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시험을 받을 때

마4:1-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장면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시험 받으심은 그분의 공생애 사역 시작 부터 사탄을 제압하고 시작하심이(눅11:20-22)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주님에게 세 번에 걸쳐 시험을 했습니다(3,6,9).
주님은 세 번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험을 받을때에 하나님의 말씀(계19:13)으로 사탄을 이겨야 함을 몸소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주님이 친히 시험을 받으셨기에
시험 받는 자를 능히 도우시는(히2:18),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자 역할을 하시기 위함입니다(히4:14).

어떤 시험이든지 말씀으로 이길 수 있고,
대제사장이신 우리의 신실한 중보자 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든든합니다.


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성령님

마3:13-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침례(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침례(세례)를 받으시러 오시자 매우 당황했습니다(13-14).

자신이 주님에게 침례(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오십니까? 하면서 사양했습니다(14).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침례(세례)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요당강에서의 두 분의 대화는 의미심장합니다(15).

주님은 침례(세례)가 필요없는 죄를 모르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가 침례(세례)를 받으심은 죄가 없으신 그분이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는 속죄 사역의 출발을 알림을 말합니다(벧전3:18).

또한 예수님이 침례(세례)를 받으심은 요단강에서 수많은 사람들앞에 진행된 왕의 대관식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17)라는 음성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16).

주님에게 임한 성령은 불과 같은 성령이 아니라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마11:29) ,
종으로(막10:45),
고난당하심으로 (사53:2-3) 오심을 성령이 보여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양명성이 있습니다.
불과 같은 성령님은(행2:3)를 강하고 담대하게(행4:13) 하시고,

비둘기 같은 성령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빌2:5).

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회개

마3: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는 침례(세례) 요한의 모습이 나옵니다.
요한이 언제부터 광야에서 살았는지 알수 없지만, 광야에서 살면서
특이한 생활을 했습니다(4).

본문에 소개된 그의 모습만 보아도 그는 매우 야성(野性)적인 사람임을 알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던 사두개인이던(7), 누구든 거침없이 설교했고,
그의 설교는 매우 강렬했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고(8),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조리 잘려 불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습니다(10).

직선적이고 강렬한 설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세례)를 받았습니다(5-6).

그는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야(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11-12),
그분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했고(11),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는 
오늘날 사역자들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8) 유대 광야에서 외쳤던 요한의 목소리가 
오늘도 나에게 들리는듯 합니다.

바울도 역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엡5:8).

" 귀 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의 주권

마2:13-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 안 다음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하나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에게는 꿈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눅1:26-28),
요셉에게는 꿈으로 지시하셨습니다(1:20;13).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게 하심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먼 여행길을 떠납니다(14).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이들은 다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19-20).
다시 돌아와 안전한 곳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22-23).

마태는 이일이 이미 오래전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일임을 상기 시킵니다(15,17,18,23).

헤롯의 영아들  학살 사건(16),
세상에 오시자 마자 아기 예수님의 애굽의 피신 생활(19).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의 작정하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일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처럼(13,16),
지금 이시간도 테러와 압제를 피해 이웃나라로 피신해가는 수많은 난민들이 있습니다.
시리아와 지금 내전 상태에 있는 남수단과 같은 곳의 사람들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역사와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믿기에(사45:7),
오늘도 세계 평화와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2013년 12월 25일 수요일

만유의 주

마2: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천문학자들이었고 멀리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성경학자들을 따르면 이들이 도착한 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약18개월이 지난 후라고 합니다.

주님이 탄생한 곳은 말구유였는데(눅2:16),
본문에 이들이 찾아온곳은 집이었습니다(11).
이것을 보면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들은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머나먼 길을 마다않고
 새로 탄생하신 왕을  뵈로 왔습니다(2).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가 계신집에 들어가 그앞에 엎드렸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11)

새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헤롯의 심기를 불편하게했습니다(3).
헤롯은 아기예수가 있는 곳을 찾을려고 애를 썼지만
박사들은   헤롯을 속였습니다(12).

마태복음의 처음 독자인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인 박사들이 그들의 메시야에게 경배한것을 불편하게 느꼈을것입니다.

하지만 아기예수의 탄생에 첫 이방인들이 찾은것은 주님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로 오셨음을 마태는 보여주길 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엡1:22).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임마누엘

마1:18-2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요셉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요셉은 " 의로운 사람" 이었기에 이일을 누구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파혼을 할려고 했습니다(19).

