일

이 은혜속에서..

사43: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을 시작하는 접속사를 붙힌다면 ' 그러므로' 일것입니다. 42장에서 이스라엘은 눈멀고, 귀먹고 하나님의 종으로 실패했음을 보았습니다. ' 그러므로' 나는 너를 버리겠다. 이렇게 나와야 논리가 맞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본문은 그러나(But,NIV 성경참조)로 시작됩니다. 이들이 눈멀고, 귀먹은 백성일지라도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 너는 내것이다"(1)라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진하게 묻어있습니다.

이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이들을 포로생활(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키실것을 약속하십니다(5-7).

비록 눈멀고 귀먹은 이스라엘이지만(8), 그들은 아직 하나님의 종이요 증인입니다(10).
이것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초한것입니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큰 위안을 줍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은 받았지만, 나의 삶을 살펴보면 쉽게 넘어지고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럴때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하나님의 변함이 없으신 사랑과  그분의 신실하심이 늘 우리를 붙잡고 계심을 이사야는 우리에게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은혜속에서 살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2013년 3월 8일 금요일

안약

사42:10-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다가올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현재의 어려움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온전한 신뢰입니다. 믿음은  자기 체면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루 하루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고(9) 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새 노래를 하나님께 부르라고 합니다.  섬에 거하는 사람들, 사막에 있는 도시들, 산꼭대기에 사는 사람들 모두 망라해서 하나님께 새 노래를 부르라고 초청합니다(10).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천둥같은 고함소리를 내며 전쟁 나가는 용사의 모습에 비유합니다(13). 그분의 소리는 마치  해산하는 여인의 소리와 같습니다(14).

하나님은 심판과  자유를 가져오십니다(15-17).  그 결과 앞 못보는 사람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고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실 것입니다(16).

하나님의 가르침이 선포되고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21).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지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자들이었습니다(18-20).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그들에게(20-25) 필요한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계3:14-22) 안약이 필요합니다.

매일 말씀속에 살지 못하면 , 기도에 힘쓰지 못하면 마음이 둔해집니다. 늘 세상속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보지못하고 듣지 못합니다.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자위(自慰)하나 나에게도 안약이 필요하지는 아니한지 잠시 멈추어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