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3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다윗 시대에 유명한 음악가중에 한 사람이었던 아삽이 쓴 시편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적 의문을 정직하게 표현합니다.
그는 신앙적으로 거의 실족할뻔 했습니다(2).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때문입니다(3).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악인들이 형통할수 있을까? 죽을때에도 고통 없이 죽는것 같고(4), 고난을 당하거나 고생하는 일이 없는 것 같고(5) 그러니 더 교만해질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6).
이들을 바라보는 그로서는 허무감에 빠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 내가 의롭게 사는 것이 헛된 것인가?(13) 악한 놈들은 고생도 않고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이렇게 고생하며 살아가는 가?(14)
마음에 심한 고통을 가졌습니다(16).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아삽의 고민을 해보았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그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17).
그것은 율법이 있는 성소에서 말씀으로 해결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도의 모든 가치 기준은 일시적인 세상의 것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있음을 말씀합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들에게 잠시 주시기도 하고, 갑자기 다 가져 가시도 합니다(19).
성도의 행복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24)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분깃이고(26). 반석이시고,(26), 피난처 이십니다(28).
하나님없이 악하게 살며 형통한것은 형벌입니다.
2013년 6월 29일 토요일
믿음은
요10:22-4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빛의 축제'라고 일컫는 수전절(하누카,Hanukkah)을 맞이했습니다.
수전절은 안티오쿠스에 의해 성전이 더럽혀진것을 유다 마카비의 지도아래 성전을 탈환하고 성전을 정화 시킨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때는 12월이었습니다.
이시기에 주님은 성전안 솔로몬 행각에 계셨습니다(22-23). 예수님이 그곳에 계심을 보자 유대인들은 다시 에워싸며 주님의 정체를 물었습니다(24).
주님은 이들에게 주님의 양이 아니어서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26).
주님은 자신의 양된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셨고,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28). 구원받음의 불변함을 말씀하셨고 목자로서의 지키심을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구원을 빼앗을 존재가 없습니다. 주님의 구원은 불변합니다.
이 세상은 주님의 양된 우리가 살기에 너무 악합니다. 안전하지 않습니다.
양은 힘이 없지만 목자가 있기에 든든합니다. 나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그분의 섬세한 돌보심속에 살고 있음을 믿습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 까지도 주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주님의 양은 스스로 양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주신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29).
내가 주님을 영접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믿음을 가진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내 믿음도 내 마음대로 안되지만 남의 믿음은 더욱 마음대로 할수 없습니다.
요한은 이에 대해 세례(침례)요한을 가리킵니다.
세례(침례) 요한은 아무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참되게 증거만 했습니다(40-41), 요한의 증거는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42).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참되게 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입니다..
믿음은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9).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빛의 축제'라고 일컫는 수전절(하누카,Hanukkah)을 맞이했습니다.
수전절은 안티오쿠스에 의해 성전이 더럽혀진것을 유다 마카비의 지도아래 성전을 탈환하고 성전을 정화 시킨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때는 12월이었습니다.
이시기에 주님은 성전안 솔로몬 행각에 계셨습니다(22-23). 예수님이 그곳에 계심을 보자 유대인들은 다시 에워싸며 주님의 정체를 물었습니다(24).
주님은 이들에게 주님의 양이 아니어서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26).
주님은 자신의 양된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셨고,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28). 구원받음의 불변함을 말씀하셨고 목자로서의 지키심을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구원을 빼앗을 존재가 없습니다. 주님의 구원은 불변합니다.
이 세상은 주님의 양된 우리가 살기에 너무 악합니다. 안전하지 않습니다.
양은 힘이 없지만 목자가 있기에 든든합니다. 나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그분의 섬세한 돌보심속에 살고 있음을 믿습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 까지도 주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주님의 양은 스스로 양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주신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29).
내가 주님을 영접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믿음을 가진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내 믿음도 내 마음대로 안되지만 남의 믿음은 더욱 마음대로 할수 없습니다.
요한은 이에 대해 세례(침례)요한을 가리킵니다.
세례(침례) 요한은 아무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참되게 증거만 했습니다(40-41), 요한의 증거는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42).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참되게 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입니다..
믿음은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9).
2013년 6월 28일 금요일
선한 목자
요10:11-2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은 "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11). 아이러니하게도 1세기 유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선 목자들을 좋은 시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8세기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에서 목자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겔34).그만큼 좋지 않은 목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역설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했던 사마리아인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비유하셨고, 목자 역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와 삯군을 비교하셨습니다(11-13)
삯군은 보수를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리가 오거나 위험이 닥치면 양들을 팽개치고 자기 살겠다고 도망을 칩니다.