마리아는 순종과 소박함을 겸비한 처녀였고(눅1:38),
요셉은 조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보면 주님이 왜 이 가정에 오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에 나타나셔서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으로 된 것임을 알리셨습니다(20).
아기의 이름을 " 예수"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이는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 부터 구원할 자이시기에(21)...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신 메시야가 오셔서 모든 압제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것을 열망해왔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사야의 예언처럼(22-23),
주님은 소박한 가정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요란스럽거나 화려하지 않고
조용히 겸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운데 '임마누엘'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그 은혜의 경륜

마1:1-17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임을 믿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가계도를 그린다면 나로 부터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다른 방법으로  가계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이새와 다윗을 그리고(2-6),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부터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7-16).

마태는 여기서 4명의 여인들을 언급하는데,
이 여인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아니고,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다말은(3,창38)은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두 아들을 낳았고,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은 여리고성의 창녀였습니다(5,수2;6:22-25).

보아스는 모압여인 룻과 결혼을 했습니다(5,룻1-4).
다윗의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은 우리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6,삼하11).

인간이 세운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눈이 다릅니다.
어떤이는  여기에 언급된 여인들 처럼  도저히 수준에 못미치는(?)는 사람이지만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자녀로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고전1:27).

이 어찌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엡3:1) 아니고는  어찌 설명이 되겠습니까?

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주님이 먼저가 되도록..

고전7:25-4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결혼을 하지않은 사람을 위해 권면합니다.
되도록이면 자신 처럼 혼자 지내기를 권면하지만(26),
결혼을 하는것이 잘못된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28).

결혼을 하면 가정에 대한 의무때문에 마음이 분산됩니다(33-34),
마음이 나누이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그의 가르침입니다(35).

다시말해 바울의 강조점은 결혼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38),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있습니다(마6:33).

본문의 원리는 단순히 결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던(직장생활, 비지니스, 친구관계 등..)

만일 직장생활이 주일을 성수하는데 방해를 준다면,
만일 비지니스가 신앙생활에 방해를 준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무엇을 우선으로 선택해야할것인지의 문제입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일에 "..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기는것"(35)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결정할것이 많습니다.
행할것이 많습니다.

무엇을 결정함에, 무엇을 행함에 주님이 먼저가 되도록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주신은사대로

고전7:17-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17)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살 것을 말합니다(17,20,24).

할례를 받은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면 할례를 안받은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18),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면 일부러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19)

그 사람이 할례자이던,아니던,
그 사람이 노예이던, 자유인이던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인이요(22),
하나님께서 값을 치루고 사신 다 같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22-23).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입니까?
남의 것 좋다고 흉내내지 말고,
남의 것 따라 하지 말고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 더욱 개발해서 더 많은 것을 남기는 "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눅12:42)로 살 것입니다.

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결혼

고전7: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바울은 결혼생활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창2:18).

 결혼은 부모를 떠난 남녀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창2:24).
부부사이에는 서로 의무가 있습니다. 성적(性的)인  의무와(3-4),
사랑과 순종의 의무가 있습니다(엡5:22-25).

바울은 되도록이면 자신 처럼 독신으로 살기를 권면했지만(6-7)
결혼 생활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독신 생활은 주님의 말씀대로 은사에 따른 것입니다(마19:12).

특히 믿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했을때
상대가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으면 헤어지지 말것이고(12-14)
헤어지기를 원할경우 헤어져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15).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신앙생활을 박해하면서 먼저 헤어지기를 강요할때
이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이와 같이 결혼 생활, 가정의 모든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이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귀하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 밖에서 성적인 관계를 맺는 자를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히13:4).

주변에 결혼생활에 힘들어하는 형제나 자매가  있습니까?
그 가정이 회복되고 건강한 가정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몸을..

고전6:12-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세는 인간의 연수를 말했습니다"..칠십이요,강건하면 팔십"(시90:10), 요즈음에는 건강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칠십, 팔십, 백세 하지만 몸은 늙어가고 병들게 됩니다.

이런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을 생각하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바라보는 몸은그렇치 않음을 말합니다.

몸은 앞으로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14).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15).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19).
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19).
값으로 사셨습니다(20).

그러므로 이 몸으로 음행할 수 없습니다(13,15,16,18).
이 몸으로.. 더러움과 호색과 술취함과 방탕함..(갈5:19-21;엡5:18)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몸을 생물학적으로만 바라보는 불신자들은 몸으로 온 갖 더러운것들을 행하지만(엡4:19),

우리는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입니다(20).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순결한 교회

고전5: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즈음은 무제한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접근 할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클릭 한 번으로 남의 삶을 엿볼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음행하는 형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있습니다(11).
이 부도덕한 죄는 이미 교회안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1).

