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4:2-6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해 마다 한 번 씩 건강 검진을 받습니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으면 '의사' 로 부터 연락이 없는데 만일 의사가 만나자고 연락이 오면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나이가 들수록 혹시(?) 하는 불안감이 듭니다. 않좋은 소식을 들을 줄 알고 조금 긴장했는데 의외로 이것만 조금 조심하면 되겠다고 하면.. 아마 이런 경험을 했던 분 이면 이사야의 예언을 듣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 "그 날에" ... 이사야는 이미 유다의 멸망에 대해 예언을 하였습니다. 멸망의 날에 바위틈에 숨어도, 깊은 동굴에 숨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이미 들었습니다(2:6-21). 하지만 오늘 본문의 "그 날은" 멸망의 날이 아닌 회복의 날이요, 저주가 아닌 축복의 날입니다(2). 이들이 예상했던것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랑의 양면성이 있습니다.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회개 하도록 하시고, 또한 고난 때문에 낙심 할 까봐 소망을 주십니다. 즉 징계, 약속, 격려, 위로.. 이것이 그분의 자녀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십니다. .. 당시 유다가 부패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남겨 두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3). .. 한국교회에 부정적인 면들이 부각이 되어 지탄의 대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도 많고, 지탄을 받을 일이 생길 때에는 목회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울때가 있습니다... 제가 어릴적 목사님들은 비록 지금의 목사님들 보다 교육수준은 좀 떨어졌지만 하나님앞에 진실했고, 성도들을 진실하게 사랑했고, 진실하고 정직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분들에게는 영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목회에 필요한 것은 학위가 아니라 소명이요, 화려한 언변이 아닌 진실함이요, 뼈속까지 파고드는 정직함(Integrity)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신실한 목회자들, 신실한 성도들이 구석에 구석에 더 많이 있음을 압니다. 성직을 직업이 아닌 소명으로, 경제적 어려움이나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고도 , 그야 말로 남이 알아주던 말던 이름 없이 빛없이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분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에 가장 적대적인 모슬렘 권에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 북한의 인권을 위해, 탈북자들을 위험을 무릎쓰고 돕는 분들이 더 많이 있음을 압니다. . .. 하나님은 남겨둔 이들을 정결하게, 거룩하게 영광스럽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3-4). .. 과거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 하셨습니다. 이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보호 하실 것 이라고 말씀 하십니다(5). .. 집나간 탕자가 아버지집으로 돌아 가리라고 마음 먹고 돌아왔을때 아버지는 그를 박대 할 줄 알았습니다. 집안에 들이지 않고 문 밖에서 좇아 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이 아들에게 달려가서 얼싸 안고 기쁨에 겨워 잔치를 벌였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징계하시만 죄를 회개하면 탕자의 아버지 처럼 언제든지 달려와 안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는 찌는듯한 더위와 풍우가 있습니다. 더위를 피하고 풍우를 피할 수 있는 초막(Shelter)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그 초막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6).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 !풍우를 피할 수 있는 곳!
광야 같은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더위를 만나고, 풍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할수 있는 초막이 되시는 하나님의 품이 있음을 잊지마십시오.
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참 아름다움
사3:13-4:1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건강함의 척도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청렴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다의 지도자들의 부패성, 부도덕성은 도를 넘었습니다. 권력을 이용해 남의 재산을 차지했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13-15). 또한 상류층 여자들의 교만, 허영, 사치, 높은 콧대등(16-23). 이것을 보면 당시 유다는 양극화 현상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유행을 좇는 이들의 화려한 의복과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녔던 온갖 보석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질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거들먹 거림이 수치로 바뀔 것입니다(4:1).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심은 그들의 화려한 외모에 있는 것 이 아니라 마음에 있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 성형천국' 이라는 한국에는 좀더 아름답게 보일려고 얼굴에 손댄 사람들이 제법 많은 모양입니다. 물론 유행을 따르고, 미에 관심이 있는것은 잘못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은총을 누리며 그것을 개발해 나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기독교는 금욕의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 미'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옷을 입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심지어는 성형을 한다 할지라도,..참 아름다움은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에서 나오는 영적인 매력이야 말로 파리와 뉴욕의 유행보다 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 이 아닐 것 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건강함의 척도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청렴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다의 지도자들의 부패성, 부도덕성은 도를 넘었습니다. 권력을 이용해 남의 재산을 차지했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13-15). 또한 상류층 여자들의 교만, 허영, 사치, 높은 콧대등(16-23). 이것을 보면 당시 유다는 양극화 현상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유행을 좇는 이들의 화려한 의복과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녔던 온갖 보석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질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거들먹 거림이 수치로 바뀔 것입니다(4:1).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심은 그들의 화려한 외모에 있는 것 이 아니라 마음에 있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 성형천국' 이라는 한국에는 좀더 아름답게 보일려고 얼굴에 손댄 사람들이 제법 많은 모양입니다. 물론 유행을 따르고, 미에 관심이 있는것은 잘못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은총을 누리며 그것을 개발해 나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기독교는 금욕의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 미'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옷을 입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심지어는 성형을 한다 할지라도,..참 아름다움은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에서 나오는 영적인 매력이야 말로 파리와 뉴욕의 유행보다 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 이 아닐 것 입니다.
