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25: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지난 며칠동안 이사야서를 묵상하면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보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주어진 고난(24)으로 부터 회복되는 기쁨으로 가득찬 말씀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해야 함을 깨닫게 되기까지 고난을 견디어 내야 했습니다.
이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분노가 끝마치고(6) 주어지는 기쁨, 환희를 볼수 있습니다.
이 기쁨의 잔치는 모든 백성을 위한 것 입니다(6). 사망을 멸하시고(7-8), 그들의 얼굴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실것 입니다(8).
이 기쁨의 잔치는 우리가 주님 앞에 가면 참여 하게 될 천국 잔치의 모형입니다.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행했던 모든 수고를 칭찬하시고, 우리를 위해 기쁨의 잔치를 베푸실것입니다. 세상에서 고통 받던때의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말할수 없는 위로로 우리를 감싸안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좋습니다.
이처럼 이사야가 유다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이 환희의 멧시지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선명하게 예표해주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나라를 위해 수고를 다하는 것 입니다.
모든것이 새로워지며, 가장 큰 기쁨의 날이 우리에게 다가올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9)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구원의 우물
사12: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눈에 띄는 단어는 3절의 ' 구원의 우물' 입니다. 이 물은 마르지 아니하고 순전한 기쁨을 주는 물입니다.
우리가 이 우물에서 물을 먹을지라도 계속 이 물을 먹으며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더욱 깊이 알고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길 " ...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고 하셨습니다.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더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 우리에게 갈증을 줍니다.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사람은 세상이 발전하고 바뀔지라도 늘 메마른 광야에서 살아가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이 물을 주셨습니다. 이 물은 과학의 힘으로 살수 없습니다. 돈으로 살수 없습니다. 권력으로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분(예수 그리스도)에게 오면 됩니다. 구원 뿐만 아니라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있는 동안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이사야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까?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지고 이제는 그들을 향한 치유와 위안이 있습니다(1).
좋지않은 시간을 보낸 후 금방 기쁨으로 바뀐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않좋았던 기억과 여운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유다를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5-6).
우리가 기쁨으로 가득찰때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내 안에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안에서 주신 구원의 기쁨속에 사십시오. 나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눈에 띄는 단어는 3절의 ' 구원의 우물' 입니다. 이 물은 마르지 아니하고 순전한 기쁨을 주는 물입니다.
우리가 이 우물에서 물을 먹을지라도 계속 이 물을 먹으며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더욱 깊이 알고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길 " ...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고 하셨습니다.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더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 우리에게 갈증을 줍니다.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사람은 세상이 발전하고 바뀔지라도 늘 메마른 광야에서 살아가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이 물을 주셨습니다. 이 물은 과학의 힘으로 살수 없습니다. 돈으로 살수 없습니다. 권력으로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분(예수 그리스도)에게 오면 됩니다. 구원 뿐만 아니라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있는 동안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이사야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까?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지고 이제는 그들을 향한 치유와 위안이 있습니다(1).
좋지않은 시간을 보낸 후 금방 기쁨으로 바뀐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않좋았던 기억과 여운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유다를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5-6).
우리가 기쁨으로 가득찰때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내 안에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안에서 주신 구원의 기쁨속에 사십시오. 나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2년 12월 29일 토요일
앞으로 일어날
사11: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의 말씅입니다.
이사야가 이 멧시지를 선포할때에 유다의 상황은 매우 어둡고 침울하고 소망빛이 보이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당시 유다처럼 어둡고, 침울한 세상에 살아갑니다. 좋은 소식 보다는 좋지 않는 소식이 더 많습니다. 테러, 자연재해, 어린아이들까지 죽이는 묻지마 총기사고, 국지전, 세계 경제 위기 등등... 하지만 세상을 보면 갈수록 흉폭해지는 것 같지만 우리의 눈은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런점을 그들(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멧시지의 근원은 바로 이새의 줄기입니다. 육신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분을 통해서 시작 될 것입니다(1).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5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 이신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의와 공의 신실함을 대표하시는 분입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나무가지는 앙상해집니다. 겉보기는 마치 죽은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때가 되면 그 나무가지에는 새싹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매가 맺게 될것 입니다.
