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1일 금요일

에돔을 보면서...

옵1:1-16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오바다는 유대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에돔의 운명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에돔은 에서의 자손입니다. 에돔(에서)과 유다(야곱)은 혈통적으로는 형제 관계였지만, 그들은 서로 오랫동안 적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유다가 외국의 침략을 받아 어려움에 빠졌을때 이들은 형제 나라인 유다를 돕기는 커녕, 도리어 그 침략에 협력하였습니다(10-14).

유다의 죄가 커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 형제가 어려움을 당할때 그것을 외면하는 에돔의 죄도 큼을 하나님은 강조 하고 있습니다.

에돔은 남의 나라가 쉽게 침범할 수 없는 곳에 위치했습니다. 수 많은 바위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었고 그 산들은 험해서 사람들이 함부로 그곳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늘 안전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3-4). 그 지리적 위치는 하나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5-6).

이들이 형제 유다를 배신 한 것 처럼 에돔도 동맹국들로 부터 배신을 당합니다(7).  하나님으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행한대로 반드시 돌려 받게 하십니다(15).

결국 지리적으로 안전한 곳에 있다는 교만, 자기만족, 형제에 대한 무관심한  에돔은 멸망하고 맙니다(15-16).

오늘날 많은 사람들 역시 에돔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하나니님이 그것을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

내가 도와야 할 형제, 자매들이 있지만, 알고도 못본척 하지는 아니합니까?
남이 어려움을 당할 때 속으로 좋아한적은 없습니까?
에돔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하바국의 기도

합3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하바국의 기도 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과거 행하신 일을 회상합니다. 현재 그가  고민하는 현실을 떠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묵상합니다.

하바국이 표현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매우 극적(劇的)입니다. 지진, 재난, 홍수, 수나미 ... 때때로 일어나는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힘은  속수무책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10). 하나님의 능력을 달리 표현 할수가 없어 인간적인 언어로 표현 할뿐 입니다.

하바국은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묵상 할수록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과, 교만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 처럼 보일때도  무덤덤하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대하신 하나님에 비하면 그런것들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바국은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그분은  의로우시고. 그의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진노중에도 긍휼을 잊지 아니 하시는 분임을 더욱 인식하고 있습니다(2).

하나님을 묵상할수록 인생을 사는데 물질이 많고 적음이 행복의 기준이 아님을 더욱 알게 됩니다(17). 참 행복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왜냐구요? 하나님은 나의 즐거움이시고(18), 힘이시기 때문입니다(19).

2012년 8월 29일 수요일

의인은..

합2:2-2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바국의 불평에 대한 하나님이 대답하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 들의 운명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패, 오만, 부도덕, 폭력에 대해 심판 하시고, 그들의 악을 징벌 하실 것 입니다.

그동안 자기 영광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영광 대신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될 것 입니다(16). 사람들 눈에는 악인들이 오래 번영하는 것 같습니다. 속이는 사람들,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여지는 것이 오래 가는 것 같지만, 지나고보면 잠깐 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이 얼마나 가치 없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18-19). 반대로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에 대한 바른 자세는 경외함과 조용함으로 경배 하는 것입니다(20).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되지 않습니다.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세상을 본 받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삽니다(4).

매일 선택이 주어졌습니다.
믿음으로 살것인가?

그러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표준에 맞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십시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기다림

합1:21-2: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부패한 유다를 보며 분개하며,  더욱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악한 바벨론을 사용해 그의  백성을 징계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 의문을 품었던 하바국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돌아와 상황을 다시 살펴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하나님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바국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를 알고 있고, 하나님이 어떤분이심을 상기하며 용기를 가집니다. 즉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정결하시고, 불멸하시고, 견고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12-13).  이것이 그로  새로운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이 하나님이 어찌 그의 백성을 악한 세력(바벨론)에게 계속 맡기시겠는가?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바국에게 그분이 행하실 일을 보라고 명령했고, 그는 순종했습니다(1:5). 그는 신중하게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다립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신 뜻에 따라 개입하실 때까지 신뢰하며 기꺼이 기다립니다.