2012년 6월 28일 목요일
하나님 한 분 만
사2:6-22절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자본, 과학, 기술이 생활이 중심이 되어 버린 현대의 생활,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건강을 지탱해주고, 강력한 군사력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 져 준다고 믿는 현대의 삶은 마치 이사야 시대와 매우 흡사 합니다. 이사야 시대의 유다는 커다른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 번영으로 당연히 따라오는 '부'를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 기술이 우상화 된 것 처럼, 유다의 도처에도 우상숭배가 팽배 했습니다(7). 또한 " 동방 풍속이 가득했으며"(6) 즉 유대의 동방의 나라들 앗수르, 아람, 바벨론에서 온 온갖 미신들이 유행했습니다. 이러다보니 하나님을 의지 하기 보다는 점성술을 통해 점을 치며 자신들의 운명을 예견했습니다(6). 그 결과 나라의 영적 생활은 붕괴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술이 발달하고, 돈이 많아지면 하나님을 쉽게 잊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랑하는 것은 절대 영원할 수 없습니다(10). 바벨론 같은 이 세상은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그러합니다. 과거에 그 위용을 자랑했던 로마제국도 무너졌습니다. 세계 초 강대국이라 일컫는 미국도 저물어 가는 황혼처럼 점점 그 힘이 쇠퇴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중국도 지금은 온갖 위세를 부리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것 입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영원한 절대강자는 없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입니다. '예수님의 종말론 ' 이라 불리우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은 이미 예언 하셨습니다. 또한 성경 전체를 통해 성경은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 은 반드시 올것이라고.. 그때에 인간이 자랑하던것은 다 무너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22).
오직 하나님 한 분 만 의지 하십시오. 이것이 절대 안전한 길입니다.
자본, 과학, 기술이 생활이 중심이 되어 버린 현대의 생활,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건강을 지탱해주고, 강력한 군사력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 져 준다고 믿는 현대의 삶은 마치 이사야 시대와 매우 흡사 합니다. 이사야 시대의 유다는 커다른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 번영으로 당연히 따라오는 '부'를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 기술이 우상화 된 것 처럼, 유다의 도처에도 우상숭배가 팽배 했습니다(7). 또한 " 동방 풍속이 가득했으며"(6) 즉 유대의 동방의 나라들 앗수르, 아람, 바벨론에서 온 온갖 미신들이 유행했습니다. 이러다보니 하나님을 의지 하기 보다는 점성술을 통해 점을 치며 자신들의 운명을 예견했습니다(6). 그 결과 나라의 영적 생활은 붕괴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술이 발달하고, 돈이 많아지면 하나님을 쉽게 잊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랑하는 것은 절대 영원할 수 없습니다(10). 바벨론 같은 이 세상은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그러합니다. 과거에 그 위용을 자랑했던 로마제국도 무너졌습니다. 세계 초 강대국이라 일컫는 미국도 저물어 가는 황혼처럼 점점 그 힘이 쇠퇴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중국도 지금은 온갖 위세를 부리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것 입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영원한 절대강자는 없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입니다. '예수님의 종말론 ' 이라 불리우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은 이미 예언 하셨습니다. 또한 성경 전체를 통해 성경은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 은 반드시 올것이라고.. 그때에 인간이 자랑하던것은 다 무너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22).