현재 이 세상이 마치 앙상한 가지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분이 세우실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6-9).
주위의 환경을 보지 않고 그분과 함께할 미래의 시간을 보며 믿음안에서 굳건하게 설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물이 바다를 덮음 간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아-멘-
본문에는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의 말씅입니다.
이사야가 이 멧시지를 선포할때에 유다의 상황은 매우 어둡고 침울하고 소망빛이 보이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당시 유다처럼 어둡고, 침울한 세상에 살아갑니다. 좋은 소식 보다는 좋지 않는 소식이 더 많습니다. 테러, 자연재해, 어린아이들까지 죽이는 묻지마 총기사고, 국지전, 세계 경제 위기 등등... 하지만 세상을 보면 갈수록 흉폭해지는 것 같지만 우리의 눈은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런점을 그들(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멧시지의 근원은 바로 이새의 줄기입니다. 육신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분을 통해서 시작 될 것입니다(1).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5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 이신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의와 공의 신실함을 대표하시는 분입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나무가지는 앙상해집니다. 겉보기는 마치 죽은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때가 되면 그 나무가지에는 새싹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매가 맺게 될것 입니다.
현재 이 세상이 마치 앙상한 가지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분이 세우실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6-9).
주위의 환경을 보지 않고 그분과 함께할 미래의 시간을 보며 믿음안에서 굳건하게 설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물이 바다를 덮음 간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아-멘-
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앗수르
사10:20-2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7:3에서 이사야의 첫번째 아들 '스알야숩'(남은자가 돌아오리라)을 통해 유다가 멸망할지라도 남은자가 있음을 압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시지만 희망을 끈을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남은자는 소수입니다(22)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올것입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고, 교회가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은 항상 남은자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일을 하셨습니다.
중세의 교회가 타락을 하고 영적으로 암흑기였을때에도 하나님은 루터와 칼빈등 개혁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
본문의 남은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20). 그들이 의지했던 앗수르가 결국 자신들의 부메랑(Boomerang)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것을 의지하면 그 의지하는 대상이 결국 자신의 고통의 근원이 되고 맙니다.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그들은 더 이상 이 흉악한 외국 침략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앗수르'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 앗수르'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의지 하는자는 앗수르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는 징계의 막대기에 불과 합니다. 만일 앗수르가 크게 보인다면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어떤 '앗수르'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하나님은 이 앗수를 이길수 있도록 영적으로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고 은혜를 주실것 입니다.
7:3에서 이사야의 첫번째 아들 '스알야숩'(남은자가 돌아오리라)을 통해 유다가 멸망할지라도 남은자가 있음을 압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시지만 희망을 끈을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남은자는 소수입니다(22)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올것입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고, 교회가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은 항상 남은자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일을 하셨습니다.
중세의 교회가 타락을 하고 영적으로 암흑기였을때에도 하나님은 루터와 칼빈등 개혁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
본문의 남은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20). 그들이 의지했던 앗수르가 결국 자신들의 부메랑(Boomerang)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것을 의지하면 그 의지하는 대상이 결국 자신의 고통의 근원이 되고 맙니다.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그들은 더 이상 이 흉악한 외국 침략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앗수르'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 앗수르'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의지 하는자는 앗수르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는 징계의 막대기에 불과 합니다. 만일 앗수르가 크게 보인다면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어떤 '앗수르'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하나님은 이 앗수를 이길수 있도록 영적으로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고 은혜를 주실것 입니다.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무엇을 해야 할지를
사9:18-10: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9:12,17,21;10:4). 그럼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기다림입니다(10:3).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한 법을 만들어 기득권자들에게는 온갖 혜택을 주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자 들 이들 지도자들을 향해 있습니다(10:1-2). 이렇게 이사야가 살던 시대는 악이 성행하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법을 만들어 사회적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사야가 살던 시대가 아닌 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대선 후보들이 서로 질세라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어떻게든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키겠다고 공약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니 양극화를 완화시킬려고 해도 세상에는 항상 빈부의 격차가 있고, 사회적 약자는 여전히 불이익을 당합니다.