참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섭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바국은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2:1).

어떤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기도하십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고, 간섭하실지 믿음으로 기다리십시오.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믿음으로

합1:1-11,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바국의 이름은 포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요시야왕 시대에 활동했던(BC 650-627년)사람입니다. 본문의 하바국 선지자는 화가 나 있습니다.그의 분노는 그의 나라(유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일어난것입니다. 당시 유대는  폭력, 계층간의 갈등, 불의등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3-4). 더욱 이해가 않되는 것은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보고만 계시는지?
하박국에겐  강렬한 믿음의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선하신 분인데  왜 악이 번영 하도록 허용 하실까?
마지못해 그런 상황을 지켜 보아야 했지만(3),이것을 무시하기엔  너무 썩고 부패했습니다.

더욱 놀란것은 더 악하고 폭력적이고 불경건한 바벨론을 사용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의 잘못을 징계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6-11). 하박국은 모든것이 혼란 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는다면 금방 오만해지고,  배타적, 이기적, 물질중심주의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바벨론 사람(세상사람)처럼 되는것을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됩니다.

거의 매일 일어나다시피 하는 성폭력,살인,묻지마 범죄, 국제적인 영토분쟁, 시리아의 무참한 학살 등등..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하바국 같은 느낌을 가진적은 없습니까?하바국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세상은 절대로 악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주관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이성은  한계가 있기에..
오직 믿음으로 살뿐입니다.

2012년 8월 26일 일요일

강하고 담대히..

시31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에 보면 시편기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상' '질병''대적자들, '교만, '오만' '거짓 '두려움' .. 하지만 다윗은 이런것들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간구 하는 것 들이 있습니다.
"구원해달라"(1).
"귀를 기울여 빨리 자신을 건져달라"(2).
"인도해달라"(3).
"덫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4).
"구해달라"(5).
그의 간구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위험, 모든 어려움들을 알고 있지만,동요(動搖)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앞날'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15).

또한 앞으로 받을 은혜를 믿음으로 내다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 쌓아두신 은혜가 있습니다(19). 하루가 멀다 하고  험악한 일 들이 세상에 일어나지만, 오늘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은 나를 위해 쌓아두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힘든 난관(難關)을 당해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 해결 되는 것은 그분이 나를 위해 저장해두신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미래의 축복에 대한 믿음은 과거 받은 은혜를 생각하게 하였습니다(21-22).
그러기에 그는 강하고 담대하라고(24) 하면서 본 시편을 끝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이시대를 살아갈수록

히13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바다속의 물고기들의 세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을 것 입니다.
다이버가 물고기들에게 접근하면, 도망을 가고, 해저(海底)가 클로즈업(close-up) 되고,,
해저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의 지혜에 탄복할 뿐 입니다.

본문에도 아름다운 해저의 세계처럼 교회 생활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히브리서 처음 독자였던 초대교회는 로마의 권력자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외부세계의 사람들과 분명한 구별이 있었습니다.

가령, '나그네' 를 환대하는 것(2),  누구에게든지 관대하게 대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관대하신분임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자 들을 방문해 용기를 주었고, 신앙으로  그들을 세워주었습니다(3). 당시만해도 감옥을 찾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동정심이 아닌  고통 당하는 사람들과 동일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3). 또한 음란했던 로마사회풍조에 따르지 않고 성적(性的) 순결함을 지키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4-5).

본문은 로마시대나 오늘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사회로 부터 격리 아닌 격리 즉 외로움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고립된듯한 삶이다 보니 공동체에는 이단이 쉽게 침투할 수 있었고(9), 영적지도력에 잘 따르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는 등(17) 내적인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별된 삶과 영적인 힘으로 거대한 로마세계를 변화 시켜 갔던것 입니다.