오직 하나님 한 분 만 의지 하십시오. 이것이 절대 안전한 길입니다.
2012년 6월 27일 수요일
땅에서도
사2:1-5절 묵상 내용입니다.
이사야 1장에서는 다가오는 유다의 멸망에 대한 슬픈 예언으로 가득찼습니다. 오늘 말씀은 반전이 되어 예루살렘의 회복, 세계의 평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이 환상을 보았을때 얼마나 흥분된 마음이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이것은 비단 이사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도 커다란 위안을 주는 말씀입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는 전쟁, 테러, 영토분쟁, 자연재해, 유럽에서 부터 발생한 경제 위기, 종교적 갈등, 특히 모슬렘 나라에서 자행 되는 기독교인들의 테러, 시리아의 내전 상태, - 독재자 아사드가 반정부 사람들에 대한 무참한 학살, 연일 신문과 방송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도한다고 눈코 뜰새가 없습니다. 이런 뉴스들을 접할 때면 이 세상에는 어디에도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가 본 환상은 뚜렷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님의 역사로 나타날 세계 선교, 전 세계의 평화, 정의.. 선택의 여지없이 도래 할 메시야왕국(하나나님의 나라) 입니다. 그때에는 평강의 왕이이신 그리스도(사9:6)께서 위대한 교사가 되셔서(3) 가르치실 것이고, 그들이 그 길로 행할것이고(3) 더 이상 전쟁이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4). 더 이상 고통이나 슬픔, 아픔이 존재 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본 환상에 따라 오늘도 이렇게 기도 합니다.
" 나가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이사야 1장에서는 다가오는 유다의 멸망에 대한 슬픈 예언으로 가득찼습니다. 오늘 말씀은 반전이 되어 예루살렘의 회복, 세계의 평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이 환상을 보았을때 얼마나 흥분된 마음이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이것은 비단 이사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도 커다란 위안을 주는 말씀입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는 전쟁, 테러, 영토분쟁, 자연재해, 유럽에서 부터 발생한 경제 위기, 종교적 갈등, 특히 모슬렘 나라에서 자행 되는 기독교인들의 테러, 시리아의 내전 상태, - 독재자 아사드가 반정부 사람들에 대한 무참한 학살, 연일 신문과 방송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도한다고 눈코 뜰새가 없습니다. 이런 뉴스들을 접할 때면 이 세상에는 어디에도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가 본 환상은 뚜렷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님의 역사로 나타날 세계 선교, 전 세계의 평화, 정의.. 선택의 여지없이 도래 할 메시야왕국(하나나님의 나라) 입니다. 그때에는 평강의 왕이이신 그리스도(사9:6)께서 위대한 교사가 되셔서(3) 가르치실 것이고, 그들이 그 길로 행할것이고(3) 더 이상 전쟁이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4). 더 이상 고통이나 슬픔, 아픔이 존재 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본 환상에 따라 오늘도 이렇게 기도 합니다.
" 나가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이럴 때 더욱...
사1:21-31절 말씀 묵상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유다의 사회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바라보는 이사야의 탄식으로 부터 시작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의와 공의는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대신 살인, 뇌물, 약자들의 고통으로 대치 되었습니다. 아무도 당시 사회적 약자들이었던 고아, 과부들에게 관심을 갖는이들이 없었습니다(21,23). 이들의 진짜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24)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 나라가 망하는 것도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부패와 타락의 암 덩어리가 퍼져 결국 망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가 가진 힘으로 약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 스러운 것입니다. ..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위선일지 모릅니다. 주님도 말씀하셨지요. 두가지 큰 계명 즉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 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고 하셨지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사람과 바른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며,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사람들에게는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남에 대해 교만하게 행동하면서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과시용 혹은 영웅심리의 동기가 짙게 깔려 있을 것 입니다. 비단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정의 와 공의 그리고 공평, 정직함을 버리고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값싼 은혜'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시 유다를 바라보는 이사야의 탄식이 조국의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관행화 된 권력자들의 부정부패,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 시키는 성적 타락, 만연화된 성폭행 사건, 살인, 등 밤이면 십자가의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지만 도덕적 수준은 나아지는 커녕 도리어 후퇴해버린 느낌입니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유다 처럼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현실에 점점 무감각 해가고 있지는 아니한지? 이럴 때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역시 유다의 사회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바라보는 이사야의 탄식으로 부터 시작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의와 공의는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대신 살인, 뇌물, 약자들의 고통으로 대치 되었습니다. 아무도 당시 사회적 약자들이었던 고아, 과부들에게 관심을 갖는이들이 없었습니다(21,23). 이들의 진짜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24)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 나라가 망하는 것도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부패와 타락의 암 덩어리가 퍼져 결국 망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가 가진 힘으로 약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 스러운 것입니다. ..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위선일지 모릅니다. 주님도 말씀하셨지요. 