반면에 선한 목자는 위험을 무릎쓰고 양들을 지킵니다. 늘 양들의 사정을 살핍니다(14).
양들을 위해 희생합니다(15).
선한 목자와 삯군은 목적이 다릅니다.
교회가 불행해진다면 대형화, 물질화, 직업화 되는데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직업으로 일하는 사람은 목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와 삯군을 분명히 구분하셨습니다.
주님은 "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11). 아이러니하게도 1세기 유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선 목자들을 좋은 시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8세기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에서 목자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겔34).그만큼 좋지 않은 목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역설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했던 사마리아인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비유하셨고, 목자 역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와 삯군을 비교하셨습니다(11-13)
삯군은 보수를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리가 오거나 위험이 닥치면 양들을 팽개치고 자기 살겠다고 도망을 칩니다.
반면에 선한 목자는 위험을 무릎쓰고 양들을 지킵니다. 늘 양들의 사정을 살핍니다(14).
양들을 위해 희생합니다(15).
선한 목자와 삯군은 목적이 다릅니다.
교회가 불행해진다면 대형화, 물질화, 직업화 되는데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직업으로 일하는 사람은 목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와 삯군을 분명히 구분하셨습니다.
2013년 6월 27일 목요일
목자의 음성
요10:1-1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양떼를 치는 목자들은 양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우리는 벽이 있고 문이 있습니다.
목자는 당당하게 문으로 들어가서 양들을 만납니다(2). 절도나 강도는 벽을 넘어 들어갑니다(1).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보실 때 목자로 보기보다는 절도나 강도로 보셨습니다(8). 또한 그들은 주님의 양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싫어 했습니다(3-4).
목자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릅니다(4).
목자가 아닌 타인의 음성은 따르지 않습니다(5).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르는 양들이 따로 있듯이 주님의 양들도 따로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양을 만들수 없습니다.
어떤 지혜와 노력과 힘으로 주님의 양을 만들수 없습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만이 만드십니다.
목회자는 말씀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연구해 전하면 됩니다.
주님의 양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이듯이
목회자가 가감없이 순수하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하나님의 양들은 모여들것입니다.
양떼를 치는 목자들은 양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우리는 벽이 있고 문이 있습니다.
목자는 당당하게 문으로 들어가서 양들을 만납니다(2). 절도나 강도는 벽을 넘어 들어갑니다(1).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보실 때 목자로 보기보다는 절도나 강도로 보셨습니다(8). 또한 그들은 주님의 양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싫어 했습니다(3-4).
목자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릅니다(4).
목자가 아닌 타인의 음성은 따르지 않습니다(5).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르는 양들이 따로 있듯이 주님의 양들도 따로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양을 만들수 없습니다.
어떤 지혜와 노력과 힘으로 주님의 양을 만들수 없습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만이 만드십니다.
목회자는 말씀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연구해 전하면 됩니다.
주님의 양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이듯이
목회자가 가감없이 순수하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하나님의 양들은 모여들것입니다.
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주여 내가 믿나이다
요9:35-4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변호하다 회당에서 출교를 당한 이 사람을 만나주셨습니다(35)
소경되었던 사람은 고침을 받고 주님을 변호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매우 얕았습니다.주님이 선지자이고(17), 하나님께로 부터 온 분임을 (33) 확신했습니다.
본문에는 " 주여 그가 누구십니까? 내가 믿고자 합니다(36). 말할 때 그리스도가 인자이심을 고백하도록 주님이 이끄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발전되어 왔지만 그가 처음 경험한 것은 교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 치유였습니다.
구원이 먼저 왔고, 거지생활과 절망과 좌절의 옛 생활이 아닌 새 새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 먼저 옵니다. 옛 생활이 아닌 새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다음이 교리를 알게 됩니다. 물론 신앙적 전통, 견해, 모든 체험,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성경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항상 적용 되는 것은 아닙니다.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서는 성경을 마음놓고 읽을수 없습니다. 교회도 쉽게 갈수 없습니다. 파키스탄의 그리스도인들의 성경 지식은 매우 얕습니다. 단편적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때문에 이슬람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심한 박해를 받으며 살지만 매일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고침 받은 소경은 주님이 인자임을 고백하고 경배를 드렸습니다(38).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의 예배와 경배의 대상이지 사색이나 교리적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절하는지라"(38)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주님을 변호하다 회당에서 출교를 당한 이 사람을 만나주셨습니다(35)
소경되었던 사람은 고침을 받고 주님을 변호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매우 얕았습니다.주님이 선지자이고(17), 하나님께로 부터 온 분임을 (33) 확신했습니다.