세상이 다 그런데 우리는 별건가? 이것이 아닌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다워질때 우리 주변부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단순한 진리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갈수록 더 실감있게 다가옵니다...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히12:14-2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문은 하나의 시적표현 처럼 느껴집니다.
히브리서 첫 번 독자들은 새언약으로 들어간 첫 번째 세대임을 기억 하면서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옛 언약하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말씀 하실 때 불붙는 시내산에서 흑운,흑암,폭풍을 동반 하면서 말씀 하셨습니다.(18-21). 하나님의 임재는 이렇게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을 자주 대면했던 모세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21)고 했습니다.

어떤 짐승이나 보통사람들은 하나님이 현존 하시는 산 에 접근 할 수 없었습니다(20).하나님은  백성을 대표하는 선지자,제사장을 통해서만 말씀 하셨습니다.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분이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통해 언제든지,어느곳에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10:20).

우리는 수 많은 구원받은 성도들과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이 있는 하늘의 예루살렘과 시온 산으로  초청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22-24). 나의 거룩한 열정과 경건은 살아계신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예배를 드리십니까?

2012년 8월 23일 목요일

신앙의 경주

히12:1-1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요 논점을 잃어버리진 않았습니다.  " ... 포기하지 말고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열심히 하라"(1) 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신앙의 경주자 입니다.  경기장에서 경주자들은  달리기전 목표지점을 응시 합니다. 그것은 목표지점까지 절력질주 하겠다는 것 입니다.신앙의 경주 하는 우리도 목표지점을 응시해야 합니다. 목표지점은 주님이십니다(2).

주님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기쁨이 있었기에 십자가의 '고통',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주님의 기쁨의 근원은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는 것이고, 원래 오셨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기쁨 이었습니다(2).

신앙의 경주자에게도 예비해 두신 기쁨이 있습니다. 물론 잘 달리면 좋은 일이지만, 만일  목표지점(주님)을 향해 제대로 뛰지 않는다면 고난(징계)을 주실 것입니다. 징계가 없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이 된 증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잘달리는 것도 기쁘지만, 힘든일이 오는 것도  기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표시이기에...(7-11).

그리스도인의 삶을 정의 한다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단순한 삶입니다. 목표를 향해 뛰는데  쓸데 없는 것들, 방해하는 것들, 무거운 것들을  버리십시오.  그래야 주님을 향해 힘껏 달릴 수 있습니다.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믿음때문에

히11:32-4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해가다가 더 추가하고 싶었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믿음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 들을 당했고, 이겨냈습니다.

히브리서 처음 독자들도 믿음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의 상황과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화(調和) 시키길 원했습니다.

초대교회시절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핍박을 받고, 생명의 위협도 감수해야 했고, 온갖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이미 앞서 고문, 죽임을 당했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음을 그들에게 강조하고 싶었습니다(35-37). 자신들만 힘든 일을 겪는다 생각하면 낙심합니다. 하지만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도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했음을 상기시켜 주면  위로가 됩니다.

 베드로도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용기를 주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4). 바울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행14:22, 빌3:10,딤후3:12).

오늘도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믿음 때문에 모진 고난을 당하고 있음을 기억 하십시오.박해 받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www.opendoorsuk.org).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믿음은...

히11:20-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현재의 믿음은 장래의 결과로 이어집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과 야곱을 예로 듭니다. 이삭은 "  야곱과 에서의 앞날을 축복" 했고,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했습니다.당시 그들의 믿음은 다음세대의 축복의 결과로 나타났습니다(20-21). 부모님들의 아름다운 믿음은 자녀와 그 다음세대들의 축복으로 나타남을 믿습니다.

믿음은 장래의 두려움을 이기게 해줍니다(23).  또한 믿음은 현재의 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보다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게 합니다(24-26).

본문에 나오는 믿음의 정의는 현재가 아닌 장래입니다. 믿음은 나의 마음을 현재가(좋은일이던, 나쁜일이던) 아닌 다가올 일에 두게 해줍니다.