두가지 큰 계명 즉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 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고 하셨지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사람과 바른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며,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사람들에게는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남에 대해 교만하게 행동하면서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과시용 혹은 영웅심리의 동기가 짙게 깔려 있을 것 입니다. 비단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정의 와 공의 그리고 공평, 정직함을 버리고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값싼 은혜'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시 유다를 바라보는 이사야의 탄식이 조국의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관행화 된 권력자들의 부정부패,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 시키는 성적 타락, 만연화된 성폭행 사건, 살인, 등 밤이면 십자가의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지만 도덕적 수준은 나아지는 커녕 도리어 후퇴해버린 느낌입니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유다 처럼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현실에 점점 무감각 해가고 있지는 아니한지? 이럴 때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진정성
사1:1-20절 묵상 내용입니다.
이사야서를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약 60년동안 사역한 선지자 입니다. 그의 오랜 사역 기간 동안 그는 유다가 2번에 걸쳐 외세에 침략을 당한 것 을 목격합니다. 한 번 은 수리아와 에브라임 연합군이 유다를 침략했고(왕하16:5), 다른 한 번 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목격 했습니다.(왕하18:13). 그런 가운데 유다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모든 위기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영적으로 병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른 절기나 예배를 드리지 않아 그런것이 아닙니다(13). 문제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나 지키는 절기와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살진 짐승들을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예배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악행과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이럴 때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사람은 사회적약자들입니다. 당시 사회적 약자들이란 고아와 과부들이었습니다(17). 겉으로는 하나님께 무수한 제물이 받쳐지고, 안식일을 지키고, 각종 절기들을 어김없이 지켰지만 즉 자신들 스스로는 영적으로 부한자 처럼 행하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성한데가 하나도 없던 병자들이었습니다(6). .. 육체적으로 병이 들면 자신이 병든것을 대부분이 알아채립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병든 것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랜 믿음 생활, 전통, 건전한 교리, 많은 교인수, 화려한 예배당, 탁월한 설교... 그러나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예배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 쇼맨십,수많은 기독교 서적 - 지당한 말씀으로 가득차 있지만 정작 행동의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부담이시다는 것입니다(14, Burden-NIV). ..병든 유다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 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면 그들의 죄는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될것"(18)이라고 하셨습니다. ..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삶의 진정성,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성 입니다.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위선이 아닌 진실이요, 정직함입니다. "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6,10).
이사야서를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약 60년동안 사역한 선지자 입니다. 그의 오랜 사역 기간 동안 그는 유다가 2번에 걸쳐 외세에 침략을 당한 것 을 목격합니다. 한 번 은 수리아와 에브라임 연합군이 유다를 침략했고(왕하16:5), 다른 한 번 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목격 했습니다.(왕하18:13). 그런 가운데 유다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모든 위기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영적으로 병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른 절기나 예배를 드리지 않아 그런것이 아닙니다(13). 문제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나 지키는 절기와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살진 짐승들을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예배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악행과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이럴 때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사람은 사회적약자들입니다. 당시 사회적 약자들이란 고아와 과부들이었습니다(17). 겉으로는 하나님께 무수한 제물이 받쳐지고, 안식일을 지키고, 각종 절기들을 어김없이 지켰지만 즉 자신들 스스로는 영적으로 부한자 처럼 행하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성한데가 하나도 없던 병자들이었습니다(6). .. 육체적으로 병이 들면 자신이 병든것을 대부분이 알아채립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병든 것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랜 믿음 생활, 전통, 건전한 교리, 많은 교인수, 화려한 예배당, 탁월한 설교... 그러나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예배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 쇼맨십,수많은 기독교 서적 - 지당한 말씀으로 가득차 있지만 정작 행동의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부담이시다는 것입니다(14, Burden-NIV). ..병든 유다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 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면 그들의 죄는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될것"(18)이라고 하셨습니다. ..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삶의 진정성,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성 입니다.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위선이 아닌 진실이요, 정직함입니다. "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6,10).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넘치는 은혜
시22편 말씀 묵상내용입니다.
