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4일 일요일

나의 영혼아

시62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시편기자는 "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란다"는 말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1-2,5-6)).
5절에서는 자신에게 강하게 다짐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잠잠히 하나님만 바란다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만 바라봄을 말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다른것들을 바라보니까 걱정이 생기고, 갈등이 생깁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영혼은 어느 상황에서 조용한 평안을 느낍니다.

시편기자는 구원과 영광, 힘의 반석과 피난처는 하나님께만 있는 것을 알기에(7)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신뢰의 대상이 못 되는 인간을 비교하고 있습니다(9)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공의를 확신하고 있습니다(11-12).
 이 믿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해야함을 역설(力說)할수 있게 하였습니다(8).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라"
오늘 나도 이런 다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샬롬!

2013년 4월 13일 토요일

인도하심

출13:17-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진기한 장면이 나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자(Gaza)와 약속의 땅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22). 갑자기 이 기둥들이 북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앞서가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열을 지으며 그 기둥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18). 요셉의 유골도 함께 가지고 갔습니다(19).

본문은 하나님이 방향을 바꾸셔서 다른길로 이끄신 이유를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17).

매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지만, 블레셋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길로 인도 하셨습니다.

나의 삶도 때로는 평탄한 길, 때로는 험준한 길을 만나게 하십니다.
비록 험준한 길이지만  하나님은 내가 감당할수 있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감당치 못할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피할길을 주시는(고전10:13) 하나님!
오늘도 그분을 믿고 인도함을  따라 삽니다. 아-멘

2013년 4월 12일 금요일

주님의 것

출13: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무엇이든 첫 것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결혼해서 첫 아이가 태어날때 그 기쁨과 소중함을 기억할것 입니다. 집에서 키우던 짐승이 첫 새끼를 낳았을때 느끼는 소중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난 모든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
레위기에 보면 처음 추수 수확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23:10).

하나님은 애굽의 사람이던 짐승이던 처음 난 것들을 다 죽이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애굽인들에게도 처음 난 생명은 매우 귀한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들의 생명을 대속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가장 귀한 존재이셨던 그분의 아드님을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하셨습니다(요3:16).

주님의 피로 나를  사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의 생명, 나의 시간, 나에게 속한 모든것이 하나님의 것 입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입니다(롬14:8).

주님!오늘 주님의 것으로 살겠습니다. -아-멘-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하나됨

출12:43-5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43).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때 이스라엘이 아닌 사람들도 함께 나왔습니다(38).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자손입니다(창12:3). 이스라엘이 아닌 사람들도 이스라엘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었지만, 이스라엘이 아닌 이유로 유월절 잔치에 참가할수 없었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할례를 받은 후에는 유월절 잔치에 참여 할수 있습니다(43,48).
이때 이들은 서로 하나가 될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할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48).
그러므로 주님의 피로 사시는 교회안에도  장벽이 있을수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지식인나, 무식한 사람이나 십자가안에서 하나입니다.
특히 목사만 제사장인것 처럼 평신도와 구분 짓는것, 이것은 하나가 아닌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무식한 사람들이 소외를 당한다면 그것 역시 하나가 아닌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거스립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둘이 아닌 하나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안에는 이런 요소는 없습니까?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오늘도 기억하며

출12:31-4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밤 중에 애굽의 장자들이  죽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29). 그날 밤은 애굽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밤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강팍했던 바로는 완전히 항복을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으로 자신들을 떠나줄것을 요청합니다(31).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 유월절 밤에 애굽을 급히 떠나야 했습니다.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어깨에 메고(34), 공황상태에 빠진 애굽 사람들이 준 은, 금 패물과(35-36), 많은 생축들을 이끌고 (38), 좇겨나듯이 급히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그동안 노예처럼 애굽 사람들을 위해 일한것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 대한 댓가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세상에 댓가 없는 수고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밤을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난 그 밤을 대대로 기억하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42).

걱정과 근심은 나의 삶속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릴때 생깁니다.
그러나 과거에 받은 은혜를 기억할수록  믿음이 생깁니다.

주님!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오늘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2013년 4월 9일 화요일

기념하라

출12:14-3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손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신 기념하는 날로 정하셨습니다(14).

유월절에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의 장자는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 피를 보고 하나님은 그 집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이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해줍니다(고전5:7).

단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피를 발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집에 재앙이 임하지 않은것 처럼, 단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를 바른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이후 7일동안 누룩이 없는 빵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셨습니다(15).

사도바울은 누룩은 죄를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고전5:7). 누룩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어린양의 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답게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성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으로 부터 오염되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종교다원주의, 물질만능주의, 도덕적 상대주의, 개인주의등 반 기독교적 세상으로 부터 오염되지 않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오염되지 않는 삶입니다. 무교병을 먹는것은 바로 이런 예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월절을 기념하고(14), 무교절을 기념하라고 했습니다(17).
이것은 주님이 제정하신 성찬을 예표해줍니다.

주님의 살을 상징하는 빵을 떼고,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마시며 기념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우리는 남의 죄는 잘 기억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잘 잊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남의 죄를 기억하며 정죄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내게 베푸신 삶을  기억하며 감사가 넘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

2013년 4월 8일 월요일

이 길을

출12: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달로 그들의 월력의 첫 달이 됩니다.
유월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달 10일에 어린양을 선택을 합니다(3)

그리고 4일이 지난 후 14일째 자신들이 선택한 어린양을 잡습니다(6). 그 잡은 양의 피를 집 문틀 옆과 위에 바릅니다(7)

이들이 먹을 음식은 여행길을 위해 먹을 음식이고(9), 금방 길을 떠날 사람 처럼 옷을 입고 서둘로 먹어야 합니다(11).

이렇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쉽고 편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을 떠나 순례의 길을 가는 자들이 감수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비록 노예 생활이었지만, 익숙했던 곳을 떠나는 두려움, 아무 정보도 없이 애굽을 떠나 무작정 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편안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것이고 생각지 못한 일들도 많이 있을 것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순례의 길을 가는 삶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 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우리의 순례의 길도 우리만이 가는 길이 아닌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함께 가시는 길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이 길을 잘 가고 있습니까? 주변에 우리가 신앙적으로 용기를 주어 순례의 길을 잘 가도록 도와야 할 형제 자매는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