 믿음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열어 놓게 합니다. 믿음은 홍해와 같은 안전하지 않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는 방패막이 됩니다(29-30).

인상적인 것은 '라합'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31). 왜 라합의 이름이 있습니까? 히브리서 처음 독자들도  라합앞에서' 왜?' 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기생이요, 이방여인이요, 유대인들 눈에는 명백한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장래의 상급을 위해 현재의 위험한 일을 기꺼이 한 그녀를 하나님은 같은 종류의 믿음의 소유자로 보셨습니다. 믿음의 영웅의 반열(班列)에 올려 놓았습니다.

'믿음'이란 단어는 '위험'이란 단어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합니다. 믿음이 있기에 위험을 무릎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어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까? 부? 안락함? 평판?...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믿음의 용사

히11:1-19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11장은 '믿음'장으로 유명합니다. 본문을 읽어가다 보면 큰 용기를 얻습니다.  본문에서 믿음의 챔피언(Champion)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우리도 이들처럼 행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려줍니다.

본문에는 '믿음'의 정의(定義)가 나타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6). '믿음은 의로 이끌어준다'(7). '믿음은 순종의 원동력이 된다'(8-9).

특히 인상적인 구절은 "아벨은 죽었지만  그의 믿음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말한다"(4) 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한 사람의 삶의 역사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임을 표시해줌을 말합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집니다(3). 이것을 믿음으로 반응하여 행동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본문의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주저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용감할려면 용감한 척 이라도 해야 용감해질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 처럼 따라 행하면 나도 믿음의 용사처럼 살아가지 아니할까요?


2012년 8월 19일 일요일

교만

시30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기자는  죽음에 직면에  있습니다(3).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대적자들인지(?),  심각한 병인지(?), 알수 없지만...  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8).
무엇이 그를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었습니까? 왜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셨습니까?
명확히 알수 있습니다(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한마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 하기보다는 자기에 대한 믿음으로 이끕니다. 특히 '잘나갈때'그러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고난으로 이끄는 지름길임을 다윗은 발견했습니다.

성경에는 교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악하고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도무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시10:4, 쉬운성경).
"교만은 파멸의 선봉장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잠16:18) 등등...

때론 하나님은 교만을 치료하시기 위해 환난의 용광로에 넣으십니다. 교만한 마음 앞에 그분의 "얼굴을 숨기십니다"(7).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입니다. 교만은 치료받아야 할 영적질병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교만을 치료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본 시편을 끝맺고 있습니다(12).
내 마음에는 교만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지켜보십니다.

2012년 8월 18일 토요일

삼손의 최후

삿16:23-31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누군가를 축복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무시하거나 나쁜태도를 취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음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불순종하고,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은 이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약속대로 가나안을 주시고, 신실할것을 요구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사기를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다곤' 같은 우상을 섬기는  주변 민족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보이길 원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승리가  다곤(Dagon)이 도와 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  그들의 신전을 파괴함으로 그들의 신이 거짓임을 보이셨습니다.

삼손은 수치를 당합니다. 눈은 장님이 되었고(21), 노예가 되었고, 원수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재주를 부리는 노리갯감이 되었습니다(25). 하나님의 은혜를 우습게 여기는 자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성도가 은혜 속에 살지 못하면 불신자들에게 멸시를 당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마지막 한 번 더 찾습니다(28). 하나님은 삼손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다곤의 신당을 무너뜨리시고, 블레셋 사람들을 응징하십니다(29-30).

삼손의 최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씁쓸한 마음을 줍니다. 죄의 향락을 누릴 때는 즐거웠지만 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굴욕과 뼈아픈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존귀(尊貴)해지지만 죄를 사랑할 수록 수치와 고통이 더 해집니다. 죄가 주는 쾌락은 순간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2012년 8월 17일 금요일

약점

삿16:1-22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정치지도자이건, 교회지도자이건 탐욕으로 부패해  파문을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럴경우 지도력에 큰 손상을 입게 됩니다. 삼손은  사사로서  블레셋을 물리치며 승승장구 했지만, 인격, 분별력, 판단력, 절제력, 지혜에 있어선 미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가는대로 행동한 사람입니다. " ...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다."(1)는 말씀이 잘 보여줍니다.