예배를 인도 하는 사람이 고민과 비탄에 쌓여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넘치는 기쁨, 은혜가 넘치는 얼굴, 마음 가득히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는 모습...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함을 상식적이라 생각하겠지요. 현대의 가스펠 송 도 그렇게 만들어져야 공감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시편은 그렇치가 않습니다. 애통과 번민이 가득한 내용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먼저 왜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는지, 왜 자신의 깊은 번민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듣지 않으시는지(1), 자신은 마치 벌레와 같은 존재(6) 라는 것, 너무나 절망이 깊어서 자신은 " 물 같이 쏟아 졌고, 자신의 모든 뼈는 어그러졌고, 자신의 마음은 밀랍 같고 자신속에 녹았으며... (14-15). 마치 죽음이전에 거의 죽음에 가까운 깊은 절망을 표현 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당시 심경을 잘 표현 해 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도 이렇게 절망속에서 헤메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믿음 좋은 사람은 늘 기쁘고, 늘 씩씩하고, 늘 거뜬하고,...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위선 일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잘 걸릴 수 있는 영적 질병 가운데가 하나가 위선 입니다. 특히 목회자에게는 거의 어김없이 다가오는 질병입니다. 사람은 연약한 그릇이고, 죄성이 있는 존재인데 어떻게 매일 기쁘고, 매일 담대하고, 매일 은혜가 넘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내면에는 깊은 절망이 있을 수 있고, 내면에는 불신이 존재 할 수 있고, 내면에는 받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속에 울고 있는 자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합니다. 또 이 시편은 주님의 고난을 모형적으로 잘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물론 죄가 없으신 분 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십자가의 고난은 너무나 처철한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6)라는 말씀 처럼 잡히시고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멸시와 인격적이 모독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1), 성부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 받았다는 영적인 고통을 당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 시편은 주님의 고난을 현장감이 넘치게 잘 예견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면 할수록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넘치는 주님의 은혜가 더 가슴 깊게 다가옵니다. 샬롬!
예배를 인도 하는 사람이 고민과 비탄에 쌓여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넘치는 기쁨, 은혜가 넘치는 얼굴, 마음 가득히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는 모습...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함을 상식적이라 생각하겠지요. 현대의 가스펠 송 도 그렇게 만들어져야 공감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시편은 그렇치가 않습니다. 애통과 번민이 가득한 내용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먼저 왜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는지, 왜 자신의 깊은 번민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듣지 않으시는지(1), 자신은 마치 벌레와 같은 존재(6) 라는 것, 너무나 절망이 깊어서 자신은 " 물 같이 쏟아 졌고, 자신의 모든 뼈는 어그러졌고, 자신의 마음은 밀랍 같고 자신속에 녹았으며... (14-15). 마치 죽음이전에 거의 죽음에 가까운 깊은 절망을 표현 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당시 심경을 잘 표현 해 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도 이렇게 절망속에서 헤메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믿음 좋은 사람은 늘 기쁘고, 늘 씩씩하고, 늘 거뜬하고,...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위선 일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잘 걸릴 수 있는 영적 질병 가운데가 하나가 위선 입니다. 특히 목회자에게는 거의 어김없이 다가오는 질병입니다. 사람은 연약한 그릇이고, 죄성이 있는 존재인데 어떻게 매일 기쁘고, 매일 담대하고, 매일 은혜가 넘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내면에는 깊은 절망이 있을 수 있고, 내면에는 불신이 존재 할 수 있고, 내면에는 받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속에 울고 있는 자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합니다. 또 이 시편은 주님의 고난을 모형적으로 잘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물론 죄가 없으신 분 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십자가의 고난은 너무나 처철한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6)라는 말씀 처럼 잡히시고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멸시와 인격적이 모독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1), 성부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 받았다는 영적인 고통을 당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 시편은 주님의 고난을 현장감이 넘치게 잘 예견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면 할수록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넘치는 주님의 은혜가 더 가슴 깊게 다가옵니다. 샬롬!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