본문에는 " 주여 그가 누구십니까? 내가 믿고자 합니다(36). 말할 때 그리스도가 인자이심을 고백하도록 주님이 이끄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발전되어 왔지만 그가 처음 경험한 것은 교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 치유였습니다.
구원이 먼저 왔고, 거지생활과 절망과 좌절의 옛 생활이 아닌 새 새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 먼저 옵니다. 옛 생활이 아닌 새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 다음이 교리를 알게 됩니다. 물론 신앙적 전통, 견해, 모든 체험,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성경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항상 적용 되는 것은 아닙니다.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서는 성경을 마음놓고 읽을수 없습니다. 교회도 쉽게 갈수 없습니다. 파키스탄의 그리스도인들의 성경 지식은 매우 얕습니다. 단편적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때문에 이슬람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심한 박해를 받으며 살지만 매일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고침 받은 소경은 주님이 인자임을 고백하고 경배를 드렸습니다(38).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의 예배와 경배의 대상이지 사색이나 교리적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절하는지라"(38)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합니다. 아-멘-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이때부터...
요9:13-3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고침을 받았으면 축하해야 할 일인데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시비의 발단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14,16).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면 회당에서 출교하기로 했습니다(22). 유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회당에서 출교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사회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소경을 심문했습니다. 누가 눈을 뜨게 해주었느냐는 질문에 이사람은 거침없이 그분은 "선지자"라고 했습니다(17).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30). 결국 그는 출교를 당했습니다(34). 그가 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입으로만 믿는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의 부모는 출교가 두려워 대답을 회피했습니다(21-22).
날때 부터 소경인 아들이 눈을 떴는데.. 죽을때까지 감사해도 모자랄 일인데.. 하지만 이들은 출교 당하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이 소경 그대로 있었다면 아무 파장이 없었을것입니다.
갈등은 이 사람이 눈을 뜨기 시작한데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영적 소경은 아무 갈등없이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고 영적 눈을 뜨면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고침을 받았으면 축하해야 할 일인데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시비의 발단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14,16).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면 회당에서 출교하기로 했습니다(22). 유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회당에서 출교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사회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소경을 심문했습니다. 누가 눈을 뜨게 해주었느냐는 질문에 이사람은 거침없이 그분은 "선지자"라고 했습니다(17).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30). 결국 그는 출교를 당했습니다(34). 그가 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입으로만 믿는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의 부모는 출교가 두려워 대답을 회피했습니다(21-22).
날때 부터 소경인 아들이 눈을 떴는데.. 죽을때까지 감사해도 모자랄 일인데.. 하지만 이들은 출교 당하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이 소경 그대로 있었다면 아무 파장이 없었을것입니다.
갈등은 이 사람이 눈을 뜨기 시작한데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영적 소경은 아무 갈등없이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고 영적 눈을 뜨면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때가 아직...
요9: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맹인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 됩니다(1). 맹인을 보자 제자들은 누구의 죄(부모 혹은 자신)때문에 이 사람이 맹인이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2).
인간이 당하는 불행과 질병은 죄로 인해 오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질병이 없이는 너무 교만하기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 불행이 찾아 오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서 당시 유대인들의 편협적인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의 죄때문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셨습니다(3).
주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고 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6-7).
맹인을 고쳐주시면서 "때가 아직 낮"이라고 하신 말씀이(4)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주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시간을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낮은 기회의 시간입니다. 낮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항상 낮은 아닙니다. 때가 되면 밤이(질병 혹은 죽음) 찾아옵니다.
오늘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면서 "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말씀으로 각오를 더 새롭게 해봅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맹인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 됩니다(1). 맹인을 보자 제자들은 누구의 죄(부모 혹은 자신)때문에 이 사람이 맹인이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2).
인간이 당하는 불행과 질병은 죄로 인해 오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질병이 없이는 너무 교만하기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 불행이 찾아 오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서 당시 유대인들의 편협적인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의 죄때문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셨습니다(3).
주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고 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6-7).
맹인을 고쳐주시면서 "때가 아직 낮"이라고 하신 말씀이(4)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주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시간을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낮은 기회의 시간입니다. 낮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항상 낮은 아닙니다. 때가 되면 밤이(질병 혹은 죽음) 찾아옵니다.
오늘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면서 "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말씀으로 각오를 더 새롭게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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