힘으로는 삼손에게는 대항 할 수 없었던  블레셋 사람들은  '미인계'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삼손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이 고용한 '들릴라'와 사랑에 빠졌습니다(4). 들릴라는 3번이나 "당신이 나를 바보를  만든다고 "고 했지만(15),  사실 드릴라가 삼손을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의 힘의 비밀을 알아낼려고 가진 애를 썼습니다. 계속 성가시게 해 결국 그 비밀을 알아냅니다. 삼손의 약점(Weakness)은 여자에 있었습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나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나의 약점을 잘 아는 존재가 셋인데, 하나님, 사탄, 자신 입니다. 사탄은 나의 약점을 노려 나를 넘어트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하나님의 지혜

삿15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변에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이런 성격을 다혈질이라고 합니다. 삼손이야 말로 다혈질의 사나이였습니다. 본문을 읽어가면 항상 화를 내는 삼손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분을 내면서 말했고(3), 복수 하겠다고 말했습니다(7,11).

블레셋 사람들이  장인과 부인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지만(6), 원인은 삼손이 추수를 기다리는 블레셋 사람들의 밭에 불을 질러서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그는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입니다.  쉽게 혈기를 부리는  그에게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힘을 주십니다(14). 그의 힘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됩니다.  그러나 사사로서의 삼손은 복수심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그가 행하는 동기는 자기중심적이었고, 하나님께 받은 거룩한 열정이나 대의(大義)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수하지 못한 동기였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교회에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만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도 사용 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참 성도들을 연단 시키십니다.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도  이 측량 할 수 없는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하나님의 판단

삿14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삼손을 소개 할 때 간단하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머리를 자를 수 없음, 술을 마실수 없음. 정결치 못한 음식은 먹을 수 없음.
#2. 책임- 40년동안 블레셋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

태어날때 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13:5)임에도 젊은 청년 삼손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의 관심은 여자들에게 있었고, 자기중심적 성격에, 부모의 말을 잘 듣지도 않았고(3), 자만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또한 매우 폭력적인 사람입니다. 힘으로 남의 것을 강탈했고,  분노의 문제(Anger problem)가  있었고, 미성숙 했고, 제멋대로 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삼손을 향한  계획이 있으셨고, 성령의 기름을 부으셨습니다(19).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불경건한 이방민족을 사용하신 것 처럼(2:22) , 그분의 목적을 위해  결점투성이인 삼손을 사용하시고 계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리더(Leader)의 결점이 눈에 보일 수 있습니다. 리더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결점이 많음에도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시는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결점을 정당화시키지는 아니합니다. 나의 판단 보다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판단은 항상 옳으십니다.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삿13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사사기에는  하나의 패턴(Pattern)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2:1), 이후 부터 드보라 시대(4:1),기드온 시대(6:1), 삼손 시대(13:1)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고,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2:12).그럴때마다  하나님은 이방민족들을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시고, 그들이 자숙(自肅)하면 사사를 세워 구원하시고...(5). 반복의 연속입니다.

이시기에 가나안 여성들의 인권은 천시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성은 남편에게 쉽게 버림을 받았고, 때로는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사기 기록자는 본문의 여인(삼손의 어머니)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여인을 선택하십니다.  불임이었던  여인에게 사자를 보내셔서 아이가 태어나리라는  기쁜소식을 전합니다(3-5).  남편 마노아도 좋은 사람 처럼 보여집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하는 자세를 보면(15)...
 
믿음에서는 그의 아내가 앞섰습니다. 여인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는 상식을 초월한  경험을 하지만  단순히 믿었고, 남편에게 알려주었지만,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고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8)... 결국 이 가정에 삼손이  태어납니다(24).

