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8일 목요일

중단되지...

행15:36-16: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복음을 전한곳에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웠습니다(36).  예루살렘 교회 결정 사항을 알리고 그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로 서로 의견 다툼이 있었고(37-38), 결국은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39).

위대한 사도들도 이렇게 의견이 맞지 않을때 다툴수도 있고, 서로 헤어질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불완전한 우리에게도 역시 위안이 됩니다.

바울은 실라의 설교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것 같습니다(32). 그래서 실라와 동역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는 실라와 함께 떠납니다(40).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인 마가에게 한 버 더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마가를 데리고 떠납니다(39).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가 된 실라는 유대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적인 사람가운데 한 사람입니다(22). 그리고 바울은 수리아안디옥 교회 소속입니다. 이들은 갈라디아 남쪽지역의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이때 디모데도 바울의 선교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16:2-3).

이렇게 오랜 동역자인 바나바와 헤어지는 아픔이 있었지만 이 아픔은 복음전파에 방해가 될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바울대로 바나바는 바나바대로 선교의 열정을 계속 불태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일치, 때로는 불완전함에도 그들을 도구로 계속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인간의 연약함때문에 중단되지 않습니다.


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문제해결

행15:22-3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세번에 걸쳐 베드로(6), 야고보(13),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지도자들(22)들은 새로 믿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도록(28) 결정을 하였습니다.

결정후 교회의 대표들을 안디옥 교회로 파송하기로 했습니다(22). 파송자들은 서로 다른 소속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2), 예루살렘교회는  선지자 유다와 실라를(22) 대표로 위임했습니다.

후에 실라는 바울의 동역자가 됩니다(40).

이들이 가지고 간 편지는 안디옥 교회 교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31).
새로 믿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주었습니다(32).

성장에는 위기가 있습니다. 성장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기와 아픔이 지난 후 교회는 더욱 견고해지고 성숙해졌습니다. 성장을 계속해나갔습니다.

교회내부  분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교회가 없기때문입니다. 완전한 교회는 천국에만 있습니다. 죄인들이 모인곳엔 항상 가변성(可變性)이 있습니다.

 만일 교회 문제가 일어났을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의 모든 기준은 성경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복음으로  하나된 결정을 내렸듯이 우리도 진리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아닌 사람들의 이말 저말에 따라 흔들리면 교회는 더욱 흔들리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좋은 모델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2013년 2월 26일 화요일

새로 믿는 성도들

행15:13-2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첫번째 모인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에 이어서 야고보가 의견을 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었고, 당시 교회의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의 말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의 짐을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 입니다(19). 그러면서 몇가지 지킬것을 말합니다(20). 이것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반감을 감소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이방신전은 음행과 연회(宴會)가 동시에 열렸던 곳 입니다. 연회시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다면 합당한 일이 아닐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도  세속적인 문화에서 살았던  새로 믿는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믿었지만 아직' 비(非)복음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기때문입니다.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더나아가 이들을  복음적인 생활과  기독교 문화속으로 이끌고  제자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영적인 돌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다.

2013년 2월 25일 월요일

교회는

행15: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할례파 유대인들이 내려와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교리를 교인들에게 전파했습니다(1).

바울과 바나바와 이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문제를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위임하기로 하고 교회대표로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교인대표 몇사람을 예루살렘 교회로 파송을 했습니다.

초대교회에  영향력이 있었던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 즉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던(행11) 것에 비추어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입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것(7),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원하셨다는 것(7), 하나님은 모든이들의 마음을 아신다는 것(8),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8-9).

바울과 바나바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다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12).

논쟁이 일어날때 모든 촛점을 하나님께 맟추면 해결됩니다. 인간의 생각 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자 들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한 회의였지만 이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모든 교회회의의 촛점도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이  뜻과 인도를 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려고 하다보니  교회에 갈등이 생기고 시험에 듭니다. 교회는 세력단체가 아니라 예배와 복음증거 성령 공동체이기때문입니다.