주님이 오실때까지는 이런일들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복음전도에는 사회적 책임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좀더 나아지기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9:12,17,21;10:4). 그럼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기다림입니다(10:3).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한 법을 만들어 기득권자들에게는 온갖 혜택을 주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자 들 이들 지도자들을 향해 있습니다(10:1-2). 이렇게 이사야가 살던 시대는 악이 성행하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법을 만들어 사회적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사야가 살던 시대가 아닌 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대선 후보들이 서로 질세라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어떻게든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키겠다고 공약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니 양극화를 완화시킬려고 해도 세상에는 항상 빈부의 격차가 있고, 사회적 약자는 여전히 불이익을 당합니다.
주님이 오실때까지는 이런일들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복음전도에는 사회적 책임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좀더 나아지기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한 순간도
사9:8-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9:1-7의 본문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말씀이 나옵니다(6).
하지만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 되풀이 됨을 봅니다(12,17).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한 아기의 탄생을 예언했던(6)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진노하십니까? 그들이 회개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13).
이들의 교만한 생각이 9절과 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징계하셔서 전쟁을 통해 모든것을 파괴하셨음에도 그들은 파괴된 이전보다 더 멋있게 복구할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10).
이들은 하나님보다 이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인간 지도자들을 더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그들을 더욱 큰 파멸의 길로 이끌었습니다(16-17).
나의 삶을 보십시오.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갑니까? 아니면 그분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 순간도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9:1-7의 본문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말씀이 나옵니다(6).
하지만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 되풀이 됨을 봅니다(12,17).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한 아기의 탄생을 예언했던(6)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진노하십니까? 그들이 회개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13).
이들의 교만한 생각이 9절과 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징계하셔서 전쟁을 통해 모든것을 파괴하셨음에도 그들은 파괴된 이전보다 더 멋있게 복구할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10).
이들은 하나님보다 이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인간 지도자들을 더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그들을 더욱 큰 파멸의 길로 이끌었습니다(16-17).
나의 삶을 보십시오.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갑니까? 아니면 그분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 순간도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한 아기
사9: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명확히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가 세우실 왕국은 정의와 공의로 세워질 나라입니다(7). 9장까지 이르러 이사야는 세번에 걸쳐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이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당시 그가 살던 상황, 생각, 시간을 넘어선 일입니다. 아마 자신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며 하나님이 주신 멧시지를 선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보다 약700년 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본문 6절에서 앞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아기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주님은 구유에 누워 있는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것은 이 아기는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십니다(6).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기는(6)는 평범한 아기가 아닙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죄악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죄로 부터 해방시키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 하는 아기입니다.
오늘날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아기는 필요합니다.
6절 말씀을 조용히 다시 묵상해보십시오.
이 아기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하십시오.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명확히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가 세우실 왕국은 정의와 공의로 세워질 나라입니다(7). 9장까지 이르러 이사야는 세번에 걸쳐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이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당시 그가 살던 상황, 생각, 시간을 넘어선 일입니다. 아마 자신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며 하나님이 주신 멧시지를 선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보다 약700년 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본문 6절에서 앞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아기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주님은 구유에 누워 있는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것은 이 아기는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십니다(6).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기는(6)는 평범한 아기가 아닙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죄악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죄로 부터 해방시키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 하는 아기입니다.
오늘날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아기는 필요합니다.
6절 말씀을 조용히 다시 묵상해보십시오.
이 아기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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