하나님이 각 사람마다 역사하시는 방법은 다릅니다. 드보라와 같은 여장부를 사용하시기도 하고, 기드온을 큰 용사로 만들기도 하시고, 한 가정에 평범한 아낙네를 통해 삼손을 낳게 하십니다. 누구나 드보라나 기드온 처럼 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낙네 처럼 "믿음과 순종'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2012년 8월 13일 월요일

올무

삿8:22-35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위대한 성도들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발견하는 공통점을 든다면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 세상의 욕심과 야망이 없었음, 어떤 어려움도 신앙의 인내로 잘 이겨냄....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 시켜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들 역시 죄성을 가진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약의 바울입니다. 바울 역시 자신속에 있는 죄의 법과 처절하게 영적 싸움을 하였습니다(롬7:7-25).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명실상부(名實相符), 그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으로 부터 구원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백성은  마땅히 그가 왕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기드온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다스리실 것입니다"(28), 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합니다. 그는 영웅이었지만, 그것을 기회로 권력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금귀고리를 요구합니다(24). 오늘날의 값어치로 따지면 거의 '수억원'에 해당됩니다. 그것으로 에봇(제사장의 의복)을 만듭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그 예봇을 섬깁니다.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올무가 되었습니다(27).이미 하나님은  '가나안의 금'이 이스라엘의 올무가 될 것임을 경고하셨습니다(신7:23-26). 기드온은 승리했고 성취했지만, 여전히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올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돈? 공명심? 세상적 야먕? ...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하나님의 소리

시29편, 오늘의 묵상입니다.
본 시편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으로 가득찬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소리"라는 단어가 일곱번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마치  핵폭탄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5-9). 하나님의 소리는 "백향목을 꺽으시고, 레바논과 시룐산을 송아지 같이 뛰게 하게 하시고, 화염을 가르시고, 사막을 진동시키시고, 산림을 말갛게 벗기신다"고 합니다. 온 세계가 진동하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의 경이로움을 묵상하며 모든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하며 본 시편을 시작합니다(1). 자연 만물을 보면서, 뇌성과 번개를 보면서 창조주의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온 우주를 호령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다윗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소리는  평강과 힘을 준다고 했습니다(11).
세상의 소리를 들으면 근심과 걱정이 생기지만,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  영혼이 소생(蘇生)케 되고 안식과 평강을 얻습니다. 온 우주를 진동케 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모든 능력, 영광,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그분의 소리를!!!
나는 그 소리를 듣습니까?

2012년 8월 11일 토요일

먼저 할 일

삿7:15-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내가 원는것이 있을때 '필요'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필요항목리스트'(Cheklist)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즉  믿음, 순종, 성령, 300명의 용사, 용기 등등... 기드온은 전쟁을 수행하기 전  믿음으로 승리를 선포하고 경배를 드립니다(15). 적을 공격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웁니다. 300명, 나팔, 빈항아리, 횃불 ..

본문에는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이런것들을 가지고 싸우라고 언급한적이 없습니다.  기드온에 의해 세워진 작전입니다. 하지만 실제  전쟁은 하나님이 수행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기드온과 그의 용사들이 움직이기 전 까지는  아무일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300명의 용사들이 나팔을 불자  비로서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22).
먼저 믿음으로 움직여야,하나님이 간섭하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할 일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다음 그일을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는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2012년 8월 10일 금요일

격려

삿7:1-1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미디안과 전쟁을 치루기 위해 기드온이 모집한 군사들은 3만2천명입니다.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은 13만 5천명입니다. 본문에는 미디안군 진영의 군인들을 표현하기를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다고 했습니다(12). 13만 5천명과 3만 2천명, 4대1 비율입니다. 사람의 기준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은 숫자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만2천명의 숫자도 많다고 하십니다. 더 축소 시켰습니다. 300명만 남겼습니다.
300명대 13만5천명의 전쟁!
세계전사(戰史)에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만약' 이란 말이 없습니다. 순종 할 뿐입니다.
기드온은 순종했습니다. 여전히 두려움이 그를 붙잡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300명으로 싸우라고 하시니...
믿음이란 간판을 걸고 무대포로 시키시지는 아니하십니다.그래서 용기를 주십니다(9-11).