문제는 교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도(2), 관대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12).

 음행죄는 교회의 순결성을 파괴하고
거룩한 성도의 교제를 무너뜨렸습니다.

바울은 이런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를 교회에서 좇아내라고 하였습니다(13).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교회상을 세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있는가?
둘째, 성례(침례,세례, 주의 만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가?
셋째, 권징이 시행되는가?

교회내에 부도덕한 죄를 범한 사람에게 권징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예민하고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만일 교회가 부도덕의 문제에 대해 관대한다면 '값싼은혜'만 강조하는 싸구려 집단이 될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호색하는 자.. 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수 없습니다(갈5:19).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참이스라엘 사람

습3: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웃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던(2:4-15) 스바냐는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가리켜 "반역과 압제의 성"이라고 했습니다(1).
이 한마디 말씀만 보아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이라 불리우던 예루살렘이 일반백성은 물론이고 지도자들까지 총체적으로 부패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에는  대표적으로 지도자들에 대한 부패상을 말씀합니다.
관료들은 "으르렁 거리는 사자들"(3)과 같았습니다.
권력을 앞세워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압제했습니다.

재판관들은 " 저녁 무렵의 늑대들"(3)이었습니다.
판결권을 앞세워 뇌물을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선지자들은 " 믿을수 없는 사람들"(4)이었습니다.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인냥 전했습니다.
말씀을 변질 시켰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어겼습니다"(4)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믿을수 없는 사람들이 볼짱 다본것이 아닙니까?

목회자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

하나님이 이웃 나라를 멸하신것은 유다에게 경고의 멧시지를 주기 위함이셨는데(6),
이들은 그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7).
참답답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답답한 일들이 오늘 우리에게도 되풀이 되고 있지는 아니한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느때나 하나님이 남려두신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지만 남겨두신 이들 즉 겸손하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12).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악을 행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입에 속임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13).

이 말씀을 볼때 주님이 나다나엘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참이스라엘 사람,
주님보시기에 나는 참이스라엘 사람입니까?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성탄을 맞을

습2:12-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스바냐를 통해 구스(에디오피아)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구스는 애굽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박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 내 칼에 죽임을 당할것"이라 하셨습니다(12).
전쟁을 통해 고통을 당함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멸하시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역사에서 이집트와 에디오피아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도 존재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특히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굉장히 큰 도시였습니다.

요나에 의하면 니느웨를 통과하는데만 걸어서 3일이 걸리는 큰 도시였습니다(욘3:3).
인구는 말할것 없고 경제적으로 매우 번영했던 곳입니다.

이곳이 " 쓸모없는 땅이 되고"(13)
마치 짐승의 우리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 때문입니다.
이들의  교만은 " 세상엔 나뿐이며 나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15).

이뿐입니까?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를 침략해서 하나님을 대적했던 말을 보면 더욱 알수 있습니다(왕하18:17-39)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받았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교만하면 나라든(10,15), 개인이든 망합니다(잠16:18).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약4:6).

종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신(빌2:6-7) 그리스도를  맞을 성탄을 준비하십니까?




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습2:4-1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유다백성들의 심판을 예언하던 스바냐는 갑자기 주제를 돌려 블레셋에 대한 심판을 예언합니다.

블레셋은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민족이었습니다.
자주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이 " 버려지고, 폐허가 되고, 한낮에 좇겨나고 뽑히고 아무도 살수 없는 곳"이 될것이라 하셨습니다(4-5).

또 모압과 암몬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것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롯의 두딸에게서 생긴 민족입니다(창19).
이들도 항상 이스라엘을 적대했고 훼방하고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압과 암몬이 "소금 구덩이가 되고 영원히 폐허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9)

블레셋가 모압과 암몬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함이요, 이들의 교만때문입니다(10).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반드시 심판 하신다는 사실은
당시 고난중에 있던 유다백성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대상에 따라 내용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방민족에게 임하는 심판은 완전한 멸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심판(징계)은 유익함을 위함입니다(히12:10).
징계후에는 다시 회복하십니다( 7,9).

그래서 예레미야는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 라고 했습니다(애3;23)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여호와의 날

습1:14-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유대민족에게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14).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의 분노의 날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암5:18).
스바냐는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 이라고  했습니다(15).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분노앞에서 용맹무쌍한 용사도 어린아이와 같이 울것입니다(14).