2013년 2월 24일 일요일

감사와 찬송

시편57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표제어에 있는 것 처럼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동굴에 숨어 있었을때 쓴 말씀입니다(삼상22:1;24:2).

늘 도망해야 하는 도망자의 신세, 참 삶이 피곤하고 힘듭니다. 더구나 큰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기도 합니다(1). 그의 기도를 보면 당시 그의 마음 상태를 엿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5절과 11절에 보면 이런 절박한 기도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높힘을 받게 해달라는 간구로 바뀌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7). 확정되었다는 것은 마음이 견고해졌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마음에 깊은 평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의 평안은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 입니다. 그는 이 믿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깨우고 있습니다(8). 그리고 새벽중에 일어나(8)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할것이라고 했습니다(9).

인간인지라 두려움과 염려의 감정이 교차될때도 있지만(1) 신앙인의 결론은 본 시편기자처럼 감사와 찬송입니다(10-11).

오늘도 감사와 찬송의 하루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샬롬!

2013년 2월 23일 토요일

기도가 필요한...

행14:21-28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쓰러졌던 바울은 다시 일어나 루스드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더베로 떠납니다(19-20). 생명의 위협을 느꼈음에도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베에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고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가서(21), 새로 믿은이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는 많은 고난이 있음을 말합니다(22).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은 고난이 따르는 삶입니다. 주님도, 사도들도 고난을 받았듯이 우리 역시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복음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
현재 시리아에서는 내전으로 약 7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에도 시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을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들에게 자행되는  납치,폭력, 살인등..

어떤 그리스도인은 피부가 다 벗겨지고  두  눈이 뽑힌 상태에서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 세계의 박해 받는 교회들이 있기에 그들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

이제 바울은 각 지역 교회에 리더들을 선택해서 그들의 사역을 주님께 위탁을 합니다(23).
또한 자신들을 파송한  수리아 안디옥에 도착을 해서 선교보고를 하였습니다(27).

감격에 넘쳐 하나님께서 이방 선교의 문을 어떻게 여셨는지를 보고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이들의 고백대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믿음의 문을 여셨기에(27)" 사역의 열매가 있었지 이들의 힘만으로는 실패 했을 것입니다.

선교의 문을 여시는 하나님!
모슬렘, 힌두교, 불교권의 사람들의 믿음의 문을 여시고, 전 세계에 복음때문에  박해받는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2013년 2월 22일 금요일

가장 큰 은혜

행14:8-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루스드라는 주전 6년에 아우스쿠스투스에 의해 로마의 속령(屬領)이 된 도시입니다. 문화적으로는 매우 정체되어 있었고 여러 우상들을 섬기던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쳐준 것을 계기로 이 도시 사람들은 신들이 환생을 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로마의 최고의 신인 제우스(Jupiter:Zeus)라고 했고, 바울을 제우스의 대변인인 헤르메스(Mercury:Hermes)라고 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두사람에게 제사를 드릴려고 했습니다(8-13).

이에대해 바울의 반응은 강경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14).
이들의 영적무지가 얼마나 안타깝고 화가 났으면 자신의 옷을 찢었겠습니까?

바울은 이들의 눈을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렸습니다(15). 하나님의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주시는 일반은총을 강론했습니다(16-17). 이런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있기에 이 세상이 유지가 되고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이 가장 큰 은혜이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살수 있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또한 큰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호흡하면서 살아가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죄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루스드라는 이고니온에서 약 29키로 떨어진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곳입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루스드라에 있는 줄 알고 이곳까지 찾아와 사람들을 충동 시킵니다(19). 그러자 얼마전까지 바울과 바나바에게 예배를 드릴려고 하였던 이들은 금방 태도가 돌변해 바울에게 돌을 던져 기절을 시켰습니다(19).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것은 무지입니다. 그중에도 가장 큰  불행은 영적무지입니다. 영적무지는 온갖 죄악의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되어 이런 무지에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일인지요? 이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