어제 아침 본문에서 기드온을 다루시는 하나님은  마치 좋은 선생님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치  노련한 교관처럼  기드온에게 도전과 용기를  함께 주셨습니다.

내 주변에 격려가 필요한 사람은 없습니까?
투병중에 있는 사람? 실의(失意)에 빠진 사람? 영적 침체에 빠진 사람?
그 사람을 찾아가 격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2012년 8월 9일 목요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

삿6:25-4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교사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시기 전  먼저 훈련을 시키십니다. 기드온도 그와 같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기드온을 강한 용사로 만들어가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잘 진행됐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조금 더 어려운 일을 시키십니다. 그의 집에 있는 바 알 제단을 헐고, 아세라상을 파괴 하는 것입니다(25). 바 알 제단과 아세라상은 마을에서 주요 예배 대상이었기에, 그들을 파괴 하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기드온은  순종했습니다(27). 그러나 하나님의 기대치에  100퍼센트 미치지 못했습니다. 두려워서 낮에 못하고, 밤에 몰래 행하였습니다(27).
교사이셨던 하나님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한 단계, 한 단계 강한 용사로 발전해 가게 하셨습니다. 그에게 "여룹바알'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바 알은 싸워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34). 미디안과 전쟁을 치루기 위해  군인들을 모집합니다(35). 하지만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아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36-39). 제가 보아도  기드온은  까칠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데 용사같이 팍팍 나가면 좋으련만...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계속 설득하시고, 표징을 보여주실까?....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대로 끝까지 행하십니다. 이것이 그분이 택한 자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내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시 그분의 인내와 사랑으로 우리를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계속 이끌어가심을 기억하십시오.

2012년 8월 8일 수요일

합당한 말

삿6:1-24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장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후가 변화되고 있고,  세계 경제가 어렵고, 전쟁, 테러, 시리아의 내전(內戰)등등.. 않 좋은 뉴스들만 접합니다. 기드온이 살던  시대도 힘든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말에는 '만약' '그러나'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는 믿음을 잃어버렸고, 무슨일이든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 나는 가장 작은 자"(15)라고 했습니다. 겸손의 표현이기 보다는 자신감의 결여(缺如)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 라고 말하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 라고 하셨습니다(12). 자기편에서는  작은 자 처럼 보였지만, 하나님편에서는 큰 용사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체가 기드온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보는 견해와 하나님이 나를 보는 견해가 다릅니다. 
믿음이 연약한 기드온은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은 하시지 않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확신을 주심에도 기드온은 하나님께 증표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십니다(17).
사람은 사람끼리 구분을 합니다. 신분을 따지고, 능력을 따집니다. 하나님은 그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시면  누구든지 사용하십니다.
왜 기드온을 사용하셨는지?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왜 나를 구원하셨는지?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왜' 라는 말이 아닌 '감사' 라는 말이 합당함을 기억하십시오.

2012년 8월 7일 화요일

드보라와 같은...

삿4장, 오늘의 묵상입니다.
호주의 고용법에는 '동일한 기회' 라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성별, 신체장애, 인종의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사사시대에도 남녀 차별 없이 지도자를 세워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드보라입니다. 그는 평범한 여인이었고(부인이면서, 어머니였음),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는 선지자였습니다(4). 비록 여자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드보라를 신뢰했고, 존경했습니다. 장군 바락이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전쟁에 참전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8)....
여성을  천시하던 시대에 드보라가 백성으로 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는 사실은 특이합니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합니다(6).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강조 하는 말입니다. 바락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한" 신세대였습니다(2:10). 그러므로 바락은 신앙이 연약한 자 였습니다.  신앙의 멘토가 필요했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의 영적인 멘토가 되었습니다..
남자라고 다 강한 것이 아닙니다. 여자라고 다 약한 것 이 아닙니다. 연약한 여자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도리어 남자를 이끌고 가는 신앙의 장부가 될 수 있음을  드보라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한국교회에 드보라와  같은  '신앙의 여장부'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12년 8월 3일 금요일