죄를 지으면서도 형통하게 살던 사람들은 그분의 분노앞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소경처럼 될 것입니다(17).

돈만 믿고 교만하게 살던 사람들은 그들의 돈이 하나님의 분노로부터 구원할수 없음을 알것입니다(18).

이것이 하나님이 유다백성을 향한 경고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가리켜 '수치를 모르는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2:1)
왜 수치를 모릅니까?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죄에 대해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상실한 마음(롬1:28)의 소유자가 됩니다.
곧 파멸을 의미합니다(롬1:28).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복된 사람으로 살고싶습니다(2:3)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

습1: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후손으로 유다 요시야왕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1).
예레미야도 이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요시야왕은 종교개혁을 단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습니다(4).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능력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복도 내리지 않고 화도 내리지 않는 분으로 여겼습니다(12) .

하나님은 높이 계신 분으로만 여겼지 신앙적 대상이 아니었습니다(5,8,9).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을 멸하시고(4-6), 지도자들을 벌하시고(8)
"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시듯이" 죄인들을 끝까지 추적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12).

유다의 고전적인 병폐는 우상숭배였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어릴적 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왜 쉽게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면 쉽게 불신자와 같아질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죄악에 쉽게 빠질수 있습니다(수1:8).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데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수24:15).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차지도 덥지도 않는 것입니다(계3:16)

2013년 12월 7일 토요일

상한 심령으로

호세아14: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호세아서의 마지막 결론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죄인들에게 오래참으시면서 회개 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3:9).

시편기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시51:17).
회개없이 드리는 제물은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상한 심령(회개)을 원하십니다.

만일 이스라엘에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기고 고치실것을 약속하셨습니다(4).

하나님의 약속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고 그들에게 이슬과 같겠다고 하셨습니다(5).

이슬은 밤에 조용히 내립니다. 메마른 곡식에 생명을 줍니다.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이슬처럼 회개하는 영혼을 살리십니다.

매일 내리는 이슬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는 영혼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나타납니다(히4:16).

이슬같은 돕는 은혜를 사모하며
상한 심령으로 주님앞에 나아갑니다(마5:4).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하나님의 모습

호3:1-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호세아의 부인 고멜은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 불신실했습니다.
다른 남자들을 좇았습니다.
결국 집을 나가 버렸고, 창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그런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1).
아마 아내를 포기를 했는지 한동안 아내를 잊고 있던 호세아는 아내를 찾아 나섰습니다.

호세아는 창기가 된 아내를 위해 값을 지불했습니다(2).
과연이렇게 까지 하면서 이런 여자를 다시 집으로 데려올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와같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 그분의 마음을 표현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알지못하시는 분(그리스도)을  나를 대신해 죄로 삼으셨고(고후5:21),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롬5:8).


주도적으로 아내와 화해하는 호세아,
아내를 위해 값을 지불하는 그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2013년 12월 3일 화요일

그 사랑이

호세아2:2-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선택받은 이스라엘임에도 우상숭배가 만연화 되었고, 노골화 되었습니다(2).

 나는 더 이상 그녀(이스라엘)의 남편이 아니라는 이혼이 선고 되었습니다(2).
그 자녀(이스라엘 백성)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4).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징계의 목적은 다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6-7).

사람은 배신을 당하면 돌아서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무궁하시다(애3:22)고 했습니다.

아픔을 주시고 고난을 주셔서라도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사랑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 사랑이 회개 하도록 까지 인도하십니다(14).

고난과 아픔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음을  압니다.
언제나 그분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2013년 12월 2일 월요일

영적음행

호1:1-2: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했던 당시 북쪽 이스라엘은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죄를 지적하시기 위해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아내를 취해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습니다(2).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선지자에게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만큼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멜' 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삼습니다.
이들 사이에 낳은 첫아이가 이스르엘이었습니다(3-4).
이스르엘은 이스라엘과 같은 영광스러운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살육을 당했던 지명입니다.

 곧 이들 부부는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을 '로루하마'(사랑의 대상이 아님) 했습니다(6).

세 번째로 낳은 아들은 '로암미'(내백성이 아님) 입니다(8).

음란한 아내를 둔 호세아는 선지자이전에 남편으로 얼마나 고통과 고뇌로 찼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바로 이와같음을 말씀해줍니다.
 이것을 영적 음행이라고 합니다.

육체적 음행은 눈에 드러나는 죄이지만 영적음행은 눈으로 볼수 없는
더욱 사악하고 간교한 죄악임을  생각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