때가 되면

막7:24-30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출퇴근 하던가, 여행을 한다면  자동차를 이용하던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먼 여행길이라도 걸어서 혹은  작은  배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여행지는 로마도시들중 번영했던 도시 가운데 하나인 두로의 해안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그곳에 온 것을 아무도 알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24). 제자들과 휴식하기 위해  낯선 곳 을 찾아왔지만, 유명세를 타신  분 이라 그러질  못했습니다. 귀신들린 딸을 둔 한 여인이 예수님이 오신것을 알고 찾아와 고쳐달라고 간청을  합니다(25). 이 여인은 이방여인 입니다(26). 이방여인으로서 유대남자를 찾아 온 것 부터가  큰 용기가 필요 했습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실 줄 알았던 주님은  뜻밖의 반응을 보이십니다(27). 한번도  하신적이 없는  모욕적인  말을 하셨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자녀는 유대인들을 말하고 개는 이방인들을 말하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복음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해지고, 그 다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말씀 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깊은 뜻을 모르는 사람에겐  모욕적인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여인도 자신이  멸시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인은 굴하지 않았습니다(28). 결국 그녀는  주님의 칭찬을 받고  소원을 이루었습니다(30). 본문은 단순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 배울 것 있습니다.  겸손입니다. '개' 라고  하는 말에도 '주님 옳습니다.' 하는  자세 입니다. 겸손은 은혜를 담는 큰 그릇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시를 당해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복음을 전하다  무시를 당할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이 지체되면 중단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십니다.



2012년 8월 2일 목요일

날마다

막7:14-2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다른이와 대화 하다가  상대방의 말을 잘못 이해한적이 있습니까?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17).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해 다시 되묻곤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주님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바로 잡아주시곤 하셨지요. 복음서를 읽으면 주님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르치셨음을 봅니다. 설교자들과 교사들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가르치신 교훈은 단순합니다. 나의 마음에서 무엇이 나오는지를 깨달으라는 것  입니다(20-23).  마음에서  온갖 더러운 것 들이 나옵니다(16).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고 했습니다.
  나를 실족 시키게 하는 것들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습니다.  위대한 성도들의 전기집을 읽어보십시오 그들도  실족했다가는 일어나고, 실족했다가는  일어나는 일들을 반복했습니다. 인간의 모습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죄성이 있어서... 무언가 자극을 받으면 나쁜 것 들이 되살아납니다. 육체를 입고 있는 한 계속 될 것입니다. 옛 생활과 새 생활은 백지 한 장의 차이입니다. 금방이라도 되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성결의 출발은 마음을 지키는데 있습니다.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 만나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날마다 은혜를 구하십시오.

2012년 8월 1일 수요일

전통이냐, 진리이냐?

막7:1-13절 오늘의 묵상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짜증이 난 적이 있습니까? 누구나 규칙을 지키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전통(규칙)을 지키지 않는 제자들을 통제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5). 이들이 말하는 전통이란 손을 씻는 예법(例法)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이 아닌 힐렐(Hillel)이나 쇤마이(Shammai)랍비들이 만든 것으로 바리새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것 들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신앙의 표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인간의 전통에 둔다고 책망하셨습니다(8). 전통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 된다면 그 전통은 버려야 합니다(13).  교회에도 전통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전통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성경과 일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하지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교회는 너무 전통적입니다. 어떤 교회는 모던(Modern)화 합니다. 전자는 속박적입니다. 교인들간에 서로 눈치(?)를 보게합니다. 후자는 너무 자유스럽습니다. 둘다 위험합니다. 자유스러운것은 인본주의가 될 수 있고, 속박적인것은 율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표준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통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따르십시오.